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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 지음, 박재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평점 :
이와이 순지 감독의 <러브레터>란 영화를 참 좋아한다. 처음 개봉했을 때는 물론, 재개봉 할 때마다 극장에 찾아가서 부지런히 보았다. 그런데 <러브레터>란 영화를 만들었을 때, 감독의 나이가 고작 30대 초반이었다는 사실을 최근 알고 좌절했다. 나는 그 시절 무엇을 했나, 싶어서.
이제는 50대 중반이 된 감독이 지난해 오랜만에 신작을 들고 찾아왔다. <립반윙클의 신부>.
내가 본 영화는 3시간짜리 본편이 아닌, 2시간으로 편집된 작품. 영화에서 아쉬웠던 점을 해소하고자 책을 펼쳤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주인공 미나미의 저 대사였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제 어디로 가야 될까요?"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SNS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마주보고 앉은 상대방과도 (심할 경우) 핸드폰으로 대화를 나누고, 더 심한 경우, 마주보고 앉아서도 (핸드폰으로) 각기 다른 이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낯선 이와 SNS를 통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이를 계기로 오프라인상에서 만나 진짜 인연을 맺기도 한다. 요새는 남·녀간의 만남을 소개하는 어플도 속속 등장하여, 어플로 만나 연인이 되고, 결혼까지 이르기도 한다.
(스포일러 있음)
주인공 미나미에겐 친구가 없다. 기댈 가족도 없다. 부모님은 어린 시절 이혼한 뒤, 지금은 각자 재혼하였고, 그래서 미나미는 명절에도 돌아갈 집이 없다. 도쿄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하였지만, 학교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인력사무소를 통해 시간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근래 도급업체가 너무 많이 생겼다. 마치 물건을 파는 것처럼 중간상인 도급상들만 배불러지는 이상한 분위기)
그러던 어느 날 SNS를 통해 알게 된 남자에게 청혼을 받은 미나미는 조금은 두려운 맘으로 그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결혼하기로 결심한 그에 대해 완벽한 신뢰를 갖지 못한다. 믿지 못하겠으면 아예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결혼을 결심했으면 그를 믿었어야 하거늘, 이도 저도 아니었던 것이다.
결혼 후 청소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여자 귀걸이 때문에 그의 외도를 의심하게 된 미나미. 이때라도 직접 그에게 물었어야 한다. "이 귀걸이가 뭔지 아냐고, 오늘 방바닥에서 나왔는데, 내 것은 아니고 여자귀걸이라고. 이것 때문에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든다고. 나의 오해를 풀어달라고." 만약 그때 그렇게 말했더라면 모든 일이 시작되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미나미는 남편을 믿지 못하였으므로, SNS를 통해 만난 정체불명 남자에게 남편의 뒷조사를 의뢰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의 비극이 시작된다.
그 남자는 미나미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남편이 아닌 미나미가 외도한 것처럼 조작하여, 이 정보를 역으로 남편에게 팔아넘기고 이 때문에 미나미는 이혼을 당하게 된다.
졸지에 갈 곳 잃은 처지가 된 미나미는 다시 SNS를 통해 알게 된 그 사기꾼에게 전화하여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고.
그 후로 벌어지는 미나미 삶의 비극. 매 순간 안타까웠지만, 점점 그녀는 되돌릴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우리 주변에도 아마 미나미가 살고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친구일텐데. 이땅의 미나미들이 SNS에서 벗어나서 진짜 친구를 만날 수 있기를.
+책에서, 영화에서 자세히 다룬 부분이 차이가 있어서 책에서 든 의문점은 영화가, 영화에서 든 의문점은 책이 해결해주었다. 이 작품의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책과 영화를 모두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