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선언] 서문 밑줄

돌봄의 위기는 지난 40년 동안 특히 심각해졌는데, 이는 많은 나라가 수익 창출을 삶의 핵심 원리로 보편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원칙을 받아들이면서다. 이는 곧 금융자본의 이익과 흐름을 조직적으로 우선시하는 반면 복지국가와 민주적 절차와 제도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가 보아왔듯이 이런 종류의 시장 논리는 현재 팬데믹 통제역량을 현저히 줄어들게 한 긴축정책으로 이어졌다. 많은 병원이 의료 종사자들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개인용 보호장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방치된 것이다.
그러나 돌봄과 돌봄 노동의 폄훼에는 더 오랜 역사가 있다. 돌봄은 대체로 여성, 여성적 또 ‘비생산적‘ 이라고 여겨지는 돌보는 직업과 연관되어 오랫동안 평가절하되어왔다. 그래서 돌봄 노동은 변함없이 저임금과 낮은 사회적 지위에 묶여 있었다. 고도의 훈련을 거친 엘리트 계층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지배적인 신자유주의 모델은 단순히 더 오래된 평가절하의 역사를 이용해 불평등을 변형하고 재구성하고 또 심화했을 뿐이다. 어찌 됐든, 신자유주의 주체의 원형은 타인과의 관계를 경쟁과 자기 향상의 틀 안에서만 추구하는 기업가적 개인이다. 그리고 사회조직의 지배적인모델은 협력보다는 경쟁에 기반을 둔 형태로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신자유주의는 돌봄의 효과적인 실천을 수행할 수 없고 돌봄에 관한 개념도 없다. 이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
팬데믹은 우리 대부분이 제대로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고 또 받지도 못하는 결과를 낳은 신자유주의 시장에 의해 자행된 폭력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우리는 오랫동안 낯선 사람들이나 우리와 거리가 먼 사람들은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도록 부추김을 받으면서,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역량마저 위축되었다. 놀랍지 않은 일이지만, 우익과 권위주의 정부의 포퓰리즘이 유혹적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무관심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들과 견디기 어려운 집단적 불안을 내포함을 감안하면, 쉽게 부추겨졌던 것이다. 방어적 이기심은 이런시기에 번성한다. 안전과 안락에 대한 감각이라는 것이 매우 예민해지면, 다른 사람은커녕 자신을 돌보는 것도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돌봄 성향을 ‘우리와 같은사람들‘을 향하도록 재설정하고 재조정하는 전체주의, 민족주의, 권위주의 논리에 돌봄이 가려졌고 또 계속 가려지고 있다. 다름을 배려하고, 또는 더욱 확장된 형태의 돌봄을 개발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들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잘 알려진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무관심이 구조적 수준의 ‘평범함banality‘에 젖어들고 있다. 익사한 수많은 난민이나 거리에 점점 많아지는 노숙인들에 대한 뉴스를 듣는 것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돌보지 않는‘ 행위 대부분은 무의식중에 일어난다. 우리 대부분은 필요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고통받는 타인들을 보는 것을 즐긴다거나 가학적 파괴적 충동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으로 한계 지어진 돌봄 역량과 실천, 그리고 돌봄에 대한 상상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가 돌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선언문에서 우리는 돌봄을 전면에 내세우고 중심에 놓는 정치가 시급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우리가 말하는 돌봄은 ‘직접‘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 즉 다른 사람에게 육체적·심리적 도움을 직접 제공하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차원의 돌봄도 중요하고 긴급하지만 말이다. (15-16%)

‘돌봄‘은 사회적 역량이자, 복지와 번영하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사회적 활동이다. 무엇보다도 돌봄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우리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을 인지하고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선언문에서 ‘돌봄‘이라는 단어를 가족 간의 돌봄, 돌봄 시설이나 병원에서 돌봄 종사자들이 수행하는 직접적인 돌봄, 교사들이 학교에서 수행하는 돌봄, 그리고 다른 필수 노동자들이 제공하는 일상적인 서비스로서의 돌봄을 모두 포함하는 확장된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또 돌봄은 사물도서관Library of things, 협동조합 형태의 대안경제나 연대경제, 주거 비용을 낮추는 정책들, 화석 연료의 감축과 녹지 공간 확대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들이 제공하는 돌봄도 포함한다. 돌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개인적 능력이다. 이 능력은 이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 사람과 생물체들이 번성하고, 지구도 함께 번성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사회적·물질적·정서적 조건을 마련한다.
이 선언문에서 취한 우리의 접근 방식은 돌봄을 모든 규모의 생명체에 활성화되어 있고 필요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선, 우리의 선언문은 현재 무관심의 지배가 어떻게 모든 규모의 삶을 가로지르며 연결되어 있는지 그 속성을 진단한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와 사람보다 이익을 우위에 두는 경제로부터 출발해, 무관심한 국가와 공동체를 거쳐, 무관심의 일상화가 궁극적으로 인간관계의 친밀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펴본다. 그러고는 다시 개인 간 관계로부터 시작해서 지구적 차원으로 규모를 넓혀가며 살펴본다.
이러한 여정은 현재 우리가 처한 무관심 상태에 대안이 될 만한 돌봄 체계에 대한 윤곽을 그리기 위함이다. 이렇듯 다양한 규모를 넘나드는 구성을 택한 이유는 우리의 돌봄 역량이 상호의존적이라는 것과 무관심한 세상에서는 발휘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관습적으로 돌봄으로 여겨지는 실천들, 예를 들면 양육과 간호 같은 행위에 대해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양쪽에ㅡ즉 우리 모두에게-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적절한 돌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돌봄이 역량과 실천으로서, 평등을 기반으로 교육되고 공유되고 사용될 때 가능하다. 돌봄은 ‘여성의 일‘이 아니다. 착취되거나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또 왜 사회적 무관심이 삶의 수많은 영역을 구성하고 장악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면서 돌봄 위기의 속성을 진단한다.
그런 후 과거의 예와 현재 상황과 미래의 가능성까지를 참고하여 상호연결된 돌봄체계를 상상해보고 그 밑그림을 그림으로써 해결책을 제시한다. 내일의 정치를 발전시키길 희망한다면 돌봄의 상호의존성에 관한 재고가 오늘날 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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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9-12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얇지만 강렬했던!
옮긴이가 의외여서 더 좋았던 책인데, 역시 난티나무님 서재에서 다시 만나게 되네요^^

난티나무 2022-09-12 05:56   좋아요 0 | URL
얄라알라님 읽으셨군요.^^
옮긴이가 의외요? 왜요? 궁금^^

2022-09-12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2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 비합리는 헌법재판소에서 시작된다 오봄문고 2
박이대승 지음 / 오월의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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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 이슈에 있어 태아의 생명과 생명권(인간인가 아닌가 언제부터 인간인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 로대웨이드판결(지금은 뒤집혀 난리났지만), 권리 설명도 유용. 헌법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 알려주니 임신중지에 대해 혼란을 느꼈다면 꼭 읽어보시길. 제대로 된, 조속한 입법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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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2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2 0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과 비인간, 법적 인간과 권리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밑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물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민주주의적 법체계를 상상해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동물 종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음 내용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첫째,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는 동물 종과 느끼지 못하는 동물 종 사이로 이동한다. 인간 범주는 단지 확장될 수 있을 뿐, 모든 존재자를 포괄하지는 않는다. 둘째, 고통을 느끼는 동물 종은 우리와 똑같이 인간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법적 인간 개념의 외연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편의상 우리를 "우리 인간" 인간 범주에 새롭게 포괄된 동물을 "동물-인간"이라고 부르자). 그럼 동물을 자기 행위의 책임을 지는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간주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 인간이 동물-인간을 죽이는 행위는 물론, 동물인간이 다른 동물인간을 죽이는 행위도 살인으로 처벌해야 한다. 반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동물을 죽이는 건 여전히 허용될 것이다. 더 나아가 동물-인간의 참정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인간이 가진 권리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정치적 삶에 참여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개별 인간은 정치적 참여를 통해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정한다. 이러한 민주적 참여에서 배제된 존재는 결코 자율적 인간의 지위를 온전하게 획득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상상해보면, 근대정치체제가 전제하는 존재론과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유지하면서 동물을 법적 인간으로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동물을 인간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별 관심이 없지만, 태아가 법적 인간이라는 주장은 진지하게 토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모든 자율적 인간은 태아가 성장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아가 법적 인간이냐는 질문을 깊이 탐구해보면, 동물을 법적 인간으로 인정할 때 발생하는 것과 거의 같은 어려움을 직면하게 된다. 일단 태아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줄 아는 자율적 인간이 아니다. 합리적 판단에 기초해서 자신의 의지를 형성하고, 그에 따라 행위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행위의 책임을 지는 권리와 의무의 주체라고 할 수도 없다. 흔히 태아를 "잠재적 인간"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잠재적이라는 것은 아직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태아의 경우에도 인간으로 인정하는 게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드워킨은 이렇게 질문한다. 태아의 생명권을 부정한 로대 웨이드 판결에도 불구하고, 주 법률은 태아를 생명권의 주체인 법인격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물론 가능할 것이다. 기업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듯이, 심지어 나무를 법인격으로 보는 법체계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단, 법이 나무를 인간으로 규정했다면, 나무를 베는 행위를 살인으로 처벌해야 한다. 어떤 경우든 법은 일관성과 체계성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15 마찬가지로 태아를 법적 인간으로 인정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는 인정될 수 없다. 출생의 배경이 무엇이든 살아 있는인간을 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이라고 해서 태아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다. 또한 태아가 모체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해도 임신중단은 허용되지 않는다. 한 인간이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다른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해서 그를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

다. 물론 모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태아의 생명을 빼앗아야 하는 극단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은 사실상의 차원에서는 임신중단과 같을 수 있겠지만, 권리상의 차원에서는 결코 임신중단이라는 개념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적으로 동일한 지위를 가진 두 명의 인간이 신체적으로 결합해 있고, 둘 중 하나를 살리기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해야만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체를 살리기 위해태아를 희생하는 경우, 그리고 태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체를 희생하는 경우는 동등한 두 가지 선택지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런 의학적 선택을 정당화하는 법률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법 조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이다.
태아를 인간으로 인정하는 법체계를 구축하려면, 임신중단 말고도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태아가 자연유산되었을 경우, 인간이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한 것과 동일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난임 여성이 체외 수정을 시도할 때 다태아 임신을 방지하기 위해 선택적 유산을 시행하는데, 이것도 금지되어야 한다. 이미 착상된 태아를 유산시키는 것은 살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6 한국의 민법과 형법은 각각 출생 시점과 진통이 시작된 시점을 기준으로 태아와 인간을 구별하는데, 이런 기준도 다 바꿔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검토하다보면, 태아 생명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람은 많아도, 태아를 인간으로 분류하는 법체계를 구축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왜 없는지 이해할 수 있다. (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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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사고 싶은 책,이라고 썼다. 사놓고 안 읽는 책이 너무 많아서 쭈글쭈글. 















몸문화연구소 <자연문화와 몸> 

'몸문화연구총서'라는 이름을 달고 시리즈로 나오고 있나 보다. 이 책은 번호가 14인데 시리즈 총 12권이라고 나온다. 다른 몸 이야기 책들도 관심이 간다. 그런데 이 시리즈 책들 너무 인기 없는 것 아님? 여기에라도 좀 넣어둬야 겠다. 책은 안 읽었지만 그래도 되겠지? 다 보고 싶은데? 

















































(북플에 자꾸 책이 붙어 나와서 그어보는 밑줄. 이 선도 북플에서는 안 보임.ㅋ)




















김은정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부제 :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

저자는 영어로 책을 썼고 미국에서 이 책으로 수상을 했다고 한다.(2017 전미여성학학회 앨리슨 피프마이어상과 2019 미국 아시아학학회 제임스 B. 팔레이즈상)  그래서 옮긴이(강진경, 강진영, 자, 자매?)가 있다. 벌써 흥미롭고. 


책소개: 

장애와 질병이 있는 몸의 현존을 부정하고 반드시 재활하고 극복해야 할 ‘치유’의 대상으로 여기며 폭력적으로 서사화해 온 한국의 역사, 정책, 제도, 문화 텍스트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미국 시러큐스대학교 여성/젠더학과와 장애학 프로그램 부교수 김은정의 저서로, 2017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2017 전미여성학학회 앨리슨 피프마이어상, 2019 미국 아시아학학회 제임스 B. 팔레이즈상을 수상하며 학계와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이 책은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를 다룬 소설, 영화, 신문 기사, 정책 문건, 활동가의 글 등을 텍스트 삼아 ‘치유’를 명분으로 장애와 질병을 가진 사람/삶을 파괴하는 ‘폭력’을 들여다보고 사회적·정치적 맥락 안에서 분석함으로써, 장애와 질병에 관한 사회적 경험과 문화적 재현의 다른 상상력을 제안한다. 「심청전」, 「노처녀가」, 「백치 아다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당신들의 천국』, <만종>, <꽃잎>, <팬지와 담쟁이>, <수취인불명>, <오아시스>, <핑크 팰리스> 등 고전에서 현대까지의 서사와 기념우표, 광고, 사진 등의 시각적 이미지를 망라해 여성주의 장애학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장애학적 문화 비평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가 장애의 문화적 재현, 관련 정책, 사회운동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저자 특유의 정교한 논리와 세심한 언어로 살필 수 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 

체체파리의 비법, 늠 좋아가지고! (아직 다 못 읽었다는 게 함정이지만) 단편선이라고 하니 혹!!! 이건 또 얼마나 재밌을까? 
















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 

이 책은 주디스 메릴의 단편이 실린 단일한(ㅋ) 책이다. 주디스 메릴은 어디에 나오느냐. <페미니즘 이론과 비평>이다. 거기 나온 소설들 간단하게 목록을 작성 중인데(조금 기다리셔유) 주디스 메릴 단편을 읽어보고 싶어서 검색했더니 번역본은 온리!!! 이것밖에 없다. '오로지 엄마만이' 한 편. 종이책은 일시품절이고, 전자책으로 살까. 

















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새로운 세계합리성> 

부제 : 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한 에세이 

이거 어디서 보고 담아놨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험험. 그린비 프리즘총서 40, 이 책모양 어디서 본 듯하다 했더니 낸시 프레이저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가 이 시리즈였다. 대박 어려웠는데 음. 이 책도 왠지 그럴 것같아. 비싸기도 하고.@@ 그린비 이 시리즈 책들 포스가 장난아님. 제목만 봐도 그래. 

















사라 아메드 외 <정동 이론> 

순전히 정동,이라는 걸 잘 이해 못하겠어서 마침 읽던 책들에 사라 아메드가 자꾸 보여 검색해봤다. 설명만 읽고는 뭔지 감이 안 잡히는 개념이라. 사라 아메드의 글이 있다는 이유로 보관함에 넣었으나 목차 매우 흥미롭고. 왠지 막 재밌을 거 같은데 어렵기도 하겠지? 갈무리 아프-꼼 총서 라는데, 여기 세 권 다 정동 책이다. 궁금궁금. 다 읽어보고 싶네??@@ 
















오늘은 여기까지만 사고 싶어 하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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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9-02 2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라 아메드 안 그래도 읽어야지 했는데 여기에서 이렇게 마주하니 담아가겠습니다 :)

난티나무 2022-09-03 06:02   좋아요 1 | URL
비타님 전번에 <행복의 약속> 읽으신 거 봤어요. 저도 읽어보려고요, 사라 아메드.^^

얄라알라 2022-09-02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ㅎ 사라 아메드

난티나무님, 감히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저도 깜짝 놀랐어요. 포스팅 읽으며..

몸문화 연구소 하도 이름이 특이해서 예전에 뒤져본 적이 있었는데 ^^ 사라 아메드 마냥

난티나무 2022-09-03 06:05   좋아요 1 | URL
또 통했네요, 얄라알라님과~^^
이렇게 우연이 겹치면 되게 신기하고 기분 묘하죠?
그리고 관심사가 비슷해서 더 자주 일어나는 듯해요.ㅎㅎ
<자연문화와 몸>에 읽고싶어요 한 분도 아마 얄라알라님이었던 듯?^^

거리의화가 2022-09-03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은 저도 예전에 찜해둔 책이었는데 아직도... 시작을 못했네요ㅠㅠ 이런 책이 한 두권이 아니라서...ㅋㅋㅋ
몸문화연구소 시리즈는 놀랍네요! 이런 책은 관심받기 쉽지 않은 분야라 책을 얼마 찍어내지도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저도 몇 권 찜해갑니다~ㅎㅎㅎ

난티나무 2022-09-03 18:46   좋아요 0 | URL
치유… 찜해두신 분들 많은 것 같더라고요. 거리의화가님도 찜!
몸시리즈 문장들은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읽고 싶은 내용이던데 책소개 아래가 다 너무 깨끗…ㅎㅎㅎ 이럴 땐 한국책도서관이 매우 아쉽습니다. 도서관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단발머리 2022-09-03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라 아메드 찜하고 갑니다. 저는 처음 보는 책들이 많아서 눈이 휘둥그레 @@

난티나무 2022-09-03 18:49   좋아요 1 | URL
전 사라 아메드 한 권도 읽은 게 없어요 ㅎ 조만간!!! 엄청 인용 많이 되더라고요.^^
 

<우리의 분노는 길을 만든다> - 피임/임신/출산

6월에 읽은 책 밑줄 그은 것 보다가 북플에 안 올렸길래 가져왔다. 문장들이 <임신 중지>보다 훨씬 읽기 쉬웠네. 가져온 부분들 좀 길지만 읽어보시길. 전자책으로 빌려 읽었는데 종이책 사고 싶어지네!


소라야 시멀리 <우리의 분노는 길을 만든다>

2014년 말, 남성 피임약 임상실험이 피험자 남성들의 부작용 기피로 조기종료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전 세계의 여성들은 자지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 부작용이란 여드름, 기분변화, 성욕저하, 우울, 체중증가였다. 첫 언론보도가 나간 후 이틀 내내 어디를 가든 여성들이 이 이야기를 하며 빈정대는 소리가 들렸다. 곧 기자들, 주로 남성 기자들은 여성들의 반응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지에 대해 기사를 썼다.

여성들이 호르몬 피임약의 유해한 부작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남성들을 비웃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대다수)는 기가 막혀서 웃었다. 우리는 화가 났다. 나는 이렇게나 많은 남성이 여성의 삶을 모르고 신경쓰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얼마나 짜증스러운지 인터넷에 글을 올렸고, 글은 올린 지 몇 시간 만에 3만 회 이상 공유되었다. (29%)

2016년 1200명 이상의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 남성은 계획에 없던 임신을 "절대 걱정하지 않거나 거의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임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새하얀 공포,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의 복용을 깜빡했을 때의 패닉, 응급피임약이나 안전한 임신중절을 처방받지 못한 좌절감을 남성들은 느껴보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추론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들은 자궁 내 피임장치의 삽입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야기하는지, 호르몬 패치의 부작용으로 일 년 내내 생리를 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한다. (29%)

드물긴 하지만 잠재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이런 위험성을 차치해도 피임은 비용이 높고 여성이 병원, 진료소, 약국을 여러 번 드나들어야 한다. 한 방법이 잘 통하지 않아서 다른 방법을 시도라도 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이런 과정에서 언제든, 한 여성이 잠자리에서는커녕 살면서 다시 마주칠 일 없을 다수의 사람들이 각자의 견해를 바탕으로 그녀가 선택한 효과적이고 안전한 방법을 부정할 권력을 지닌다. 약사의 처방전 작성 거부 같은 노골적인 부정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더 흔한 경우는 피임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비싸게, 가능한 한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찾는 사후피임약 플랜 비Plan B를 생각해보자.

2015년 조사 결과, 해당 약을 카운터 뒤에서 꺼내주거나 잠금장치 안에 진열하는 대신 선반에 놓고 판매하는 것을 선호하는 가게는 14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6 왜? 여성이니까. 섹스. 아기들. 통제해야 하니까.

피임 처방전 대부분은 약사들이 작성한다. 선반에서 직접 약을 집는 대신 사후피임약을 요구하고 수치심을 느끼거나 거절당하는 일이야 언제든 다른 약국으로 가면 그만이니 약간 불편한 일 정도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이런 상황이 구체적인 피해에 영향을 미친다. 피임으로의 접근을 거부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여성의 이익 침해이자 품성에 대한 비난이며, 그녀의 자주성을 부인하고 프라이버시와 안전을 침해하는 행위로, 이 모든 것은 그물망처럼 빽빽히 얽혀 있는 장애물의 일부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상호작용에는 필연적으로 깊은 분노가 따른다.

남성의 경우, 기본적인 피임기구인 콘돔을 살 때 그들이 극복해야 하는 가장 까다로운 장애물이란 1만 2000년 된 양가죽 기술의 최신 버전이 2달러를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 그것을 사러 길모퉁이 가게에 다녀올 만한지 정도다.

여성은 피임을 이해한다. 우리는 위험을 이해하고 원치 않는 임신의 비용을 이해한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이끄는 삶과 우리가 세우는 계획에 대해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런 태평한 무지는 우리의 관계와 성생활에 개인적 차원의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멍청하고 태만하게 공공정책을 구상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영향을 끼친다. (30%)

자녀가 있든 없든 모성의 이상은 우리 여성의 정체성을, 즉 우리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삶과 우리의 감정을 형성한다. 출산은, 그리고 출산과 우리 여성의 관계는 우리가 여성으로서 내리는 가장 중요한 대부분의 결정과 여성인 우리에게 내려지는 대부분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하나의 이데올로기처럼 모성에 대한 요구는 평범한 여성이 자신의 생식력을 관리하는 데 삼사십 년의 세월을 쓰도록 틀을 짠다. 생식력을 관리할 정도로 운이 좋다면 말이다. 여성이 내리는 모든 결정, 심지어 사회적 압박으로 당사자 여성의 의지가 개입되지도 않는 결정은 여성의 신체, 관계, 생계를 유지하는 능력 및 자아의식에 영향을 끼친다. (30%)

자신의 임신 경험을 이야기할 때 여성들은 누군가 좀더 설명해주었더라면, 진부하지 않게 웃기려는 시도 없이 설명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나도 이 기분을 정확히 기억한다. 나는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 채 내가 아는 여성들, 즉 내가 아는 엄마들인 여성친지들이 왜 이걸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매일매일 신체와 감정이 변하는 인생의 중대사가 이렇게 침묵 속에 묻힐 수 있다는사실에 좌절했고 화가 났다. 그리고 나 자신의 침묵에도 놀랐다.

그간 내가 섹스를 위한 대상이었다면 임신한 나는 재생산을 위한 대상이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알고 있었지만 후자에는 무방비상태였다. 급속도로 눈에 띄게 변하는 임산부의 몸은 물건 취급을 받는다. 사람들은 임신한 여성을 빤히 쳐다보고, 논평하며, 만진다. 그녀의 몸은 모두의 소유인 것이다. 심지어 낯선 사람들도 몸무게나 배 크기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무얼 마셔야 하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준다.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임산부는 무념무상의 상태에 들어가는데, 이는 생각이나 의식이 부족한 상태 혹은 적어도 평상시와는 다르게 주도력이 떨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어느 쪽이든 대상화는 배가 나온 임산부에게 매일 벌어지는 일이며, 임산부는 자신이 대상화된다고 느낄 때 더더욱 사물처럼 행동하여 덜 움직이고 덜 말한다. 초음파검사를 받을 때 우리가 보이는 반응을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초음파는 부모가 느끼는 커다란 행복과 기대감의 원천이고 진단도구로서 필수적인 경우가 많지만, 그렇게 굳어진 인식은 초음파가 임신 및 출산에 끼치는 잠재적 해악을 축소하는 데 적극 기여한다. 일반적인 초음파검사에서 우리는 태아를 보지만 여성은 보지 못한다. 발달 중인 태아는 엄마의 신체 내부와는 상관없는 바다, 병甁, 텅 빈 우주를 표류할 수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1965년 『라이프』지에서 18주 된 태아가 타원형의 투명한 태낭에 싸여 무한한 어둠 속을 떠도는 상징적 사진을 게재했을 때 그것은 그야말로 초기 우주비행사들이 찍은 빈 공간 속 지구 사진, 태아 사진과 마찬가지로 놀랍고 새로운 지구 사진을 반영한 것 같았다. 이 태아의 이미지는 스웨덴 사진작가 렌나르트 닐손이 『탄생 이전 생명체의 드라마Drama of Life Before Birth』라고 부른 드라마틱한 사진 에세이의 일부였다.10그때는 지금처럼 여성의 몸의 부재가 문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듯하다. 임신을 표현하는 다른 묘사를 찾아보면-가령 온라인에서 "배아embryo 이미지" "태아fetus 이미지" 등을 검색할 경우(정확성이 떨어지게도 동일한 이미지가 검색된다)-아기만 찍힌 사진이 주로 나온다.

아니면 출산 직전의, 배가 몹시 부른 여성의 사진이 나온다. ‘드라마‘는 여성의 것이지만, 닐손의 사진에는 여성이 소거되어 있으며 오늘날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미지들로 인해, 문화적 상상계에서 여성들은 임신하여 투명인간이 되거나 비임신상태에서 곧바로 분만이라는 벼랑으로 마법처럼 이동한다. 이 중간시기는 태아가 여성의 몸에 잉태되는 것을 넘어 여성의 몸 그 자체인 시기다. 하나의 접합체에서 갓난아기가 되기까지 모든 단계가그녀의 몸으로부터 구체화된다. 입자 하나, 세포 하나, 체모 한 올, 뼈 한 조각. 그녀의 세포, 혈액, 혈장, 태반, 호르몬, 체액, 소화된 음식, 움직임, 불안, 두려움, 통증, 불편함, 기쁨, 경이, 희망, 그리고 진통까지. (30%)

비교적 최근까지 임신, 출산 시기와 그 이후에 여성이 겪는 변화에 대한 공개적 논의는 거의 없었다. 특히 남성은 그러한 변화에 깜깜한 무지의 상태로 남겨지기 일쑤다. 최근의 의학 설문조사 결과, 출산한 지 일 년이 넘은 산모의 77퍼센트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허리통증을 참았고, 49퍼센트는 요실금으로 고생했으며, 50퍼센트는 꾸준한 골반통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 후 거의 30퍼센트에 해당하는 여성이 골반뼈가 부러졌음에도 골절 진단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고, 41퍼센트의 여성은 골반저근에 파열이 있었다. 4분의 1에 가까운 여성이 출산 후 십팔 개월이 지나고도 성교통을 느꼈다. 분만시 회음부를 절개했거나 회음부가 파열되어 봉합이 필요할 때 의사들은 여전히 ‘남편을 위한 한 땀‘을 더 꿰맨다. 필요한 것보다 한 땀을 더 꿰매어 질관을 조여서 파트너의 성적 쾌락을 높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일부 여성들은 성관계중 극심한 통증을 느낀 후에야 여분의 한 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31%)

부모가 된다는 것은 여성이 내릴 수 있는 재정적으로 가장 위험한 결정이다. 자녀가 없는 여성과 비교해보면 유자녀 여성은 새로 직장을 구했을 때 임금을 평균 1만 1000달러 적게 받는다. 자녀 1인당 7.8퍼센트의 임금삭감을 마주하는 셈이며, 이 삭감은 누적된다. 익히 잘 알려진 이 임금소득의 침식을 경제학자들은 "모성 페널티"라고 부르며, 젠더를 뒤바꿔 말하자면 ‘부성 보너스‘라는 필연적 결과가 있다. 아버지가 되면 남성은 고용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심지어 자녀가 없는 남성보다 더 높다. 그리고 자녀 1인당 수입은 6퍼센트 증가한다.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이혼하는 것은 재정적 위험도의 측면에서 아슬아슬하게 2위다. 이혼한 여성은 자신이 이력서에는 커다란 공백이 있고, 아이와 노인을 돌보는 일에 우선적이면서도 지원은 받지 못하는 책임이 있으며, 충분한 돈을 벌 방법은 없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다양한 이유로 이혼가능성이 높은 중하위층, 저소득 시급 노동자들의 경우 특히나 그렇다. 이런 상황에 처한 많은 여성들은 신용거래나 긴급생활보조금에 접근할 수있는 통로가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다. 여성의 장기적인 재정안전성은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이유로 여성이 유연근무를 시작할 때 진정한 위험에 처한다. (31%)

사실상 모든 사회가 모성을 찬미하지만, 이것이 여성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반추하자면 구십 초마다 한 명의 여성이 예방 가능했던 임신 관련 합병증으로 사망한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산모 사망의 99퍼센트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미국은 산모 사망률이 가장 높은 선진국이며, 그 수치가 올라가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오늘날에는 캘리포니아보다 보스니아나 쿠웨이트에서 아이를 낳는 편이 더 안전하며, 미국에서 아이를 낳는 여성은 스칸디나비아국가에서 출산하는 여성보다 사망할 가능성이 6배 더 높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흑인 엄마들은 백인 엄마들보다 사망률이 3~4배 높은데, 이는 여성의 건강과 관련한 가장 큰 인종격차다. (32%)

2009년 피닉스의 로마가톨릭병원 관리자인 마거릿 맥브라이드 수녀는 이런 현실에서 표적이 되었다. 맥브라이드 수녀는 위험한 폐동맥고혈압으로 병원에 도착한 임신 삼 개월 차 스물일곱 살 여성의 생명을 구했다. 병원윤리위원회 소속이었던 맥브라이드는 여성의 생명은 구할 수 있지만 임신은 종결시킬 수술을 승인했고, 유산이 주된 목적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네 아이의 젊은 어머니는 목숨을 구했지만 맥브라이드는 파문당했다. 주교는 왜 아이의 어머니와 맥브라이드 수녀가 파문되었는지를 설명하며 "어머니의 삶이 아이의 삶보다 우선될 수 없다"라는 성명문을 읽었다. (33%)

재생산정의는 진보를 지향하고 사회의 평등을 촉진하고자 하는 모든 정치적 의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2016년 미국 대선을 계기로 보수와 진보양측의 전문가들은 일제히 임신중절권을 문제삼으며, 이를 지지할 시 민주당은 중도층의 표심을 잡지 못해 진정으로 국민을 대표하는 당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 주장했다. 이는 여성의 인권을, 여타 모든 진보적인 의제의 목적이 전제하는 기본조건을 기꺼이 무시하겠다는 신호였다. 이런 연관성을 무시한다면 결과는 여성이 직접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체스판의 말이 되는 어리석고 위험한 게임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지적하듯 출산 횟수를 논하는 법안과 정책 수립의 장 어디에도 명백히 여성은 없으며, 그곳에서 여성은 협상카드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신체의 통합성과 자율성을 포함해 여성의 기본적인 권리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은 모두를 살리는 윤리강령이다. (34%)

임신하고 싶어하지 않거나, 아이를 원하지 않거나, 엄마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여성이 괴짜에 불완전하고 여성스럽지 못하며 심지어 자신의 ‘진정한‘ 욕망에 무지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때로 의사들은 자기가 당사자보다 더 잘 안다는 믿음으로 여성 환자의 불임시술 요구를 거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병원과 교도소에서 유색인종 여성들이 본인의 동의 없이 불임시술을 당하는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의사들의 거절은 제도적 인종차별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2014년 캘리포니아의 조사 보고서를 통해 140명에 달하는 여성이 수감기간중 제대로 된 동의 절차 없이 불임시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추악한 우생학의 역사가 얽힌 시술이 금지되었다.) 압력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예전보다 의도적으로 비출산을 선택한다. 그러나 아이 없는 여성은 아이 없는 남성과 달리 대중의 맹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선택은 가족들로부터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심지어 괴롭힘마저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여성은 불편함과 적개심을 숨긴 무신경한 ‘농담‘, 예를 들어 똑딱이는 시계라느니, 캣 레이디라느니, 혹은 ‘진정한‘ 여성이 아니라는 둥의 농담을 견뎌야 한다. 어째서 오늘날 여성들이 점점 더 비출산을 선택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은 명백히 거울에 비친 자기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다. (34%)

"평소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세요"는 우리가 흔히 듣는 조언이지만, 여성의 스트레스 유발 요인의 핵심에는 다가가지도 못한다.

모성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중심에 자리한다. 여기서 여성이란 싱글여성, 자녀가 없는 여성, 아내, 어머니 등 모든 여성을 말한다. 살면서 겪는 경험 중 하나인 엄마 됨은 복잡하고 즐거우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면에서 삶을 바꿔놓는다. 그러나 모성이라는 이상은 종종 여성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막는 곤봉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엄마가 됨으로써 우리는 기쁨, 사랑, 안정, 공동체를 찾을 수 있고 또 많은 여성이 그러듯 삶의 가장 큰 목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모든 여자아이와 성인 여성의 불가피한 행로도, 우리 모두를 평가하는 기준도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모성이 여성에게 휘두르는 무기가 아닌 사회, 강압적이지 않고 가혹하거나 폭력적이지도 않은 사회,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품위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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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2-08-31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을 읽다보니 속이 부글부글 한데.. 그래도 읽고 싶네요! 안그래도 조금 더 쉬운 책을 읽고싶다 생각한 참이었어요. 공유 감사합니다 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2-08-31 19:03   좋아요 2 | URL
그쵸, 완전 부글부글! 그러나 분노가 당연합니다! 😡🔥
밑줄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저도.^^

2022-08-31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1 0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1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1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청아 2022-08-31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놔 난티나무님!! 이 책 분노유발이네요? 제목 눈에 익은데 저도 담아가야겠어요.^^*

난티나무 2022-09-01 06:23   좋아요 1 | URL
맞아요 분노유발!ㅋㅋ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꽈.
앞부분 좋았는데 뒷부분은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요...ㅎㅎㅎ 다시 읽어야 할까 봐요...^^;;;

바람돌이 2022-08-3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임신중지에 나오는 여러 문제들을 더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군요.
밑줄긋기만 읽어도 분통이 터지는데 책 읽다보면 어떨지..... ㅠ.ㅠ

난티나무 2022-09-01 06: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읽기 어렵지 않게 술술, 그러나 분노에 분노를 더하는 책.^^


다락방 2022-09-01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제목이 너무 뻔해서 저쪽으로 제쳐두었는데 밑줄그으신 거 보니 읽고싶어졌어요.

난티나무 2022-09-01 23:29   좋아요 0 | URL
아니 그러게 말이에요. 뒷부분 생각 안 나는 걸 보니 조금 뻔하기도 했던 거 같기도...^^;;; 이노므 기억력...ㅠㅠ
근데 밑줄 보니 요 부분은 또 좋더라고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