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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이 그랬었다. 그 영화를 보기 이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쁜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모니카 벨루치가 정말이지 그녀의 영화들 가운데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연기를 보여주었었지만 나는 그 영화를 보기 이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로드는 광고 문구를 빌리자면 감히 성서에 비견되는 작품이며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작품이라고 한다. 그만큼 책은 재미와 작품성 면에서 양쪽 다 별 다섯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작품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별 하나를 덜어낸것은 내 마음 때문이었다. 읽고 나서 얼마나 불편했던지. 그리고 읽으면서 내내 얼마나 울었었던지. 물론 내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때라면 그런 이유로 별 다섯에 추가 다섯! 이렇게 호기롭게 외쳤겠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나이가 들면서 소심해져 버렸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만큼은 아니지만 불편한 허구 혹은 상상의 세계는 그만 모르고 살고 싶어져버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훌륭하다. 읽는동안 끊임없이 감정적으로 힘들게 하고 또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은 그 옛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을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옆에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딸을 보면서. 그러지 않으려고 애써도 자꾸만 나는 소설속의 남자와 소년의 이야기가. 나와 내 딸의 이야기가 된다면? 하는 괴로운 상상을 멈출수가 없었다.
사실 암울한 미래에 몇 남지 않은 생존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책 만큼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다 못해 소금과 과산화수소를 들이붓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그래 저건 허구야' 혹은 '저렇게까지야 되겠어? 영화니 (혹은 책이니) 그렇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허구고 사실이고간에, 그리고 허구가 사실로 둔갑할 가능성이 몇 퍼센트이건 간에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것은 아마도 이 책이 사랑을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점점 말라가는 모습. 그리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모습,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며 죽을 정도의 추위를 견디며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그 어린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모르긴 해도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질만큼 아플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는 갈 곳이 없으며 더 나아질 희망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놀랍도록 담담하게 던진다. 하지만 그 담담이 독자들에게는 더욱 견딜 수 없는 심적 고통을 느끼게 한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임산부나 어린이 혹은 노약자에게 금해야 하는건 아닌지 하고 생각해본다. 그만큼 읽고나면 너무 마음이 아프며 그 마음을 다칠 확률이 높다. 서른 넷이나 먹었고 세상 풍파를 겪을만큼 겪었다고 생각하는 나도 이렇게나 다쳤으니까.
사전 지식없이. 그저 재밌겠네?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을 진심으로 후회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밤을 샌 다음 여행을 떠난것도 후회한다. 결국 여행은 내 마음이 그래서 그런지 공포로 점철되었고. 지금의 나는 그 여행과 함께 책의 내용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서 고통스러우니까.
하지만 굉장히 훌륭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그 많은 독자들이 선택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베스트셀러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접해보면 '아 이래서 그렇구나' 하고 수긍을 하게 된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이렇게 된다면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을 자신이 있을까? 내 스스로 나와 내 아이를 포기해버리지 않을 만큼 모질 수 있을까? 마음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