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크라이튼의 여행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신현승 옮김 / 터치아트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사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여행기를 읽을 계획 같은건 애초에 없었었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게 되었는데 이건 뭐랄까. 엎어졌는데 일어나려고 보니 돈 만원이 떨어져 있는 기분이랄까? 이걸 읽어야 할때는 괴로웠다. 왜냐면 대가들이 쓴 여행기 혹은 에세이에 대해 그동안 많은 실망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비록 겸손을 떤다 할지라도 알리지 못해 안달이었고 특히 자신의 직업에 대해 너무 큰 자부심을 갖고들 있었으니까. 그런 책들은. 읽으면서 '그래요 참 대단하시네요' 싶기는 하지만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이클 크라이튼은 그들과 달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기존에 발표한 자신의 작품과 어느 한 구석도 닮은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은 알다시피 온갖 지식들이 다 등장한다. 의학, 공학 가릴것 없이 그야말로 방대한 지식의 양을 자랑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모르긴 해도 이 사람 굉장히 잘난 사람이겠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거기다 학벌이 하버드 의대라지 않는가. 게다가 영화 감독까지 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의 판매부수가 줄거나 했냐면 그런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많은 양의 소설을 내고. 낼때마다 히트치고. 그것도 모자라 영화 판권까지 다 팔렸다.) 그야말로 대단히 잘난 사람들 가운데서도 매우 잘난 사람임이 분명했다.  

이 여행기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전혀 여행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딜가니 뭐가 있더라 뭐를 해서 좋았고 여정이 어떻고 같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 물론 여행기이니 만큼 저런게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건 누군가에게 약간이라도 자랑을 하거나 뻐기는 느낌 없이. 말 그대로 자기 혼자 보려고 써 놓은 일기 같은 여행기였다. 거기다 그 솔직함이란. 그의 여행기에서 미화는 애초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적날하게 적어도 괜찮은걸까 싶어 오히려 내가 다 걱정이 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책은 총 3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 장은 하버드 의대 시절을 회고한 것이고 두번째 장, 그리고 세번째 장이 여행기이다. 그러나 시간적 순서랄지 장소 이동의 유사성에 따라 모아놓은 것은 아니다. 마치 짧은 단편을 읽는것 처럼 글은 전부 제각각이며 어디서 뭘 했는지 보다는 어디서 뭘 느끼고 뭘 생각했는지.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흔히 여행기에 등장하기 마련인 이국에 사는 외국인들에 대한 얘기가 아닌 함께 여행을 한 사람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처음 지루하거나 재미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집어들었던 것과 달리 나는 이 책을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면서 단숨에 읽어치웠다. 그를 작가라고 혹은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냥 인간 마이클 크라이튼을 만날 수 있었다.  

단점이라면 책이 두껍고 무겁다는거. 내 오랜 독서 습관인 누워서 책보기 (이렇게 하려면 누운 상태에서 팔을 앞으로 나란히 자세를 한 다음 책을 들어야 한다. 덕분에 팔뚝만 튼실해지고 있다.) 에는 조금 버거운 책이었다.  

이 재미있는 책을. 나온지가 꽤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읽게 된 것은 순전히 내 불찰이다. 그가 여행기를, 에세이를 써봐야 얼마나 재밌겠어? 소설이나 재밌겠지 라고 생각한건 내 오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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