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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말할 권리 - 다르게 보고 말하는 인권
김희윤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14년 10월
평점 :
『나를 말할 권리』 김희윤 / 글로벌콘텐츠
1. ‘인권’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권리가 침해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다면 ‘인권’이란 단어가 태어날 일이 없을 것이다. 나의 정당한 권리가 사회, 국가 또는 개인의 횡포에 휘둘리고 있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억압과 고통 속에서도 ‘내가 지지리도 복이 없어서 그렇지. 이렇게 살다가는 수밖에 없지’ 하는 자조적인 마음이다. 이를 눈치 챈 갑은 더욱 마음의 칼날이 날카로워진다. 그 칼끝을 서슴없이 을의 목에 겨눈다. 소설이 아니다. 현실이다.
2. “이 책은 교과서적인 인권 이야기가 아니다. 세대를 거듭하며 발전해가는 사회 안에서 기본적인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는 약자들에 대한 막연한 연민으로부터 기록되어졌다. 사각지대에 놓여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각종 부조리를 들춰내야 할 필요성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다르게 보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바다.” 지은이는 사회 내에 존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동남아 계열 이주 여성, 무슬림, 장애인 등 사회·문화적으로 특수한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만을 집중 조명하던 이야기를 넘어서, 입시 지옥에 갇힌 청소년, 바삐 뛰어다니며 구직중인 청년, 실직한 가장, 유유히 공원을 거니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편견에 똑바로 맞설 수 없는 이들과, 비정상적인 시선에 어깨를 펴지 못하는 지친 영혼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를 건네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3. 책은 4부로 구성된다. ‘나를 말할 권리’, ‘당신을 패배시키는 사회’, ‘문화로 이해하는 인권’, ‘차별 없는 세상’ 등이다. ‘침묵’을 생각한다. 침묵이 미덕인 때가 있었다. 아니 지금도 유효하긴 하다. 그러나 그 ‘침묵’의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진보적인 지식인이자 행동주의자인 하워드 진은 그의 저서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사람들은 이미 잘못된 현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 행태를 엄중하게 지적한다. 빠른 속도로 어딘가를 달려가고 있는 기차는 이미 특정 지점과 목표를 향해 돌진중이다. 그 위에서 중립을 말하고 침묵하는 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기차가 가는 방향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의 침묵은 허용 또는 용납이다. 물론 이견(異見)도 있을 수 있다. 어찌하다보니 기차에 올라타 있게 되었다고 답할 수도 있다. 잘못된 사회는 ‘침묵이 미덕’이라고 가르친다. 높은 자리 위에 앉아서 목에 힘을 주는 사람들 또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민중들 모두 제발 입을 다물고 있기만 바란다. 조용히 받아들이기만 원한다. 이는 개인의 의견과 발언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이야기다. 다수결의 원칙이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방관과 중립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는다면, 본인의 관점과 호불호를 명확히 표현 할 수 있는 깨어있는 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우리는 사회를 관람하는 관람객이 아니지 않은가? 침묵만 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4. 카스트 제도. 2,000년간 인도인의 생활을 규정해 온 카스트 제도는 승려계급인 브라만, 통치계급인 크샤트리아, 상인계급인 바이샤, 천민계급인 수드라로 나뉘며, 최하층 계급인 불가촉천민도 있다. 일종의 자격증명서가 되는 카스트는 인간을 ‘영혼이 있는 자’와 ‘영혼이 없는 자’로 구분한다. 마치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으로 구분하는 느낌이다. 그나마 인도는 최근 카스트제도를 없애 표면상 공정함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자, 그럼 현대판 카스트 제도는 무엇인가? 당장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눈에 들어온다. 스펙 쌓기도 그럴만한 여건이 받쳐줘야 가능하다. 마음만 갖고 될 일이 아니다. 영혼만 있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명시적으로 차별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구석구석엔 차별이 일상화 되어 있다. 이렇게 암묵적이며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차별의식을 타파할 가식 없는 의식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내려않게 될 때 더욱 평온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가 불가촉천민에 대한 사회적 차별철폐를 위해 그들을 ‘신의 자식’이란 뜻의 ‘하리잔’으로 부른 것처럼, 우리사회의 보이지 않는 카스트제도를 타파하기 위한 의식적 차별철폐가 이루어져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