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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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읽던 책들은 주로 소위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구미의 소설들이었다. 집에 있던 청소년용으로 출판된 세계 문학 전집이 탐독의 대상이었다. 2단 세로 쓰기에 한자까지 섞여 있는 책이었지만 청소년용 답게 삽화도 있고, 초장편 소설들도 한권 분량으로 축약한 다이제스트본이었다. 가끔 완역 단행본으로 사서 읽은 책들도 있지만, 나의 고전에 대한 얄팍한 교양은 대부분 이 다이제스트 문고에 한정되어 있다. 대학생이 되면 더 이상 고전은 가까이 하지 않는게 그 시절의 알량한 독서 풍토였으니.

고전으로 추앙받는 명작들도 결국 다루는 주제는 대부분 통속 대중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남녀간의 사랑이다.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사랑'일까. 그 시절 읽었던 두 권의 소설은 몇 년간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잡담을 할때마다 내가 끄집어 내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다. <폭풍의 언덕>과 <두 도시 이야기>가 바로 그 소설이다.

남자들이 여성에 대해 가장 보수적이고, 폭력적이고, 완고한 시각을 갖는 시기는 고등학교 시절이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80년대'에 '남자 고등학교'를 다녔던 애송이의 머릿속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 학교는 여자 교사 한 명 없는 그야말로 숫컷들의 복마전이었다.) 마초이즘은 남성 교사들에게서 제자들에게로 유유하게 전수된다. 한참 혈기왕성한 남자아이들을 오십명이 넘게 방 한칸에 가두어 두었으니, 그 안에서 거론되는 이성에 대한 이야기들의 내용이 무엇이었겠는가. 나는 자연스레 성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과 남성 우월적 시각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 남성 작가와 여성 작가의 비교,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시각등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나는 <폭풍의 언덕>과 <두 도시 이야기>의 주인공, 그리고 작가의 성별을 놓고 열변을 토하곤 했었다.

"여성작가인 에밀리 브론테는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 가장 극적이고 격렬한 요소를 '질투'와 '복수'로 묘사하지. 그러나 우리의 위대한 남성 작가, 찰스 디킨즈를 보아라. 그의 사랑이야기는 목숨을 바치는 '희생'과 '헌신'이 아닌가. 히스클리프의 사랑과 시드니 카아턴의 사랑중에 무엇이 숭고한가? 여성 작가는 대승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남성 작가들을 문학적 성취도와 완성도에서 따라 올수 없는것 같다"

얼토당토 않는 편파적인 주장이었지만, 성장기의 소년에게 저 두 편의 소설이 깊은 인상을 남기긴 했나 보다.

별 쓸데 없는 이야기를 길게 남긴 이유는 바로 <용의자 X의 헌신>을 읽는 동안 내내 <두 도시 이야기>를 머릿속에 떠올렸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대단히 '남성적'인 작가이다. 소설가 본인도 '여성 등장인물에 대한 섬세한 심리 묘사'가 가장 어렵다고 토로한 적이 있듯이 그는 대단히 담백한 남성적 시각을 가졌다. 결코 에둘러 가지 않는 그의 작품 스타일은 그의 이런 성향과 자연스럽게 어우러 진다. 오직 하나의 줄기에 집중하여 간결하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은 게이고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본격 추리 소설에 임할 때도 그의 이런 자세는 변함이 없다. 은근 슬쩍 감추거나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다. 모든 단서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본격 미스터리 작가로서는 너무 친절한 것이 아닌지. 그의 이런 우직한 남성적 사고방식이 '사랑 = 헌신'이라는 다소 순진하고 고색창연한 등식을 들고 나오게 된 배경이 아닐까. 그래서 이 소설은 남성적 작가의 사랑에 대한 판타지다. (비슷한 등식이 같은 작가의 작품인 <백야행>에서도 이미 등장한 바 있다.)

미스터리의 구조적 측면에서 보자면 가장 핵심적인 구도는 역시 천재 수학자와 천재 물리학자의 대결이다. 사건을 사이에 두고 그들이 나누는 선문답은 이 소설의 백미였다. 게이고의 소설 답게 책장은 정신 없이 넘어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속도감은 롤러 코스터가 아니라 초고속 열차에 비견할 수 있다. 급박한 반전과 서스펜스에 정신없이 휘둘리기 보다는 그저 작가의 이야기에 편안히 실려 간다는(그렇지만 엄청난 속도로) 느낌을 준다.

작가가 이 소설을 구상했을 때 두 천재의 팽팽한 머리싸움과 트릭을 먼저 염두에 두었는지 그렇지 않다면 한 남자의 헌신적인 사랑을 그리고자 트릭과 구성을 끌어 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트릭이나 탐정과 범죄자의 대결 구도 보다는 이시가미의 사랑과 헌신 쪽이 더 머리속에 남아 있다. 아쉽게도 소설의 중반부가 채 못되어 이시가미가 꾸민 트릭을 거의 완전하게 간파해 버렸다는 것과 어린 시절 읽었던 <두 도시 이야기>에 대한 오랜 기억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한 남자의 조건없는 사랑과 헌신을 당연하다는 듯이 그저 넙죽 받아들이는 여자 주인공은 얄밉고 짜증난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바뀐게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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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9-1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적 작가인 남자가 그린 여자 주인공이잖아요. 흥.

하이드 2006-09-12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투, 복수, 희생, 헌신, 에밀리 브론테.가 뭐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희생'과 '헌신'은 여자주인공들에게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구요. 이 책은, 워낙에 오탈자로 말이 많아 '두고보자' 하고 읽었던 책이에요. 그런거 다 까먹고 재미있게 읽었지요. 군대에 보내줬더니, 동생이 재밌다고 해서, 집에 안 읽고 쌓아둔 히가시노 게이고.를 조만간 클리어하지 싶습니다. 아마, 저는 한번 싫어하기로 맘 먹으면, 계속 싫은가봐요.반대로 좋아하기로 맘 먹으면 계속 좋아하지만서도. 이 작품은 사랑 이야기도, 트릭도 너무 짧단 느낌. 이 작품에서 가장 미스테리한건 '여자' 이던가요? 오랜만에 고전.이 읽고 싶어지네요. 폭풍의 언덕. 혹은 두도시 이야기. 그래봤자 오늘 들고나온 책은 '피터드러커 자서전' 이지만;;

oldhand 2006-09-12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남성 작가가 그린 여주인공이라서 그런 모습이겠지요. 근데 또 그걸 보고 짜증난다고 하고 있으니 20년전 '숫컷'시절과 바뀐게 없다는 자조에요. 흐흐.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성 독자들에게 인기가 없을것 같다..라는 생각도 좀 듭니다. 아, 암튼 성별의 차이가 주는 간극은 만만치 않아요. 극복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오탈자는 거짓말 안 보태고 300군데는 되지 않을까 추정해 봅니다.
 
단 한번의 시선 1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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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물량을 쏟아 부어 만든 거대한 스케일과 스펙터클한 볼거리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있는가 하면, 그다지 많은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탄탄한 각본과 개성넘치는 배역, 독창적인 구성등을 자랑하는 '잘 만든 영화'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잘 만들어진 영화가 개성없는 블럭버스터보다 훨씬 큰 재미를 선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댄 브라운의 스릴러 소설들이 거대한 음모와 웅장한 스케일,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블록버스터'라면 할런 코벤의 <단 한번의 시선>은 '저예산 웰 메이드 영화'에 비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를 뒤흔들만한 거대한 음모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비범하고 영웅적인 주인공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들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 그레이스 로슨은 남편의 돌연한 실종이라는 흔해 빠져 보이는 사건과 맞 부닥치며 갑작스러운 삶의 격랑을 체험하게 된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은 그레이스로 하여금 직접 남편의 행방을 뒤 쫓게 한다. 화려한 액션이나 스펙터클한 줄거리는 아니지만, 짜임새 있는 구성과 인상깊은 인물들이 잘 어우러져 은근하면서도 눈을 떼기 힘든 소설적 재미를 선사한다. 인터넷 검색과 스팸 메일 등 지극히 현대적이면서도 평범한 수사 방법들은 고전 미스터리나 최첨단 과학 수사를 펼치는 현대의 스릴러 소설등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새로운 흥미거리였다.

15년 전 과거에 벌어졌던 록 가수의 콘서트장에서 벌어진 참혹한 압사 사건으로 인해 불구가 된 그레이스, 그 사고에서 아들을 잃은 마피아 두목 칼 베스파, 우연히 체포된 살인 청부 업자로 부터 누이의 죽음이 사실은 사고가 아닌 청부살인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검사보 스콧 덩컨, 정체 불명의 옛 사진을 보여주자 갑자기 사라진 그레이스의 남편, 북한 출신의 냉혹하고 무자비한한 킬러 에릭 우 등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는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얽혀 들어간다. 소설의 전개는 초반 다소 느슨하게 진행하는 것 같다가 사건의 진행과 함께 점점 박진감을 더하며 빨라진다.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따라가던 독자들은 모든 사건들이 톱니바퀴 처럼 제 자리를 찾아가고, 각자의 사연들이 드러나는 순간 또 한번의 쾌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노골적인 미국식 가족주의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설의 결말은 진지한 여운을 남긴다.

할런 코벤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 하나에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 묘사한다. 스쳐 지나가는 단역에 불과할 지라도 그들의 전사(前史)와 배경에 대한 서술이 덧 붙여져 있다. 등장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한 이런 작가의 정성은 감정 이입을 배가 시키는 효과를 준다. 그만큼 독자들은 손에 땀을 쥐고 등장 인물 하나하나의 운명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할런 코벤의 작품은 이미 국내에 두 편이 소개되어 있지만, 나는 이 소설로 처음 코벤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편의 소설만으로도 세계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작가라는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란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단 한번의 시선>은 완성도 높은 고밀도의 스릴러 소설이다.


<덧글> 북한 출신의 킬러 에릭 우에 대한 묘사와 설정은 서양인들이 동양인과 동양무술에 대해 가지는 신비감과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등으로 인해 조금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 정도의 능력과 솜씨라면 이종 격투기 무대에만 진출해도 떼돈을 벌며 편안히 살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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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31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릭 우에 대한 생각은 시대에 편성한 감이 좀 있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어요. 일일이 따지기도 귀찮더군요 ㅠ.ㅠ

하이드 2006-07-31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좋다고 하니, 기대되는군요 ^^ 한권으로 나왔었더라면 좋았으련만

oldhand 2006-07-3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 님 / 그러게요. 그래도 북한 출신의 우가 어떻게 미국으로 흘러들어왔는지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어서 좀 생뚱맞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더군요.
하이드 님 / 저는 항상 웬만하면 후한 평가를 내리는 편이라서 하이드 님 보기에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 분권은 몹시 아쉽죠. 600페이지 정도면 한권으로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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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롤러 코스터나 바이킹 같은 놀이기구에 전혀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다(번지 점프도 한번에 해냈다). 공포 영화도 즐기지는 않지만 곧잘 본다. 특히 책을 읽고 공포심을 느끼는 일은 거의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무섭게 읽었다는 기시 유스케의 <검은집>도 재미있게 읽었을지언정 전혀 무섭지 않았다. - <검은집>이 무섭냐 무섭지 않냐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취향의 탓이리라. 그러나 <검은집>이 재밌고 뛰어난 작품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 나의 활자적 상상력이 부족한 탓이겠다.

그런 내가 유독 몸서리치며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혹은 짐승)의 몸에 난 상처다. 차라리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는건 심상하지만 자상(刺傷) 등에 의해 벌어진 상처같은 디테일한 이미지는 내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한다. 상처로 일그러진 환부를 보는 일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다. 기리노 나츠오는 문자를 통해 내게 이런 느낌을 주는 작가다.

<아웃>, <그로테스크>. 아직 두 편의 소설을 읽은 것이 전부이지만 작가의 소설은 마치 살점이 벌어지거나 곪아 터져있는 환부를 들여다 보는 느낌을 준다. 기리노 나츠오가 그리는 세상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주변의 일상이다. 그러나 그 속은 온통 어둡고 음울하며, 한가닥 빛도 없는 디스토피아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물론 독자마저도 '기리노 나츠오 월드'안에서는 결코 탈출구가 없는 절망만을 느낄 뿐이다. 괴롭기 짝이 없는 현실이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독자인 나는 책장에서 눈을 돌리면 이 지옥같은 현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그로테스크>는 집요하게 '여성'에 대해 천착해 온 작가의 어떤 정점을 느끼게 하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에 가두어 두기엔 이 소설이 갖고 있는 무게와 그 함의가 너무나 깊어 보인다. 일본 사회와 현대 사회가 여성에 대해 어떤 모습을 취해왔는지, 그리고 이에 맞서서 일본의, 현대의 여성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문자 그대로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하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끔찍하기만 하다면,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라는 장탄식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남자인 내가 봐도 이정도인데, 당사자인 여성에게 이 소설은 어떻게 다가올지 상상도 할 수 없다. (반감을 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망량의 상자>가 판타지적 처절함,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이 마초적, 느와르적 처절함이라면, <그로테스크>는 여성주의적, 현실적 처절함이다. 가장 일상과 가까운 내용이기에 그 처절함은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상당한 분량과 무거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필력은 여전하다. 작가는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는 것이 아닌, 어둡고 끔찍한 이야기로도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렇지 않아도 눅눅하고 음습한 장마철에, 책장을 덮고 나니 가즈에와 유리코,  미쓰루, 그리고 '나'. 이들 네 여성의 삶이 품어내는 처연한 아우라에 한동안 멍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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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20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독성이 너무 강해요.

한솔로 2006-07-20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말의 희망 따위 추호도 용납않겠다는 듯이 말이죠

야클 2006-07-20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 리뷰 제목도 너무 근사하잖아요!!! ^^

하이드 2006-07-20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으려다, 바람의 그림자. 집었는데, 어여 읽고 읽어야지. 리뷰는 안 읽었지만, 올드핸드님 리뷰는 무조건 훌륭해요. >.<

oldhand 2006-07-21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 님 / 그만 읽고 싶은 마음이 뭉게뭉게 일어나면서도 손을 놓을 수 없는.. 그런 느낌이 드는 책이에요.
한솔로 님 / 다카무라 가오루여사의 '건조함'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참으로 냉정한 시선인것 같습니다.
야클 님 / 하하. 제목'만' 근사한거 아닐까요. 리뷰의 알맹이 없는 내용에 비해 좀 거창한것 같기도.. -_-;
하이드 님 / 여자분들의 경우 호오가 좀 엇갈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입니다. 남자가 봐도 부담스러울 정도의 내용이라서..

로드무비 2006-07-21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이 책을 얼마 전에 샀답니다.
'상처'(특히 곪은 데)를 들여다보는 일이 제일 무섭다는 것
저와 비슷하군요.
추리소설과 님의 리뷰에 필 받은 김에 빨리 읽어야겠습니다.^^

oldhand 2006-07-21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처 보는거 너무 무서워요. 의사, 특히 외과 의사들 정말 존경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추리소설에 필 받으셨다니.. ^^ 근데 사실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의 전통적 정의에 비추어 보면 추리 소설적인 요소가 그다지 많지 않아요. 오히려 그래서 더 보시기에 재미있을지도..

상복의랑데뷰 2006-07-2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임 소리 마마를 읽고 이 소설을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 읽었을 때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oldhand 2006-07-2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웃을 처음 읽었을때도 충격과 공포였지.. 아임 소리 마마는 또 어떤 임팩트이려나..
 
성녀의 유골 캐드펠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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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을 1권으로 셈했을 때, 우리 나라에 가장 많은 작품이 번역된 미스터리 작가는 당연히 애거서 크리스티다. 크리스티의 모든 작품을 손쉽게 구해볼 수 있다는 그 점 만으로도 우리나라 미스터리 독자들은 큰 행운을 누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2등은 누구일까? 몇몇 작가들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어쭙잖은 지식으로 꼼꼼이 따져보아야 승부가 가려질 것 같다. (참 별걸 다 따져본다.)

전 작품이 번역된 코난 도일은 기껏해야 9권으로 탈락, 역시 전 작품이 12권 밖에 되지 않는(그나마 모두 나오지도 않았다) 반 다인도 탈락이다. 작품수가 적은 챈들러도 마찬가지. 많은 작품을 썼지만 10권 내외만 번역된 상태인 존 딕슨 카도 탈락이다. 같은 맥락에서 E.S. 가드너와 렉스 스타우트 역시 탈락.

모리스 르블랑은 뤼팽 전집 20 권으로 일단 상위권에 이름을 올릴만 하다. '미스터리의 왕'으로 불리우는 엘러리 퀸이 시그마 북스로 나왔던 20권 + DMB의 <꼬리 아홉 고양이>로 21권, 르블랑을 제친다. '미스터 베스트셀러' 로렌스 샌더스도 드문 드문 나왔던 맥널리 시리즈, 대죄 시리즈, 계명 시리즈, 기타 단행본 등을  모두 합해봐야 15권이 채 되지 않아 보인다. 일본 작가들 중에 가장 많은 작품이 번역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쓰모토 세이초 역시 10권을 크게 넘을 것 같지는 않다.

숨어 있는 다크호스는 이미 눈치채고 계시듯 앨리스 피터스.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모두 번역되어 있는 덕택에 20권을 먹고 들어가는 피터스 여사는 이에 더해 애드거 상을 수상한 현대물 <죽음과 즐거운 여자>가 나와 있어 총 21권이다. 피터스 여사의 작품은 아니지만 추모 소설집 <독살에의 초대>를 플러스 알파로 더하면 엘러리 퀸을 능가하기에 이른다. 전혀 예상 밖의 결과 아닌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지명도임에도 피터스 여사를 단박에 2위에 앉게 한 캐드펠 수사 시리즈. 전 권을 번역한 출판사의 뚝심도 칭찬 받을 일이지만, 시리즈 자체가 가진 매력이 이런 일을 가능케 하였으리라. 그러나, <죽음과 즐거운 여자>를 몇년 전 재미있게 읽었던 경험은 있지만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았었다. 막상 시리즈 전부가 출판 되었다면 냉큼 손이 가지 않는, '차려 놓은 밥상 마다하기' 심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차에 최근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과 제프리 디버의 <코핀 댄서>를 연달아 읽고 <불야성>의 '처절함'과 <코핀 댄서>의 '현란함'에 좀 지쳐있었다.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손에 들은 책이 바로 캐드펠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인 <성녀의 유골>. (마음의 안식을 얻으려 집어든 책도 역시나 사람 죽어나가는 추리 소설이라니 나도 참 어지간한 모양이다 -_-;;)

이유야 어쨌든, 나는 마음의 안식을 찾았다. 피비린내 나는 가부키쵸를 지나 무시무시한 암살자의 손길을 거쳐 도착한 중세의 고즈넉한 수도원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종교에 귀의할 생각은 없다. 하하.

<성녀의 유골>은 12세기 잉글랜드와 웨일즈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그 시절 민중들의 소소한 생활과 그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기독교 신앙, 수도사들의 일상과 그들의 숨은 권력욕, 캐드펠 수사의 관조적이면서도 관찰자적인 모습 등이 시리즈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미스터리적인 요소로만 보자면, 흔하디 흔한 소재와 트릭들이지만 같은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는 순전히 작가의 역량이다. 작가의 솜씨는 한시대를 풍미한 거장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앨리스 피터스의 시선은 사건과 트릭, 명쾌한 해결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마음, 그리고 인간의 삶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캐드펠 시리즈의 미덕이 있다.


** 중세의 수도사가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캐드펠 시리즈는 <장미의 이름>과 종종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둘은 전혀 다른 성격의 소설이다. 둘 중 어느 한 작품의 기준에 맞추어 다른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유명세가 달리는 캐드펠 시리즈의 첫 작품인 <성녀의 유골>은 1977년 작품으로 <장미의 이름>보다 3년 먼저 씌여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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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27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추리소설보다 그런 마음의 안정을 주는 점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상복의랑데뷰 2006-04-2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죄 4권, 계명 3권, 맥널리 4권. 그리고 단행본이 10여권 조금 부족하게 가까이 나왔을 겁니다. 루시의 고백, 케이퍼, 도둑맞은 축복, 해리의 사랑...휴우 세기도 어렵네요. ㅠㅠ

로드무비 2006-04-27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의 계보를 완전히 꿰고 계시군요.
전체를 통찰하는 리뷰, 좋은데요.^^

oldhand 2006-04-27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만두 님 / 아, 미스터리 팬들은 마음의 안정도 역시 미스터리에서.. 하드하냐, 말랑말랑하냐에 따라 가는거군요. ^^
상복의 랑데뷰 님 / Mr.베스트셀러의 단행본이 생각보다 많구나. 앤더슨의 테이프도있다. 혹시 20권 넘는거아냐? 그럼 거짓말 한게 되는데.. -_-a
로드무비 님 / 완전히 꿰긴요. 그건 물만두 님이 하시는 일이죠. ^^ 통찰이라니, 졸문에 과찬이십니다.

하이드 2006-04-2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의 리뷰를 볼때마다 알라딘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oldhand 2006-04-2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망한 칭찬을 해주시는 군요. 그건 그렇고 이제 술은 깨셨나요? ㅎㅎ

하이드 2006-04-2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대략 그렇네요 ^^; 근데, 왜 당췌 몸은 한바탕 운동한사람처럼 이리 쑤시는걸까요, 모든걸 '삼십대' 나이탓을 해봅니다.

oldhand 2006-04-2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역시 문제죠. 더 곤란한 것은 그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커진다는 점이죠. 저는 이제 또 다른 '고지'가 멀지 않았습니다. OTL

2006-05-27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크스의 산 I
다카무라 카오루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 미스터리의 보고(寶庫)라고 일컬을 만한 나라 일본.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많은 미스터리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 번역되고 있는 많은 미스터리 소설 중에 영미의 본고장 추리소설 보다도 오히려 일본작가의 작품들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유명 소설가들로 인해 넓어진 일본 문학의 독자층이 장르 불문하고 "일본 소설"이라는 상품의 인기를 어느 정도 담보해 주는 것 같다.(김전일과 코난, 그리고 비슷한 정서의 동양 문화권 등 여러 다른 이유들도 있을 것이다.) 관련 사이트들을 둘러보다 보면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 대해 심도있고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으며 새로이 일본 미스터리에 입문하는 많은 독자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카무라 카오루 여사는 많은 일본의 미스터리 작가 중에 독특한 위상을 가진 작가이다. (근래에는 미스터리 소설을 쓰지 않고 있지만) 일단, 그에게는 "여류"라는 간판이 붙어 있지 않다. 많은 분들의 노력의 일환으로 점점 여성 직업인들에게 "여류"라는 폭력적인 접두사를 붙이는 일들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아직도 얼마나 많은 "여류 작가"나 "여류 시인"이라는 레테르가 횡행하는가. 그래서 여성 작가에게는 "돋보이는 여자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 묘사" 등등의 찬사가 뒤따르는게 흔한 일이다. 그러나 다카무라 카오루는 진정한 무성(無性)의 작가이다. 그의 소설 속에서는 웬만해서는 비중있는 여성 등장인물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남자들로만 구성되 있는 강력반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겠지만. 그렇다고 어리숙하고 과도한 남성성을 표출하지도 않는다. '다카무라 카오루 월드'라고도 불리우는 자신만의 굳건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마크스의 산>은 집요하리 만치 세세한 배경 설명과 물기를 쏙 뺀듯한 건조한 문체, 강력반 형사들과 그들의 수사과정에 대한 극도의 사실적인 묘사등이 시종일관 어둡고 음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와 어우러져 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그동안 내가 읽었던 경찰 소설들도 어느 정도 "판타지"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네이버에서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라는 카페를 운영하시는 권일영 님 - 히가시노 게이고 시리즈의 번역자이시기도 한 - 의 개고본 비교글에 의하면 이처럼 드라이한 작가는 한층 더 나아가 일본에서 새로 개정 발행된 문고판에서는 소설의 마지막에 보여주었던 실낱같은 희망의 싹 조차도 삭제시켜 버렸다고 한다.

책을 사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추월한 요즘에는 꽂아놓고 바라만 보는 책들이 많다. 그리고 그 중에는 입소문이나 리뷰를 통해 좋다는 평가를 익히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손이 잘 안가는 책들이 있다. 아껴둔다는 생각보다는 차일 피일 미뤄둔다는 생각이 드는 책들이다. 특히 <마크스의 산>이 그러했다. 최근에 나오는 책들 처럼 큼직한 글씨도 아니고, 헐렁한 편집도 아닌 오롯이 꽉찬 두 권의 분량과 굳이 책 앞뒤 표지에 쓰여진 줄거리를 훑어보지 않더라도 제목에서 익히 풍겨오는 묵직한 분위기 등은 상당한 위압감을 주었다. 읽는 중에도 결코 진도가 빨리 나가는 책은 아니다. 또 이래저래 술자리가 많았던 주간에 집어들었던 책이라 꼬박 열흘 정도에 걸쳐서 완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고다 형사와 함께 헉헉대며 어렵게 기어 올라간 험준한 "마크스의 산" 정상에는 여느 걸작 소설들에서도 쉽게 느낄 수 없는 여운과 감동이 있었다. 어느 정도의 감동적 결말을 필수 요소라고 여기는 일본의 사회파 소설들 중에서도 <마크스의 산>의 그것은 독보적이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미나미 알프스의 정상에서 탁 트인 전방을 바라보고 있던 "마크스"의 모습이, 그의 어두웠던 인생이 가슴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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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2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원의 아이 꽂아 놓고 흐뭇해만 하고 있습니다.

oldhand 2006-02-23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저래 일본 미스터리의 저력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너무 많지요? 이럴땐 일본이 정말 부럽습니다. '영원의 아이'도 레전드급의 명작이라는데..

하이드 2006-02-23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와- 마크스의 산 읽으셨군요. 이 책만 보면 뜬금없이 서경식이 3번이나 시도했다 결국 못 읽었다는 토마스만의 '마의 산'이 생각나요.
'영원의 아이' 제가 알라딘에 제보요청했더니, 어느님께서 냉큼 보내주셨어요. 이 책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제 친구의 말때문에 더 읽고 싶어진 책이죠. 뿌듯할 뿐이지요. 흐흐
'마크스의 산' 구할때까지는 제가 좋아하는 올드핸드님의 리뷰라도 읽지 말고 참아야겠어요. 구하기도 힘든데, 읽고 싶어지면 큰일이잖아요 ^^

oldhand 2006-02-2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절판된 책의 리뷰를 올린것이 좀 죄송스럽습니다. 남들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
책꽂이에 1년 반 동안 꽂아만 두었다가 큰 일 치른 느낌입니다.
2004년 여름에 재고로 남아있던 고려원의 책들이 한 번 쫙 풀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운좋게 새책으로 살 수 있었지요. 경찰 소설을 특히 좋아하시는 하이드 님도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말고 구해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만한 값어치는 있을거라 자신합니다.

로드무비 2006-02-24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량의 상자를 몇 달 동안 붙잡고 있었답니다.
제겐 조금 어려운 코스인 듯해요.
올드핸드님의 독서 세계는...^^

oldhand 2006-02-24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르 소설이라는 것이 역시 개개인의 취향에 크게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같은 미스터리 팬들 사이에서도 한 작품을 놓고 크게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도 아주 흔한 일이구요. 괜히 이런저런 개인적 기호를 앞세운 사탕발림으로 로드무비 님을 미혹케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상복의랑데뷰 2006-03-06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전설의 그 책이...

oldhand 2006-03-06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가 딱 찬스였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