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
최강희 지음 / 북노마드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럴 수도 있잖아요.

누구는 잘 울고,
누구는 잘 웃고,
누구는 착하고,
누구는 초록색을 좋아하고,

하지만 잘 우는 그 아이가 울기만 하는 건 아니고,
핑크를 싫어하는 그 사람이 어느 날 핑크색 손톱을 칠할 수도 있어요.

외로움이나 우울함도 마찬가지예요.
외로움에, 또 우울함에 헐떡여도

늘 우울했던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p.2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스포일러 있음!

 

<달팽이 식당>에 이어 오가와 이토의 책을 연달아 읽었다. 그것도 같은날. 확실히 둘다 가벼운 내용이라 쉽게 읽힌다.

 

1. 할머니의 빙수

양로원에 입원한 뒤로 할머니는 거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기 전 후지산 모양이라며 좋아했던 빙수를 먹고 싶어한다는 걸 눈치챈 마유는 제법 먼 거리를 자전거로 힘차게 달려가 빙수를 사갖고 돌아온다. 조금 녹긴 했지만, 빙수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마유와 마유의 엄마. 빙수가 나오지만, 읽을 수록 참 따뜻해지는 이야기였다.

 

2. 아버지의 삼겹살 덮밥

한 커플이 식당에 들어간다. 남자쪽의 오랜 단골집. 굉장한 미식가인 남자의 아버지의 단골집이다. 외관은 초라하지만, 맛은 일품인 집. 그곳에서 남자가 시킨 요리를 여자는 맛있다며, 싹싹 비우고, 남자는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아버지의 유언이야. 아내를 선택할 때는 이 가게의 맛을 아는 사람을 선택하라고 했거든."

(p.43~44)

수줍고, 예쁜 커플의 이야기.

 

3. 안녕, 송이버섯

올해 40살 생일은 앞둔 고토는, 십년이나 사귄 남자친구 야마모토와 헤어지기로 한 상태다. 야마모토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 그러나 헤어지기로 하기 전, 송이버섯 요리를 잘하는 소박한 온천여관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었던 계획을 취소하지 못해서, 마지막으로 생일맞이 여행을 함께 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 길을 가면서 이야기가 끝나지만, 왠지 마지막 장면이 맘에 남아, 어쩌면 둘은 다시 만났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4. 코짱의 된장국

어린 나이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 엄마는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딸에게 밥하는 법과, 된장국 끓이는 법을 무섭게 가르치고 세상을 떠난다. 세월이 흘러, 딸은 시집을 가게 되고, 시집가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아빠와의 식사를 준비하며, 엄마가 알려준 된장국을 끓인다. 엄마의 공백은 슬프지만, 아빠와 딸의 담담하면서 따뜻한 대화가 공기를 슬프지만은 않게 메워주었다.

 

5. 그리운 하트콜로릿

처음 읽으면서 조금은 예상했었다.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고.

나는 기념일을 맞아 남편과 함께 패밀리레스토랑에 가서 이런 저런 음식을 시킨다. 그러나 종업원의 반응이 영 마뜩찮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영 신경쓰인다. 나이들면, 부부끼리 이런 곳도 못 오나. 잔뜩 불만이지만 꾹 참고 남편만 신경쓰는 나. 그런데 그 순간 나타난 왠 여자. 나를 자꾸 어머님이라고 부르며, 소리지르다 결국엔 울고 만다.

 

6. 폴크의 만찬

나는 아직도 잘 이해가 안된다.

 

7. 때 아닌 계절의 기리탄포

아빠가 죽고 난뒤, 49제때 엄마와 딸이 생전에 아빠가 좋아했던 요리를 함께 준비하는 이야기.

처음, 기리탄포에서 걸레맛이 난다고 딸이 느낄때는, 엄마가 슬픔으로 미각을 상실했나 싶어 심장이 덜컥거렸는데, 이상한 차를 간장으로 착각하고 잘못 넣어서란 사실에 어찌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우리 엄마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간을 잘 못 맞추시는데, 언젠가 엄마가 간을 아예 못 보게 되면 나는 너무 슬플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스포일러 있음!

 

재고조사 기간이 막 끝난 도서실은 신나게도 제법 인기있는 도서들이 서가에 그대로 꽂혀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빌리기 쉽지 않을 도서들이 꽂혀 있는 도서실을 신나서 휙휙 거닐다가, 이 책과 만났다. 출간된지 조금 시간이 지나서인지 아니면 재고조사 덕을 본 것인지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덕분에.

 

다음날 출근길에 가방에 이 책을 챙겼다. 요새는 책 읽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데, 이 책은 출근하고 퇴근 하는 전철안에서 다 읽어버렸다. 그만큼 가독율이 좋고, 읽으면서 장면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화도 나와있다고 하니, 보고 싶어졌다. 엘메스가 죽는 장면은 차마 못 볼 것 같아 겁이 나긴 하지만.)

 

스물다섯살, 링고는 어느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가 깜짝 놀라고 만다. 집이 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텅-. 오랜시간 함께 살던 남자친구와 함께 집안의 모든 가구며, 물건들이 뿅 하고 사라져 버린것. 몹쓸사람. 아니 갈 거면 돈이나 갖고 갈 것이지, 왜 가구며 옷이며 그런 물건을 죄다 갖고 가 버린 건지. 내가 링고라면 정말 막막했을 거다. 링고에게 남은건 딱 하나. 외할머니가 물려주신 겨된장절임 항아리 뿐이었다. 링고는 할 수 없이, 그 길로 10여년 만에 고향집으로 향한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오히려 링고는 고향집에 돌아간 덕분에 엄마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고, 꿈에 그리던 자신의 가게, 달팽이 식당을 오픈하게 되었지만)

나는 조금은 링고가 부러웠다. 고향집이 있다는 것이. 물론, 아직도 집에서 통근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기쁜 일이지만, 가끔은 시골에 본가가 있는 친구들이 부럽다.

 

그 곳에서 링고는 매달 일정한 생활비를 내고, 엄마의 애완 돼지 엘메스를 돌보는 조건으로 엄마와 함께 살게 된다. 그리고 시골에 취직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직접 가게를 오픈하게 된다. 이름하여 달팽이 식당! 하루에 한 테이블만 받는 식당이 과연 돈을 벌 수있을까 싶지만,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던 듯하다. 예약제로 운영되며, 정해진 메뉴도 없이 예약한 손님과 미리 메일이나 팩스로 인터뷰를 해서, 한 명(혹은 한 팀)의 손님만을 위해 준비한 메뉴를 선보이는 달팽이 식당은, 그후 사람들을 음식으로 울리고 웃기며 식사를 하는 동안만은 손님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게 된다.

 

작가가 음식만들기를 좋아한다고 하더니만, 모든 음식에 대한 설명이 어쩌면 그리도 자세한지, 읽으면서 생전 먹어본 적도 없는, 그래서 감히 맛을 상상할 수도 없는 요리들에 배가 고프고 입에 침이 고여서 혼났다.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함께 온 여고생, 처음 맞선을 보게 된 커플, 남편이 죽은 뒤 내내 상복만 입고 생활하는 할머니, 거식증 걸린 고양이를 데려온 소녀, 양로원에 가게 될 치매걸린 할아버지와 마지막 식사를 하러 온 가족 등

 

저마다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링고와 엄마, 할머니의 이야기.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은 아니지만, 가볍게 읽으면서 미소짓기에 좋은 책이다. 다만, 엘메스가 죽는 장면은 너무 묘사가 자세하여 읽기가 좀 버겁긴 했다.

 

+사족

오래전 학교앞에서 미술치료를 공부한다는 대학원생에게 붙들려 친구와 그림을 한장씩 그린 적이 있다. 눈을 감고 선을 그은 뒤, 눈을 뜨고, 그 선이 뭘로 보이는 지 말하는 거였다. 나는 내 그림이 닭 같아 보여서, 그렇게 말했고 그러자 이번엔 그걸로 이야기를 지어 보라고 했다. 나는 내 친구 닭인데, 어느날 잡아먹게 되어서 작별인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술술 말했고, 그러자 그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아마도 이야기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한 듯 했다.) 나에게 미술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정말로 잔인한 본성을 갖고 있나? 닭고기를 이제 먹지 말아야 하나? 내심 심각하게 고민했었던 것 같다. 물론 잠깐. 그 후로는 곧 잊어버리고, 여태 닭고기를 아주 잘 먹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 속에서 엘메스의 마지막을 보면서, 어쩌면 나도 미술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그저 상상력이 조금 풍부한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위안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울 플레이스 - 내 영혼이 머무는 자리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3
한창훈 외 지음, 양진아 그림 / 청어람미디어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해마다 가을이면 나의 시간은 자라섬에 멈춰있다. 올해까지 여섯번의 가을을 자라섬에서 보냈고, 매해 조금씩 더 행복했다. 아마 내년에도 후년에도, 특별한 큰일이 생기지 않는한 나는 아마 자라섬에 있을 것이다. 나를 항상 기다려주는 시간과 장소가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한해를 살아갈 힘을 얻게 되니까.

 

2012년 가을, 자라섬에 함께 했던 친구가 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나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말해서 꼭 그러마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집근처 도서관에서 내가 빌려본 같은 제목의 책은, 제목만 같은 책이었다. 저자도 출판사도 전혀 다른 책. 도서관에는 이 책은 없었던 것이다. 그 후로 읽어야지, 읽어야지 벼르다가 무려 2년이 훌쩍 지난 올 가을의 끝자락 드디어 이 책을 손에 넣었다.

 

2년 전 가을 친구가 책 읽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었는데, 똑같은 페이지를 읽으면서 나도 지금 이 페이지 읽고 있어 라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2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는 같은 책을 읽으며 같은 시간, 같은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다.

 

소울플레이스. 부제처럼 이 책은 "내 영혼이 머무는 자리"에 대한 짧막한 글들의 모음집이다. 이충걸, 손미나, 백영옥 처럼 기존에 알던 작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는 잘 모르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다들 책을 몇 권씩이나 낸 사람들이라 나의 무지함에 다시금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책을 덮고 내가 제일 먼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장소는, 그 어떤 소울플레이스도 아닌, 김성종 작가가 부산 달맞이 고개에 세웠다는 '추리문학관'이었다. 워낙 겁이 많아 추리소설은 잘 안 읽는 편이지만 그곳만은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가서 바닷가가 바라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생각해보려 한다. 나의 소울플레이스는 과연 어디인가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제주 가서 살까요
김현지 지음 / 달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립 도서관의 희망도서신청 서비스를 좋아한다. 훗날 도서관에서 그 책을 스쳐지나갈때, "이 책은 내가 신청해서 여기 꽂힌거야" 라거나 "이 책, 제일 먼저 내 손을 거쳐갔지"라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며 왠지 기뻐하는 걸 좋아한다.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그래서 가끔 새책을 검색해서, 도서관에 부지런히 신청을 한다. 그럼에도 가끔 "이 책은 이미 다른 사용자가 신청하였습니다"라는 구매불가 통지 메일을 받고, '이런 부지런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안타까워 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다행히도 나보다 부지런한 이가 없어서 내가 제일 먼저 빌려보게 되었다.

 

처음에 제일 인상깊었던 건, 정말이지 단촐한 저자 소개. 언제부터인가 저자소개가 굉장히 길어져 버렸다. 나는 저자 소개를 꼼꼼히 읽는 편이라 그도 나쁘지는 않았다. 아, 이 책을 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조금은 알 수 있게 되니까. (물론, 그 몇 줄의 소개로 저자에 대해 어찌 감히 다 알 수 있겠냐만.)

 

이 책의 저자 소개에서 내가 얻은 정보는 나이와 이름 뿐. 그리고 전작에 대한 소개뿐. 과연 뭐하는 사람인지. 본문을 읽으면서 '직장인'이고 '30대 중후반' 정도, 아직 미혼이겠구나 짐작했을 뿐.

 

그런데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기분이다. 이 책을 통해 그녀가 반스 운동화를 좋아하고(나도 운동화를 좋아하는데!), 올림푸스 카메라를 사용하며(나도 어쩌다 보니 십년넘게 올림푸스만 쓰고 있는데), 페퍼톤스와 생각의여름 음악을 즐겨 들으며(생각의여름은 이번에 처음 들어보았다), 제주도에 훌쩍 떠나길 좋아하고, 혼자하는 여행을 즐기며, 맥주를 좋아한다는 소소한 정보를 알게 되었으니까.

 

책에서 음악에 대한 소개가 나올때마다 나는 신나라하며, 그 음악을 부지런히 다운받아 들어보았다. 100% 다 내 귀에도 좋았던 건 아니지만, 지금 내 아이폰 속 음악의 대부분은 그녀가 제주에서 들었던 음악들이다. 같은 음악을 들으며 그녀와 함께 나도 제주도를 걷고 또 걸었다. 내가 가보았던 장소는 그 때 그 순간의 나의 느낌이 떠올라 더욱 공감하며 읽었고, 아직 못 가본 장소는 열심히 마음에 새겨두었다. 다음에 꼭 가봐야지, 하면서

 

이 책을 읽고 나니 제주도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를 읽었을 때보다 더 가보고 싶은 장소가 많아졌고, 훌쩍 제주로 떠나고 싶어졌다.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건 몹시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인생에서 제일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p.44

나는 내가 늙은 뒤 이 순간의 나를 얼마나 부러워할지 생각하며 벌써부터 질투로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p.2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