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내용과 감상 정리 


2장에서는 국가와 여성의 관계, 국가페미니즘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말한다. 이를 위해 국가와 폭력의 상관성을 먼저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 언급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를 예전에 읽으면서 과연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와 더불어 국가의 '존재'에 대해 잠깐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인으로 한국의 국적을 가지고 프랑스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 위치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는데 시민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인종, 계층, 젠더, 그밖의 조건들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실감하며 산다는 건 매우 불쾌한 일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국가의 시민이 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존재들 사이에는 틈새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적, 시민권, 영주권 등을 얻어 국가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인간대접을 받으려고 열심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에하라의 저항은 웃음을 유발하는 사치스러운 놀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50) 그러니까 우에하라는 일본인이고 일본 국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땅에서 그렇게 '사치스러운 놀이처럼' 보이는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셈이다.(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우에하라가 그러고 있을 동안 그의 아내는 돈을 벌었을 확률이 높다.) 프랑스인이 아니고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지 않은 나는 여전히 이 사회 이 국가에서 이방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살려면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한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것, 이방인이지만 이 국가에 '충성'하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돈을 벌어 세금을 낼 수 있는지를, 기타등등 기타등등. 증명하지 못하면 협박을 받는다. 못해? 그럼 너네 나라로 돌아가. 나는 선거권을 가진 프랑스 국민이 아니므로 '사치스러운 놀이'를 할 수 없다. 추운 겨울날 아침, 체류증 갱신을 위해 이민국 앞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줄서서 두 시간을 기다린다. 굴욕적이라 느끼지만 하라는 대로 한다. 나에게 프랑스라는 국가는 무슨 의미인가?


("근대 민주주의는 한편에서 법적 수준의 평등을 실현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다양한 소수자 집단을 재생산해왔다. 이러한 기술은 법이 아니라 지식 권력에 의존한다. 배제의 원리가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실현되는 대상은 비시민 이주민 집단이다. 이들은 국가의 영토에 거주하지만, 국가법의 외부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여기에 다른 소수자 집단과 이주민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국적nationality이 근대 시민성 모델의 핵심인 이상, 국가의 법이 국적 없는 인간을 평등한 권리의 주체로 인정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이주민은 결코 포괄될 수 없고, 오로지 배제의 대상만 되는 특수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박이대승,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중에서) 아침에 읽고 있던 책에서 이 구절을 발견했다. 좀 이해가 간다.)


두번째 챕터 '국가법 이전 혹은 너머의 여성'에서는 국민일 수 없었던 여성, 국가법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던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모성을 기반으로 한 보살핌의 윤리에서 우월성을 찾았던 페미니즘이 남녀평등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면서 봉착하게 된 문제를 언급한다. "차이와 평등이라는 페미니즘의 의제 또한 현실적, 이론적인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남녀평등은 남녀의 능력에 차이가 없으므로, 여자도 남자처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평등의 논리는 남성을 보편으로 설정하고 그런 보편적인 가치로 여성이 닮아가는 것이다. 남녀평등을 지향한 결과 모두 하나의 성이 되는 값비싼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남성이 됨으로써 동일성을 자기복제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표인가'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남성과 평등한 능력을 인정받아서 제도로 편입한다는 것은 국가의 가치를 보편적인 것으로 수용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럴 경우, 차이의 정치에 바탕하여 여성의 특수성과 고유성을 주장하기 힘들어진다. 제도적인 문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남녀가 평등하다고 주장했다면, 공적인 정치의 장 안에서 여성특유의 차이를 주장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이기 때문이다."(57) 성별간 평등을 주장하는 것, 정치의 장에서 여성정치인들이 보여지는 모습, 얼마간 남성과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는' 위치에 있는 여성들, 에 대해 의구심이나 불편함을 가졌던 이유가 이것인가 싶다. 페미니즘은 성별간의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런 '국가페미니즘(국가와 협상, 보호기능에 의존하면서 변화 가능성 탐색 - 국가페미니즘 (좁은 의미의 관료화/제도화된 페미니즘 포함) -> 여성권익보호를 위해 정부의 여성 관료가 되는 것을 의미)'이 한국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가 세번째 챕터의 내용이다. 국가에 복종함으로써 소멸을 자초했다는 관점. 예를 든 단체는 여성개발원(현 여성정책연구원)이다. 어용, 관변 페미니즘의 국가페미니즘으로의 대체. 핑계 같지만 모든 역사에 취약해서 1980년대의 정치사에도 까막눈이지만 여성단체가 어떻게 변화해갔는지를 간략하게 알 수 있었다. 이런 변화과정은 여성운동의 딜레마("여성운동을 위해 여성운동을 무력화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점"(61))를 보여주기도 한다. "...MB정권의 출범을 위한 인수위에서 정부부처통폐합대상으로 가장 만만한 여성가족부를 들고 나온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를 제외하고는 보건복지부와의 통폐합을 아쉬워하는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63) 10년도 전에 씌어진 글인데 현 세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릇된 역사를 그대로 반복하는 일은 후퇴다. 지금 한국은 갑절로 후퇴 중이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지금은 폐지(2015년)된 '간통법'으로 여성과 국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진실은 아무리 경이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반복되면 경이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도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런 아름다움에 무감각해지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그런 현상을 습관화라 하고,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 하고,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결혼'이라 부른다."(63) 매번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며 살 수는 없지만 가끔은 똑같은 아름다운 경치에도 감탄하게 되듯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그런 경이로움이 가능하면 좋겠다. 그러자면 열린 마음, 적당한 거리, 방기되지 않는 자유와 의무,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불륜은 불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대면하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을 감추기 위한 핑계라고 프로이트는 분석한 바 있다. 그 '어떤 것'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인생의 끝에서 마주치게 될 죽음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 욕망이 불륜을 꿈꾸도록 만드는 '특별한' 사유가 된다. 이 경우 불륜은 죽음과 허무를 지연시키는 아름다운 유혹으로 포장된다. 프로이트의 분석이 빈말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67) 저자가 예로 드는 무수한(!) 남성작가들의 작품에서는 프로이트의 분석이 일견 맞을 수 있겠다. 그러나... 애인이나 결혼동반자가 있을 때의 '불륜'이 어째서 윤리적이지 못한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무엇이 윤리인가, 무엇이 사랑인가, 이런 질문부터. 일평생 한사람만을 '사랑'하고(그 사랑 지속될 리 없지만 그렇다고 가정하고) 그 사람과만 섹스하는 것이 윤리적인가? 내 애인, 내 결혼동반자, 라는 개념이 그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사랑 없는 섹스는 범죄로 간주했고, 사랑 없는 결혼은 부끄러워해야 할 비윤리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도처에 편재한 사랑은 엄청난 축복으로 간주되지만, 일단 결혼하고 나면 배우자와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사랑만 허용된다. 사랑의 감정은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은 배우자라는 한 사람에게만 영원히 유지되는 감정도 아니다."(67) 우리는 결혼 제도와 '바람 피우는 것, 불륜', 에 대해 지나친 잣대를 들이댄다. (주로) 이성애에 있어 신체접촉을 너무도 중요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섹스가 사랑이라고 믿어서이기도 하다.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서이기도 하다. 성별 불문, 요즘 시대엔 바람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들 한다. 이것이 단순히 육체적 욕망만을 좇는 결과가 아니라는 건 명백하다. "불륜에의 욕망을 법으로 막는 것은 인권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폭력적이다. 국가가 그 기원에서부터 폭력적이라면 그런 국가에게 여성들이 간통법 등을 통해 보호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간통죄를 민사도 아니고 형사 처벌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행복권, 성적 자기결정권을 알아서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 큰 국가 가부장에게 가서 남편/아내를 혼내주고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가부장적인 국가에게 호소하여 금기를 계속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 금기를 풀어나가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69) 이렇게 되려면 사회경제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는 법안이 여러 방면에서 강화되어야 한다.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갈 길은 먼데 정치판은 쑥대밭이다...


+ 인용

"불륜의 플롯은 개인의 정체성의 문제를 협소한 의미의 가족관계(남편과의 불화, 시댁과의 갈등 등)로 환원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가족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이런 방식의 불륜의 플롯은 '가족은 해체되었다'는 소문을 무성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며 이를 통해 가족 해체에 대한 근거 없는 위기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륜의 플롯은 표면적으로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가족 이데올로기는 남편과 아내라는 협소한 의미의 가족 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 전체와 개인의 삶, 그리고 정체성을 구성하는 상상적 구조와 정치적 구조의 토대이다. 따라서 가족 이데올로기를 봉건적 속성으로 치부하는 담론은 가족을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로 스스로를 가치 절하시켜 여성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는 것이다. 또한 가족을 자본주의적 모순의 층 속에서 생산/재생산이라는 경제적 모순의 차원에서 탐구하거나 가족 이데올로기를 계급 모순의 한 발현태로 해명하려는 시도 역시 권력 관계의 상상적 모델로서 작동하는 '가족'의 메커니즘을 해명할 수 없다."(권명아,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중에서)



그리 길지 않은 2장을 읽으면서 많은 질문을 던진다. 한국에서 멀리 있다는 이유로 어찌 보면 조금은 객관적인 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요즘은 매우 자주) 한국의 세태가 부끄럽고 때로는 (특히 누가 욕하려 할 때) 편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뿌리깊이 박힌 '민족'주의 때문일까. 국가란 나에게 무엇인가. 국가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성인 나에게 국가는 지금 어떤 의미인가. 나는 국가에 무엇인가. 국가에 대한 환상은 어떻게 해야 깨어질 수 있는 것일까. 공적 영역에서 여성이 '남성화'되지 않고 행위주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추상적인 질문들을 어떻게 하면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꿀 수 있을까.


+ 막 던져보는 질문 


* "많은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여성이 무슨 억압을 받는다고 그래'라고 하면서 오히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거론한다."(62) "가부장적인 한국사회가 보기에 여성들은 차별받는 집단이 아니라 이기주의에 빠져있는 집단이다."(63)

-> 이 책이 씌어진 10여 년 전에도 이랬다. 지금도 그렇다.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을 한방에 깨부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가끔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정말 현실인가 싶을 때도 있다.


*"사실 일부일처제는 남성을 길들여 가정화(혹은 가축화domestication)하려는 여성들이 이루어낸 하나의 성취라고 볼 수 있다."(64) -> 동의하는지? 이 관점에서 일부일처제를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참고 : 초판 1쇄와 초판 3쇄 책의 문장이 다르다. 내 책은 초판 3쇄. 3쇄가 1쇄보다 더 강경...?)


* '불륜'에 대한 지금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단어를 대체할 새로운 단어가 있다면? 대체해야 하나? 없애야 하는 단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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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07 21: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0년전의 현실이나 지금의 현실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 현실을 옹호하려는 이상한 논리들은 더 많아지고 더 강경해진듯요.
저는 저기 남쪽으로 튀어 처음 읽었을 때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아 국가 역시 이런식으로 유동적으로 생각할 수 있구나라는걸 막 실감나게 느꼈달까요?
물론 난티나무님 말씀대로 그가 일본에 살고있는 일본 국민이기 때문에, 또 진짜로 생계는 아내가 다 해결해주기 때문에라는 단서가 붙었지만요. ^^

난티나무 2022-09-08 19:17   좋아요 2 | URL
맞아요, 거꾸로 가고 있는... ㅠㅠ
어쩌면, 인터넷 가상공간이라는 곳이 더 큰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어요. 생각만 하던 것들을 가감없이 쏟아내도 아무렇지도 않은 공간... 말해지지 않았던 것들이 쏟아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렇게 보면 원래 그렇게 이상한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그런 분위기에 여러 모로 쉽게 편승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져있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상한 논리들이 부각되기 좋은 조건이기도 하죠...

소설은, 맞아요. 저도 비슷했어요.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런지^^ 좀더 비판적인 입장이 될 것 같기는 합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