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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몽상 -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홍성영 옮김 / 하늘연못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작년 여름, 한겨레 21 여름 특집 별책 부록이라는 명목하에 추리 소설을 특집으로 다룬 "비밀의 백화점"이라는 소책자가 나온 적이 있다.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은 문화계 인사들과 애호가들, 출판 관계자들이 원고를 채워 넣어 만들어진 책자였다. 이런 저런 연줄로 그 중 추리소설에 대한 설문 꼭지에 참여를 했었다. 별 볼일 없었던 설문 내용은 다행히 편집되고, 전체적인 통계에만 반영이 되었었다.
그 때 그 설문 중에는 최고의 작가는 누구인가라는 항목이 있었다.
미스터리 독자들은 누구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 딱 한사람만 꼽으라면 나에게는 고민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나는 타협적인 답변을 작성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엘러리 퀸",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작가는 "에드가 앨런 포우('포'가 맞는 표현이지만 운율이 살지 않는 관계로 '포우'라 지칭한다)".
언젠가도 얼핏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적어도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문학의 한 하부 장르에서 포우는 '논외論外'의 작가라 생각한다. (잘은 모르지만 판타지나 SF 분야에서도 포우의 영향력은 클것이라 추측한다. 단편 소설과 시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거칠게 말하자면, 1841년에 발표된 <모르그가의 살인> 이후 160여년간 줄기차게 쏟아져 나온 모든 미스터리 소설(본격 미스터리에 한하자면 더더욱)은 <모르그 가의 살인>의 모방이자 표절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튜어 탐정과 화자인 나, 논리적인 추리 기법, 의외의 범인, 독자와의 페어플레이 등 본격 미스터리의 필수 요소들이 모두 최초의 추리 소설이라 일컬어 지는 <모르그가의 살인>에서 제시된다. 장르의 개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첫 작품은 너무나 완성도가 높았다. 미스터리의 제 1 황금기라고 불리었던 20세기 초반에 나온 단편들은 노회한 미스터리 독자들이 읽기엔 조금 구닥다리 냄새가 풍기기 마련. 하지만 뒤팽이 등장하는 3편의 단편은 최근에 씌여진 어떤 미스터리 단편들에 비해도 세련미가 떨어지지 않는다. 1840년 대에 나온 작품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놀라울 뿐이다. 문학사적으로도 천재성을 따지자면 첫 손에 꼽힐 작가 포우의 힘이리라.
후배 작가들도 이런 포우의 위대함을 기리고 있다.
일본 추리 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는 필명을 아예 포우의 이름에서 따왔고, 본격 미스터리의 대가인 존 딕슨 카는 그의 작품들 속에서 포우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고 있다. <모자 수집광 살인사건>은 포우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사건이며, 그의 단편 <파리에서 온 사나이>는 포우의 팬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작품이다.
미스터리사史에서 포우만큼 중요한 작가인 코넌 도일. 그 역시 위대한 작가지만, 또한 포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포우가 만든 추리 소설의 틀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였다. 물론 '셜록 홈즈'라는 불멸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은 순전히 도일의 몫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도일에게 한 가지 찜찜한 의혹이 있다. 바로 포우의 <황금충>과 도일의 <춤추는 인형> 때문이다. 이 두 편의 암호 미스터리에 나오는 암호 해독 과정은 완벽히 똑같다. 물론 포우의 <황금충>이 훨씬 먼저 씌어진 작품이다. 도일은 과연 표절을 한 것일까. 나는 도일 자신이 선정한 자신의 Best 10 리스트에 들어가 있는 <춤추는 인형>을 읽을 때 마다 박진감 넘치는 셜록 홈즈의 활약 속에 드리워진 표절의 의혹을 느끼며 포우의 위대함을 재발견한다.
<윌리엄 윌슨>, <아몬틸라도의 술통>, <큰 소용돌이>, <어셔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어릿광대 개구리>.. 어린 시절 얼마나 가슴 졸이며 읽었던 단편들인가. 음울한 분위기, 시적인 문장과 섬뜩한 반전. 고독했던 천재 포우가 남긴 보석같은 작품들이다.
** 포우의 작품으로만 치면 응당 별 다섯개를 주고도 부족하지만, 그의 문장을 다소 딱딱하게 만들어 버린 번역에 마이너스 별 한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