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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의 시선 1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수많은 물량을 쏟아 부어 만든 거대한 스케일과 스펙터클한 볼거리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있는가 하면, 그다지 많은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탄탄한 각본과 개성넘치는 배역, 독창적인 구성등을 자랑하는 '잘 만든 영화'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잘 만들어진 영화가 개성없는 블럭버스터보다 훨씬 큰 재미를 선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댄 브라운의 스릴러 소설들이 거대한 음모와 웅장한 스케일,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블록버스터'라면 할런 코벤의 <단 한번의 시선>은 '저예산 웰 메이드 영화'에 비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를 뒤흔들만한 거대한 음모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비범하고 영웅적인 주인공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들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 그레이스 로슨은 남편의 돌연한 실종이라는 흔해 빠져 보이는 사건과 맞 부닥치며 갑작스러운 삶의 격랑을 체험하게 된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은 그레이스로 하여금 직접 남편의 행방을 뒤 쫓게 한다. 화려한 액션이나 스펙터클한 줄거리는 아니지만, 짜임새 있는 구성과 인상깊은 인물들이 잘 어우러져 은근하면서도 눈을 떼기 힘든 소설적 재미를 선사한다. 인터넷 검색과 스팸 메일 등 지극히 현대적이면서도 평범한 수사 방법들은 고전 미스터리나 최첨단 과학 수사를 펼치는 현대의 스릴러 소설등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새로운 흥미거리였다.
15년 전 과거에 벌어졌던 록 가수의 콘서트장에서 벌어진 참혹한 압사 사건으로 인해 불구가 된 그레이스, 그 사고에서 아들을 잃은 마피아 두목 칼 베스파, 우연히 체포된 살인 청부 업자로 부터 누이의 죽음이 사실은 사고가 아닌 청부살인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검사보 스콧 덩컨, 정체 불명의 옛 사진을 보여주자 갑자기 사라진 그레이스의 남편, 북한 출신의 냉혹하고 무자비한한 킬러 에릭 우 등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는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얽혀 들어간다. 소설의 전개는 초반 다소 느슨하게 진행하는 것 같다가 사건의 진행과 함께 점점 박진감을 더하며 빨라진다.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따라가던 독자들은 모든 사건들이 톱니바퀴 처럼 제 자리를 찾아가고, 각자의 사연들이 드러나는 순간 또 한번의 쾌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노골적인 미국식 가족주의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설의 결말은 진지한 여운을 남긴다.
할런 코벤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 하나에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 묘사한다. 스쳐 지나가는 단역에 불과할 지라도 그들의 전사(前史)와 배경에 대한 서술이 덧 붙여져 있다. 등장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한 이런 작가의 정성은 감정 이입을 배가 시키는 효과를 준다. 그만큼 독자들은 손에 땀을 쥐고 등장 인물 하나하나의 운명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할런 코벤의 작품은 이미 국내에 두 편이 소개되어 있지만, 나는 이 소설로 처음 코벤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편의 소설만으로도 세계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작가라는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란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단 한번의 시선>은 완성도 높은 고밀도의 스릴러 소설이다.
<덧글> 북한 출신의 킬러 에릭 우에 대한 묘사와 설정은 서양인들이 동양인과 동양무술에 대해 가지는 신비감과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등으로 인해 조금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 정도의 능력과 솜씨라면 이종 격투기 무대에만 진출해도 떼돈을 벌며 편안히 살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