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시절의 만화

① 어린이 교양 월간지의 전성시대

어린 시절의 책은 역시 뭐니뭐니 해도 '만화'다. 글씨를 익히기 전부터 그림만을 보며 즐거워 할 수 있었고, 어머니를 졸라서 읽어달라고 떼를 쓰던 책은 다름아닌 만화였다. 글씨도 모르던 나이에 만화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형, 누나의 존재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형의 부탁(?)으로 매달 어린이 교양지를 사 주셨다. 당시는 어린이 교양지의 전성시대.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소년생활, 소년경향, 우등생 등 많은 월간지가 만화 시장을 선도하던 시대다. (상대적으로 불량만화 취급을 받았던 대본소 만화들에 비해 이들은 비교적 융숭한 '우량만화' 대접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비교적'일 뿐 어른들의 만화에 대한 시각은 좋지 않았지만) 우리집은 어찌어찌 하여 '어깨동무'를 보게 되었고, 그 이후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까지 거의 매달 빠지지 않고 10여년간 구독하였다.

그 때 어깨동무에 연재되던 만화들은 김원빈의 <주먹대장>, 윤승운의 <요철 발명왕>, 신문수의 <도깨비 감투>, 길창덕의 <덜렁이>, 박수동의 <소년 고인돌> 등 우리 만화계의 원로가 된 명장(名匠)들의 대표작과 <비밀 첩보원 흑표범>, <손오공>, <파도여 안녕> 등 일본만화를 복제, 번안한 작품들이었다. 이같은 복제, 번안물들은 다른 유력잡지인 새소년이나 소년중앙 등에서도 다수 연재되었는데, <도전자 허리케인>(내일의 죠), <바벨 2세>, <검은 독수리>(에이트맨), <타이거 마스크>, <태풍을 쳐라>(거인의 별), <삼국지> 등이 그것이다. 이런 불법 복제, 번안물들은  만화 시장의 저변이 넓지 않고, 작가군이 풍성치 않았던 그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탄탄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 등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나 우리 만화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있다.

명랑만화의 전성시대였지만 극화계열에서도 뛰어난 작가들이 배출되기 시작한다. 이상무, 이우정, 방학기, 이두호 등이 70년대 중반 어린이 교양지를 통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직도 현역 최고의 만화가로 일컫는 허영만, 이현세가 어깨동무와 보물섬을 통해 이름을 알리며 자신들의 시대를 열어가게 된다.

어린이 교양월간지 시대는 82년 <보물섬>이라는 순전히 만화로만 이루어진 잡지의 출현으로 일대 전기를 맞이하게 되고, 뒤이어 만화 전문 출판사의 등장과 해적판 일본 만화의 범람으로 종언을 고하지만, 70~80년대에 성장한 많은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굼봉이>, <꼬마 홍길동과 헤딩박>, <우정의 마운드>, <태양을 향해 달려라>, <첩보원 36호>, <모돌이 탐정>, <선달이 여행기>, <타임 머신>, <짱구 박사>, <말썽 대장 펄렁이>, <울지 않는 소년>, <비둘기 합창>..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미있는 작품들과 함께 보냈던 어린 시절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어깨동무가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머니를 졸라 받은 책값을 들고 문방구로 뛰어가던 그 때가 엊그제 같기만 하다.

** <꺼벙이>, <번데기 야구단>, <두심이 표류기>, <철인 캉타우>, <도깨비 감투> 등 당대의 인기 작품들 몇몇은 몇 해전 오프라인 혹은 온라인으로 복간 되었으며, 더 많은 작품들을 복간하기 위한 활동도 활발히 전개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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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6-05-03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제목의 '#3'에 뜬금없어 하시는 분들을 위한 첨언. #1, #2는 작년 8월에 올린 글입니다. 9개월만이라니... -_-;;

물만두 2006-05-0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년중앙을 제가 초딩때부터 남동생 보물섬으로 바꿀때까지 봤어요^^

oldhand 2006-05-03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년 중앙이 아마 열독률 1위의 잡지가 아니었나 싶어요.
저도 동생이 있었다면 중고등학교때까지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아영엄마 2006-05-0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빠랑 남동생까지 삼형제가 본다고 보물섬을 열심히 사 본 기억이 나요. ^^
(두심이 표류기, 도깨비 감투 같은 만화들 느무~ 재미있었어요!!)

oldhand 2006-05-03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절 만화들은 지금의 만화와 비교하면 정서면이나 이런데서 참 차이가 많이 나죠.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내용은 찾아볼수 없던 시절입니다. 물론 '검열'이라는 폭력적인 법률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구요.

날개 2006-05-03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그리운 기억이군요..^^
어렸을 때 집안 분위기는 만화를 죄악시했던터라.. 저런 잡지들도 자주 사보지는 못했어요.
그치만 이래저래 빌려보고 얻어보고 해서 참 많이도 봤었는데..^^
제목들 보니 다 기억이 나요... ㅎㅎ

oldhand 2006-05-04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저희 부모님은 만화를 아주 싫어하시거나 하진 않았답니다. 그래도 결국 저 책들 다 버려지고 말았죠. 지금도 갖고 있다면 보물급일텐데 말입니다.

로드무비 2006-05-05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기정의 <도전자> 세트가 생겼어요. 어제.
읽어보셨나요?
엄청 두껍습니다. 흐뭇.^^
(제게도 추억의 만화들, 겹치는 게 꽤 되네요.)

oldhand 2006-05-07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보기는 했습니다. 정말 오래된 만화인데, 용케도 복원이 되었더군요. 감상문 올려주세요. ^^

인터라겐 2007-01-1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궁호걸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야구 만화가 전 생각나요.. 참 재밌게 봤었다는 것만... 그런데 남궁호걸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없어요... 슬프게도....

oldhand 2007-01-11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남궁 호걸. 당연히 기억합니다. 작가 이름이 '오동촌'이었죠. 친구로 나오는 조연 '안경안'도 있어요. 덩치 큰 친구는 '여왕곰'이었나? 남궁호걸 시리즈는 저도 대본소에서 많이 빌려다 봤었더랬지요.
 
성녀의 유골 캐드펠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단편집을 1권으로 셈했을 때, 우리 나라에 가장 많은 작품이 번역된 미스터리 작가는 당연히 애거서 크리스티다. 크리스티의 모든 작품을 손쉽게 구해볼 수 있다는 그 점 만으로도 우리나라 미스터리 독자들은 큰 행운을 누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2등은 누구일까? 몇몇 작가들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어쭙잖은 지식으로 꼼꼼이 따져보아야 승부가 가려질 것 같다. (참 별걸 다 따져본다.)

전 작품이 번역된 코난 도일은 기껏해야 9권으로 탈락, 역시 전 작품이 12권 밖에 되지 않는(그나마 모두 나오지도 않았다) 반 다인도 탈락이다. 작품수가 적은 챈들러도 마찬가지. 많은 작품을 썼지만 10권 내외만 번역된 상태인 존 딕슨 카도 탈락이다. 같은 맥락에서 E.S. 가드너와 렉스 스타우트 역시 탈락.

모리스 르블랑은 뤼팽 전집 20 권으로 일단 상위권에 이름을 올릴만 하다. '미스터리의 왕'으로 불리우는 엘러리 퀸이 시그마 북스로 나왔던 20권 + DMB의 <꼬리 아홉 고양이>로 21권, 르블랑을 제친다. '미스터 베스트셀러' 로렌스 샌더스도 드문 드문 나왔던 맥널리 시리즈, 대죄 시리즈, 계명 시리즈, 기타 단행본 등을  모두 합해봐야 15권이 채 되지 않아 보인다. 일본 작가들 중에 가장 많은 작품이 번역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쓰모토 세이초 역시 10권을 크게 넘을 것 같지는 않다.

숨어 있는 다크호스는 이미 눈치채고 계시듯 앨리스 피터스.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모두 번역되어 있는 덕택에 20권을 먹고 들어가는 피터스 여사는 이에 더해 애드거 상을 수상한 현대물 <죽음과 즐거운 여자>가 나와 있어 총 21권이다. 피터스 여사의 작품은 아니지만 추모 소설집 <독살에의 초대>를 플러스 알파로 더하면 엘러리 퀸을 능가하기에 이른다. 전혀 예상 밖의 결과 아닌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지명도임에도 피터스 여사를 단박에 2위에 앉게 한 캐드펠 수사 시리즈. 전 권을 번역한 출판사의 뚝심도 칭찬 받을 일이지만, 시리즈 자체가 가진 매력이 이런 일을 가능케 하였으리라. 그러나, <죽음과 즐거운 여자>를 몇년 전 재미있게 읽었던 경험은 있지만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았었다. 막상 시리즈 전부가 출판 되었다면 냉큼 손이 가지 않는, '차려 놓은 밥상 마다하기' 심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차에 최근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과 제프리 디버의 <코핀 댄서>를 연달아 읽고 <불야성>의 '처절함'과 <코핀 댄서>의 '현란함'에 좀 지쳐있었다.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손에 들은 책이 바로 캐드펠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인 <성녀의 유골>. (마음의 안식을 얻으려 집어든 책도 역시나 사람 죽어나가는 추리 소설이라니 나도 참 어지간한 모양이다 -_-;;)

이유야 어쨌든, 나는 마음의 안식을 찾았다. 피비린내 나는 가부키쵸를 지나 무시무시한 암살자의 손길을 거쳐 도착한 중세의 고즈넉한 수도원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종교에 귀의할 생각은 없다. 하하.

<성녀의 유골>은 12세기 잉글랜드와 웨일즈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그 시절 민중들의 소소한 생활과 그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기독교 신앙, 수도사들의 일상과 그들의 숨은 권력욕, 캐드펠 수사의 관조적이면서도 관찰자적인 모습 등이 시리즈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미스터리적인 요소로만 보자면, 흔하디 흔한 소재와 트릭들이지만 같은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는 순전히 작가의 역량이다. 작가의 솜씨는 한시대를 풍미한 거장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앨리스 피터스의 시선은 사건과 트릭, 명쾌한 해결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마음, 그리고 인간의 삶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캐드펠 시리즈의 미덕이 있다.


** 중세의 수도사가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캐드펠 시리즈는 <장미의 이름>과 종종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둘은 전혀 다른 성격의 소설이다. 둘 중 어느 한 작품의 기준에 맞추어 다른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유명세가 달리는 캐드펠 시리즈의 첫 작품인 <성녀의 유골>은 1977년 작품으로 <장미의 이름>보다 3년 먼저 씌여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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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27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추리소설보다 그런 마음의 안정을 주는 점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상복의랑데뷰 2006-04-2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죄 4권, 계명 3권, 맥널리 4권. 그리고 단행본이 10여권 조금 부족하게 가까이 나왔을 겁니다. 루시의 고백, 케이퍼, 도둑맞은 축복, 해리의 사랑...휴우 세기도 어렵네요. ㅠㅠ

로드무비 2006-04-27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의 계보를 완전히 꿰고 계시군요.
전체를 통찰하는 리뷰, 좋은데요.^^

oldhand 2006-04-27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만두 님 / 아, 미스터리 팬들은 마음의 안정도 역시 미스터리에서.. 하드하냐, 말랑말랑하냐에 따라 가는거군요. ^^
상복의 랑데뷰 님 / Mr.베스트셀러의 단행본이 생각보다 많구나. 앤더슨의 테이프도있다. 혹시 20권 넘는거아냐? 그럼 거짓말 한게 되는데.. -_-a
로드무비 님 / 완전히 꿰긴요. 그건 물만두 님이 하시는 일이죠. ^^ 통찰이라니, 졸문에 과찬이십니다.

하이드 2006-04-2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의 리뷰를 볼때마다 알라딘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oldhand 2006-04-2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망한 칭찬을 해주시는 군요. 그건 그렇고 이제 술은 깨셨나요? ㅎㅎ

하이드 2006-04-2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대략 그렇네요 ^^; 근데, 왜 당췌 몸은 한바탕 운동한사람처럼 이리 쑤시는걸까요, 모든걸 '삼십대' 나이탓을 해봅니다.

oldhand 2006-04-2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역시 문제죠. 더 곤란한 것은 그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커진다는 점이죠. 저는 이제 또 다른 '고지'가 멀지 않았습니다. OTL

2006-05-27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울과 몽상 -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홍성영 옮김 / 하늘연못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작년 여름, 한겨레 21 여름 특집 별책 부록이라는 명목하에 추리 소설을 특집으로 다룬 "비밀의 백화점"이라는 소책자가 나온 적이 있다.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은 문화계 인사들과 애호가들, 출판 관계자들이 원고를 채워 넣어 만들어진 책자였다. 이런 저런 연줄로 그 중 추리소설에 대한 설문 꼭지에 참여를 했었다. 별 볼일 없었던 설문 내용은 다행히 편집되고, 전체적인 통계에만 반영이 되었었다.

그 때 그 설문 중에는 최고의 작가는 누구인가라는 항목이 있었다.
미스터리 독자들은 누구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 딱 한사람만 꼽으라면 나에게는 고민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나는 타협적인 답변을 작성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엘러리 퀸",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작가는 "에드가 앨런 포우('포'가 맞는 표현이지만 운율이 살지 않는 관계로 '포우'라 지칭한다)".

언젠가도 얼핏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적어도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문학의 한 하부 장르에서 포우는 '논외論外'의 작가라 생각한다. (잘은 모르지만 판타지나 SF 분야에서도 포우의 영향력은 클것이라 추측한다. 단편 소설과 시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거칠게 말하자면, 1841년에 발표된 <모르그가의 살인> 이후 160여년간 줄기차게 쏟아져 나온 모든 미스터리 소설(본격 미스터리에 한하자면 더더욱)은 <모르그 가의 살인>의 모방이자 표절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튜어 탐정과 화자인 나, 논리적인 추리 기법, 의외의 범인, 독자와의 페어플레이 등 본격 미스터리의 필수 요소들이 모두 최초의 추리 소설이라 일컬어 지는 <모르그가의 살인>에서 제시된다. 장르의 개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첫 작품은 너무나 완성도가 높았다. 미스터리의 제 1 황금기라고 불리었던 20세기 초반에 나온 단편들은 노회한 미스터리 독자들이 읽기엔 조금 구닥다리 냄새가 풍기기 마련. 하지만 뒤팽이 등장하는 3편의 단편은 최근에 씌여진 어떤 미스터리 단편들에 비해도 세련미가 떨어지지 않는다. 1840년 대에 나온 작품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놀라울 뿐이다. 문학사적으로도 천재성을 따지자면 첫 손에 꼽힐 작가 포우의 힘이리라.

후배 작가들도 이런 포우의 위대함을 기리고 있다.
일본 추리 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는 필명을 아예 포우의 이름에서 따왔고, 본격 미스터리의 대가인 존 딕슨 카는 그의 작품들 속에서 포우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고 있다. <모자 수집광 살인사건>은 포우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사건이며, 그의 단편 <파리에서 온 사나이>는 포우의 팬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작품이다.

미스터리사史에서 포우만큼 중요한 작가인 코넌 도일. 그 역시 위대한 작가지만, 또한 포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포우가 만든 추리 소설의 틀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였다. 물론 '셜록 홈즈'라는 불멸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은 순전히 도일의 몫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도일에게 한 가지 찜찜한 의혹이 있다. 바로 포우의 <황금충>과 도일의 <춤추는 인형> 때문이다. 이 두 편의 암호 미스터리에 나오는 암호 해독 과정은 완벽히 똑같다. 물론 포우의 <황금충>이 훨씬 먼저 씌어진 작품이다. 도일은 과연 표절을 한 것일까. 나는 도일 자신이 선정한 자신의 Best 10 리스트에 들어가 있는 <춤추는 인형>을 읽을 때 마다 박진감 넘치는 셜록 홈즈의 활약 속에 드리워진 표절의 의혹을 느끼며 포우의 위대함을 재발견한다.

<윌리엄 윌슨>, <아몬틸라도의 술통>, <큰 소용돌이>, <어셔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어릿광대 개구리>.. 어린 시절 얼마나 가슴 졸이며 읽었던 단편들인가. 음울한 분위기, 시적인 문장과 섬뜩한 반전. 고독했던 천재 포우가 남긴 보석같은 작품들이다.

** 포우의 작품으로만 치면 응당 별 다섯개를 주고도 부족하지만, 그의 문장을 다소 딱딱하게 만들어 버린 번역에 마이너스 별 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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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4-27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 제목 정말 멋져요.
두 단어 다 제가 좋아하는......
오래 전 사놓고 못 읽고 있는 책입니다.
빨리 읽고 싶네요.
(딱딱한 번역은 제 손을 거치면 말랑말랑해지는데.=3=3=3)

oldhand 2006-04-2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하나는 정말 잘 뽑았지요? 예전에 4권으로 나왔던 책을 하나로 합치면서 제목을 붙인건데.. 아, 이 책이 로드무비님의 손을 거쳤더라면 별 6개를 주는건데 말이죠. ^^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보게 된 책이 있다.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극히 한정되었던 시절이니 대부분의 책들을 '우연히' 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80년 대 초반 어느정도 집에 있던 전집류를 훑어보고 식상해지기 시작했던 무렵, 단행본 책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계림 문고'가 서점가 아동 도서를 장악하고 있던 시절 '보성 우리들 문고'라는 문고판이 등장했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올 컬러 삽화와 튼튼한 장정에 계림문고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가격은 나의 눈길을 끌고도 남음이 없었다. 그리고 그 문고의 목록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파르가의 소년들> 이었다.

헝가리 작가가 쓴 헝가리 소년들의 이야기. 지금에 와서 생각해봐도 우리가 쉽게 접하기 힘든 이야기다. 소년들은 각자의 동네를 근거로 하여 소년단을 조직하고, 그들의 놀이터를 지키기 위해, 혹은 빼앗기 위해 팽팽하게 대립한다. 배신과 책략이 횡행하고 마침내 전투가 벌어지는데... 소년들의 모험과 성장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예정된 수순처럼 책은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 어디서도 이 책을 찾을 수 없었다. 봤다는 사람도 없는 책이었으니 옛 기억속에 갇힌채 잊혀질 책일 줄 알았다. 어린 시절의 책들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댓글을 남긴 적도 있었으니...

 
oldhand
인터라겐 님 반갑습니다. 많이 뵈 오면서도 인사 여태 못 드렸던 것 같은데.. ^_^
저도 그런 책 있어요. "파르가의 소년들"이라는 헝가리 작가의 소년 소설이구요, 어렸을 때 단행본으로 사서 봤던 책인데, 이제는 어디서도 볼 수가 없네요. - 2005-08-26 18:02
 

그런데, 방금 전 누나로 부터 전화가 왔다.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 했다는 것이다. (내 주위에 이 책을 알고 있는 '유이한' 사람은 형과 누나 뿐이다.) 과연! 제목이 약간 바뀌기도 했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처 몰랐을 뿐.

 

 

 

 

<쿠오레>, <날으는 교실>, <15소년 표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그리고 아직도 아동 소설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분이라면 추천할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두신 분들도 아울러.

일단 주문부터 해야겠다. 근데 20여년 만에 책값이 많이 올랐네. 900 원에서 12000 원 이라니. -_-a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그 때 그 소년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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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4-17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5년 8월 댓글은 어찌 찾으셨답니까? ^^
비싸네요. 재밌겠어요.

oldhand 2006-04-1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처럼 일년에 페이퍼 몇 개 안 쓰는 사람이면 가능합니다. 핫핫.

마태우스 2006-04-17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값이 무려 13배가 올랐군요. 그러고보니 10년 전만 해도 책값은 6천원 정도였었죠... 어린 시절 책을 다시 찾으신 건 기쁜 일이겠지만, 지금 읽으면 '내가 왜 이걸 좋아했나?' 싶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제가 터미네이터 1을 다시 보고 실망한 것처럼요

oldhand 2006-04-1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으는 교실이나 쿠오레, 빨간머리 앤 같은 아동소설의 고전들은 지금 읽어도 재밌더라구요. 그래서 이것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을것 같긴 합니다. 그게 '고전의 힘' 아니겠습니까.

날개 2006-04-1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그렇게 재미있나요? 일단 보관함에....^^

oldhand 2006-04-17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게 말씀하시면 또 제가 마음이 약해집니다. 지금보면 유치할 수도 있어요. ^^

상복의랑데뷰 2006-04-1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서추리문고를 헌책방에서 샀는데 책값 690원이 찍혀있는 것을 보니 ^^;;

oldhand 2006-04-1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추리 문고만 해도 1250원인데..

2006-04-19 0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oldhand 2006-04-18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반갑습니다. 이 책을 알고 계시다니 더더욱 반갑네요. 끝부분이 좀 슬프긴 하지요? 보카 야누스, 네메체크 에르네, 초나코수와 앗페렌츠, 게레브.. 등 주인공들 이름도 아직 선명합니다. 이제 곧 다시 만나볼 수 있겠네요. 유치하면 어떡하죠? ^^

파란여우 2006-04-20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값이 올른건 당연하지요. 물가도 올랐는데 출판사만 굶고 있을 순 없고요
작가도 인세를 더 받아야지요. 그럼에도 독자는 좀 서운하죠?^^
전 참고로 3백원짜리 '어린왕자' 삼중당 문고판을 갖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빨간머리 앤'도 어딘가 있었던 것 같은데..찾아봐야겠어요

oldhand 2006-04-2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의 땅값, 집값 오른거에 비하면 책값 오른거는 양반이죠. ^^
출판 시장이 넓어지고, 독자층도 좀 두터워져야 할텐데요, 주위에는 책을 사서 본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상복의랑데뷰 2006-05-03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오레 드릴까요? 계몽사 걸로 가지고 있는데...

oldhand 2006-05-03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오레나 날으는 교실은 뭐 지금 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수 있지. 쿠오레는 한 다섯가지 판본으로 읽어본 거 같은데..

적립금헌터 2006-06-23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도 '팔 가의 소년들' 어린 시절에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정말 제 주변에는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희귀작인지라 혼자 아련히 품고 있던 추억이었는데 얼마전에 제목이 조금 바뀌어 출간된걸 알고 추억을 되새기려 오늘 한번 더 읽었답니다. 전 다시 봐도 좋네요. 예전에 본 책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사이즈가 제법 크고 유화로 그려진 삽화가 인상적이었이었던 판본인데.. 그 책 자체도 그리워지네요. 어린시절 네메체크를 유달리 좋아했는데 지금 보니 네메체크도 그렇지만 보카와 아츠 페리가 참 멋지네요 :) 예전엔 어린 마음에 마냥 싫기만 했던 게렙도 예쁘고^^ 너무 반가워서 살짝 댓글 남깁니다.

oldhand 2006-06-26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시앤아이디어 님 / 오래전 글이라 이제서야 댓글을 봤습니다. 팬시앤아이디어님이 보셨던 판본이 아마 제가 봤던 책과 같은것 같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적은 아마 없는 것 같아요. 그때 그 삽화도 굉장히 잘 그린 그림이었죠. 이 책을 기억하고 계시는 분들이 그래도 몇 분 계시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
 
리얼 Real 5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는 과장(誇張)의 예술이다.
과장은 사물의 생김새나 동작, 특징등을 가느다란 선으로 평면에서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야 하는 만화의 숙명이다.

영화에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스토리나 실사로 표현해서는 별다른 재미를 느낄 수 없는 내용들을 책상에 앉은 만화가는 자신의 펜끝에서 창조해 낸다. 소설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시각적인 재미와 함께. 책과 영화의 사이에 애니매이션과 만화가 존재하는 이유다. 과장되고 극단적인 묘사는 만화의 장르적 특성인 것이다. '만화 같다'라는 말은 '허무맹랑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될 정도이니 말이다.

스포츠 만화(스포츠 영화나 드라마도 자유롭지는 않다)에서는 특히 이러한 과장된 묘사들이 차고 넘친다. 복싱 만화에서는 매번 피와 살이 튀는 처절한 경기가 벌어지고, 축구 만화에서는 강슛이 골망을 찢기 일쑤이다. 야구 만화에서는 매 타석 홈런만 쳐대는 무시무시한 타자와 오로지 강속구로만 승부하는 괴물 투수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다케히코 이노우에는 90년 대 초반 그동안 만화에서는 흔치 않았던 '농구'라는 소재와 스포츠 만화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의 '사실적'인 묘사들을 앞세운 <슬램덩크>라는 불후의 명작을 독자들에게 선보여 최고의 인기를 모았다. <슬램덩크>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점점 더 '리얼리즘'과 '세밀한 그림'에 천착해 가는 듯 하다. 등장인물들은 더욱더 날카로운 펜선으로 덧입혀 졌고, 만화적인 고운 표정과 눈빛들은 희미해져갔다. 이러한 그림체는 <배가본드>에서 더욱 진일보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 슬램덩크를 끝낸 후에도 <버저비터>등으로 농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시했던 작가는 이제 <리얼>이라는 작품을 들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농구'와 자신이 지향하는 작품세계인 '리얼리즘' 두마리 토끼를 쫓고 있음을 제목과 소재를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길거리에서 헌팅한 여학생을 뒤에 태운채 오토바이 사고를 일으켜 학교에서 퇴학당한 노미야 토모미.

도내를 대표하는 단거리 육상선수 였지만 골육종이란 병을 앓아 한 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던 토가와 키요하루.

농구부 주장이자 교내에서 잘 나가던 모범생이었으나 자전거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타카하시 히사노부.

더이상 덩크슛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천재 고교생은 나오지 않는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냉혹하고, 인정사정 없다. 사회는 그들에게 절망만을 강요한다.

<리얼>은 철저히 사회에서 아웃사이더가 될 수 밖에 없는 세 명의 장애인 - 퇴학생이라는 사회적 장애인과 두 명의 신체 장애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10대 후반에 이미 사회의 메인 스트림에서 떨어져 나온 이 세명의 주인공이 자신의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고 '농구'라는 매개를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외친다.자신들은 더이상 '낙오자'가 아님을, 항상 '승리'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사족 : 1년에 한 권씩 나오는 연재 속도는 독자의 인내심에 한계를 측정하는 듯 하다. 이 만화가 완결될 즈음에 내 나이는 몇 살 쯤일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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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4-15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말이요. 3권까지는 어째어째 봤는데 말이지요. 근데, 1년에 한권은 나오긴 하는건가요?

oldhand 2006-04-15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권, 5권이 더 재밌던데요. 2001년에 1권이 나왔고, 2005년 연말에 5권이 나왔으니 1년에 한 권꼴입니다. 20권 정도 나온다면? 상상하기 싫군요. -_-;;

하이드 2006-04-15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1권부터 다시 읽어야 할꺼에요. 한 10권정도 나올때까지 기다려보렵니다. 그럼 앞으로 5년? -_-;;

oldhand 2006-04-1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 이상 장기 연재하는 만화들이 흔한 일본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겠죠? 으음.. -_-;

날개 2006-04-16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전 아예 그러려니 포기하고 봅니다..^^ 느긋하게..

oldhand 2006-04-16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잊고 지내다 보면 1권씩 나오더라구요. 연말 특집 같기도 하고.. ^^ 1권 나올때 마다 처음부터 다시 봅니다.

한솔로 2006-04-1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일본 도서 잡지 <다빈치> 보니까 파이브스타스토리 12권 나왔다는 기사 있더군요. 20년 동안 12권이면...<리얼>은 양반이겠죠...?

oldhand 2006-04-1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이브 스타 스토리도 정말.. 작가가 평생동안 그리겠다고 선언까지 한 마당에 독자들은 속절없이 늙어만 갈 뿐입니다. ㅎㅎ

상복의랑데뷰 2006-04-20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이브스타 스토리는 아마 자식도 그리게 시킨다고 하지 않나요? ㅋㅋ

oldhand 2006-04-21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독자들의 자식들도 이어서 읽어야 하려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