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책에 대해 칭찬을 하기 전에 일단 비판부터 좀 해야겠다. 왜냐면 마이클 크라이튼이니까. 그에게 무슨 억하심정이나 안좋은 기억이라도 있냐고? 아니다. 오히려 그는 내가 중 고등학교 시절 광적으로 좋아했던 작가였다. 장담하건데 나는 쥬라기 공원을 열번도 더 읽었고 떠오르는 태양이나 코마 같은 작품은 나더러 영화를 찍으래도 씬을 빼먹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는 나의 우상이었으며 소녀적인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던 내게 딱 적당히 터프하고 근사한 작가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쥬라기 공원을 개봉했을때. 그 오래전 ET가 개봉했을때 처럼 나는 극도로 흥분했었다. 그래서 온 가족과 함께 영화관 앞에서 설레여하며 (내 손에는 유치찬란하게도 T렉스 라텍스 모형 공룡인형까지 들려 있었다.) 줄을 섰더랬다.  

그런 그였으니까 아주 오랜만에 읽은 그의 작품에 대해 내가 기대가 부풀다 못해 터지기 일보직전임은 너무 당연했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썼고, 영화를 만들었고, 재미있게 봤던 ER 시리즈 까지 만들었으니 그는 나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훌륭한 작품을 썼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허나 늘 그렇듯. 부지불식간에 찍히는 도끼보다 믿었던 도끼에 찍히는 발등이 훨씬 아픈 법. 지금 내 발등은 참으로 아프다.  

다 좋다 치자. 그러나 제발 그 수많은 등장인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무려 61명이 등장한다. 그것도 한 사람이 끝나면 또 한 사람 이런 식이 아니라 들쑥날쑥으로 등장해주신다. 처음 책을 읽을때는 '아하 이 사람이 주인공인가보군' 했었다가 조금 더 읽으면 '어. 이 사람이 아닌가벼' 해야했다. 그리고 한 50페이지를 넘겼을때 나는 알게 되었다. 이건 내가 따로 종이를 장만해서 등장인물의 이름과 최소한의 특징이라도 적어서 수시로 참고하며 읽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허나 불행하게도 책을 다 읽고 나니 제일 마지막에 등장 인물의 이름과 특징이 정리되어 있었다. 일일이 손으로 다 적었던 나는 그간의 삽질에 참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하긴 출판 기획자가 약을 드신게 아니라면 61명이나 되는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을 빠트릴리가 없지. 허나 이왕 그럴꺼라면 책을 읽기 전 앞 페이지에 그랬다면 좀 좋았을것을. 아마 모르긴 해도 나처럼 뒷장을 미리 살펴보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했던 삽질을 했으리라.  

등장인물이 61명이나 되고. 그들 개개인의 비중이 몇 명을 제외하고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 한계는 아마 등장인물이 한 10명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많은 인물이 있으려면 반드시 주인공이라 불리울 만한 핵심적인 인물이 있어야 그나마 집중이 가능하다. 아니면 적어도 61명이나 나오시려면 차례대로 등장하시던가. 

아무튼 이런 이유로 나는 넥스트에 그리 많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어떤 책이건간에 가독성이나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하는 요소가 있으면 즐독에 방해가 되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떠했는가. 

물론 충분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마이클 크라이튼답게 여러가지 전문 지식들이 들어 가 있었다. 하지만 그 예전 작품들을 볼때 처럼 무언가를 배우거나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된다는 느낌까지는 없었다. 어쩌면 그건 그동안 내가 조금쯤은 뭔가를 더 알게 된 인간으로 자랐기 때문일수도 있고 또 어쩌면 마이클 크라이튼이 너무 많은 일을 하느라 그랬을수도 있을 것이다. 황우석의 줄기세포 스캔들까지 등장하건만 책은 상상했던 것 만큼의 재미나 흥분을 주지는 못했다. (가끔 영화나 책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굉장히 기분이 묘했었는데 이 책에서는 다소 좋지 못한 사건으로 등장해서인지 별 감흥이 없었다.) 

유전자 치료. 그리고 세포에 대한 소유권. 이게 이 책의 가장 큰 두가지 테마이다. 그리고 이것이 만약 도덕적 헤이 상태에서 진행이 되면 얼마나 끔찍해지는가를 다루고 있다. 물론 책에서 예고하는 암울한 미래는 충분히 공포스럽다. 내 세포의 소유권을 기업이 가지게 된다면 과연 나는 내 몸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닥터모로의 DNA인가 뭔가 하는 영화처럼 인간과 동물의 교배종이 등장하지는 않을지. 그리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안좋은 일들을 다 유전자 탓으로 돌리게 되는 세상이 오거나, 혹은 미리부터 그걸 알아내서 그야말로 아이를 클린한 상태로 태어나도록 조작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지.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책에서 주는 그 자체로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의 전작들이 주었던 손에 땀을 쥐게하는 같은건 없었다. 내가 공포스러웠던 것은 내 스스로 생각을 해서였지 결코 책의 문장들이 준 공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영 없지는 않다. 만약 그랬으면 내가 다 읽지도 않았겠지만. 다만 기대가 큰 만큼 아쉬움도 컸던 작품이라고 할까? 만의하나 마이클 크라이튼의 작품을 단 한개도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넥스트를 첫 작품으로 고르지는 말았으면 하는 정도.  

P.S.) 그나저나 마이클 크라이튼은 작년 11월에 6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어릴때의 내 우상이 조용히 진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떠들썩하게 졌겠지만) 나이를 먹는다는게 이런건가. 내 우상들이 하나둘씩 노인이 되고 또 죽음을 맞는것.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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