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과 결혼하다 -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행복한 나라
린다 리밍 지음, 송영화 옮김 / 미다스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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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차 한 잔>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제목을 이렇게 달았었다. '부탄이 궁금해서 읽었건만, 책에도 나이가 있나보다.' 라고. 

이 책도 <히말라야에서...>에서 처럼, 부탄에 여행갔다가 부탄에 매료되어 봉사활동을 하고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부탄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한다는 내용으로 엇비슷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부탄 남자와 결혼하고 부탄에 뿌리를 내린다는 점이다. 

그런데 역시 이 책에도 나이가 있었다.  

지은이는 서른 아홉살에 부탄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서른 아홉이라는 상황은 마음을 비울 자세가 되어있다는 얘기다. 미국 태생이지만 나이를 먹어가는 건 우리네나 그네들이나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 어디를 가 보아도 사람 살아가는 거야 비슷하지 않던가. 

넌픽션을 읽는 재미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한 권 속에 담겨있어서 잠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 음, 리얼리티가 확보되니까. 

그러나 이 책에서 얻는 새로움은 별로 많지 않다. 

(241쪽) 몸무게는 14킬로그램이나 빠졌고, 부탄 가족을 얻었으며, 담배를 끊고 명상을 시작했다. 어디든 걸어서 가는 법을 배웠고, 사고방식과 태도도 미미하게나마 변했다. 더 적게 일하고, 더 적게 소유하고, 더 많이 소풍을 떠나는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게 꼭 부탄 같은 오지에 가야만 터득할 수 있는 깨달음인가. 이미 '어디든 걸어서 가고, 더 적게 일하고, 더 적게 소유하고, 더 많이 소풍을 떠나는 걸 실천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더러 있는 걸...

하여튼 이 책은<히말라야에서...>보다는 좀 더 '부탄스러운' 내용이어서 좋다. 부탄이라면 이 정도의 깨달음은 있어줘야지 싶다.  

 

** 진짜 중요한 얘기가 빠졌다. 부탄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부탄에 대한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은 되씹고 또 되씹어도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253)...이 나라의 궁극적인 목표로 민주주의를 공식화함으로써 자신(지그메 도르지 왕추크 왕을 일컬음)은 물론이고 자손들이 누릴 왕실의 운명은 뒤로 물러나고 만다.  

(255)...현재 이 나라는 전세계에서 국민에게 무상진료와 무상교육을 시행하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이 나라에는 다른 세상이 필요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 부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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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 2013-06-09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형마트도 미국자본의 패스트푸드도 서구식 놀이공원이 뭔지도 모르는 부탄남성과 결혼한 당신 성자다~!
 
[생각의 일요일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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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섬세하고도 은밀한 생각의 편린들을 읽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처음 책을 펼치기 전에, 9월에 읽고 싶은 신간 에세이로 추천할 때까지도 이 책은 읽기에 그닥 부담스러울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소설가의 작가 노트 비슷한 내용이지 싶어 책장이 술술 넘어갈 듯 싶었는데 생각보다 손에 책이 잘 잡히지 않았다. 뜸을 들인 시간이 좀 길었다. 후반부쯤 읽었을 때는 책 읽기를 중단하고 대충 리뷰를 써도 크게 다를 것이 없겠다는 유혹과도 싸워야 했다. 짤막짤막한 손바닥만한 글들의 모음집이라서 그에 대한 반응도 짤막짤막한 단상이 주를 이룰 것 같았다. 

한마디로 이 에세이집은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이렇게 변명삼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책의 끝무렵쯤에 나오는 작가의 다음 글을 보고야 나의 이 불편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는데, 

(319쪽) 가끔 내 인생이, 독선적이면서 내 소설을 한 편도 읽지 않은 사람과의 기나긴 문학 토론이 될 것 같은 우울한 생각이 든다. 

'독선적이면서 내 소설을 한 편도 읽지 않은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닐까 싶어서다. 나는 그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다. 언제부터 소설을 잘 읽지 않는 건조한 생활에 접어들었지는 기억이 가물거린다. 언제부턴가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바로 그 시점이 소설을 멀리한 시점이 아닐는지.  

하여튼 그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소설에 관련된 수많은 섬세한 이야기의 편린들이 내게는 낯선 언어로 다가왔고 한편으로는 불편하게 다가왔다. 은밀한 속삭임에 쉽게 빠져들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내 감상일뿐 실제로는 그의 아름다운 문장들에 넋을 잃기도 하여 여기저기 포스트잇을 붙여놓지 않을 수 없었다. 매력적인 부분이 참 많았다. 이를테면, 

(275) 실제 있었던 일을 소설 속에 그대로 옮겨놓으면 다른 건 컬러이고 그것만 흑백인 것처럼 이상해 보여요. 

(77) 나는 불리한 내 삶을 책임지면서 살 뿐이야.이런 불리한 조건으로 굳이 시스템 안에 들어가서, 불량품이라고 모멸받으며 살고 싶진 않아. 내가 졌다거나 굴복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줘. 피한 것도 아니야. 나는 내 방식대로 삶을 선택한 것이고, 거기 당당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 

이 책이 불편했던 이유가 또 생각났는데...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일기장이나 수첩을 슬쩍 엿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굳이 그 속 깊은 생각을 알고 싶지 않은데 끝까지 그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기분 같은 거. 

그의 소설을 한 편도 읽지 않으면서 독선적이기까지 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무례한 독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 작가는 소설이란 그 글을 쓰는 시간이나 공간에 영향을 받는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마침 이 책을 다 읽고 집어든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에는 이런 글이 있어서 잠시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230) 오웰은 제대로 된 서평이 작성되기 위한 조건으로 최소한 분량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서평자가 서평을 의뢰받은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정통하다고 간주했을 때, 적어도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15매는 주어져야 한다.  

이 부분을 읽고는, 아무리 아마추어라고는 하지만 한 권의 책에 대해서 얼마 안 되는 분량의 글로 그 리뷰를 작성한다는 게 참 무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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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알라딘 무료 문자메시지 서비스를 잘 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문자보관함까지 있다. 다음은 나의 일상적인 문자 생활 모습이다. 물론 나의 무능을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8월 29일 : 00 , 주번학급 봉사활동 불참,5교시 무단결과, 다른 반 학생과 시비,교과서 찢어서 던지기..놀부 같은 하루를 보냈답니다. ......( 이 녀석은 전교에서 짱으로 불리는 거물급 말썽꾸러기이다. 아이들 조용히 시킬 때는 나 보다 더 잘한다.)

8월 31일 : 00, 청소도망, 도대체 준법정신이란게 전무하네요. 녀석한테 기대할 게 없다는 게 슬프네요. 벌점 때립니다. ....( 위의 짱 녀석으로 청소는 우습게 여긴다. 부모는 멀리 떨어진 도서지역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대입 재수생인 형이 전적으로 부모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부모의 보살핌 없는 야생 내지는 방목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

9월 2일 : 00, 말을 조심하지않고 뱉어내는 습관때문에 오늘 제게 혼났습니다. 매일 이런 상황의 반복이어서 피곤하고 지도가 어렵습니다....( 이 녀석은 1학기 때 식판을 2~3주 동안 사물함에 넣어두었다가 발각되어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녀석인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대거리하다가 결국은 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한다. 상대방 생각을 해 본 적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적 없단다. 어릴 적 부모이혼으로 인한 충격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 내지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9월 7일: 00,교실 바닥과 벽에 침 뱉는 버릇이 고쳐지지않는군요. 바른 모습을 늘 기대하지만...( 역시 위의 짱 녀석이다. 일 년 내내 고치지 못하는 버릇이다. 물론 담배 탓이다.)

9월 7일: 000, 교복 속에 흰색옷을 입을 수 있도록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수업 시간에 엎드려자기 일쑤. 자지 말라고 하면 '수업을 재미있게 해야 안'자지 재미도 없는데 어떻게 안 자냐고 목에 핏발을 세워가며 따지는 녀석이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남에 대한 배려 같은 거? 해본 적 없다. 색깔 티 입는다고 늘 지적을 받아도 끄떡하지 않는 강심장이 녀석이다. 중1짜리의 심성이 너무나 거칠다. )

9월 8일 : 00가 교과서가 없어서 수업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고정 멤버가 여럿 있다. 오히려 책이 없어서 즐거운 인생들이다.)

 

때때로 선생도 학생에게서 상처를 받는다. 이런 문자메시지의 목적은 학부모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녀 교육을 학교에 전적으로 맡겨버리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종종 놀란다. 감당하기 버거운 책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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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변화무쌍한 나라에 살아서 그런가. 내 마음도 덩달아 늘 변화무쌍하게 바람을 탄다.  

읽고 싶은 신간에세이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땐 나름 즐겁더니 이제는 그 기분도 시들시들해진다. 내가 거론한 책들이 그간 별로 선택을 받지 못해서인가. 이번에도 별 기대감없이 몇 권을 뽑아보지만 누군가 내 손을 들어주리라고는 애초부터 마음 먹지 않기로 한다.  

 

나는, 꼭 행복해야 하는가. 나는, 꼭 남들처럼 살아야 하는가. 나는, 꼭 조직에 충실해야 하는가. 나는, 꼭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가. 나는, 꼭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야 하는가. 나는, 꼭 나다워야 하는가...이렇게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나요? 

 

 

 

 

나는 이 분을 볼 때마다 우리 큰 오빠가 생각난다. 몸집도 비슷하고 몸 재주 많은 것도 비슷하다. 얼굴은 우리 오빠가 조금 더 잘 생겼는데...때를 만나지 못했다. 그보다 꿈이 없었다. 이 분의 꿈을 엿보고 싶다. 

 

 

 

 

산 속에서 사는 사람들 얘기도 궁금하지만 세상을 무대 삼아 걸릴 것 없이 사는 사람들 얘기는 더욱 매혹적이다. 잠시 고민해본다. 산 속에서 살까, 세계를 무대로 누빌까. 이 두 세계를 한꺼번에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하여튼 재밌을 성싶다. 

 

 

 

 

 

그래도 아직은 세계를 누비고 싶다. 온갖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꿈을 아직도 꾸고 있다. 

 

 

 

 

 

기행집이다! 그래도 사람 얘기가 제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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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1초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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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한 초 한 초들이 꽃다발을 들고 다가와 다정하게 인사하고 다시 손을 흔들고 가는 곳', 인도의 산티니케탄. 시인 곽재구가 생의 어느 나날들을 아름답게 보낸 곳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흔적의 기록이다. 

나는 이 시인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그의 유명한 시집이 <사평역에서>라는 건 알고 있지만 내 손에 잡아본 적은 없다. 어떤 책을 읽게 되는 것도 인연이어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내 게으름에 대한 핑계일 뿐, 나는 이 <우리가 사랑한...>을 읽으면서 이 시인을 지금껏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몹시 속상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난 도대체 이런 시인도 몰라보고 어디에 정신을 팔고 살았는지, 를 잠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나도 한동안 여행에 빠져 있었고, 인도에 빠져서 수십 계절을 앓고 지냈다. 아, 과거형이 아닌데... 지금도 늘 떠날 궁리를 하고 있고 인도가 늘 그립다. 곽재구 시인이 산티니케탄에서 보낸 시간을 1초 단위로 사랑하는 것의 무게만큼 나도 인도에서 보낸 얼마 안되는 시간들을 되씹고 있으며 그후 인도를 그리워하면서 보낸 숱한 나날들이 후유증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산티니케탄. 지지난 번 인도 여행에서 콜카타에 머물 때 산티니케탄을 생각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곳을 한나절 일정으로 돌아보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보여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언젠가 기회를 노려보리라, 다짐하면서.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과연 그곳을 갈 수 있을까? 그곳에서 음악이나 시에 빠져서 한 세월을 보낼 수 있을까? 일 년, 아니 한 달만이라도 그곳에 머물러 볼 수 있을까? 서러움 같기도 한 서글픔이 이슬비처럼 가슴을 적셔왔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그리워하는 건 내 지병 중의 지병이다. 

술도 안 마셨는데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취기가 절로 솟는다. 곽재구 시인 때문이다. 산티니케탄 때문이다. 산티니케탄에서 540일 보낸 이야기 때문이다. 시인이 사랑해마지않는 꽃 이야기 때문이다. 열 아홉 번째 생일을 열차 안에서 맞은 어린 여행자의 이야기 때문이다. 인도 여인의 옷, 사리 이야기 때문이다. 

19살 어린 여행자....(141쪽) 7월이었습니다. 7월의 인도 슬리퍼 열차 안이 얼마나 무덥고 얼마나 절망적인지 타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같은 열차 칸에 탄 모든 이들에게 짜이를 한 잔씩 돌렸다는군요. 아침에 돌리고 점심에 돌리고 저녁에 돌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바위에게 다가와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습니다. 열아홉 살 어린 여행자가 자신의 생일을 기념한 이 방식에 대해 나는 경탄과 찬탄을 금치 못합니다.  

인도 여인의 옷, 사리....(335) 자연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삶의 또다른 신성한 이유를 말하기 전 인도인들이 선택한 것이 사리의 빛깔 아닌지요. 이건 현실이 아닙니다. 꿈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살아오면서 눈과 가슴이 이렇게 깊이 함께 뛰고 열락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햇살과 바람 속을 펄럭이며 긴 사리의 행렬이 지나갈 때 나는 잠시 하늘의 음악을 듣습니다. 하늘의 이야기와 하늘의 꽃향기를 맡습니다. 

첫 인도 여행에서 구입한 빨간 사리 한 벌을 나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입어본 적이 없다. 옷으로 입지 못하면 커튼으로라도 쓰지 뭐, 생각하고 사온 사리는 그 강렬하고도 고혹적인 천상의 색깔 때문에 일상적인 사물들과는 절대로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을 내내 깨달을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이야기는 시인이 타고르의 시를 번역하기 위해 산티니케탄에 머물었다는 것이다. 뱅골어를 배우기 위해서이다. 타고르...이 부분은 애초에 말하지 않는 게 좋을 성싶다. 곽재구 시인도 몰라봤는데 타고르를 어이 알리. 20여 년전 문고판으로 읽은 타고르의 시가 아직 내 마음에 남아있을 리도 없고. 그저 곽재구 시인이 번역한 타고르의 시를 접하고 싶을 뿐이다. 그전에 <사평역에서>를 먼저 읽어야겠다. 내가 좀 더 성의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시집 먼저 읽고 이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텐데... 

가슴 떨리게 읽은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차분한 시선으로 쓴다는 건 어렵다. 그리고 인도가 아닌가. 그러나 인도인들의 맨발에 대한 다음 부분을 읽고는 나는 드디어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297) 처음엔 이 맨발이 무척 불편했습니다. 아낙들이 뜨거운 아스팔트 길 언저리를 걸어갈 때나 나이 든 이가 감자 자루를 어께에 걸치고 힘들게 걸어갈 때.....나는 인도의 능력 잇는 신들이 저들에게 샌들 하나씩을 나눠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요....인도 생활 일 년이 지난 뒤부터 나는 이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인도인의 까만 발은 인도의 자연과 역사가 빚어낸 자연스러운 삶의 문양이라 여기게 된 것입니다....나 또한 가능하다면 이들처럼 맨발로 걷고 싶습니다...그런데 이게 참 잘 안 되는군요. 신발만 벗으면 될 터인데 맨발로 사람들 속을 걷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신발만 벗으면 될 터인데' 사람들은 절대로 쉽게 신발을 벗을 수 없다. 퇴근 길에 생태공원을 맨발로 걷노라면 사람들은 대개가 내 맨발에 놀라거나 이상하게 생각한다. 신발을 벗는다는 게 실은 각 개인에게는 자신에 대한 혁명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감히 말하건대, 절대로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인도에서는 사원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심지어 양말도 벗는 경우가 있는데 처음에는 그게 무척이나 낯설고 황당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거듭할수록 묘한 매력 같은 게 느껴지면서 나중에는 자연스러움에서 오는 쾌감의 경지까지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인도 여행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맨발로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맨발로 걸어보면 다른 세상을 알게 된다. 맨발로 혹 고질적인 무좀을 완치한 경험이 있다면 세상은 더욱 달리 보인다. 무좀 치료를 하는 피부과의 진료 행위가 사실은, 진실을 은폐한 상업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경험으로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인도인들의 맨발을 우리의 잣대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게 된다.  

 

참으로 아름다운 책을 읽었다. 산티니케탄이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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