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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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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는 은퇴한 노인이 연애소설에 빠져 무료한 시간을 떼우며 살아가다가, 실제로 연애소설 속 이야기처럼 달달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웬걸, 이 책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배경은 무려 밀림. 그 중에서도 오지중의 오지다. 도서실은커녕, 슈퍼 하나 찾아보기 힘든 마을. 그곳에 사는 한 노인이,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그 후, 글이라면 빠짐없이 읽어대는(!) 재미에 빠지는데, 우연히 연애소설을 접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한자, 한자 정성스레 읽으면서 내용을 음미하는 그를 보면서, 책을 쓴 작가가 무척 기쁘겠구나 싶었고, 한편으로는 속독을 잘하는 스스로의 태도를 조금 반성하기도 했다. 정말 글을 쓰는 사람은 한자, 한자 정성들여 적었을 텐데, 읽는 우리는 너무 쉽게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밀림에 사는 노인이 힘겹게 연애소설을 구해서 아주 열심히 읽었다, 로 끝나는 내용이면 좋겠으나 이 책은 전혀 뜻밖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횡포와 그에 맞선 동물들의 반격. 그리고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인간을 위협하는 성난 동물들과 대적하게 된 노인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동물원을 무척 좋아하는데, 동물원은 과연 누구를 위한 공간일까 싶어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가죽가방을 들 때마다 가죽의 원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 책의 감상으로 적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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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순간 (양장)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미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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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코엘료는 47년생 아저씨다. 우리 엄마가 57년생이니 엄마보다도 열살이나 더 많이 잡수신 셈인데, 컴퓨터를 잘하고 무려 트위터를 즐겨한다고 한다. 이 책은 그가 트위터에 남겼던 글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트위터에 남겼던 글인 만큼 길이가 매우 짧아서 책 한권으로 엮기엔 부족했을 터. 아쉬움은 황중환 씨의 멋진 그림이 채워준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아래 두 구절

 

매일같이 햇볕만 쨍쨍하게 내리쬔다면

멀쩡한 들판도 사막이 됩니다.

 

그래. 나는 항상 내 인생에 왜이리 비가 많이 오고, 심지어 태풍이 불고, 폭설이 내리나 불만이었다. 하지만 만약 매일매일 햇볕만 쨍쨍 내리쬔다면 결국 말년에는 사막만 봐야 되겠지. 꽃도 보고 풀도 보고 강도 보고 바다도 보려면 태풍이 불고 폭설이 내리는 것도 참을 줄 알아야겠다.

 

어느 날 아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린 이제 늙었나 봐."

그래서 제가 대답했죠.

 

"다행이지 뭐야. 난 젊어서 죽을 생각은 없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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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 빈의 동네 책방 이야기
페트라 하르틀리프 지음, 류동수 옮김 / 솔빛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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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마의 한달이었다. 정말 진상 손님들이 한주에 한명 이상 나타났다. 그들은 나를 들었나 놨다 했고, 나는 그때마다 화장실에 가서 양동이 한가득 눈물을 쏟아냈다. 속으로는 사표를 열두번도 더 던지는 상상을 했다. 내가 왜 무엇때문에 여기서 이런 모독을 들으면서 일을 해야 하는건가 나의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지는 한달이었다. 아마 추석연휴가 없었다면 나는 이미 백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겨우 9월을 견디고 10월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아, 이 작가도 이렇게 힘들구나. 이 서점에도 이렇게 진상 손님들이 많구나. 나만 이렇게 힘든게 아니구나 싶어서 읽으면서 굉장히 많이 공감했고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서점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장님이 있고 이런 동료들이 있다면, 정말이지 이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라고.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주에는 어쨌든 매출이 500권에서 700권 사이였다. 내 말은, 60평방미터 크기의 서점에 사람이 700명이 왔으며, 그 700명 중에서 690명이 재미있고 상냥하고 다정했으며, 나머지 10명은 퇴근한 뒤 맥주 한 잔 하면서 좀 씹고 험담도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님에 대해 험담한다는 게 부당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p.218)

 

ㅋㅋ 나도 손님들 험담하는 것에 대해 마음에 부담이 있었는데, 정말 이제는 마음껏 해주겠다. 그렇게 뒤에서 흉이라도 보지 않으면 정말 내가 견딜 수가 없으니깐.

 

유난히 상냥한 여자 손님도 있었다. 그분은 우리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주문하고는 그 책이 너무 좋았다며 사흘 뒤 내게 빌려주기도 했다. 또 멋진 요리책을 사 간 부부는 그 다음 주에 우리를 식사에 초대하기도 했다. 이런 모든 일 덕분에 우리는 기운을 내고 날마다 문을 열고 책을 권한다. 그리고 그 덕에 우리는 몇몇 무뚝뚝하고 진절머리 나는 콧대 높은 손님들을 견디는 것이다. 인사하지 않는 사람, 우리 선물 포장지보고 "정말 흉하다"고 하는 사람, 4년 전에 나온 함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책이 서점에 없어서 주문하려면 하루가 걸린다는 소리를 듣고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인사도 없이 들어와 다짜고짜 "그런 데 그거 있어요?" 하는 손님들. 그들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자기가 사흘 전에 주문한 책이 와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외우고 있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1년에 책을 2권 이상 사지도 않으면서도 할인이 가능한지를 묻는 사람들이다. 또 내가 권하는 책이 다른 직원들이 권한 책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담당 분야에 대해서는 직원들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특진 환자"라고 부른다.

(p.225)

 

나도, 어쩌다 친절한 분이 간식거리를 나눠준다든지, 상냥하게 인사 한마디만 건네도 엄청 큰 위로를 받는다. 역시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또 다른 사람이 풀어준다. 신기하게도.

 

(서점 직원에게) 비밀누설 금지 의무가 도입되어야 할 것도 같다. 책을 고르는 성향을 보면 인간의 됨됨이가 다 드러나는데 그게 온갖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서는 안 될 일이니 말이다. (p.232)

 

 

 

책을 다 읽고 나자, 오래전 사라진 동네 책방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한참을 요리조리 망설이는 나에게 서점 주인 아저씨는 "어떤 책을 찾아요?"라고 물었었고, 내가 "선물하려고요. 그런데 친구 취향을 잘 모르겠어요" 라고 답하자 내게 친구에 대해 요리조리 묻더니 금새 책 한권을 권해주셨었다. 결국 그때 그 책을 친구에게 선물했었는데, (나도 인터넷서점을 주로 이용하니 할말은 없지만) 이제 그런 일은 다시 겪기 힘들겠지. 아쉽다. 그때 그 서점의 공기가 참 따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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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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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비겁한 겁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조금은 이해가 간다.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지……. 하지만 그래도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온니 렐로넨은 막 죽기로 결심을 한 참이다. 집에서 죽기는 마음이 좀 걸려서 그는 집에서 약간 떨어진 헛간으로 향한다. 권총자살을 할 참이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하니 군복을 입은 웬 대령이 주섬주섬 뭔가를 하고 있다. 이런, 그는 목을 매어 죽으려던 참이다. 온니 렐로넨은 그를 구해주고, 그렇듯 조금은 이상한 타이밍에 만난 둘은 곧 막역한 친구가 된다.

 

 

사소한 우연이 성인 두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 자살하려는 시도가 실패하는 경우에, 무조건 슬퍼해야 할 일만은 아니다. 누구나 모든 일에서 성공을 거둘 수는 없는 법이다.(p.19)

 

 

성 요한절에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같은 운명을 짊어진 동지와 함께 수영을 하는 경우에, 세상은 정말로 아주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런 세상을 굳이 서둘러 떠날 필요가 있겠는가?(p.25)

 

 

  죽는 계획은 잠시 유보하고 함께 휴가를 즐기던 두 사람은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로 하고, 신문에 광고를 낸다. 반신반의 하는 맘이었으나 뜻밖에도 다 읽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양의 편지가 둘에게 배달된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의기투합하여 함께 세계의 북쪽 끝(노르웨이)으로 가서 집단자살을 하기로 마음을 모은다. 이때만 해도 어느 누구도, 이 여행이 유럽 전역을 종횡무진 누비는 기나긴 여정이 될 줄 몰랐을 것이다.

 

  나 역시 만약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면 가장 하고픈 일은 '여행'이다. 삶이 고단해서 확 죽어버릴까, 라는 생각이 들 때면 죽는 대신, 비행기표를 예매하여 어디든 떠나볼 일이다. 죽을 결심으로 못 갈 곳이 어디겠으며, 여행을 하다 보면 더 살아야만 할, 수만 가지 이유를 만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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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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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했던 책은, 이 표지가 아니었다.  
어떤 담장에 남자아이가 고개를 살포시 내밀고 뭔가를 훔쳐보고 있는 뒷모습이 그려진, 내 기억이 맞다면 붉은빛의 표지였다. 지금의 파란색 표지와는 완전 다른. 아니지, 뒷모습이란 것만은 똑같군. 

대학교에서 도서관 근로를 했던 나는 신간도서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등록번호를 붙이거나, 책장에 꽂는 등의 활동으로 책을 만져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관심이 가는 책은 찜해두었다가 냉큼 빌려서 읽어보곤 했었는데, 이 책도 왠지 처음부터 마음이 가서 꼭 읽어보아야지, 하고 결심했던 책중 하나였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계속 다른 책에 밀리다가 결국에는 2005년에 나온 책을 무려 5년이나 지난 2010년에야 겨우 읽어보게 되었다. 

50% 할인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금이 아니면 정말이지 영영 못 읽지, 싶어서 냉큼 주문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푹 빠져서 읽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더이상 출퇴근길에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지 않게 된 지금(지금은 주로 출퇴근 길에 라디오를 듣는다.)내겐 독서란 것이 '취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무지무지 아쉽게도! 

 솔직히 표지를 보고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는 아주아주 거리가 멀었다. 따뜻한 성장소설일 거란 기대는 왠걸. 한 소년이 어려서부터 자라서 성인이 되기까지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분명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이 소설 안에는 그보다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참상. 어릴때 가정교육이 왜 중요한지.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사랑이 왜 필요한지. 절실한지. 등등. 

조금은 뜬금없을지 몰라도 난 이 책을 읽고, 난 나중에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어린아이들은 정작 자신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소한 일을 마음에 간직한 채 평생 죄인처럼, 자기 자신을 책망하면서 살아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진정한 용기란 친구가 더 힘센 친구한테 맞고 있을 때 용감하게 친구 대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가운데에도 깊은 숲속에서 혼자 꿋꿋히 꽃을 피우는 것이라는 말.  

이 책의 주인공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넌 결코 겁쟁이나 배신자가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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