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머(Homer), 초서(Chaucer), 그리고 세익스피어(Shakespeare) 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전달 매체가 무엇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기술이었다."

 - 마이크 아이스너

 

 * * *

 

때는 바야흐로 유튜브의 시대인가 보다. 여러 해 전부터 네이버 블로그도 접고, 오로지 알라딘 서재만 주구장창 이용했던 나조차도 유튜브를 기웃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영상 매체가 '압도적인 힘'으로 책을 밀어내고, 독서인구를 끊임없이 쪼그라들게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대세임을 이제는 솔직히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영상물이 책을 끝없이 밀어내는 흐름 속에서 책과 유튜브는 과연 어떤 식으로 공존할까. 책 속에 담긴 눈에 보이지 않는 깊디깊은 생각들을 다양한 이미지와 목소리와 결합해서? 혹은 텍스트로는 도저히 전달할 수도 없고 보여줄 수도 없는 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영상으로 꾸며서?

 

물론 책과 영상과의 결합이 영영 이질적인 조합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 「TV, 책을 말하다」 혹은 「TV 문학관」과 같은 프로그램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으니까. 또한 소설과 영화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니던가. 『오만과 편견』이나 『안나 카레니나』만 하더라도 '영상'부터 떠올리는 독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작가들이나 교수들이 책을 주제로 삼아 텍스트가 아니라 직접 말로서 대중들에게 설명하는 '인문학 강좌'들은 얼마나 많은가.

 

요며칠 동안 유튜브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란 사실들이 참으로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는 내가 만약 '북튜버'로 활동하게 된다면 꼭 이야기하고 싶은 '책들'에 대해서도 이미 적잖은 '유튜버'들이 나름대로 뚜렷한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책들은 가령,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사마천의 『사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까라마조프 형제들』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등 (일일이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래도 내가 꼭 얘기하고 싶은 책들이 빠짐없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라든가, 몽테뉴의 『몽테뉴 수상록』, 혹은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나 『황폐한 집』, 혹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같은 특출난(?) 책들까지 '유튜브 동영상'들에 몽땅 점령당하고 만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그런데, 이런 책들을 과연 유튜브 동영상으로 만들 수나 있을까? 설사 그런 영상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걸 읽어 줄 유트브 독자들은 또 얼마나 될까?)

 

아무튼, <책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책인 호메로스의 두 걸작시만 하더라도 어느새 '유튜브 동영상'에서 수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당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놀랍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800년 전에 쓰여진 눈 먼 음유시인의 <전쟁 이야기>가 이토록 급변하는 현대 문명에서도 여전히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야기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함과 동시에, 책 속에 쓰여진 훌륭한 이야기는 결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웅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호메로스의 두 걸작 서사시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흔히 최초의 문학으로 간주된다. 이 두 작품은 모든 유럽 문학의 '근원이자 원천'이며, 새로운 사상의 대로로 향하는 '대문'이다. 합쳐서 2만 8천 행에 이르는 두 서사시는 그 전과 후의 수백 년 기간을 통틀어 '이 놀라운 업적에 필적할 만한 작품은 전혀 없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메로스의 재능은 그리스에서 아주 초기부터 인정을 받았다. 아테네인들은 마치 오늘날 경건한 그리스도교도가 성서를 대하듯이, 무슬림이 코란을 대하듯이 그의 작품을 대했다. 소크라테스도 자신의 목숨이 걸린 재판에서 『일리아스』의 구절을 인용했다.(190∼191쪽)

그리스에서 호메로스의 작품이 최종적인 형태를 갖춘 것은 대략 기원전 300년경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스라엘에서 히브리 성서(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구약성서)는 기원전 200년경에 이르러서야 온전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230쪽) 


성서보다 먼저 쓰여졌고, 숱한 고대의 비극작가들이 즐겨 자신의 작품의 소재로 삼았으며,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토록 자주 읽고 암송했으며, 고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중세의 몽테뉴의 손에서도 좀처럼 떠나지 않았고, 20세기 최고의 소설가인 제임스 조이스와 마르셀 프루스트에게까지 깊은 영향을 줬던 호메로스의 작품들이 유튜브 세상에서는 과연 어떤 식으로 살아남을 것인지를 관찰하는 것도 몹시 흥미로운 일이다.

 

이런 점들에 관해서는 『호메로스와 테레비』라는 몹시도 기이한 제목의 책을 쓴 데이비드 덴비의 견해가 '유튜브 혁명'과 관련하여 특별히 참고할 만하다.(그의 책을 직접 읽어보진 못했지만, 피터 왓슨이 쓴 『생각의 역사』만 살펴 봐도 그의 생각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 초 대학 교육 관련 여러 자료를 분석하면서 레빈은 1929년 하버드 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은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라는 사람이 이런 불평을 하는 대목을 제시했다. "우리가 공부에 흥미를 느끼도록 애쓰는 교수는 없었다. 『일리아드』가 무슨 늪지대라도 되는 양 여기저기 발이 푹푹 빠지면서 호메로스를 그저 읽어내는 게 과제였다. ······ 이 불후의 서사시가 담고 있는 영광과 찬란함과 부드러움과 매력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었다. 6음부 운율의 리듬에 대해서도 아무 설명이 없었다."(1110쪽)

문화 전쟁에 대해 가장 독특한 반응을 보인 책은 데이비드 덴비David Denby(1943∼ )의 걸작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Great Books』이다. 《뉴욕》매거진 영화평론가이자 《뉴요커》객원편집위원인 덴비는 1961년에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해 교양과목 두 강좌를 들었는데 제목은 '문학 인문학'과 '현대문명'이었다. 1991년 가을 덴비는 컬럼비아대로 돌아가서 똑같은 강의를 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강의는 얼마나 변했으며, 지금은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지, 1990년대 학번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은 또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를 알아보고픈 호기심에서였다. 그가 영화평론가로 활동한 것은 1969년부터였다. 물론 여전히 평론 일을 좋아하지만 '스펙터클의 사회'에 이골이 나기도 한 터였다. 변화무쌍하고 간접적인 미디어의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미디어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정보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것이 되었다. 일단 그럴 듯한 것 같다가도 바로 흩어져버린다. ······ 누구의 정보도 확고하지 않다. 미국인들이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런 데 원인이 있다. 남들처럼 나도 지쳤지만 그래도 뭔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미디어 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대의 틀 속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재미는 넘치지만 뭔가 몹시 불만스러운 상태 말이다. "덴비는 우리를 자신이 좋아하는 위대한 책들(호메로스, 플라톤, 베르길리우스, 성서, 단테, 루소, 셰익스피어, 데이비드 흄, 존 스튜어트 밀, 조셉 콘래드, 드 보부아르, 버지니아 울프) 곁으로 데려가면서 관심 없는 작가들(갈릴레오, 괴테, 다윈, 프로이트, 아렌트, 하버마스)은 무시한다. 그의 저서는 위대한 책들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 유명하다. 고전을 영화와 연관 지어 설명하기도 하고, 아들 맥스가 오래된 목소리의 가치를 모른 채 겉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는 없는 미디어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그는 소수민족 출신 학생들이 왕왕 필독서 목록이 '백인 유럽인' 일색으로 짜인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분노라기보다는 당혹감과 서글픔 같은 것이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그의 논지는 이런 것이다. 백인 학생이든 흑인 학생이든 라틴계든 아시아계든 '독서 습관이 제대로 붙은 상태로 대학에 들어온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과거와 명목상의 연계 이상의 것을 가진 학생은 거의 없다. '백인 학생 대다수가, 흑인이나 황인종보다 우수하다고 하는 서구의 지적 전통에 대해 알지 못한다.' 호메로스, 단테, 보카치오, 루소, 마르크스의 세계는 이제 아주 낯설고 지금 우리와는 다르다 등등. 이어 덴비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위대한 책 강좌를 많은 학생들은 대단히 불편하게 생각한다. 요즘 분위기에 맞지 않고, 수강생의 게으름이 들통 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동적인 기능을 한다기보다는 사실상 학부 커리큘럼에서 가장 급진적인 강좌다." 덴비는 학생 때 읽었고, 책을 쓰면서 다시 공부한 '위대한 책들'이 사람마다 다른, 독특한 해석이 가능하며, 문화적 우파가 원하는 식의 해석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롭게 발견했다. 그러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학생들은 '고전이 우리가 사랑을 할 때, 고통을 받을 때, 그리고 지식을 추구할 때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단계를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은 서구의 정전은 서구의 정전을 공격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백인이 아닌 사람들도] 전통적인 '백인' 문화를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다고 손해 볼 일은 없다."

덴비가 보기에 진짜 위협은 미디어다.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영상과 음향의 홍수에 그저 맥을 놓고 있다. 그런 속에서는 현재를 제외한 모든 순간은 이상하고 핏기 없고 죽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현대 세계는 뭐가 잘못 돼도 단단히 잘못 됐다고 그는 말한다. 1961년 대학에 들어갔을 때 팝의 열정은 뭔가 해방적인 분위기를 주었고, 답답한 교실에 신선한 공기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는 시들해졌고, 팝은 순응과 안락감을 대표하는 분야가 되고 말았다. 전통적인 고급문화가 그 낯섦과 난해함 때문에 오히려 학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충격으로 느낄지도 모르겠다. ······ 고전은 사람을 기죽게 하는 점령군이 아니라 서로 싸우고, 다시 또 독자와 싸우는,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들의 왕국이다."(1122∼1124쪽)

 

'덴비의 생각'을 들어 보면 우리는 뭔가 부정적인 동시에 약간은 희망적인 몇 가지 결론에 쉽게 도달하게 된다. 첫째, 진짜 위협은 미디어다. 둘째, '위대한 책들'은 사람마다 다른 독특한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셋째, 고전은 사람을 기죽게 하는 점령군이 아니라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들의 왕국이다.

 

한때 'TV 안보기 시민모임'이 우리나라에서도 발족한 적이 있었다. 이 모임의 선행 모델은 미국의 'TV 끄기 네트워크'였다고 한다. 문명의 총아인 TV의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수동화시키고, 주체적인 개인으로 설 수 있는 사고능력을 마비시키는 데 있다.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그저 자신을 내맡긴다.

 

‘TV 끄기 네트워크’ 베스피 총재는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일들은 의식적인 힘과 노력을 요구하지만 TV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의학·보건단체 10곳은 TV 시청을 “인간이 깨어나서 하는 가장 정지된 행동”이라고도 규정했다. 과학자들은 TV가 뇌에 미묘한 이완감과 편안함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계속 TV를 켜고 싶게 만드는 과정이 약물 중독과 매우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책은 정반대다. 책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든다. 맹목적인 TV 시청은 결국 책에 적대적이며 우리들의 삶과 문화에서 깊이를 앗아간다.

 

그런데도 왜 유튜브는 날로 번창하는가. 사람들은 그저 입으로 던져넣기만 하면 되는 과자처럼 본능적으로 '영상물'을 좋아하기 마련이고, 영상물의 소비가 과거처럼 TV가 자리잡은 '거실'에만 국한되지 않고 어느새 우리들의 손바닥까지 바싹 옮겨 왔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들에 대해 『유튜브 레볼루션』이라는 책을 쓴 현직 '유튜브 최고 비즈니스 책임자'인 로버트 킨슬은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요약했다.

 

콘텐츠의 무료 유통, 안정적인 수익 창출의 기회, 카메라의 진화 이 세 가지 요인이 창의적 인재로 무장한 새로운 공급라인을 생성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런 한편으로, 개인용 스크린의 확산은 새로운 수요의 물꼬를 텄다. 모바일은 우리가 영상을 시청하는 방식을 예컨대 책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바꿔놓았다. 폭넓은 선택권과 접근성으로 사람들 사이에는 같은 영상과 프로그램을 즐기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기성세대가 잘 모르는 크리에이터들이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것도 이런 변화 때문이다.

오늘날의 경쟁은 진열대나 케이블 상품을 두고 벌어지지 않는다. '시청자의 시간'이 경쟁의 대상이다. 광고주, 방송사, 신문사, 웹사이트, 콘텐츠 창작자, 앱 등이 모두 시청자의 관심을 갈구하고 있다. 관심을 얻어내야 상품이나 서비스, 또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매를 유도하는 광고를 시청자에게 판매할 기반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관심이 곧 '화폐 가치'가 되는 것이다.

관심이 디지털 시대의 화폐라면, 모든 기업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바로 영상 시청이다. 영상 시청은 인간이 여가를 보내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다. 미국인은 하루에 평균 다섯 시간을 무언가를 시청하는 데 쓴다.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을 소비하는 건 딱 두 가지, 일과 잠뿐이다.

 

 - 로버트 킨슬, 『유튜브 레볼루션』 중에서

 

 

일과 잠 말고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활동이 바로 무언가를 시청하는 시간이고, 그 무엇인가를 공급하는 주체는 어느새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왔던 수많은 미디어 기업으로부터 개인의 영역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에도 무덤덤한 채 계속 책을 붙들고 알라딘 서재에만 기웃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 알라딘 서재가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지금처럼 번창할 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일단 뭐라도 해 보자는 다급한(?) 심정으로 동영상 컨텐츠부터 뚝딱 만들어 봤다. 당장에는 '유튜버'에게 필수적인 각종 장비들이 하나도 없으니 '사진으로 동영상 만들기' 작업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유튜브를 이러저리 둘러 봤더니 생각보다 여러 장비들이 필요한 것 같다. 동영상에 적합한 카메라, 마이크, 조명, 영상 편집 프로그램 등등. 나로서는 뭐하나 딱히 갖춰진 게 없다. 심지어 유튜브 관련 책조차 단 한 권 사지 않았다. 도대체 나는 그동안 무얼 하고 지냈길래 이토록 유튜브에 무관심할 수 있었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 *

 

책을 해설하는 '동영상'을 직접 만드는 일은 단단히 마음먹고 작업에 능숙해 지기 전까지는 적잖은 준비 과정이 필요할 듯하다. 노후화된 컴퓨터의 업그레이드부터,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배우는 것까지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일단은 연습 삼아 무작정 '여행 사진 동영상'부터 만들어 봤다. 유튜브를 시작해 보라는 말을 듣고 유튜브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벌써 닷새는 지난 듯하다. 무료 배경음악 하나 다운받는 데도 한두 시간씩 휙휙 사라진다.

 

 

 

 

 

지난 주말에 열일 제쳐두고 동영상을 두 개씩이나 만들어 올리고 나니 문득 '삐악삐악 우는 게 너무 늦었소'라고 말했던 『돈키호테』의 산초가 생각난다. 구독자 수가 고작 26명에 불과한 햇병아리 신세라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는 고맙게도 산초에게 다음과 같은 대화도 따로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나리.」산초가 말했다. 혀에 종기가 나도 닭은 꼬꼬댁 울어야 하고, 오늘이 너의 날이면 내일은 나의 날이라지 않습니까요. …… 오늘 쓰러진 자 내일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침대에 있기만을 바라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러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요. 새로운 싸움을 위해 다시 기운을 차릴 생각도 없이 맥 빠져 있지 마시라는 겁니다요.」(806∼809쪽)

 

 - 『돈키호테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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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9-11-04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겨울 서점 말고는 북튜버는 못보겟더라구용 ㅋㅋ 뭐랄까 북튜브 보는 시간에 책을 읽자! 모드가 된달까 ㅎ

oren 2019-11-04 20:17   좋아요 1 | URL
저도 겨울서점 채널은 언뜻 본 듯합니다.
공장쟝님 말씀대로 ‘알아두더라도 별로 쓸모가 없는‘ 북튜버들도 범람하고 있는 느낌도 들더군요.^^

공쟝쟝 2019-11-04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별별 콘텐츠가 범람하는 유튭 세계에서 양질의 콘텐츠로 정화작용 해주길 바라며 구독 버튼 누르러다녀올게요 ㅋ

oren 2019-11-04 20:20   좋아요 1 | URL
유튜브 세계에서는 ‘구독 버튼‘ 하나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듯하더군요.
제 친구 한 녀석은 유튜브 채널 개설한지 6개월 되었다는데(구독자 274명),
구독자가 한 명만 빠져나가도 밤에 잠이 잘 안 올 정도로 예민할 때도 있다고 하더군요.
암튼 햇병아리인데도 구독까지 눌러주시겠다니 너무 고맙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11-04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님 클래식마니아 이신가봐요? 동영상에 bgm이 클라식입니다 ㅎ 이거 만드는데도 시간 엄청 잡아먹었을 듯 합니다! 잘 읽고 보고 갑니다^^

oren 2019-11-04 20:52   좋아요 1 | URL
동영상 두 개 만들면서, BGM으로 차이코프스키의 <봄의 소리 왈츠>랑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쓸 생각을 미리 떠올렸더랬습니다.^^

어쨌든, 비엔나에 가서는 빈 무지크페라인 음악공연 티켓도 현장 구매를 하고,
빈 슈타츠 오퍼에서의 음악공연 티켓은 한국에서 미리 사전예약을 하기도 했고,
빈 외곽에 있는 음악가 묘지까지도 일부러 꽃을 사 들고 가서 헌화할 정도쯤 좋아합니다.^^

그런데, 막상 원하는 BGM은 빤히 있는데, 그 음원을 어디서 어떻게 무료로 다운 받는지를 아는 데는 1시간 이상씩이나 걸리더군요. 정작 동영상으로 만드는 데는 각각 한두 시간 남짓 걸렸던 듯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11-04 21:59   좋아요 0 | URL
유튜버도 사진이나 글이나 음악에 대한 저작권을 알아보고 해야겠더라구요 만약 유튜브를 한다면 그런게 엄청 귀찮을 듯 싶습니다 ㅎㅎ

oren 2019-11-04 22:1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인물사진에는 초상권 문제도 걸려 있고요.
유튜브 강좌를 5주 동안 들은 제 선배 얘기에 따르면,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그대로 영상으로 녹화해서 테스트 삼아 올렸는데도,
유튜브에서 연락이 왔더라고 하더라구요. 저작권이 있는 음악이니 ‘해명‘을 하라고요.
상업 목적이 아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이다, 해서 해명은 됐지만,
구글의 인공지능 기능이 새삼 대단한 것 같다고 혀를 내두르더군요.

hnine 2019-11-05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영상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제가 최근에 다녀온 곳이라 체코 편은 특히 더 반가왔고요.
요즘은 검색을 youtube로 할 정도이니 안올라와 있는 테마가 거의 없을 듯 합니다. 그래도 같은 주제에 대해서라도 나는 나만의 내용을 담을테니까 같지는 않다고 봐요.
만드시느라 힘드셨지만 재미도, 보람도 있으실 것 같아요.

oren 2019-11-05 10:02   좋아요 0 | URL
hnine 님 반갑습니다.^^ 님께서도 최근에 체코를 다녀오셨군요. 5년 전에 제가 갔을 때만 하더라도, 거기에 한국 사람들이 그토록 많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한국 사람들이 많겠지요?

동영상을 만들고, 유튜브에 올리고 나서 보람이 있었던 게 ‘벌써‘ 두 번이나 있었어요. 한 번은 지난 일요일에 호수공원을 산책하다가 <17일 동안의 유럽 여행>을 함께 했던 분을 만났는데, 그 분한테 영상을 보여드린 일입니다. 무려 17일 동안이나 네 명이서 함께 여행을 하고도, 사진조차 제대로 공유하지 못했었거든요.

두 번째는 지난주에 2박 3일을 함께 등산했던 친구 한 명이 대뜸 ˝동유럽을 가봐야 겠군.˝ 하는 멘트를 날려준 일이에요. 그 친구와는 히말라야도 함께 다녀왔는데, 주구장창 산만 찾아다니는 줄로만 알았는데(그 친구는 히말라야만 세 번 갔다왔으니까요.) 정말 보람이 느껴지더군요. 제 영상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