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머리 저자의 말이 참 정겹게 다가옵니다. "책과 여행, 이 단어들은 전적으로 착한 단어로 여겨집니다." 착하다 마다요. 둘 다 우리에게 에너지를 재충전 시켜주지요.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지요. 그래서 책은 거의 안 읽고 돌아다니는 일상에 젖어 있다보면 몸도 마음도 쉬 지칠수도 있습니다. 균형있는 삶이란 어찌보면 별것 아닌 듯 합니다. 가끔은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나 음식도 웃으며 반길 필요가 있지요. 쓰다보니 인생극장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군요. 때로 다른 역할로 단역 배우로 출연해 볼 필요가 있지요. 우리 삶에 정적인 독서와 동적인 여행이 잘 어우러지는 삶을 살고 있다면 멋지지요.
2. 저자의 이런 표현도 공감합니다.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책은 여행을 부르고, 여행은 다시 책을 불렀다." 책도 혼자 골방에 들어가서 읽어야 깊은 맛을 느끼듯이 여행도 혼자 다녀야 제대로 보고 느낀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그런 사치스런 여행은 아직입니다만. 임상에서 벗어나면 그런 시간이 마련되겠지요. 그 기대감으로 삽니다.
3. 이 책은 저자가 지난 10여 년간 세상 구석구석에서 겪은 인상 깊은 여행들과 그와 연관된 책(특히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오래전 여행한 유럽과 북아메리카 대신 비교적 근래에 여행한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지중해 등의 나라를 대상으로 하고 있군요. 책을 읽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여행지를 더욱 깊이 잘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 여정의 기록입니다.
4.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 라는 저자의 말은 최근에 읽은 사이코 스릴러 [눈알수집가]의 저자 제바스티안 피체크로 오버랩 되는군요. 책을 펼치면 "당신의 머릿속에 영상이 떠오르고 인물들이 살아나 움직이게 되겠죠. 당신에게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종이 위에 태어난 인물들이 말입니다."
5. 아, 저자는 내가 부러울 정도로 많이도 다니고, 읽었군요. 러시아, 티베트, 인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일본, 호주, 스페인, 그리스 등등. 이런.. 나라 이름 적기도 바쁩니다. 책은 크게 네 파트로 나뉘어있습니다. '구원을 찾아 떠나다.', '사랑을 찾아 떠나다.', '이야기를 찾아 떠나다.', '나를 찾아 떠나다.'
6. 티베트로 가볼까요? 저자의 눈에 비친 티베트인들은 그저 무심히 걸어도 순례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고 표현합니다. 삶과 죽음, 소망과 염원이 한 걸음 한 걸음 곰씹어진다는군요. 티베트행이 결정되자 차마고도를 생각하고 그 길 어딘가에 영국작가 제임스 힐턴의 [잃어버린 지평선]이란 소설에서 그려낸 지상낙원 '샹그릴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책을 구입해 배낭에 챙겨 넣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빡빡한 스케쥴로 인해 책은 들쳐보지도 못하고 배낭안에 대기하고 있었다는군요.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엔 티베트 어느 곳에 위치하는 것으로 기록되는 '샹그릴라'이야기가 나온답니다. (아직 못 읽어본 책이기에) 그곳 사람들은 보통 200살까지 무병장수하고 100살 정도는 아이 취급을 받는다는군요. 이상향 도시지요. 이 책이 널리 읽히면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신의 별장을 '샹그릴라'로 명명했다는군요.
7. 호주에선 얼마전 국내에서도 많은 관객을 동원하고 책도 제법 팔린 [파이 이야기]를 만납니다. 우선 호주의 인상을 이렇게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네요. "없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 시드니에 여행자를 불러들이는 강렬한 매력은 없었다. 모험과 불편함이 약간이라도 없는 여행은 언제부턴가 한없이 지리멸렬하기만 했다. / 있다. 여행은 이름난 장소와 풍광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이야기. 사람의 냄새가 곧 여행의 향내가 난다. 낯설거나 익숙한 향내를 찾아 그 사람에게 가고 싶다." [파이 이야기]에서 한 문장을 옮겨봅니다. "내 가장 큰 바람은 - 구조보다도 큰 바람은 - 책을 한 권 갖는 것이었다. 절대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가 담긴 긴 책. 읽고 또 읽어도 매번 새로운 시각으로 모르던 것을 얻을 수 있는 책." 신영복 선생이 수인(囚人)의 몸으로 묶여 있을 때 동양고전에 심취하셨던 사연이 이해가 되시지요?
8. 팔레스타인, 혹은 이스라엘의 여정에서 저자는 '세상에 참 평화가 없어라'는 단상을 먼저 올립니다.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저자는 "성서에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 했던 이 땅을 유대인, 아랍인등이 거쳐 가면서 비극은 잉태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지금도 이슬람과 유태교, 가톨릭이 불안하게 공존하고 있는 예루살렘. 이 여정엔 가산 카나파니의 [불볕 속의 사람들]과 동행했군요. 중편소설인데, 팔레스타인에서 쫒겨나 유민이 된 비참한 아랍인들이 목숨을 걸고 기회의 땅 쿠웨이트로 밀입국하는 현실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용감하기도 해라. 이런 책과 동행하다니..
9. 페루의 여정을 소개하면서 남긴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 읽지 않은 책에 대한 후회.' 나는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보다 '안 해도 될 말을 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앞서기도 합니다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티티카카 호수의 꽃대궐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밤새 창에 걸린 보름달이 잠 못 들게 하더니 이내 호면 위로 아침햇살이 떠올랐다. 숨 막히던 햇살, 그 빛" 저자의 이런 표현이 참 좋습니다. '숨 막히던 햇살.' 우연히 페루의 여행자 숙소에 꽂혀있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만나는군요. 아마 한국인 여행자가 역시 여행지와 공감대가 있는 책을 갖고 와서 읽고 꽂아놓고 간 모양입니다.
10. 책엔 사진이 제법 많이 실려 있습니다. 사진 찍는 솜씨가 수준급 이상이군요. 풍광 위주가 아닌 여행길에 스치듯 지나치는 그곳 사람들입니다. 사진을 보며 느끼는 감성이 저자의 뜨거움과 차가움이 어우러진 글들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군요.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느 세월이 될지 모르지만, 저자가 책에서 소개하는 책들은 우선 만나보고 싶습니다. 현지 여정에서 느낀 마음을 전해주고 있기에 더욱 살갑게 다가옵니다. "잘하려고 애를 쓰는 것보다 무엇이든 즐기는 것이 결국 잘하게 되는 길.' 이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하이 파이브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