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멍 속의 유령 암실문고
데리언 니 그리파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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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언 니 그리파의 <목구멍 속의 유령>은 저자가 아일랜드의 고전 시인 <아트 올리어리를 위한 애가>의 아일린 더브의 삶을 쫓는 과정을 담은 책이자, 네 명의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엄마’의 삶을 이야기한 책이다. 제목으로 쓴 ‘누가 누구의 삶의 출몰하고 있는가?(본문 237쪽) 역시 책의 구절을 그대로 옮겨왔는데 아일린이 저자의 삶의 출몰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과정속에서 오히려 저자가 아일린의 삶의 혹은 동시대를 살았거나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여전히 남성으로부터 혹은 시대로부터 삭제되어진 여성들이 서로의 삶의 출몰한 것처럼 느껴져 망설임없이 제목으로 정했다. 왜냐면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여성의 텍스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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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일린 더브가 이 고통을 혼자 겪게 두지 않을 것이고, 당신 또한 그럴 것이다. 걸어 들어가 그와 함께 서자. 우리는 이 순간에 이성이 끼어들게 놔둘 수 없다. 우리의 움직임을 막을 생각은 하지 마라.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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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연인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아트를 잃은 아일린을 사랑하게 된 이후 저자는 이 불편을 당연하게 감내한다. 숨을 거둔 남편 곁으로 단 세걸음에 뛰어갔을 때 두 사람 주변에는 늙은 노파뿐이었다. 이 노파는 나이든 아일린의 현현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그 노파의 모습이 우리 중 누구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전혀 모르는 타인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상처받았던 소중한 이를 떠올리게 하면서 그때 하지 못했던 위로를 건네며 동시에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 아일린 더브를 쫓는 과정도 이토록 절절하게 다가오지만 저자에게 더 큰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그녀가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어느 날은 애인으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한 여성을 위로하기 위해 남편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녀에게 달려가 위로한다. 그 순간 저자는 이전의 노파처럼 그녀에게 ‘괜찮아질거에요‘라는 거짓아닌 진실을 이야기하며 오래 전 해부학 실습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고 삶을 포기하려 했던 순간의 자신을 잡아준 실재하지 않은 존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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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빠졌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늘었고, 머리는 지저분해진 데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나는 이 노동이 어떻게든 가치 있는 것으로 증명되리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만 어떤 식으로 증명될 수 있을지 아직 확신할 수 없을 뿐이었다.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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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두번 다시 만날 일 없는 여성을 돕는 자신을 보며 여성이 여성에게 흔적으로 남는 텍스트를 통해 혹은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통해 실존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상처입은 여성을 안아주며 위로하는 저자의 체험을 보며 나또한 길을 잃었을 때 나의 손을 잡아준 여성을 떠올리며 공감하고 저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자신이 머무는 공간과 사물에 대한 시선이었다. 새로운 집에 딸린 정원을 바라보며 ‘온전히 내것’이라는 생각 대신에 오래전 처음 그 정원을 가꾸었을 여성을 생각한다. 그가 심어놓은 구근, 그가 바라보았을 찬란한 빛의 율동성을 떠올리며 자신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그 집을 거쳐간 여성들의 노고가 쌓이고 쌓여 자신이 그 사랑스러운 정원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일린 더브를 알고,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떠나고 싶지 않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몬다. 집에가면 기운이 날 만한 일을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숨겨둔 새 공책을 펴는 게 좋을 것 같다.

-중략-

나는 내가 노트의 첫 페이지에 쓸 문장을 이미 알고 있음을 깨닫는다. 시작을 담당할 메아리,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다. 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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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게 책을 읽는데 들인 시간은 4시간 10분이지만 손에 쥐고, 육아를 하느라 읽지 못해 안타깝고 아쉬워한 날들은 그 보다 훨씬 길다. 저자처럼 어린 아이를 육아하는 여성들의 책읽기란 별별 방법을 다 시도하게 만든다. 그 방법은 하나같이 불편하고 도대체 그렇게까지 읽어야 할 이유가 납득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다. 왜냐면 그 모든 시련과 기쁨이 전부 ‘여성의 텍스트’가 되었고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후기를 읽은 누구라도 동참할 수 있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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