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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평점 :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란 책을 읽고, 너무 좋았어서 작가가 문을 연 <생선캠프>라는 카페에도 찾아갔었다. 그곳도 참 좋았어서, 몇 년 뒤 다시 가봐야지 했었는데 이제는 문을 닫았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문 닫기 전에 한 번 더 가볼걸'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가봐서 다행이다'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감사했다.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라도, 가령 누군가 나를 모욕적으로 대했다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내가 느끼는 느낌과 나의 대처는 온전히 그 당시 나의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 누구나 그런 건 아니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가 마음이 온전히 서 있을 때에는 누가 뭐라 하든, 웃어넘길 수 있으나, 내 마음이 100% 온전히 채워져 있지 않을 때에는 굉장히 상처받고, 상대방을 원망하고 비난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큰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이고, 다툼을 피하는 성격인데 이런 나도 소리치고 화내고 그러는 순간이 있다. 그런 나의 모습이 낯설어 또 내가 놀라고.
그럴 때마다 가장 힘든 건, 내 자신이 못나고 초라해 보인다는 점이다. 고작 이만한 일도 웃어넘기지 못하는 구나, 싶어서.
지금보다 조금 더 가벼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점점 더 세상을 쉽게 여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그냥 별것 없어’하고 간단히 넘겨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지워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사라질 것”이라며 손바닥 위의 먼지처럼 툭툭 날려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안에서 솟아나는 욕망도 그냥 뚫고 지나갈 만큼 얇고 가벼운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인간 정말 싫어!”하고 실컷 욕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대수롭지 않게 느낄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제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마치 농담처럼 느껴지면 좋겠습니다.
흥분될 만큼 기쁜 일이 찾아와도, 내일이면 쉽게 사라져버릴 농담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삶에 찾아오는 슬픈 소식도 소소한 노래처럼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올이 생긴 그물처럼, 저를 스쳐가는 하나하나를 모두 다 느낄 수는 있어도, 어느 것도 붙잡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머니가 하나도 달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그 어느 것도 담아둘 수 없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저란 사람이 점점 더 작아지고, 점점 더 가벼워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죽어야만 할 때, 아주 작은 불로도 제 모든 것을 태워 날려버릴 수 있도록 제 마음에 남겨진 것이 아주 적었으면 좋겠습니다.
(p.57~58)
가장 큰 용기는 항상 가장 큰 두려움에서 나온다. 불안해하고 두려움에 질려 있다고 해서, 용기 없는 사람은 아니다. (p.81)
분명 이 세상은 불안정하고 그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불안하다. 역사적인 큰 사건이든 아주 사소한 사건이든 어떤 계기를 통해 우리는 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괜찮을 거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단지 우리는 너무 연약할 뿐이다. 이 세계에서, 그리고 우리 인생에서(p.95)
그런 나에게 이 책이 큰 위로가 되었다. 남의 아픔을 통해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하고 위안을 받는 건, 조금 많이 이기적이고 못됐지만, 그래도 작가의 이야기를 가만가만 들으며, ‘아, 이 사람도 이렇게 아팠구나. 그리고 여전이 이렇게 아프구나.’ 생각했다. 내가 지금 많이 아픈 건, 이사람 같은 이들의 마음에 공감해주라고 그러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실제로 내가 살면서 겪은 (굳이 겪지 않아도 좋았을 법한 안 좋은 기억들도) 모든 일들이 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도움이 되었다.(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도 만약 만약에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책을 읽고, 또 읽는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할 때는 오히려 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떠올릴 때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마음일까?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고 자신의 시각에 맞추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자기 마음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죠. 내 생각과 감정이 끼어들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래저래 사람은 자기 마음도 다른 사람 마음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없는 바보 같은 존재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p.190)
이래저래 아픈 사람을 이해하려면, 저도 조금 더 아파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다채롭게, 마음 아픈 경험들이 더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요. (p.213)
너무 아픈 사람은 정작 아프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건 어쩌면 덜 아파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만 혼자만 아픈 건 아니라는 것을요. 모두가 같은 감정과 고통을 느끼며 이런 식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힘들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사실 그 말에는 좀더 밝고 건강한 삶에 대한 애착이 묻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p.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