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이 그랬었다. 그 영화를 보기 이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쁜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모니카 벨루치가 정말이지 그녀의 영화들 가운데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연기를 보여주었었지만 나는 그 영화를 보기 이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로드는 광고 문구를 빌리자면 감히 성서에 비견되는 작품이며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작품이라고 한다. 그만큼 책은 재미와 작품성 면에서 양쪽 다 별 다섯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작품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별 하나를 덜어낸것은 내 마음 때문이었다. 읽고 나서 얼마나 불편했던지. 그리고 읽으면서 내내 얼마나 울었었던지. 물론 내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때라면 그런 이유로 별 다섯에 추가 다섯! 이렇게 호기롭게 외쳤겠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나이가 들면서 소심해져 버렸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만큼은 아니지만 불편한 허구 혹은 상상의 세계는 그만 모르고 살고 싶어져버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훌륭하다. 읽는동안 끊임없이 감정적으로 힘들게 하고 또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은 그 옛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을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옆에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딸을 보면서. 그러지 않으려고 애써도 자꾸만 나는 소설속의 남자와 소년의 이야기가. 나와 내 딸의 이야기가 된다면? 하는 괴로운 상상을 멈출수가 없었다. 

사실 암울한 미래에 몇 남지 않은 생존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책 만큼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다 못해 소금과 과산화수소를 들이붓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그래 저건 허구야' 혹은 '저렇게까지야 되겠어? 영화니 (혹은 책이니) 그렇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허구고 사실이고간에, 그리고 허구가 사실로 둔갑할 가능성이 몇 퍼센트이건 간에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것은 아마도 이 책이 사랑을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점점 말라가는 모습. 그리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모습,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며 죽을 정도의 추위를 견디며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그 어린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모르긴 해도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질만큼 아플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는 갈 곳이 없으며 더 나아질 희망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놀랍도록 담담하게 던진다. 하지만 그 담담이 독자들에게는 더욱 견딜 수 없는 심적 고통을 느끼게 한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임산부나 어린이 혹은 노약자에게 금해야 하는건 아닌지 하고 생각해본다. 그만큼 읽고나면 너무 마음이 아프며 그 마음을 다칠 확률이 높다. 서른 넷이나 먹었고 세상 풍파를 겪을만큼 겪었다고 생각하는 나도 이렇게나 다쳤으니까. 

사전 지식없이. 그저 재밌겠네?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을 진심으로 후회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밤을 샌 다음 여행을 떠난것도 후회한다. 결국 여행은 내 마음이 그래서 그런지 공포로 점철되었고. 지금의 나는 그 여행과 함께 책의 내용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서 고통스러우니까.  

하지만 굉장히 훌륭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그 많은 독자들이 선택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베스트셀러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접해보면 '아 이래서 그렇구나' 하고 수긍을 하게 된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이렇게 된다면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을 자신이 있을까? 내 스스로 나와 내 아이를 포기해버리지 않을 만큼 모질 수 있을까? 마음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weetmagic 2009-01-12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댐시 사보고 싶네요..

비로그인 2009-01-13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다른 정보가 없는 와중에 이 책을 옮기고 펴내면서, 출판사나 편집자나 옮긴이나 다들 `과연 이 책이 잘 팔릴까' 생각을 했다지요. 굉장히 러프한 번역이라고, 하지만 원문을 살린 번역다운 번역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무서운 책일텐데, 그래도 읽고 싶어집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1-13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너무 마음이 무거울거 같아서 못보고 있어요.
 
마이클 크라이튼의 여행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신현승 옮김 / 터치아트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사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여행기를 읽을 계획 같은건 애초에 없었었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게 되었는데 이건 뭐랄까. 엎어졌는데 일어나려고 보니 돈 만원이 떨어져 있는 기분이랄까? 이걸 읽어야 할때는 괴로웠다. 왜냐면 대가들이 쓴 여행기 혹은 에세이에 대해 그동안 많은 실망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비록 겸손을 떤다 할지라도 알리지 못해 안달이었고 특히 자신의 직업에 대해 너무 큰 자부심을 갖고들 있었으니까. 그런 책들은. 읽으면서 '그래요 참 대단하시네요' 싶기는 하지만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이클 크라이튼은 그들과 달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기존에 발표한 자신의 작품과 어느 한 구석도 닮은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은 알다시피 온갖 지식들이 다 등장한다. 의학, 공학 가릴것 없이 그야말로 방대한 지식의 양을 자랑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모르긴 해도 이 사람 굉장히 잘난 사람이겠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거기다 학벌이 하버드 의대라지 않는가. 게다가 영화 감독까지 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의 판매부수가 줄거나 했냐면 그런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많은 양의 소설을 내고. 낼때마다 히트치고. 그것도 모자라 영화 판권까지 다 팔렸다.) 그야말로 대단히 잘난 사람들 가운데서도 매우 잘난 사람임이 분명했다.  

이 여행기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전혀 여행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딜가니 뭐가 있더라 뭐를 해서 좋았고 여정이 어떻고 같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 물론 여행기이니 만큼 저런게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건 누군가에게 약간이라도 자랑을 하거나 뻐기는 느낌 없이. 말 그대로 자기 혼자 보려고 써 놓은 일기 같은 여행기였다. 거기다 그 솔직함이란. 그의 여행기에서 미화는 애초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적날하게 적어도 괜찮은걸까 싶어 오히려 내가 다 걱정이 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책은 총 3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 장은 하버드 의대 시절을 회고한 것이고 두번째 장, 그리고 세번째 장이 여행기이다. 그러나 시간적 순서랄지 장소 이동의 유사성에 따라 모아놓은 것은 아니다. 마치 짧은 단편을 읽는것 처럼 글은 전부 제각각이며 어디서 뭘 했는지 보다는 어디서 뭘 느끼고 뭘 생각했는지.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흔히 여행기에 등장하기 마련인 이국에 사는 외국인들에 대한 얘기가 아닌 함께 여행을 한 사람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처음 지루하거나 재미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집어들었던 것과 달리 나는 이 책을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면서 단숨에 읽어치웠다. 그를 작가라고 혹은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냥 인간 마이클 크라이튼을 만날 수 있었다.  

단점이라면 책이 두껍고 무겁다는거. 내 오랜 독서 습관인 누워서 책보기 (이렇게 하려면 누운 상태에서 팔을 앞으로 나란히 자세를 한 다음 책을 들어야 한다. 덕분에 팔뚝만 튼실해지고 있다.) 에는 조금 버거운 책이었다.  

이 재미있는 책을. 나온지가 꽤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읽게 된 것은 순전히 내 불찰이다. 그가 여행기를, 에세이를 써봐야 얼마나 재밌겠어? 소설이나 재밌겠지 라고 생각한건 내 오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 - 병원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
강주성 지음 / 프레시안북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때부터 하도 병원을 불신하는 책들을 읽어대서인지 (주로 실용서가 아닌 소설이었다만은) 그 영향은 실로 커서 나는 병원에 갈 일이 있을때마다 다음과 같은 생각에 머리가 터질것 같았다.  

1. 이들이 지금 내 병세를 정확하게 알기는 알고 있는걸까? 혹은 모른다면 파악할 가능성은? 

2. 이들이 내게 시술하는 의료행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3. 이들은 실제로는 매우 가벼운 내 병을 부러 공포스럽게 포장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4. 내가 낸 병원비는 모두 온당한 것일까?   

5. 딴건 다 치우더라도 왜 모든 병원의 의사들은 내가 어떤 병이나 증세로 가던간에 그놈의 빌어먹을 주사를 꼭 놓으려고 하는걸까?

등등등. 병원을 푹 믿고 이용했더라면 그간 나의 병원생활 (이렇게 말하니 내가 환자같다만 실제로는 보통 사람이 병원을 가는 정도로 갔다.) 이 조금은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의심을 갖고 병원을 가기 시작하면 모든걸 다 도끼눈으로 노려보게 된다. 그래도 차라리 의심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편하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 내 상태를 사실대로 알려는 시도나 노력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간 병원에 대해 품었던 의심을 이 책은 '니가 옳았어' 라고 말해준다. 무엇보다 책은 병원이 아무리 비영리법인이라 하더라도 그들 역시 이익집단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주변에 의사가 되려는 사람들을 한번 보자. 그들이 과연 인류에게 의술을 펼쳐 도움을...같은 이유로만 의사가 되었을까? 좀 냉정하게 말하자면 의사의 월 수입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모든 의사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현재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려는 사람들이 나랏일에 이 한몸 바쳐서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이유보다는 철밥통을 따내기 위함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만약에 의사들의 수입이 그렇게 많지 않다면. 그들은 그렇게 고된 과정을 통과해서 의사가 되었을지는 미지수다. 아마 상당수는 공무원이 되려고 도서관에 앉아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이 수입에 민감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남들보다 그 직업을 갖기 위해 훨씬 더 오래 공부했고. 일정양을 넘어서는 피만 봐도 토할것 같은 일반인들에 비해 그들은 사람을 째고 집고 자르고 별별 일을 다 해야 하니까. 그래서 나도 그들이 수입이 많은 것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돈 좀 벌어볼까?' 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직업에 임하면 이 책에서처럼 되어버린다. 환자에게 필요하지 않은 처치를 하게 되고. 더 나아가 다국적 제약 회사들은 절대 약값을 떨어뜨리지 않아 환자들에게 그야말로 '돈 없으면 죽을 수 밖에요' 가 되어버린다.  

책의 저자는 실제 백혈병을 앓으면서 오랜 투병 생활을 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혹은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아파 죽겠는 환자를 상대로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사실들을 목격하거나 겪게 된다. 다만 그는 이때 우리들처럼 '아놔 아픈게 죄지 죄야' 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을 모으고 조직을 결성해서 적극적으로 대항한다. 그리고 환자를 치료해주고 치료비를 받는것은 당연하지만 환자를 상대로 돈을 벌려고 환장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내가 아주 몹쓸 병에 걸렸는데 그 병 때문에 하루에 몇 십만원씩 약값이 들어가고 병원비가 들어간다면. 그것도 일정 기간이 아닌 평생을 그런 조치 없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집팔고 논팔고 차팔고 소팔고 뭐 그래서 마지막 땡전 한닢까지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걸까? 그런데 이 비싼 약값. 비싼 병원비라는 것이 꼭 그래야만 하는 중대한 이유가 있다면 그나마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받아들이겠지만 만약 누군가의 배에 기름이 끼게 하는 목적으로만 그러하다면? 나는 죽어가는 마당에 정말 환장할 일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한알의 약이 돈이겠지만 환자에게는 목숨이다. 그 약이 없으면 정말 죽을 수 있는 백혈병. 에이즈 환자에게 그들은 절대 싼 가격으로. 아니 온당한 가격으로 약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돈 없으면 그냥 죽을 수 밖에 없다.  

 책을 읽고 난 후. 안그래도 의사와 병원에 대한 무한한 신뢰 같은건 없던 내게 더욱 큰 의심만 생겼다만은 그래도 나는 모르고 속는 편 보다는 알고 속터지는 편을 택하고 싶다. 어제는 장염이 걸려서 병원에 갔는데 처방전을 약국보관용 한장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환자 보관용을 달라고 했더니 간호사가 매우 띠꺼운 표정으로 '우리 병원은 원래 한개만 주거든요?' 이랬다. 그래서 나는 책에서 배운대로 '병원비 청구료에는 이미 환자 보관용 처방전을 주라고 50원이 포함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원래 안주는거 같은건 없는거에요' 라고 말해줬다. 그러나 그녀는 순간 뇌의 기능을 정지시키기라도 했는지 '우리 병원은 원래 한장만 줘요' 만 반복하면서 매우 거친 동작으로 또한 매우 큰 인심을 쓴다는듯.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니 요구 때문에 내가 몹시도 귀찮거든? 하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면서 환자 보관용 처방전을 출력해줬다. 빌어먹을 50원은 돈이 아니던가? 환자의 50원은 우습나? 아니 그 보다 내 몸에 어떤 약이 들어가는지 알 권리를 진정 나한테는 없는걸까? 그저 많이 배워 똑똑한 의사 선생님께서 처방해준 약이니 그야말로 몸에 약이다 생각하고 꿀꺽 삼키기나 해야하는 걸까? 병원을 나서면서 이래저래 참 찝찝했다. 비단 이 병원뿐 아니라 나는 최근에는 거의 처방전 2장을 정상적으로 발급하는 병원을 보지 못했다. 의학분업 초창기때를 제외하고는 너무 드문일이 되어버렸는데 정말 다들 왜 그러는걸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09-01-08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제가 쓴 리뷰와 밑줄긋기도 함께 읽어주시길... 기대합니다.

비로그인 2009-01-0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지르겠어요!
 
넥스트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책에 대해 칭찬을 하기 전에 일단 비판부터 좀 해야겠다. 왜냐면 마이클 크라이튼이니까. 그에게 무슨 억하심정이나 안좋은 기억이라도 있냐고? 아니다. 오히려 그는 내가 중 고등학교 시절 광적으로 좋아했던 작가였다. 장담하건데 나는 쥬라기 공원을 열번도 더 읽었고 떠오르는 태양이나 코마 같은 작품은 나더러 영화를 찍으래도 씬을 빼먹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는 나의 우상이었으며 소녀적인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던 내게 딱 적당히 터프하고 근사한 작가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쥬라기 공원을 개봉했을때. 그 오래전 ET가 개봉했을때 처럼 나는 극도로 흥분했었다. 그래서 온 가족과 함께 영화관 앞에서 설레여하며 (내 손에는 유치찬란하게도 T렉스 라텍스 모형 공룡인형까지 들려 있었다.) 줄을 섰더랬다.  

그런 그였으니까 아주 오랜만에 읽은 그의 작품에 대해 내가 기대가 부풀다 못해 터지기 일보직전임은 너무 당연했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썼고, 영화를 만들었고, 재미있게 봤던 ER 시리즈 까지 만들었으니 그는 나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훌륭한 작품을 썼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허나 늘 그렇듯. 부지불식간에 찍히는 도끼보다 믿었던 도끼에 찍히는 발등이 훨씬 아픈 법. 지금 내 발등은 참으로 아프다.  

다 좋다 치자. 그러나 제발 그 수많은 등장인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무려 61명이 등장한다. 그것도 한 사람이 끝나면 또 한 사람 이런 식이 아니라 들쑥날쑥으로 등장해주신다. 처음 책을 읽을때는 '아하 이 사람이 주인공인가보군' 했었다가 조금 더 읽으면 '어. 이 사람이 아닌가벼' 해야했다. 그리고 한 50페이지를 넘겼을때 나는 알게 되었다. 이건 내가 따로 종이를 장만해서 등장인물의 이름과 최소한의 특징이라도 적어서 수시로 참고하며 읽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허나 불행하게도 책을 다 읽고 나니 제일 마지막에 등장 인물의 이름과 특징이 정리되어 있었다. 일일이 손으로 다 적었던 나는 그간의 삽질에 참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하긴 출판 기획자가 약을 드신게 아니라면 61명이나 되는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을 빠트릴리가 없지. 허나 이왕 그럴꺼라면 책을 읽기 전 앞 페이지에 그랬다면 좀 좋았을것을. 아마 모르긴 해도 나처럼 뒷장을 미리 살펴보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했던 삽질을 했으리라.  

등장인물이 61명이나 되고. 그들 개개인의 비중이 몇 명을 제외하고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 한계는 아마 등장인물이 한 10명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많은 인물이 있으려면 반드시 주인공이라 불리울 만한 핵심적인 인물이 있어야 그나마 집중이 가능하다. 아니면 적어도 61명이나 나오시려면 차례대로 등장하시던가. 

아무튼 이런 이유로 나는 넥스트에 그리 많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어떤 책이건간에 가독성이나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하는 요소가 있으면 즐독에 방해가 되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떠했는가. 

물론 충분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마이클 크라이튼답게 여러가지 전문 지식들이 들어 가 있었다. 하지만 그 예전 작품들을 볼때 처럼 무언가를 배우거나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된다는 느낌까지는 없었다. 어쩌면 그건 그동안 내가 조금쯤은 뭔가를 더 알게 된 인간으로 자랐기 때문일수도 있고 또 어쩌면 마이클 크라이튼이 너무 많은 일을 하느라 그랬을수도 있을 것이다. 황우석의 줄기세포 스캔들까지 등장하건만 책은 상상했던 것 만큼의 재미나 흥분을 주지는 못했다. (가끔 영화나 책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굉장히 기분이 묘했었는데 이 책에서는 다소 좋지 못한 사건으로 등장해서인지 별 감흥이 없었다.) 

유전자 치료. 그리고 세포에 대한 소유권. 이게 이 책의 가장 큰 두가지 테마이다. 그리고 이것이 만약 도덕적 헤이 상태에서 진행이 되면 얼마나 끔찍해지는가를 다루고 있다. 물론 책에서 예고하는 암울한 미래는 충분히 공포스럽다. 내 세포의 소유권을 기업이 가지게 된다면 과연 나는 내 몸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닥터모로의 DNA인가 뭔가 하는 영화처럼 인간과 동물의 교배종이 등장하지는 않을지. 그리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안좋은 일들을 다 유전자 탓으로 돌리게 되는 세상이 오거나, 혹은 미리부터 그걸 알아내서 그야말로 아이를 클린한 상태로 태어나도록 조작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지.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책에서 주는 그 자체로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의 전작들이 주었던 손에 땀을 쥐게하는 같은건 없었다. 내가 공포스러웠던 것은 내 스스로 생각을 해서였지 결코 책의 문장들이 준 공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영 없지는 않다. 만약 그랬으면 내가 다 읽지도 않았겠지만. 다만 기대가 큰 만큼 아쉬움도 컸던 작품이라고 할까? 만의하나 마이클 크라이튼의 작품을 단 한개도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넥스트를 첫 작품으로 고르지는 말았으면 하는 정도.  

P.S.) 그나저나 마이클 크라이튼은 작년 11월에 6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어릴때의 내 우상이 조용히 진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떠들썩하게 졌겠지만) 나이를 먹는다는게 이런건가. 내 우상들이 하나둘씩 노인이 되고 또 죽음을 맞는것. 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솔직히 말해서 나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쓰여진 글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면 뻔하니까. 거기에는 말도 안되는 희생을 하는 엄마와. 그리고 그 희생을 자양분 삼아 살았으면서도 그걸 전혀 미안해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는 자식과 남편. 생각해보면 이런 글들이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희생적인 '엄마' 가 되길 당연하게 강요하는가에 대해 치를 떨곤 했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모순이 존재한다. 그 세상 여자들 속에 내 엄마는 없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여자들에게는 엄마로서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 부당하다 말 하면서도 내 엄마에게는 엄마니까 라는 룰을 적용시킨 것이다. 왜냐면 엄마니까. 이 한마디에 엄마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되고 뻔뻔스럽게도 그 희생의 최대 수요자는 바로 내가 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엄마처럼 내 엄마는 살지 않았다. 엄마는 시골에서 살지도 않으며 치매에 걸리지도 않았고. 더구나 나이가 그렇게 많은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외할머니라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엄마' 못지 않게 고생을 하셨으니까.

외할머니는 6.25때 남편. 즉 나의 외할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뱃속에는 아빠의 얼굴도 보지 못한 딸이 있었고 (우리 엄마다) 위로는 두 딸이. 그리고 모셔야 할 시 어른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의 나이는 내 나이쯤 되었을까?

몇 해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자주 할머니의 기억이 오락가락 한다며 걱정했다. 그래도 나는 설마 치매 같은건 아닐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자주 찾아가지 않았더랬다. 아니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라고 해야 옳겠다. 어린시절에는 그곳에서 그렇게나 많은 날들을 보냈건만. 크고 나니 나는 어느새 내 살 걱정에 할머니는 까맣게 잊고 살았었다.

소설속의 엄마는 어느날 자식들의 집으로 가는도중 남편의 손을 놓치고. 그 간발의 차이 때문에 그만 영영 집을 잃어버린다. 소설은 엄마가 사라지고 부터 시작되고. 엄마의 사라짐을 둔 각자의 시점으로 쓰여져있다. 큰딸. 큰아들. 남편.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엄마가 자신의 비밀과 함께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들을 한다.

정말이지 이건 너무 신파스럽다 싶을 정도로. 소설에서 그려지는 엄마는 온통 희생만 한다. 이래도 참고 저래도 참고. 이러고도 미치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참아낸다. 그렇게 너무 참아버린 때문일까? 그래서 엄마는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두통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억을 그리고 자신을 서서히 잃어간다. 하지만 이 소설을 그래도 붙잡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엄마가 우리들의 엄마, 혹은 할머니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울었었다. 소설 속의 엄마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내 할머니와, 엄마와 그리고 엄마로 살아가는 나와. 또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살아갈 내 딸 때문에 울었다. 이 무슨 모진 운명인가 싶어서 울고. 소설처럼 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많게건 적게건 잃어갈 여자들이 가여워서 울었다.

한 가지 사건을 놓고 자신의 입장에서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식의 이야기 구조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므로 이 소설도 그런 재미가 상당부분 있었다. 하지만 '재미' 라는 표현을 쓰기조차 이 소설은 마음이 불편하다. 단지 재밌어서 잘 읽혀요 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미안하고 어딘가 마음이 아프다.

이제 더 이상은 이렇게까지 사는 엄마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내 착각인지 모른다. 아직도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혹은 더하게 살아가는 엄마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더이상 가족을 위해 희생되지 않길 바라면서도. 그들이 아니면 또 우리들이 어떻게 세상의 풍파를 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어미 된 자는. 그 위치 만으로도 짠해지나보다.

아마 소설을 읽고나면 다들 그때 만큼은 좀 더 엄마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 중 몇몇은 수화기를 드는 실천 정도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을때까지 아마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음성의 주인공에게 받은 사랑의 절반도 하기 힘들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12-16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