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들은 공중 목욕탕을 과연 어떻게 이용했을까? 에드워드 기번의 설명을 들어 보자.

 

아우구스투스 자신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경탄할 만한 수로들은 황제가 관대하게 로마 시 곳곳에 건설한 공중 목욕탕에 물을 공급해 주었다. 원로원 의원들과 시민들이 차별 없이 사용하도록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여는 안토니누스 카라칼라 욕장은 대리석으로 만든 1600개 좌석을 갖추었으며,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은 3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다. 높은 욕실 벽은 화필로 그린 듯 우아한 디자인과 다양한 색채의 정교한 모자이크로 덮였다. 이집트산 화강암이 누미디아의 귀한 초록색 대리석을 보기 좋게 장식했다. 뜨거운 물줄기가 빛나는 은으로 만든 수많은 수도꼭지를 통해 넓은 웅덩이로 계속해서 쏟아졌다. 로마 시민 중 가장 비천한 자라도 동전 몇 닢만 있으면 아시아의 왕들도 질투할 호사를 온종일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화려한 건물들로부터 신발도 못 신고 망토 하나 못 걸친 지저분한 누더기 투성이의 평민들이 쏟아져 나와 온종일 광장이나 거리를 배회하며 주워들은 소식으로 논쟁을 벌이고, 처자식들의 비참할 만큼의 적은 생활비를 허황된 도박에 탕진해 버렸다. 그러고는 음침한 여관이나 매음굴에서 상스럽고 천박한 육욕에 탐닉하면서 밤을 지샜다.(181쪽)

 

 - 에드워드 기번, 『로마 제국 쇠망사_제3권』, <제31장> 중에서 

 

 

역사가의 설명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들이 아직도 로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유네스코 세계고대문명』에 담긴 '카라칼라 욕장'을 보면 그 엄청난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 사진에 딸린 설명 또한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화려한 황제의 목욕탕을 구성하는 다양한 방들에서 사람들의 흔적은 사라졌다. 카라칼라 황제가 세운 이 목욕지구에는 온탕, 냉탕, 상점, 도서관, 마사지실, 피부 미용실은 물론 정원도 있었다.(55쪽)

 

 - 『유네스코 세계고대문명』 중에서

 

 

카라칼라 욕장 (1899년 추측해서 그려낸 복원 그림) (출처 : 위키백과)

 

카라칼라 욕장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공중 목욕탕 유적을 말한다. 카라칼라 황제의 명령으로 212년부터 216년까지 지어졌다. 이 공중 목욕탕은 6세기까지 남아서 그대로 사용되다가, 고트 전쟁 중에 동고트족 군대가 공격하여 파괴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 카라칼라 욕장의 디자인과 양식은 뉴욕 시의 펜실베이니아 역의 디자인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1960년 하계 올림픽 체조 종목의 공식 경기장으로 사용되었고, 2009년에는 카라칼라 욕장의 발굴 유적지가 2009년 라퀼라 지진으로 피해를 입기도 했다.(출처 : 위키백과)

 

 

로마인들이 목욕탕 만큼 자주 들렀던 곳은 '원형 경기장'이었다. 그들이 거기서 벌어지는 경기들을 얼마만큼 광적으로 좋아했는지는 기번의 설명만큼 생생한 것도 드물지 싶다. 앞에서 인용했던 기번의 문장에 바로 이어지는 문장은 이렇다.

 

그러나 이 나태한 대중의 오락 중에서도 가장 활기차고 화려한 것은 자주 열리는 공공 경기들과 구경거리였다. 신앙심 깊은 그리스도교 군주들은 비인간적인 검투사들의 싸움을 폐지했지만, 원형경기장은 여전히 로마 시민들의 집이며 신전이고 공화국의 본거지였다. 성급한 군중들은 동이 트자마자 자리를 잡으려고 달려갔다. 근처의 주랑 현관에서 잠도 못 자고 마음 졸이며 밤을 보내는 자들도 많았다. 구경꾼들의 숫자는 떄로는 40만 명에 이르기도 했다. 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초조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말과 기수들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 채, 자기가 선택한 깃발의 승패에 따라 희망과 두려움 사이를 오고 갔다. 이쯤 되니 로마의 행복이 한낱 경기 결과에 달려 있는 듯 보일 지경이었다. 그들은 경기에 고함을 지르고 갈채를 보낼 때 못지않은 열정으로 야수 사냥과 다양한 형식의 무대 공연을 즐겼다. 여기에 비하면 오늘날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공연들은 순수하고 우아한 취향과 미덕의 교육장이라 해도 좋을 정도이다.(181∼182쪽)

 

 - 에드워드 기번, 『로마 제국 쇠망사_제3권』, <제31장> 중에서 

 

 

 로마의 콜로세움(출처:위키백과)

 

 

Colosseum 2013(출처:위키백과)

 

 

The Christian Martyrs' Last Prayer, by Jean-Léon Gérôme (1883) (출처:위키백과)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에 대해서는 끔찍하게도 자세히 묘사했지만, 자신이 죽고 난 뒤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자신이 사망한 뒤 불과 1세기만에 영국인들이 로마의 콜로세움 못지 않은 대규모 축구장을 짓고 나서 매주마다 광적으로 축구 경기를 즐기기 시작했으며, 거기서 다시 1세기가 더 흐르고 나서는 전세계의 수많은 축구팬들이 '단 하나의 경기 결과'에 얼마나 미쳐 날뛰듯이 광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도 언급한 게 없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내일 새벽 경기에서는 또 어떤 극적인 드라마가 쓰여질까. 오늘 새벽처럼 전세게를(특히 한국을?) 뒤집어 놓을 드라마틱한 경기가 또다시 재연될까. 벌써부터 몹시 궁금하다. 이토록 큰 경기를 코 앞에서 놓칠 순 없는 노릇이지만, 이토록 야심한 새벽 시간에 열린다는 게 늘 문제다. 까마득한 옛날 박지성이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아스널을 맞아 멋진 선제골을 넣을 때, (정말 뜻밖에도!) 편안한 저녁 시간에 외국인들과 함께 그 경기를 봤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2009년 5월 어느날, 토론토에 있을 때였지 싶다. 그땐 또 얼마나 가슴이 뿌듯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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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5-09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많은 스포츠 경기가 새벽에 있는데, 그럴 때는 밤늦게 시청하기가 쉽지 않네요. 특별한 경우에만 하이라이트를 보고 넘기고 있는 저로서는 밤늦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경기를 시청하고도 다음날 무리없이 일상으로 돌아오시는 분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oren 2019-05-09 11:33   좋아요 1 | URL
EPL 경기는 그나마 주말 밤에 게임이 열려서 밤늦도록 중계 방송을 보더라도 생활에 별 지장(?)이 없는데, 챔피언스 리그는 꼭 주중에, 그것도 새벽 4시대에 열리니까 생중계 보는데 진짜로 애로가 많더라구요. 챔피언스 리그 주요 경기를 생중계로 근 10년 가까이 보다가, 요즘은 녹화된 하이라이트만 보는 형편인데, 오늘 새벽 게임은 모처럼 본방 사수했네요. 더군다나 오늘 경기는 두고두고 기억될 역사적인 경기여서 생중계로 본 보람도 컸네요. 하루 전에 있었던 ‘안필드의 기적‘보다 훨씬 더 극적인 ‘암스테르담의 기적‘을 봤으니까요. ㅎㅎ

겨울호랑이 2019-05-09 11:33   좋아요 1 | URL
어재 경기가 그렇게 재밌었다는데 oren님께서는 실시간으로 보셔서 정말 기분좋게 하루를 보내시겠습니다^^:)

oren 2019-05-09 11:38   좋아요 1 | URL
후반 인저리타임에 역전골 넣었을 땐 정말 소리 지르고 싶어 미치겠더라구요. 야심한 새벽이라 도저히 고함을 지를 순 없었고, 어디에선가 도저히 못 참고 뿜어내는 극적인 환호성을 조용히 음미하기만 했답니다.^^

cyrus 2019-05-09 16: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포츠 중계를 보는 날 중 가장 기분이 좋았던 날은 어제였어요. 제가 바라던 결과가 나왔거든요. 류현진 선발 경기, 삼성 라이온즈 투수 윤성환 선발 경기, 대구 FC 아시아챔스리그 조별 경기, 그리고 오늘 새벽에 본 토트넘 경기까지 제가 응원한 팀들 모두 이겼어요... ㅎㅎㅎ

oren 2019-05-09 16:32   좋아요 0 | URL
어제 하루 그렇게나 많은 경기에서 모조리 승리를 챙겼군요. ㅎㅎ
류현진 완봉승도 대단했지요. 저도 실시간 중계를 틈틈이 챙겨봤습니다만.. ㅎㅎ

카알벨루치 2019-05-10 0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님의 이런 면 좋아합니다 오우 본방사수하셔서 희열을 느끼셨겠습니다 모우라가 미친날! 가끔 큰 경기는 한 두사람이 미쳐주는 팀이 이기죠 ㅎㅎ

oren 2019-05-10 13:05   좋아요 1 | URL
전반전이 진행될 때만 해도 토트넘이 너무 못한다 싶었고, 상대적으로 아약스가 매우 짜임새 있게 토털 축구를 훌륭하게 펼친다 했는데, 후반전에 요렌테 투입하고 나서 게임이 완전 달라지더군요. 그 틈바구니에서 모우라는 ‘상상 그 이상‘의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줬고요. 간만에 대박 경기를 생중계르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