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남기고 싶은 시간
김한요 지음 / 두란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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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 남기고 싶은 시간 / 김한요 지음 / 두란노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그 시간에 수 많은 일들이 지니갑니다. 그중에 내 생각과 감정을 만져 주는 교훈들이 있습니다. 그 순간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냥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기록을 하면 별것 아닌 일들이 주님을 만나는 값진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김한요 목사의 <일기에 남기고 싶은 시간>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다름아닌 책소개에 실린 프롤로그의 저 문단 때문이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된다는 말, 다시 말해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는 말은 평소에 내가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이유 중 하나며, 기도 혹은 묵상 후 기록하지 않았을 때 자책하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실로 기도나 묵상 혹은 책이나 영화등을 감상한 후 단순히 감동을 뛰어넘어 삶의 교훈이나 누군가의 '계시'라고 까지 여겨지는 순간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금새 잊히고 만다. 예전에 읽었던 책 중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자신이 사랑받았던 기억을 기록에 남기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홀로 남겨진 것 같을 때, 너무나 외로울 때 그때의 그 좋은 기억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렇기에 위의 저 발췌문은 이 책을, 그리고 그동안 내가 받았던 은혜와 감사한 일들을 기록해야 할 이유와 의지를 되살려주는 책이라고 느꼈고 실제 책을 읽어보니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최근에 전쟁, 내전에 관한 책들을 많이 접했다. 그것이 픽션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살아숨쉬는 것 자체,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는 과정이 오롯이 내 자유의지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게 만들어준 책들이었다. 안타깝게도 독자인 내게는 그런 감사함이 들지만 정작 그 고통과 괴로운 현장에서 버텨내야 했던 인물들은 '희망'도 '신'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고통이 과연 신이 주는 선물인가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일기에 남기고 싶은 시간>속 저자는 고통을 나에게만 한정짓지 말고 그런 순간 덕분에 이웃을 돌아보는 기회로 바라볼 때 비로소 고통을 감사하게 여길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뜻을 결코 오해해서는 안되는데 앞서 나의 독후감상처럼 저자들이 책을 통해 남겨준 '고통'이 지금의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하루하루가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다. 어느 누구도 그토록 참혹한 상황에서 나중에 살아남아 이 내용을 글로 쓰면 이 책을 읽게되는 누군가가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겠지 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나고나서야, 어찌되었든 살아남은 후에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해준다.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신이 내게 준 시련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부분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심리치료사들은 자신에게 상처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사과를 받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괴로워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자신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죄의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후자의 경우는 어떨지 몰라도 전자의 경우 이미 사과받을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 없거나 그럴 환경이 도저히 불가능할 때 그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기 어렵다. 이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방법이라면 신의 방법은 다르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상처준 이가 아닌 다른 이를 통해, 혹은 다른 상황을 통해 치유받을 수 있는 신비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그의 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마귀가 성도를 유혹하는 방법을 그의 조카에게 전수하는 31통의 편지에 풍자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성도들을 정신없이 바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정말 해야 할 중요한 일, 예배, 기도, 패밀리 타임, 독서 등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요즘 많이 바쁩니까? 정신없이 바쁘다고요? 혹시 마귀의 전략에 말려든 것은 아닌지요? 134쪽


비단 예배나 기도를 못하게 한다는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의미를 떠나더라도 가족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때에도 우리는 이것이 마귀의 전략은 아닌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공부를 해야해서 등의 이유로 현재의 내 가족에게 소홀히 하는 것,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을 뒤로 미루는 것, 그것이 진짜 미래의 나를 위한 일일까? 게다가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나'를 꼼짝못하게 묶어두는 것이 진정행복한 일일지도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이 책은 지금껏 읽어왔던 책들에 비해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누구에게라도 해당되는 중요한 조언들이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당장의 상황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일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차분하게 생각해보는 것, 나 혼자만이 아닌 이웃을 돌아보는 것, 내게 주어진 감사하고 행복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헤아려보는 등의 일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차분하게 일기에 남겨보는 것 등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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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 - 박서보의 삶과 예술
박승숙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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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의 삶과 예술,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 / 박승숙 지음 / 인물과사상사


단색화로 잘 알려진 화가 박서보. 지난 달 전시를 보러가기 전까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분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화선지를 여러겹 붙인 후 고랑을 만들고 선을 만들어내는 작가. 박서보의 삶의 예술을 담은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따님께서 쓰신 책이다. 그것도 아버지의 예술을 떠나 그 삶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딸이 말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인 부분도, 딸이었기에 가능했을 사적인 부분도 잘 담아내지 않았나 싶다. 책의 구성은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물흐르듯 진행된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비롯, 박서보란 이름을 갖기까지 어떤 험난한 세월을 보냈는지도 나와있는데 특히 전쟁에 참전하여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때의 내용을 읽고 있노라면 이 책이 어느 화가의 이야기인가, 전쟁소설인가 싶을만큼 생생하며 고통스런 당시 상황이 제대로 전해져왔다.

그림을 그린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저항인 것이다. 우리는 작품에서 어떤 의상을 걸치고 나왔나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는가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나타나는 결과보다도 그런 결과를 초래케 한 도정을 살피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술이 지니는 생명은 '테크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있다는 말이 되는가 보다. -85쪽, 전시평 중에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실제 화가가 그림을 시작한 이후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적은 많지 않다. 심지어 전재산을 털어 겨우 얻어낸 프랑스행 티켓이 무용지물이 될 뻔한 시절의 이야기, 물감살돈이 없어서 다른 학우들이 쓰다남은 것을 모아 사용했던 이야기, 그마저도 좀 더 저렴한 물감을 만들기 위해 직접 제조해서 작품을 완성시키는 시기의 글을 읽고 있자니 화방에 갈 때마다 큰 돈이 나간다고 불평하면서도 단 한 번도 직접 만들어보겠다거나, 아까운 물감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붓질에 신중을 기하지 않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민망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기존 화단에 팽배해있던 관료적인 태도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화가의 삶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홍익대에 진학 해 국전에 작품을 출전하는 등 가만(?)히만 있어도 탄탄대로 였을 미래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제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이유로 주목을 받은 부분도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취업을 하지 못하는 등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작품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종이 위에 무언가를 그리면 그것은 종이 위에 이미지를 얹어놓는 것에 불과하오. 그러면 나무나 유리나 돌 위에 그리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지 않소? 그러지 말고 우리 종이의 특질을 드러내는 조형 쪽으로 초점을 맞추도록 합시다. 288쪽

작가의 작품세계를 좀 더 이야기하자면 오롯이 단색으로만 그림을 그렸던 것도 아니고, 화가가 주로 사용하고 애정하는 검정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차가움, 시니컬'등의 느낌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화가의 검정은 한지가 충분히 흡수한 따뜻한 검정에 가깝다. 또한 그가 붙인 색의 이름이 벚꽃색이라든가, 홍시색이라든가 하는 자연친화적인 표현마저 아름답다. 심지어 '공기색'이라 붙인 색은 두말할 것도 없이 마치 미술치유사와 같은 면모를 느끼게 만들었다. 그런 화가에게 질병과 나이듦은 시련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라는 책의 타이틀처럼 그에게는 권태도, 포기도 없다. 가족들에 눈에는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분명 '노동자'임에 틀림 없다. 작품 중에 사고가 나도 그는 다시금 붓을 들기위해 일어서는 그의 행보가 당장 이 책을 집필한 자녀에게도 또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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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로웅 웅 지음, 이승숙 외 옮김 / 평화를품은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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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 로웅 웅 지음, 이승숙, 장미란 역 / 평화를품은책

다섯 살의 어린 로웅 웅의 시선으로 보는 <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은 1975년 공산주의 혁명 단체인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장악하기 며칠 전, 부모님과 시장에서 국수를 사먹는 장면에서 부터 시작된다. 호기심이 많은 로웅의 시선에는 모든 것이 질문의 대상이 되고, 그런 아이의 퍼붓는듯한 질문에 엄마는 혼을 내기도 하지만 다정한 아버지는 그녀의 잠재력을 높이 사며 그녀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을 해준다. 아버지의 품은 그토록 따뜻했고, 때론 밉기도 한 엄마이지만 누가봐도 맵시나고 예쁜 엄마 덕분에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는 자신의 환경이 만족스럽기만 한 로웅이었다. 그렇게 평화롭기만한 일상이 크메르루주에 의해 완전히 부서져버린다. 이전 정권에서 전문직, 공무원등으로 나라에 기여도가 높은 사람들을 모두 '제거대상'으로 판명, 프롬펜 중심가에서 시골외딴 지역으로 모두 이주 시킨다. 그 기간이 대략 3년전동인데 이 시기에 로웅의 부모, 자매들 뿐 아니라 친척들을 포함 20여명이 희생된다. 캄보디아 전체적으로 계산하면 무려 700만명 중 200만명이 이 기간에 '킬링필드'에서 학살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소설형식을 취하지만 저자 로웅의 기억과 가족들의 증언으로 쓰인 '논픽션'이기도 하다. 피란 초반에는 다섯 살인 로웅의 어리기만 한 태도에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전쟁과 분노가 한 아이를 혹은 한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고백했을 때였다.


"아름다운 것들을 싹 다 부숴버리고 싶어."

"그런 말 하지마. 정령들이 들어."

초우 언니가 내게 주의를 준다. 나는 언니 말에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게 바로 전쟁이 우리에게 행한 짓이다. 그 때문에 지금 나는 파괴를 원한다. 내 안의 증오와 분노는 어마어마하다. 앙카르가 깊이 증오하라고 가르쳐서 지금 내가 파괴력과 살상력을 갖게 된 것이다. -182쪽-

아버지가 군인들에 의해 끌려가는 데도, 언니가 아무런 보호나 치료행위가 이뤄지지 않는 말뿐인 병원에서 죽어가는 데도 어린 로웅은, 이미 성인이 된 어른들조차 제대로된 저항도 해보질 못한다. 남은 가족들은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내내 자꾸만 이 사건이 발생한 1975년이란 글자를 상기시킨다. 50년도 지나지 않았던 때에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학살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싶다가도 멀리 볼 것없다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쓰려왔다. 책의 후기에 저자는 어린 아이의 눈으로, 현재진행형으로 집필한 이유를 말한다. 어리다고 기억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쉽게 잊히는 것도 아니라고. 또한 과거시제로 쓰여지면 저자에게도 그 상처가 '지나간'일이 되어 덜 괴로울 수는 있어도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한 괴리감이 생길 수 밖에 없기에 현재시제로 썼다고 말이다. 분명 저자는 그 시절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아 이렇게 해당 사건을 생생하게 알릴 수 있는 주요한 몫을 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는 동안 나는 세상에 어떤 목소리를 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혹은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 때 피하지 않고 그 괴로움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있는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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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삶의 서재 - 인간의 부서진 마음에 전하는 위안
캐서린 루이스 지음, 홍승훈 옮김 / 젤리판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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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삶의 서재 / 캐서린 루이스 / 젤리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는 해도 마흔이 되고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음먹은대로 살아진다는 말을 들을수록 더더욱 내 삶이 내 맘같지 않음을 깨닫는다고나 할까. 자기계발서, 심리치유서를 가장 많이 읽었던 때가 26살, 독립 후 첫 퇴사를 했을 때였다. 졸업하기 전에 직장이 생겨서, 그것도 전공도 아닌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들떠 독립은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두고 나니 붙잡을 건 '책'밖에 없었다. 도서관이 집근처였기에 문여는 시간에 들어가 문닫는 시간까지 읽다가 그마저도 부족해 대출까지해서 그당시 스테디셀러였던 책들은 다 읽었던 것 같다. 만약 그때 영어공부나 다른 전문공부를 그렇게 했더라면 식의 후회는 지금도 물론 하지 않는다. 그러다 취업을 하고 또 열심히 밥벌이를 하다보니 책을 멀리했다. 그러다 만 서른.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또 열심히 책에 빠지게 되고 결국 내가 도구로서 책이 아니라 그냥 책 자체를 좋아하는구나를 깨닫고 그 이후에는 운이 좋았는지 책과 관련된 일을 계속해왔다. 주로 인문학이나 여행서적 문학을 읽다가 올해 앞자리가 바뀌고는 결국 다시 찾게되는 자기계발서와 심리치유서. 그리고 이 번에는 책제목부터 너무나 취향인 <내일 삶의 서재>다. 게대가 저자가 심리학과 유전자학 전문가다. 이보다 더 맞춤형 책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했던 말 또 써있고, 읽었던 문장 거의 토씨 하나 다르지 않는데도 왜 이 책이 좋으냐면 다른 마흔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처럼 읽고나면 아무리 필사를 하고 기록을 남겨도 금새 잊는 사람들에게는 반복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전에 읽었던 좋았던 내용들만 마치 추려놓은 듯한 이 책이 어찌맘에 들지 않을까. 심지어 부제도 '인간의 부서진 마음에 전하는 위안'이다. 부서져있던 마음을 잘 붙이거나 아예 다듬어두어야 앞으로의 쉰, 예순...백살까지 잘 견디지 않을까.


우리는 현재의 나약함을 벗고 삶을 이겨내 진정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만일 모르겠다면 이제 지난 자신을 한 번쯤 되돌아보길 바란다. 그러면 분명 내일은 당신에게 행복의 빛이 갇그한 날로 찾아올 것이다. 37쪽

나를 모르고, 과거를 무시하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과거를 붙잡는 것과 과거를 극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를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타인을 부러워하는 것이 무지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개성과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무지때문에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부러움이 무지로 인한 것이란 말에 오히려 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을 제대로 받아들자면 내가 내 스스로의 가치와 개성을 인정하는 순간 타인이 내 안에 침투해서 나를 괴롭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렇게 자신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나의 가치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자기가 갖지 못한 인내와 노력만을 탓하며 저자를 부러워만 하는 감상은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아니라 '자기파괴서'를 읽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을 대 그것을 원동력으로 삼아 스스로를 채찍질해 앞으로 나아갔는지, 아니면 괴로워하고 하늘을 원망하는 것으로 그쳤는지 궁금했다. 인생이란 펼쳐져 있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가파른 비탈길 산봉우리를 넘는 것과 같다. -중략- 남들보다 조금 출발선에서 뒤처져있으면 어떠한가?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것은 그저 당신이 남들보다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91-92


지난 내 이력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안타까움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책을 좋아하는 것인지 그냥 어쩌다보니 책을 자주 읽게 된것인지조차도 몰라 서른이 되어서야 관련 공부를 시작하고 취업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취업이나 진로관련 글을 읽다보면 대학3학년생인데도 전공을 변경하거나 대학을 다시가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아 괴롭다는 글들이 올라온다. 답글을 읽다보면 30대가 안된 20대 후반인 사람들이 아직 젊다는 말로 글쓴이를 위로해준다. 아마 서른이 넘은 나이게 내가 그런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하던 일이나 계속 잘하는 것이 좋다고 말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발레나 올림픽 출전이 달린 운동선수처럼 적정시기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이전에 읽었던 <다크호스>가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직 오지 않은 새로운 환경과 역할 속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아무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서 내일의 나는 지금과 또 완전히 달라 질 수 있다. 122쪽


마흔이 되어 자기계발서를 다시 찾아읽기 시작했다는 말을 서두에서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고민이 많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내일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계발서'와 '심리치유서'를 다시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일 삶의 서재>는 자신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멈춰서있는것도 자신의 결정이라면 흔들림없이 굳게 믿고 불안해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개인적으로 '내일'이라는 것이 반드시 오늘과 '다르다'라는 의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의 불만이나 불안을 내일까지 연장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더이상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자학하거나 나락에 빠질필요는 없다. 위로받을 건 받고, 나아갈 수 있는 응원을 충분히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여, <내일 삶의 서재>를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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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니 버지니아 울프 전집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1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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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니 /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역/ 솔


'교육받은 남성의 딸'. 이 책의 역자는 이 책을 이처럼 표현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시대에는 여성의 권리가 지금과는 달랐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지지가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을 <3기니>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3기니란 무엇인가. 기니는 화폐단위로 당시 사회를 기준 여성에게 1기니는 대단히 큰 돈이라고 한다. 그렇게 적지 않은 돈 3기니를 도대체 울프는 어떻게 사용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 책의 중심내용은 변호사가 울프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을 하는 형식으로 자신이 보내는 돈을 각각 어떻게 사용해주길 바라는지에 대해 적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상황에서 변호사는 울프에게 이와 관련한 지원을 요청한 것이고 울프는 이에 대해 1기니씩 각각 어떻게 쓰여지길 원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우선 울프는 전쟁에 대해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밝히면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다름아닌 '남성'이라는 것을 이야기 한다. 남성이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는 전쟁의 승리가 자신들을 명예롭게 만들어줄 것이며 이러한 폭력적 행동들 또한 '남성이 남성다움'을 표현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쟁과 관련된 모든 처사가 여성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진행된다는 데 있다. 흥미로운 것은 두 번째 기니 기부에 관한 내용이었다.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 또 직업을 가진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대우에 관한 부분으로 과연 이것이 과거의 일인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인지 헷갈릴 수준으로 변화없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 여기에 또 다른 오해가 있다고 당신이 끼어들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일심동체일 뿐만 아니라 또한 지갑도 하나라고 말입니다. 아내의 봉급은 남편 소득의 절반이라고. 남자는 바로 그 이유로 여성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이라고 - 왜냐하면 그는 부양 할 아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혼 남성은 미혼 여성과 같은 등급의 봉급을 받습니까? 95쪽


대학을 다니던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여성학 혹은 여성운동과 관련된 참여 혹은 교육과 멀어질 수 없는 것이 지금의 '교육받은 여성'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폭력적인 상황을 원치않기 때문에 지나치게 선을 긋고 권리가 아닌 역차별을 주장하는 몇몇 운동가 혹은 단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위와 같은 내용들을 <3기니>를 통해 읽을 때는 과연 지금의 나의 태도가 진정으로 평화적인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핵심은 여성에게 주어지는 교육의 확대와 전문직 여성들의 제대로된 보장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1기니는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울프가 내놓았을지 궁금할 것이다. 소설을 제외하고는 <자기만의 방>이후 에세이는 <3기니>가 두 번째인데 개인적으로는 자기만의 방보다 훨씬 더 여성의 교육과 입장을 이해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읽기 수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해당출판사에서 펴낸 버지니아 울프 전집 12번째 책 <3기니>. 지금 내게 주어진 돈을 비롯한 귀중한 능력과 가치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를 고민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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