지리산 종주 산행기

 

 

지난 주말, 오랜만에 들뜬 마음으로 '눈꽃열차'를 타고 태백산으로 향했었다. 겨울산으로 달려가는 야간열차 안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며 맥주를 나눠 마시는 기분은 정말 요즘 어린애들 말로 킹왕짱이었다. 함께 여행을 나선 친구들과는 대학 1학년때 같은 과 동기생들로 처음 만났으니 벌써 30년 이상을 동고동락해 온 사이가 되었다.

이 친구들과 결정적으로 뭉치게 된 건 아무래도 대학 1학년 여름방학때 난생 처음으로 함께 나섰던 '지리산 종주 산행'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당시는 우리 모두 지리산을 처음 가보는 터여서 여러 차례의 예비 모임을 통해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다. 함께 등산에 나설 여덟 명이 야영을 할 수 있는 대형 텐트 2개와 여러 개의 코펠·버너를 구하는 한편 4박 5일 동안 종주하기에 충분한 '식량들'을 끼니별로 부족하지 않도록 잔뜩 챙겨간 덕분에 우리 모두는 정말 엄청난 고생을 했었더랬다. 매일 아침 텐트를 걷고 식사를 하고 설거지까지 다 끝낸 다음 '무거운 짐들'을 배낭에 꾸역꾸역 챙겨넣고 나설 때마다 우린 주먹을 불끈 쥔 채로 빙 둘러서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르며 산행을 시작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굳은 결의가 없이는 도대체 그 먼 산길을 온전히 완주해 내기 여려울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천왕봉의 일출까지도 빼놓지 않고 챙겨 보았던 우리의 종주산행은 마지막 하산하던 때에 이르러 잊을 수 없는 여러 순간들 가운데 결정적인 장면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오랜(?) 야영생활로 배터리가 다 닳아 '희미한 손전등'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후미에 뒤쳐진 우리 친구들이 밤늦도록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텐트조'에 속했기 때문에 서둘러 하산하여 맞춤한 곳에 터를 잡고 텐트를 치고 저녁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제법 시간이 흐르고 '밥 다 되었고' 찌게마저도 떠먹을 시간이 지났지만 뒤에 처진 우리 친구들은 밤 9시가 넘도록 좀처럼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인적이 끊긴 지도 한참이나 지나서 거의 9시 반이 다 될 무렵에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드디어 우리 친구들이 나타났다. 우린 너나 할것없이 서로 얼싸안으며 재회의 기쁨과 감격을 만끽했다. 그때 저절로 다져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끈끈한 우정들이 결국은 평생의 친구가 되게 한 원동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아무튼 그렇게 기분좋게 달려간 태백산이었지만 날씨가 문제였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매섭기만 하던 강추위가 잠시나마 주춤한 것은 다행이었으나 '산행 내내' 눈이 그치질 않았다. 우리 일행은 눈보라와 강추위가 걱정스러워 단단히 무장한 채 이른 새벽부터 야간산행에 나섰다. 혹시라도 날씨가 좋아지면 '하얀 눈으로 뒤덮인 겨울산'을 배경으로 힘차게 떠오르는 멋진 '해돋이'를 담아 볼 수도 있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품은 나는 배낭 속에 무거운 카메라와 망원렌즈까지 챙겨 갔으나 안타깝게도 '태양'은 빛과 온기를 한꺼번에 다 내던지고 구름 뒷편으로 꽁무니를 감추고야 말았다.

그래서 사진은 찍는 둥 마는 둥 했고 그저 눈쌓인 겨울산을 '체력단련' 삼아 다녀온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가지 소득이 있었다면 뒤늦게 서울에 도착해서 뒷풀이를 위해 찾은 음식점의 아구찜과 해물탕 맛이 정말 짱이었다는 점이다. 오후 다섯시에 시작된 저녁겸 술자리는 뜻밖으로 '열기'가 고조되어 많은 얘기들과 술잔들이 오고간 끝에 숱한 빈병들을 탁자위에 줄을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정말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싶은 분위기였고, '이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따르고, 그렇게 마주 앉아서 그렇게 잔을 부딪쳐' 보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우리도 쌓아놓은 회비가 적잖은 만큼 그 돈으로 적금 타듯이 '히말라야를 함께 가자'는 얘기들도 빼놓지 않았다.


이번 산행에서 마지 못해 찍었던 사진들은 현장에서 카메라에 달린 LCD창으로 확인한 결과 대부분 '꽝'이었다. 그래서 아예 사진을 꺼내 보기조차 싫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뒤늦게 사진을 업로드해 보니 맙소사! 컬러모드로 찍은 사진들이 거의 대부분 흑백사진처럼 보일 지경이다.(아래 사진들은 일부러 '흑백'으로 후보정한 사진이 결코 아니다.)

어쩌면 2월 중순쯤 다시 한번 태백산을 다녀올 지도 모르겠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저렇게 버티고 선 주목의 그 늠름하고 멋진 자태를 다시 만나 카메라에 담아 보고도 싶고, 또 아마도 4월 하순쯤 떠나게 될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한 준비운동 차원에서라도 당분간 산을 자주 오르내릴 필요도 생겼기 때문이다. 제발 그땐 날씨가 좋아서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겨울하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 *


1. 겨울나무 사이로 어둠을 뚫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  Shooting Date/Time 2013-01-12 오전 6:14:07


(스트로보(외장 플래시)를 깜빡 까먹은 덕분에 이런 사진이...)


2. 흐린 날씨 때문에 일출은 커녕...... Shooting Date/Time 2013-01-12 오전 8:18:23





3. 生과 死의 경계는 어디에......  Shooting Date/Time 2013-01-12 오전 8:21:05 





4.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 


 


5. 내가 숨 쉬고 내가 있는 곳 기쁨으로 밝히리라 

 

 

 

6. 세상 어딘가 마음줄 곳을 집시되어 찾으리라  

 

 


7. 이제는 아무것도 그리워말자




8. 세월이 묻어둔 길목에 서서......

 

 

 

9. 이대로 또다시 천년을 더 살아보리라

 

 


10. 장군봉(1,567m)에 오른 사람들

 

 


11.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천제단 Shooting Date/Time 2013-01-12 오전 8: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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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1-20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녕 저 고사목 설경을 오렌님이 찍으셨단 말이지요?
찬찬히 즐감하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고맙습니다.

oren 2013-01-21 10:49   좋아요 0 | URL
산행 내내 눈이 내려 기대했던 아름다운 장면들을 마주하지도 못했고, 정상 부근의 세찬 눈보라 때문에 정말 얼어 죽는 줄 알았지만 그래도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눈길을 걷는 느낌이 참 좋았어요.

숲노래 2013-01-21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부러 이런 사진 찍으러 다니는 사람도 많은데,
다른 이들은 쉬 못 만나는 풍경을 만나셨으니
이 또한 즐거운 마실이었으리라 느껴요

oren 2013-01-21 10:57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의 말씀이 맞아요. 눈발이 흩날리는 어둑어둑한 날씨 때문에 쉽게 만나지 못하는 풍경이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해요.

새해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무거운 제사떡'을 가득 등지고 오르는 분들도 여럿 봤고, 천제단에서는 정말 발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가득 모여 다들 정성껏 제를 올리는 모습들이어서 적잖이 놀랐어요.

페크(pek0501) 2013-01-22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은 사진대로, 사진의 제목은 제목대로 보는 재미가 있네요.
어떻게 저런 나무를 발견하셨나요?
어떻게 저런 눈 풍경을 발견하셨나요?
감탄할 밖에요. 멋진 페이퍼에요.^^

oren 2013-01-23 11:59   좋아요 0 | URL
그동안 태백산에 너댓번 갔었는데 이번에 봤던 '주목 군락지'가 제일 환상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