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직은 뜨거운 햇빛 아래 거리를 다리 아프도록 돌아다니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돈 없으면 (거의) 아무것도 못하는 세상인 건가. 당연하게 들리는 말을 또 몸으로 느끼는. 24시간 무제한 교통권을 갖고 있음에도 걸어야 할 이유는 있었고 넘쳐나는 사람들로 피곤한 몸은 휴식을 원했다. 휴식, 휴식, 휴식. 나는 돈이 없다, 고로 돈을 쓸 수 없다,의 망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나, 혹은 돈 쓰는 건 사치,라는 생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나, 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판단력 상실 상태의 나, 혹은 하나를 마시더라도 괜찮은(?) 걸 마시겠다는 일념을 지우지 못하는 나. 이러한 이유로 간혹 보이는 까페에 안착하지 못했다. 똥멍충이. 








의지력 하나로 돌아다니다가 겨우 문 닫기 이십 분 전 까페의 소파에 앉았고 건강음료라 할 만한 신선한 과일채소주스를 마시면서. 이거 하나에 만 원이네. 두 잔에 이만 원이네. 내가 정말 '돈 없는' 여행자면 여기 앉아서 이걸 마실 수 있을까? 아무리 다리가 아프고 목이 말라도 거리의 벤치에 앉아 가장 싼 1.5리터 크리스탈린 물을 마시겠지. 슈퍼에서 사서. 혹은 저렴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여기 앉아 잠깐의 호사를 누릴 수도 있으려나? 그건 돈 7유로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마음의 문제인 건가, 가치관의 문제인 건가, 잠시 헷갈리기도. 아니, 여행이라는 것을 하려면 일단 돈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잖아 싶기도. 







'밖'에서 먹으며 돌아다니는 일에 드는 돈을 계산해 본다. 얼마나 많아야 이것저것 재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쓰면서 다닐까 어이없는 질문도 해가면서. 끝이 없지 않을까, 옆지기가 말한다. 그렇다, 세상은 이미 그렇게 바뀌었다. 돈이면 (대체로) 뭐든 다 되는 세상. 반대로 돈이 없으면 (대체로) 뭐든 안 되는 세상. 할 수 없는 세상.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도 한켠에 있어서 (대체로)라고 쓰고. 계산에 혀를 내두른다. 잠깐 현타가 왔으나 얼른 잊기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전처럼 여행을 상상할 수 없는 삶으로 돌아가게 되니까. 







셋째 날이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에 잠깐, 반나절의 혼여를 상상했다. 이따 오후까지 따로 다니자. 점심도 각자 해결하고 만나자. 혼자 딱히 갈 곳은 없지만 옆에서 말거는 사람 없이 까페 테라스에 앉아서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로망 역시 배부른 소리로 들릴 것을 알지만, 실제로 그렇게 했을 때 달리 무슨 의미를 부여할 만큼 특별하거나 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잠깐 그렇게 책으로 멍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 또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고 나는 그럴 수 있다. 실제로 앞으로의 둘여행에서 각자 다니기는 지향해야 할 바라고 옆지기와 의견나눔도 한 터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먹고 마시고 중간중간 책 보고, 이게 다인 것같다. 유명 스팟 안 가도 상관없고 역사 유적 안 봐도 상관없고 누가 살았던 누가 갔던 그런 데도 관심 없(진짜? 보부아르랑 사르트르가 묵었다는 호텔에는 가보고 싶은뎅)고 그냥 거리의 테이블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관찰하는 것, 난 그런 게 좋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내가 트러블로 여기니 트러블이다. 약간이라고 했지만 완전,이라고 해도 될. 암튼 생각의 계기가 되었고 계속 생각을 했고 결정을 했고 그리고 말도 했고. 그래서 만족. 격렬하게 혼자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아무도 나에게 말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24시간 함께 있는데 여행도 같이 가서 어쩌냐는 말에 그러게요 할 때, 분명 둘이 하는 여행의 장점도 크지만 그래도,라고 생각할 때,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때 내 방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나에게 돈을 써야 겠다. 오롯이 나만을 위해서. 물론 나는 책을 사대는 것으로 나를 위한 돈을 쓰고 있지만.ㅋ 그래서 며칠 전에도 책을 샀지만.ㅋ 그건 그거고. 그건 죽기 전까지 계속 할 일이고.ㅋ 빠리만큼 크지 않고 번잡스럽지 않고 완전 관광핫스팟만 제외하면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도시, 이곳에 곧!!! 혼자 호캉스를 하러 와야 겠다. 책 몇 권 챙겨서 내 맘대로, 나가도 좋고 안 나가도 좋은, 여행을 하러 와야 겠다. 말 거는 사람 없는 시간을 만들어봐야 겠다. (근데 집에서 자판 두드리는 지금도 말 거는 사람 없기는 해... 또르르...) 나 한번도 프랑스에서 나를 위한 호캉스 해본 적 없다. 이제 좀 해도 되지 않겠나? 꼭 돈 많아야 하는 거 아니잖아? 어차피 럭셔리 호텔에는 못 가. 아 자꾸 변명하려고 함. 끝내야지. 









+ 여행 비용을 생각하며 마신 비싼 건강주스는 젠장맞게도 너무 맛있었다. 

+ 제목의 여행비용은 여행의 비용만을 말하는 것은 아닌데, 돈 말고 다른 부분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 조금 아쉽긴 하다. 좀더 내밀한 이야기가 필요함. 

+ 사진 속 주말 여행 도시 : L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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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9-12 19: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혼자하는 여행은 사치스러운 기분이 드는것 같아요. 혼여를 하기위해 감내해야할것들이 때로 많다는 생각 때문인지. 흑백으로 보는 리옹 풍경 매력있네요. 사진까지 잘 찍으시는 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2-09-12 23:44   좋아요 1 | URL
어째서 그럴까요. 혼자 하는 여행은 사치,라는 생각도 어쩌면 우리 여자만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금 드네요? 1인가족이 아니라서 더 조건이 많은 걸까요? 음 이것도 좀더 생각을 해봐야 겠어요.^^
폰카가 구려서 아예 흑백으로 찍으니 나은 것 같더라고요. 헤헷

2022-09-12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2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2-09-12 2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그냥 거리의 테이블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관찰하는 것… 에서 제가 기립박수칩니다ㅋㅋㅋㅋㅋ 저도 이런 여행을 지향합니다. 커피숍에 앉아서 책 읽다가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기요 ㅋㅋㅋㅋ

난티나무 2022-09-12 23:47   좋아요 0 | URL
아 동지를 만나는군요! 여행 취향 동지~^^
어째서 여행지에서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갈까요?ㅋㅋ 어디 느긋하게 앉아있을 시간이 @@
담에 혼자 가서 꼭 멍때려 보겠어요!!!!

얄라알라 2022-09-12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고 마지막에서야 느꼈는데요

난티나무님의 이 여행 소묘는 흑백 사진과 딱 어울리는 것 같아요. 컬러가 아닌 흑백..^^근데 마시신 건강 쥬스 색깔만큼은 궁금합니다 ㅎ

난티나무 2022-09-12 23:51   좋아요 1 | URL
헤헷 어울린다니 좋아요~^^
주스 색 음 뭐라 할까요, 그니깐 사과 베이스에 약간의 열대과일과 생강즙과 또 허브 뭐더라? 까먹었 ㅎㅎㅎ 아무튼 그런 거여서 색은 화사하고 청량하고 아주 밝은 오렌지빛? 찐한 아이보리? 하하 에렵네요.^^;;

책읽는나무 2022-09-13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사색적인 여행 에세이집 같은 글입니다.
제가 딱 좋아하는 난티님의 글입니다.^^
저도 어제 오늘 <작은 아씨들> 드라마를 보면서 ‘돈‘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었어요.
건강쥬스 한 잔 마시는 것으로도 풍족하게 썼다고 생각할 수 있고, 책 몇 권 더 사면 부자가 된 듯하여 분명 기쁜데...통장잔고를 보면 어? 부자가 아니네??? ㅋㅋㅋ
그런데 또 난티님 글 읽으면서 부자가 별 건가? 이런 삶이 절로 부유해지는 삶 아닌가?싶네요.
그리고 죽을 때까지 책 사겠다는 포부!!
이미 부자세요ㅋㅋㅋ

난티나무 2022-09-13 22:38   좋아요 1 | URL
통장잔고 ㅠㅠ 안 볼랍니다.....ㅎㅎㅎㅎ
그러니까 돈이 있어도 못 하는 게 세상에는 아직 있다, 고 생각하고 살려고요. 돈 많다고 행복이 그만큼 오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ㅋㅋㅋㅋ
그럼 부자인 저는 또 책을 둘러보러 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