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처음 배달되었을때 나는 딱 한가지 생각만 들었다. '이 큰걸 어떻게 가지고 다니면서 읽지?' 책은 거의 560페이지에 육박했고 결코 가벼운 제질의 종이를 쓰지 않아서 책 무게는 장난이 아니었다. 한가지 다행스러웠던건 아이작 아시모프의 바이블 (이 책도 장난 아니게 두꺼워서 집에서만 읽었었다.) 처럼 양장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때 이후 처음으로 책을 반으로 잘랐다. (당시 선생님들은 반으로 잘린 책들을 보면 마치 당신의 머리카락이라도 잘린듯 진심으로 가슴아파 했었지만 우리에게는 어깨근육의 통증이 더 급한 문제였으므로 아랑곳 하지 않았었다. )책을 자른다는게 좀 걸리긴 했었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너무 무거워서 내가 들고다니질 않고, 그래서 잘 읽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어림짐작으로 절반쯤 되는 지점에서 반을 잘랐지만 잘린 두권도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그래도 제법 들고다니면서 읽을만은 했다.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이래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과학교양서. 사실 나는 학교다닐때 과학과 수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다. (물론 다른 과목도 관심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런데 학교를 다 졸업하고 시험을 위해서가 아닌 순전히 그냥 취미삼아 읽어보니 그게 생각보다 어렵지도 재미없지도 않았었다. 과학과 수학이 재미없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을때는 그야말로 큰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도 내신 15등급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어거지로 대학에 들어간 인간은 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아무튼 스티븐 호킹과 아이작 아시모프 그외의 사회과학 서적 몇가지를 그럭저럭 재미나게 본 기억만으로 나는 이 책에 덤벼들었다. 두께가 두께이니만큼. 그리고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결코 만만치 않을거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사실은 읽으면서 종종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저자인 빌브라이슨은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으며 그 역시 과학자가 아니기에. 오히려 과학자들을 졸라서 자신이 이해가 될때까지 얘기를 들었고 그것을 책으로 옮겼지만 말이다. 어떤 단어들은 학교다닐때 분명히 들었고 그 뜻까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서인지 지금와서 남은건 대략적인 이미지 혹은 이런뜻 아닐까? 하는 막연한 추측 뿐이었다. 그것만 뺀다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흥미로운 책이었다. 제목부터가 거의 모든것의 역사이듯. 우리 인간과 관계되었다고 생각되어지는 가장 처음에서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그리고 비교적 쉽고 재미있는 예들을 들어가며 과학이 절대로 딱딱하고 재미없는 학문이 아님을. 또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가졌던 '나는 어디서 왔을까' 하는 질문을 조금더 진지하게 생각해주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만약 지금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조금만 더 여유가 있고 시험에 시달리지 않는다면 이 책을 꼭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아예 처음부터 수학 과학은 나와 무관한 너무나 재미없고 어려운 과목으로 찍어버리고 포기하기 전에 말이다. 그리고 읽다가 보면 간혹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틀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약 시험에 나온다면 교과서에 적힌대로 답을 적어야 정답이겠지만 그래도 사실을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이 투껍고 무거우며 약간 비싸다는 것만 빼면 내용 면에서는 100점 만점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더구나 저자가 과학을 전공한것도 아니고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여러 과학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본인 스스로 공부를 했다고 하니 그 노력만 해도 점수를 주고도 남는다. 빌 브라이슨이 쓴 전작 [나를 부르는 숲]도 그렇지만 책 이상의 책이라 불리울 만하다. 다 읽는데 제법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레혼 2004-09-18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를 부르는 숲>을 읽고 나서, 빌 브라이슨의 능청스럽고도 재치있는 어법에 매료됐지요. 그 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도전해 볼까 어쩔까 망설이는 중인데, 플라시보님의 리뷰가 '지르게' 만드는군요.

늘 솔직하고 편안하게, 그러나 핵심을 놓치지 않고 예리하게 칼을 쓸 줄 아는 님의 글솜씨에 매료돼 자주 이 방에 들락날락했습니다, 발자국 남기지 않구요.....
이제 신고했으니, 가끔씩 인사 나누어요^^

플라시보 2004-09-1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 와인님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어설픈 제 리뷰를 좋게 봐 주시니 고맙네요^^ 결코 편하고 쉽게 그리고 빨리 읽히지는 않습니다. 저도 이거 읽고나서 현재까지 책 읽는걸 잠시 쉬고 있거든요 (물론 주문한 책이 안오기도 했지만)
아무튼 지르시게 되면 (이 표현 재밌네요) 즐겁게 잘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종종 여기서 뵈어요^^)

픽팍 2004-10-1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볼려고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두깨에 질려서 포기했는데 봐야 겠네요
ㅋㅋ 암튼 리뷰 와방 잘 쓰시는 듯
ㅋ 자주 올께요
중간고사 끝나고 꼭 읽어 봐야 되겠네요 ㅋ

플라시보 2004-10-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팍님 안녕하세요. (닉네임이 참 특이하시네요^^) 저책 무지 두텁죠. 아마 휴대하면서 읽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나시면 집에다 두시고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릴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아이스크림은 빵빠레와 투게더였다. 집에 누군가가 올때마다 나를 위해 빵빠레나 투게더를 사오면 나는 기쁨에 몸을 부르르 떨곤 했었다.

비교적 바닐라의 담백한 맛을 즐기던 어릴때와 달리. 나이가 드니 입맛이 약간 너저분해졌는지 딸기 아이스크림 같은게 좋다. 특히나 저 하겐다즈 딸기 아이스크림은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품목. 다만 흠이 있다면 더럽게 비싸다는거. 그래도 맛은 다른 딸기 아이스크림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맛나다.

너무 리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셔벗처럼 완전히 버석거리지도 않는. 적당한 정도의 아이스크림. 그게 내가 저 아이스크림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누발바닥 2004-09-26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갠적으로 초코를 좋아한답니다....ㅋㅋㅋ

플라시보 2004-09-26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초코렛은 좋아하는데 초코맛 아이스크림이나 초코맛 우유 등등은 별로 안좋아합니다.^^ 초코 쿠키도 그렇고 초코 케잌도 그러네요.^^

HooN 2004-10-05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샤베트류가 시원한맛이 있어서 좋던데.. 싸구려 지만 와~ 라는 아이스크림 딸기맛 을 제일좋아하죵

플라시보 2004-10-05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와 딸기맛 좋아합니다. 예전에 오리온에서 나오는 아이스크림껌이라는 껌이 있었거든요. 그게 딸기맛인데 와 딸기맛과 무척 비슷합니다. (그 껌이 안나와서 그 맛을 그리워하던 차에 와가 나와서 기뻤습니다.^^)

marine 2005-01-22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저도 저 아이스크림 무지하게 좋아해요 사실은 비싸서 한 번도 안 먹어 봤는데요, 대학 때 배낭여행 갔는데 파리 커피™熾【 저걸 팔더라구요 아는 게 나와서 신기하길래 시켰더니, 진짜 맛이 환상인 거예요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는 진부한 표현이 딱 맞더라구요 그 다음부터는 기분 우울할 때 잘 사먹어요 배스킨 라빈스 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요
 






 


빨간색 시계들.

왼쪽 위부터 돌체 앤 가바나,  만다리나 덕,  테크노마린

제일 아래 왼쪽은 어디껀지 모르겠고 그 다음은 인빅타 시계

옷은 무체색 계열을 좋아하지만 소품은 원색이 더 끌린다.

하지만 옷이 컬러플한데 소품까지 그렇다면 대략 베네통틱

하므로 난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weetmagic 2004-09-12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다 이쁘네요 ~ 4 >3 >2 >1 !!

플라시보 2004-09-12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지막 인빅타 시계가 제일 마음에 듭니다. 돌체 앤 가바나는 평소 제 스타일과 다르지만 디자인이 워낙 심플하고 이쁘게 빠져서 마음에 들구요^^

starrysky 2004-09-1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빅타 시계에 한 표. 아, 다들 그런 디자인을 좋아하시는군요. ^^
예전엔 테크노마린 좋아헀었는데 별로 변화가 없어서 요새는 좀..
돌체&가바나는 왜 2개의 시계판 시간이 다를까 생각중입니다. 하핫~

groove 2004-09-12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모르게..모니터로 손을뻗었습니다..
 

어두운 곳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리딩 라이트. 잠자기 전에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진 나로서는 스르르 잠이드는 순간 손을 뻗어서 스탠드를 끄는것이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종종 그 과정 때문에 오던 잠이 달아나기도 한다.)

허나 이 제품이라면 그런 걱정을 덜어도 좋을듯 싶다. 책에 끼워서 독서하기에 충분한 밝기를 제공해주는 리딩라이트. 밝기도 3단계 조절이 가능하고 베터리는 건전지 2개 넣고 40시간정도 쓸 수 있다고 한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04-09-11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랍니까? 눈이 번쩍 뜨이는데요. 갖고 싶어라...

비로그인 2004-09-11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탐나네요!!
사진 좀 퍼가겠습니다 (^^)

로렌초의시종 2004-09-11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가요~~~

水巖 2004-09-11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 참 좋군요. 저도 '그 과정 때문에 오던 잠이 달아나기도 합니다.' 때론 그저 잠이 들어 마누라 핀잔도 듣고요. 그런데 그래도 그냥 잠 들지는 않으려나.

mannerist 2004-09-11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책읽는 사람 스탠드 줄 중간에 타이머라도 달아볼까요? =)

어디에도 2004-09-11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살짝 빌려갈게요^^

가을산 2004-09-1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제품 혹시 사용해보신 분은 없나요?
몇번 본 적이 있는데, 건전지 소모가 많을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플라시보 2004-09-1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보통 CDP에 들어가는 건전지를 사용하고 40시간 간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격은 잘 모르겠구요. 어디서 파는지도 확실치 않네요. 혹 보셨다면 어디서 보셨는지요.

가을산 2004-09-1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 미국 반스 앤 노블스라는 책방에서요....

stella.K 2004-09-12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엔 아직 없는가 보군요. 미국 반즈엔 노블스에 누구 아는 사람 없나요? 있어도 그렇지 가격이 장난이 아니겠는데요. ㅜ.ㅜ

엔리꼬 2004-09-2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funshop.co.kr/vs/detail.aspx?no=0555877602
여기 가보세요.. 펀샵이라고...위 모델과 동일한지는 모르겠는데.. 6만원에 파네요.

nemuko 2004-09-20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가족들의 수면을 위해서라도 이걸 하나 사야겠네요. 신랑이나 아들이 조그만 불빛에도 어찌나 예민들 한지 말입니다^^
 



올 하반기에 내가 가장 기대한 영화가 있다면 장예모 감독의 연인. 바로 이 영화였다. 얼마나 기대를 했는가 하면 개봉 첫날이었던 8일날 일이 많아서 이 영화를 못보게 되자 마음이 다 쓰릴 지경이었다. 내가 원래 장예모 감독의 팬이었던 것은 아니다. 연인의 전작 영웅 때문에 나는 장예모 감독을 좋아하게 되었다. 국두나 귀주이야기 붉은 수수밭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내 입맛은 아니었더랬다. 영웅을 너무나 재미있게 봤던 나는 당시 극장에서만 그 영화를 3번 봤고 비디오로도 2번을 봤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너무너무 학수고대하며 기다렸었다. 허나 결론을 미리 말 하자면 이 영화 코메디였다.

전작 영웅의 경우도 스토리가 아주 훌륭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충분하게 납득이 가는 스토리에 무엇보다도 비주얼이 뛰어났었다.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분배한 색의 향연들. 그리고 같은 사건이었지만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지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은 모두 최고의 찬사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경우. 지나친 비주얼의 강조로 인해 오히려 영화가 우스꽝스러워져 버렸다. 거기다 스토리는 비주얼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해서 겉돌기만 했고 뒷쪽으로 갈수록 관객들은 폭소를 터트리거나 야유를 보낼 정도로 이야기가 한심해져만 갔다.

내가 생각하기에 멋진 액션이란 무릇 그에 응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주인공이 아무리 똥폼을 잡고 멋드러지게 싸운다고 해도 대체 왜 싸우는지를 모르면 액션이 멋질수록 비주얼이 화려할수록 우스꽝스럽게만 보일 뿐이다. 연인은 스토리가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리 근사한 화면과 그림엽서같은 구도를 쓴다고 해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올 상반기.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있었다면 하반기에는 바로 이 영화 '연인' 이 있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 하고자 했던것은 사랑이었다. 그런데 대체 그들이 왜 사랑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설명이 전혀 없다. 더구나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새롭게 싹트는 사랑은 관객들로 하여금 '저 인간들이 왜 서로 사랑하고 난리지?' 라는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나중에는 하다가 안되니까 스토리 뒤집기를 시도하지만 그걸로 이미 틀어진 영화의 감정선을 이끌어내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반전이랍시고 엎어친 스토리들은 관객의 실소만 자아낼 뿐 영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한다. 심지어 막판에는 감독이 노망이 났거나 지가 찍고싶은대로 마구 찍은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엄하기 짝이 없는 눈밭 위에서의 결투씬. 그리고 거기서 죽은줄로만 알았는데 느닷없이 살아나는 장지이는 이 영화의 장르가 코메디라고 온몸으로 외치는듯 했다.

각자 배우로써 입지가 탄탄한 세 명의 배우.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서로 작당이라도 한것처럼 평이한 연기를 한다. 장지이의 경우 나는 아직 그 배우가 주인공을 맡아서 스토리를 이끌어갈 만한 힘이나 카리스마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작 영웅에서 장만옥이 보여줬던 연기와 비교를 하자면 그야말로 낙제점수이다. 물론 무희로 나오는 그녀가 춤을 추는 장면이라던가 맹인 연기는 칭찬을 해줄만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는 무용을 전공했기 때문에 춤을 잘 추는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고 맹인 연기도 그다지 눈에 띌만큼 훌륭했던것은 아니다. 거기다 반전의 키워드를 쥐고 있는 그녀인데 표정 연기가 영 심심하다.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만큼 좀 더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를 써야 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금성무. 극중에서 감정의 변화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역을 맡았다. 사랑때문에 모든걸 희생할 수 있는 남자로 나오는데 관객들은 보는 내내 금성무의 감정선을 따라잡지 못한다. 물론 극중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강조를 하니 관객들이 그 영혼을 이해하지 못하는게 당연하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셋 중 가장 오래 연기생활을 한 유덕화. 유덕화가 맡은 캐릭터는 배신을 하기도 하고 또 배신을 당하기도 하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특히 배신을 당했을때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껴서 모든걸 다 망가뜨리려고 하는 역활인데 두 배우보다 조금 낫기는 하지만 그의 연기생활을 돌이켜 볼때 그다지 자랑스러운 작품이 되지는 않을것 같다. 무엇보다 유덕화의 경우는 연기를 못해서라기 보다 도저히 극중 인물을 이해하지 못해서 어떻게 연기를 해야하는지 몰라 우왕좌왕 하는게 너무 눈에 두드러졌다. 나머지 두 배우들은 그냥 이해를 못해도 연기를 하면 그만 이라는 식이었지만 그나마 연기를 좀 오래한 유덕화는 인물을 이해하고 몰입하려고 하는 눈치였는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들의 연기력에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 스토리와 캐릭터의 설정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마치 여러명의 작가가 모여서 한 사람의 인물을 창조한것 처럼 인물들은 일관성도 없다. 그리고 그 부족한 일관성을 '알고 보니 그는 이런 사람이었던 것' 으로 때우려고 한다. 

아까 위에도 언급했었지만 영화에서 훌륭한 비주얼은 좋은 스토리를 만나야 빛이 난다. 영화는 개판인데 볼꺼리만 화려하다고 해서 우리는 그 영화에 결코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전작 영웅이 훌륭했던것은 그 화려하고 멋진 볼거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극중 배우들의 좋은 연기와 괜찮은 스토리가 관객들로 하여금 멋지다라는 찬사를 불러 일으킨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연인은 엄청나게 겉멋이 든 감독이 꼴에 본건 많아가지고 만든 영화처럼 한심하기 짝이없다. 택도 없는 스토리를 아무리 멋진 앵글로 잡은들 뭣하겠는가. 영화는 비주얼이 전부가 아닌것을. 극장을 나오면서 어떤 관객이 명대사를 날렸다.

'장예모 감독 쪽팔리지도 않냐? 저런걸 해외까지 개봉하게.' 

참. 금성무는 여기서 활을 무지하게 잘 쏘는데 반지의 제왕의 레골라스 이래로 최고의 활솜씨를 보여준다. 근데 그게 멋지다기 보다는 좀 웃긴다. 어느 정도껏 잘 해야지 너무 잘 해버리면 웃길수도 있다는걸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배웠다. (실은 레골라스 정도의 활 솜씨도 너무 훌륭한나머지 충분하게 웃긴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weetmagic 2004-09-1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디게 보고 싶었는디~~

mannerist 2004-09-1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성격묘사나 상황을 대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오죽 능력 없으면 말에 의존할까. 싶어서요. 그런 의미에서 자기 입으로 '난 바람과도 같다'읆어대는걸 보니 인물 묘사에선 콘티부터 잘못 짠 거 같더이다. 그냥 신경 끄고 화면하고 소리만 뮤직비디오 보듯 즐겼습니다. 초반에 북두드리고 춤추는 거랑 대나무 숲에서 난리치는것만으로도 조조 2000원 본전은 뽑은 듯 싶더군요. 장이모는 방식이 달라져서, 이제 '인생'을 뛰어넘는 작품 찍긴 글렀단 생각이. -_-

치니 2004-09-1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금성무를 지극히 편애하는 지라, 이영화 무조건 예매해두었습니다만...
플라시보님의 글을 읽고 나니, 어째 좀 시간과 돈이 아까울거 같은...디비디로 볼걸 그랬나.-_-

플라시보 2004-09-10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weetmagic님. 아마 비디오로 보시는게 좋으실것 같네요.^^

mannerist님. 이미 보셨군요.^^ 금성무가 계속 자기 입으로 자기는 바람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게 좀 깨긴 했었죠. 흐흐.

치니님. 이미 예매를 해 두셨다니 어쩔 수 없네요. 근데 한가지 주의할점은 금성무 쌍거풀 수술한거 아세요? 그 예쁘던 눈이 상당히 느끼해져버렸어요. 그래서 슬펐어요.

비로그인 2004-09-1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쉽군요. 저도 장예모 감독 참 좋아하는데.

유덕화처럼 남성적인 선의 얼굴이 맘에 드네요, 전

비로그인 2004-09-11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금성무가 좋아서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뎅..

마냐 2004-09-12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이 영화,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엊저녁. 뭔 영화를 볼까, 옆지기랑 고민하다가, 그냥 영화나들이를 포기했슴다. 문제는 바로 이 영화..옆지기 주변에서 하두 꽝이라고들 해서, 영 안내키더군요. 그런데, 플라시보님이 확실하게 쾅쾅...
근데, 어쩌죠, 님의 글을 읽다보니...얼마나 허접한지 더 궁금해지니..ㅋㅋㅋ

치니 2004-09-12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봤습니다.
흑, 결과는 디비디로도 안 보면 좋았을 영화였다는...
짭, 쌍커풀이었군요, 뭔가 좀 느끼해진 이유가... 음 그래도 아직은 멋져요. 헤헷.

아라비스 2004-09-12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정말 웃기더군요.^^ 장예모같은 감독이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나 궁금할 지경이었어요. 정말 노망이 들었나... 할 정도로. 님의 멋진 영화평에 오타가 있네요. 첫문장에서 영웅이 아니라 연인이요...^^

LAYLA 2004-09-12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래도 재미있게 봤어요 :-) 의상부터 무척 화려해서 ...^^
처음에 술집나오는 장면이랑 대나무숲 무협장면이 좋았아요
아쉬운건 역시 너무도 빈약한 줄거리. 반전도 반전이라 하기엔 좀...
저는 또 유덕화 보러간건데 유덕화 정말 쪼금만 나오고 ; _ ; (장즈이는 정말 예쁘게 나오더군요) 배우들의 연기는 별로 볼게 없고....뒷부분에 유덕화가 눈물 글썽이며 장즈이에게 3일만에 딴 남자와 사랑에 빠지냐고 따지는 장면은 좋았어요 ㅠ_ㅠ
영화가 갈수록 이상해져서...마지막 결투신이 최강 웃겼습니다.
음 그래도 영화관에서 볼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어항에사는고래 2004-09-19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상과 사운드에 장예모가 신경쓰다보니 다른 것들 챙길 여유가 안되었나봐요.
저두 영화보는 내내 향신료 빠진 카레를 먹는 느낌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