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립감. 그렇습니다. 베이비케어 사용자의 대다수는...... 외로우셨어요. 단순히 외롭다는 말로는 부족하군요. 아기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아기는 특히 사용자가 아기를 처음 돌보는 경우라면 더더욱, 철두철미하고 완전한 주의 집중을 요구합니다. -중략- 아기와 나만 존재하며, 내가 아기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 책임져야 하는 독방의 시간이 닥치죠. 많은 인원이 그 시간을 나눠 감당해주면 수고를 덜겠지만, 아시다시피 그건 아직도 이상에 불과하고요. -본문 중에서



아이를 낳고 6개월 동안, 내 수면 시간은 2시간 30분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졸기도 했지만 ‘잤다‘라고 말할 만한 시간을 더하면 그정도였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다 결국 아이와 함께 엉엉 울기도 했다. 외로 ‘우셨다‘, 라고 생각한다. 우셨다. 울었다 랄까. 이경 작가의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소설집에 수록된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젖병소독기에 장착된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얼굴을 한 AI의 등장이 놀랍다기 보다는 AI가 등장하는 시대가 와도 결국 아이를 돌보는 일은 변함이 없으리란 사실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 생과사라는 생각이 든다. AI돌보미를 장착한 회사의 입장이 바로 서두에 발췌한 내용에 담겨 있다. 단순히 육아의 편의를 위한 ‘기계‘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고립된 육아전담인들을 위한 가장 필요한 인공지능을 개발한 것이다. 실 사용자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외형까지 알아서 생성되다보니 미주에게 나타난 AI돌보미의 얼굴이 ‘타잔‘,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였던 것이다. 정작 최애는 따로 있다는데 어떤 이유로 알렉산더의 얼굴이 된 것인지 며칠 동안 미주와 미주의 남편 그리고 알렉산더는 함께 추리해본다. 평소에 천사를 떠올렸을 때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보편적인 천사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명 취향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등등.



사람에겐 자신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힘이 없다.
내가 찾은 답은 이거야. 사람에겐 알고리즘의 신비를 파해칠 힘이 없다. -본문 중에서



며칠 전 읽었던 원빈스님의 <같은 하루 다른 행복>의 서평을 적으면서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행복한 지를 모르는 것 같다‘라고 적었다. 마치 그런 나의 모습을 나를 위한 AI가 알고리즘으로 이 책을 만나게 해준건가 싶을 정도다. 소설의 배경도 그렇고 이정도 수준이면 조만간 우리집 거실 소파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나 물마시러 나온 내게 말을 걸어도 크게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