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 강석기의 과학카페 3
강석기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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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입혀진 과학

 

1. 가습기 살균제 사건 그 후. 도시주거의 대표적 모델인 아파트는 강제로 환기를 시키지 않는 이상 건조하기 십상이다. 특히 겨울철엔 지속적인 난방이 더욱 그 건조함을 증가시킨다. 요즈음 주변에서 가습기 사용량이 급격히 줄어들었음을 보게 된다. 다름 아닌 몇 해 전 급성 호흡기 질환 사망자가 수십 명에 이르면서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내에 넣어두었던 ‘가습기 살균제’가 주범으로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피부에 바르거나 먹어도 안전하다고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성분 DDAC(다이데실 다아메탈 암모늄 클로라이드)는 어찌해서 호흡기에 그런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는가? 〈미국호흡기중환자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보면 가습기살균제의 생화학 및 세포 수준에서의 독성 메커니즘을 추적한 결과를 알려주고 있다. 이들 화합물이 폐의 상피세포 점막층에 있는 중요한 항산화제인 글루타티온 같은 티올에 달라붙어 손상을 입힌다는 것이다. 실제 사망자의 폐조직을 검사해보면 상피세포층이 벗겨져 있다고 한다. 가습기 살균제 판매 금지령을 내린 후 환자는 ‘0’명으로 기록되었다고 하니 다행스럽긴 하나 가습기마저도 미운 오리새끼가 되어버렸으니 안타깝다.

 

 

 

 

2. 다짜고짜 책에 실린 한 꼭지를 토대로 글을 만들어보았다. 잘 만들어진 책을 보면 우선 저자에게 고맙고 편집자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은 타이틀을 ‘과학’으로 잡았지만 동서남북 두루두루 돌아보는 시간을 주고 있다. 건강/의학. 영양, 생명, 신경과학. 문학/영화. 물리학/인물. 인물이야기 등 다양하다.

 

3. 저자 강석기는 화학과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 LG생활연구소 연구원, 〈동아사이언스〉과학전문 기자로 근무했다고 소개된다. 현재 과학전문 작가로 활동 중이다. 이 책은 저자가 2012년 출간한 에세이집 『과학 한잔 하실래요?』에 이어 2013년 『사이언스 소믈리에』가 기대 이상으로 독자들의 호응을 얻자 이번에 출간된 3편이다. 주로 동아사이언스의 인터넷 과학 신문 〈과학동아 데일리〉에 매주 연재하고 있는 ‘강석기의 과학카페’ 글들을 다듬었다고 한다.

 

4. 저자는 1년 동안 쓴 에세이들을 책으로 정리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런 글들을 썼을까?’ 그리고 스스로 답한다. ‘그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라서? 지적 호기심(아니면 허영심)을 충족하기 위해? 물론 이런 측면도 없진 않겠지만 무엇보다도 저자는 과학이 여전히 다이내믹한 분야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는 이야길 덧붙인다.

 

 

      
 

5. “물론 과학이 무척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천재가 아니라면 범접하기 어려울 것 같은 과학도 사실은 곳곳에 허술한 면이 여전히 많은 건축물 일뿐이다. 당신도 용기를 내 뛰어든다면(물론 끈기 있게 노력해야겠지만) 여기에 벽돌 한두 개는 쌓을 수 있다는 말이다.”

 

6. 화이트 푸드를 아시나요? 오늘 아침에도 컬러 푸드에 대한 TV프로그램을 봤다. 형형색색의 과일, 채소를 놓고 이건 어디에 좋고, 저건 어디에 좋고 하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컬러 푸드 그늘에 가려진 화이트 푸드 이야기를 들어본다. “식재료의 풍부한 색이 식탁에서 미적 즐거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건강식품임을 나타내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건강 유지에 필수 성분인 비타민 대다수는 색이 없다. 컬러 푸드에 비타민이 들어 있을 수 있지만, 색 자체가 그 존재를 보증하는 건 아니다.” - 스티븐 바네스.

저자는 미 영양학회 학술지 〈영양진보 Advances in Nutrition〉에 실린 논문을 소개한다. ‘백색 채소: 잊고 있던 영양원’ 여기서 백색채소, 즉 화이트 푸드는 감자, 콜리플라워(꽃양배추), 순무, 양파, 옥수수 같이 색이 옅은 채소를 말한다. 색이 선명해야 영양분이 풍부하다고 믿게 만드는 분위기를 점검해보는 계기가 된다.

 

 

 

 

7. “최근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김일두 교수팀이 숨만 내쉬면 당뇨병이나 폐암 같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휴대용 장치를 만들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서 화제다. 이 ‘날숨 진단센서’는 백금 나노입자가 코팅돼있는 다공성 산화금속

(Sn0₂) 소재로, 공기 중에 존재하는 아세톤이 달라붙으면 전기저항 값이 바뀌면서 그 존재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때 농도에 비례해 저항 값도 커지므로 상대적인 농도까지도 알 수 있다.” 아세톤은 매니큐어를 지우는 리무버 맞다. 우리 몸이 아세톤을 만드는 생체공장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우리가 호흡하는 날숨(내쉬는 숨)에 아세톤의 함량이 높을수록 당뇨병에 걸려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8. 이 책에서 앨리스 먼로를 만나게 될 줄이야.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캐나다의 소설가 앨리스 먼로가 화제가 된 것은 단편소설가로는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먼로가 소개되는 사연은 학술지 〈사이언스〉덕분이다. 소설을 읽으면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논문의 제목은 ‘문학소설을 읽으면 마음의 이론이 향상된다.’라고 되어 있다. 바로 이 연구에 먼로의 단편 ‘코리’가 텍스트 가운데 하나로 쓰였다고 한다. ‘디어 라이프’(문학동네)에 실린 14편중 7번째 단편이다. 끝부분에 이런 문장이 눈에 띈다. “어디에나 구멍이 있다. 특히 그녀의 가슴에..” 평소 독서에 대한 나의 생각과 겹쳐져서 기분이 좋다. ‘책을 통해 나를 안다. 나를 알면 당신을 이해한다. 당신을 통해 세상을 본다.’

 

 

 

 

9. 과학 에세이집이라고 해서 가볍고 만만히 읽을 내용들은 아니다. 특히 인문학적 사고에 익숙해있는 뇌는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과학용어가 외계어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은 과학과 떨어져서 살아 갈 수가 없다. 과학에 스토리가 입혀진 이러한 책들이 과학과 조금이라도 친해 질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는 점에 콜이다. 적절히 자리 잡고 있는 사진들과 설명에도 높은 점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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