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시절의 만화
① 어린이 교양 월간지의 전성시대
어린 시절의 책은 역시 뭐니뭐니 해도 '만화'다. 글씨를 익히기 전부터 그림만을 보며 즐거워 할 수 있었고, 어머니를 졸라서 읽어달라고 떼를 쓰던 책은 다름아닌 만화였다. 글씨도 모르던 나이에 만화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형, 누나의 존재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형의 부탁(?)으로 매달 어린이 교양지를 사 주셨다. 당시는 어린이 교양지의 전성시대.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소년생활, 소년경향, 우등생 등 많은 월간지가 만화 시장을 선도하던 시대다. (상대적으로 불량만화 취급을 받았던 대본소 만화들에 비해 이들은 비교적 융숭한 '우량만화' 대접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비교적'일 뿐 어른들의 만화에 대한 시각은 좋지 않았지만) 우리집은 어찌어찌 하여 '어깨동무'를 보게 되었고, 그 이후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까지 거의 매달 빠지지 않고 10여년간 구독하였다.
그 때 어깨동무에 연재되던 만화들은 김원빈의 <주먹대장>, 윤승운의 <요철 발명왕>, 신문수의 <도깨비 감투>, 길창덕의 <덜렁이>, 박수동의 <소년 고인돌> 등 우리 만화계의 원로가 된 명장(名匠)들의 대표작과 <비밀 첩보원 흑표범>, <손오공>, <파도여 안녕> 등 일본만화를 복제, 번안한 작품들이었다. 이같은 복제, 번안물들은 다른 유력잡지인 새소년이나 소년중앙 등에서도 다수 연재되었는데, <도전자 허리케인>(내일의 죠), <바벨 2세>, <검은 독수리>(에이트맨), <타이거 마스크>, <태풍을 쳐라>(거인의 별), <삼국지> 등이 그것이다. 이런 불법 복제, 번안물들은 만화 시장의 저변이 넓지 않고, 작가군이 풍성치 않았던 그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탄탄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 등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나 우리 만화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있다.
명랑만화의 전성시대였지만 극화계열에서도 뛰어난 작가들이 배출되기 시작한다. 이상무, 이우정, 방학기, 이두호 등이 70년대 중반 어린이 교양지를 통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직도 현역 최고의 만화가로 일컫는 허영만, 이현세가 어깨동무와 보물섬을 통해 이름을 알리며 자신들의 시대를 열어가게 된다.
어린이 교양월간지 시대는 82년 <보물섬>이라는 순전히 만화로만 이루어진 잡지의 출현으로 일대 전기를 맞이하게 되고, 뒤이어 만화 전문 출판사의 등장과 해적판 일본 만화의 범람으로 종언을 고하지만, 70~80년대에 성장한 많은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굼봉이>, <꼬마 홍길동과 헤딩박>, <우정의 마운드>, <태양을 향해 달려라>, <첩보원 36호>, <모돌이 탐정>, <선달이 여행기>, <타임 머신>, <짱구 박사>, <말썽 대장 펄렁이>, <울지 않는 소년>, <비둘기 합창>..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미있는 작품들과 함께 보냈던 어린 시절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어깨동무가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머니를 졸라 받은 책값을 들고 문방구로 뛰어가던 그 때가 엊그제 같기만 하다.
** <꺼벙이>, <번데기 야구단>, <두심이 표류기>, <철인 캉타우>, <도깨비 감투> 등 당대의 인기 작품들 몇몇은 몇 해전 오프라인 혹은 온라인으로 복간 되었으며, 더 많은 작품들을 복간하기 위한 활동도 활발히 전개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