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가의 꿩은 열 걸음 가서 한 번 쪼아 먹고, 백 걸음 가서 한 번 물 마신다. 새장 안에 갇혀 길러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비록 왕 같은 대접을 받는다 해도, 마음이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192쪽)

 

 

 

 

 해설은 이렇다.

 

'모든 존재자는 각기 나름의 고유한 본성을 지닌다....(중략) 물고기는 물속에 있을 때 자유롭고, 새는 창공을 날고 있을 때 자유롭다. 바로 그런 환경, 즉 자득지장에 거할 때에야 비로소 모든 존재자는 자신의 본성을 자유롭고 활달하게 실현하며 생명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중략)

 세상에는 혼자 묵묵히 무언가를 연구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여러 사람들을 두루 만나며 사업을 도모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작더라도 '자기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넓은 무대에서 이름을 떨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또 물질적인 부를 누려야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신적인 부유함을 더 중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의 삶이 안쓰럽게 보인다고 해서 그 반대의 행복을 안겨주려 한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되레 큰 고통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결국 자신의 본성에 어울리는 곳, 자신의 마음이 편한 곳에 거해야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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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0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사진이 넘 멋져요~

nama 2018-09-07 06:59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산책하며 종종 보곤 하는데 사진으로 담기에는 역부족이랍니다.
 

 

류이치 사카모토.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848503.html

 

 

영화 <남한산성>에 흐르던 음악을 작곡한 사람. 이 사실도 최근에 알았으니 이 분에 대해서 감히 알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거의 백지 상태에서 이 작곡가의 전시회를 보러갔다. 전시회? 이걸 전시회라고 해야 하나?

 

수조에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파동으로 미세하게 퍼져나가는 물의 흐름, 천장에 매달린 수조에서 연출되는 현란하면서도 원초적인 빛과 물의 세계, 음악이라고 할 수 없는 궁극의 사운드...이런 것들을 전시하고 있으니 전시회는 맞는데 단순하게 전시회라고 하기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본의 가레산스이 양식의 정원이 내내 떠올랐다. 물을 사용하지 않고 모래와 돌 등으로 산수의 풍경을 표현하는 정원 양식으로, 대표적인 곳으로는 교토의 용안사가 있다.

 

 

 

물 없이 물을 상상하는 공간이 가레산스이 양식의 특징이다. 물은 없지만 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특이한 공간이다.

 

 

어제 본 류이치 사카모토의 어떤 작품에는 오롯이 물만 있었다. 캐고 또 캐어든다면 이 예술가의 물을 향햔 천착이 이 가레산스이 양식과 닿아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이다.

 

 

그건 그렇고.

제약회사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피크닉'은....멋진 곳이다.

 

 

 

피크닉 입구

 

 

 

 

 

 

 

피크닉 옥상에서 바라본 하늘

 

 

 

피크닉 옥상에서 바라본 남산 타워.

 

 

 

소리의 끝, 물의 끝, 그리고 빛. 잠시 속세를 벗어나 원초적인 세계에 젖어들다 온 것 같다.

 

 

하나 더.

점심 무렵이라 끼니를 해결하고자 이 동네에 있는 허술한 밥집에 들어갔다. 대부분 5,000원 내외의 저렴한 가격의 음식이지만 깔끔하고 맛도 좋았다. 15,000원 하는 전시회 입장권이 무섭다면 밥은 이곳에서 해결해도 좋을 듯하다. 회현역 4번 출구에서 피크닉이 있는 언덕을 향해 올라가다보면 오른편에 있다. 동네분이 적극 추천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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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9-0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어제 류이치 사카모토 다큐멘터리 봤는데 좋더군요.
그거 보기 전에 전시회부터 가 보라는 사람도 있던데
전시회가 좀 특이한가 봅니다.

피크닉이 회현역이 있나 보죠?
가보고 싶긴 합니다...^^

nama 2018-09-06 15:50   좋아요 0 | URL
영화 보셨군요. 보고 싶긴한데 접근하기가 쉽지 않네요.
전시회가 좀 특이하긴 해요. 바닥에 앉아서 보기도 하고, 누워서 보기도 해요.
누워서 보다가 깜빡 잠이 들기도 하고요.^^
재밌습니다.
 

 

폭염이 한풀 꺾이고나니 이젠 좀 걸을 만하다. 걸을래? 책 읽을래? 묻는다면...일단 걷고본다.

 

 

 

 

 

일주일간 읽은 책 리스트 대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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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길에서 만난 세계사
정은주.박미란.백금희 지음 / 창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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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송도 중고매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얼마전 실크로드에 며칠 다녀왔더니 눈에 들어오는 게 그쪽 관련 책이다. 확실해진 건, 이제 실크로드 책이 머리에도 쏙쏙 들어온다는 것이다. 예전에 사놓고 못 읽었던 책들도 이제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책은 머리보다 몸으로 읽는 것이다, 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읊조리게 된다.

 

이 책은 꼭 무슨 교과서 같다. 교과서라면 좀 지긋지긋 한데(용서하시라!) 그래도 좋은 점이라면 기초적인 것을 건너뛰지 않고 조목조목 짚어준다는 것이다. 이 책이 대상으로 하는 독자층의 연령이나 수준이 좀 모호하지만 입문서로는 제격인 셈이다. 어렵고 복잡한 주제일수록 기초가 단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겨보게 하는 책이다.

 

이 글은 리뷰라기 보다는 이 책에서 얻은 것들을 흘려버리기 아까워 기록해두는 기록장에 가깝다. 아무려나 이렇게라도 남기지 않으면 망각의 강으로 빠르게 흘러가버리고말 것이다.

 

 

스키타이 이후 여러 유목민족들이 원대한 야망을 펼치며 초원비단길을 무대로 화려한 유목제국의 역사를 창조했다. 중국과 북방유목민족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진나라와 한나라 때는 흉노가, 수나라와 당나라 때는 돌궐과 위구르가, 송나라 때는 거란과 여진이, 뒤이어 몽골이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유목민족들은 교역과 정복이라는 양날의 칼을 휘두르며 유라시아를 호령했고 동서 교류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40 쪽)

 

 

멕시코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아카풀코에서 필리핀 마닐라로 이어지는 태평양길은 은을 통해 연결된 아메리카대륙과 구대륙의 본격적 만남이었다. 에스파냐는 태평양길의 교두보로 필리핀에 마닐라를 건설했다. 필리핀이라는 이름에는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2세의 나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마닐라에는 은을 가득 싣고 태평양을 건너온 에스파냐의 대형 갈레온선과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를 실은 정크선으로 북적거렸다. (중략) 마닐라는 태평양시대의 첫 태양이 떠오른 곳이다. (53쪽)

 

 

알렉산드로스제국 이후 등장한 프톨레마이오스왕조의 수도였던 알렉산드리아는 특히 도서관과 무세이온으로 유명했다. 도서관은 40여만 권의 장서를 보유할 만큼 그 규모가 컸다. 일설에는 그 규모가 70여만 권이라고도 한다. 무세이온에서 영어의 박물관이란 단어가 유래했지만 당시에는 일종의 학술연구소였다.(중략)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둘레를 처음 측정하고 유클리드가 <기하학원본>을 쓴 곳도 여기며 국왕이 기하학을 쉽게 배울 방도가 없는지 묻자, 유클리드가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란 유명한 말을 남긴 곳도 바로 이곳이다. (62쪽)

 

 

흉노인들은 자신들을 '흉' 또는 '훈'이라고 불렀으나, 중국인들이 이 말과 음이 비슷한 오랑캐흉(匈)자와 노예를 뜻하는 '노(奴)'를 붙여 흉노라고 불렀다. 또 몽골을 우매하고 답답하다는 뜻의 몽고(蒙古)라고도 불렀다. (133쪽)

 

 

흉노가 활약하던 고비사막 일대를 차량으로 이동하며 가이드의 성실하고 진지한 설명에 귀 기울이던 지난 여행이 잠시 떠오른다. 그 땅을 직접 가보지 않았더라면 '흉노'에도 '유목민'에게도 별 관심이 가지 않았을 터이다. 건조하고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사막에도 켜켜이 인간의 삶과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건 그냥 책으로만 읽는 것과 많이 달랐다. 책은 두 발로 읽어야 비로소 머리로 들어오는 것 같다.

 

 

정주문명권의 사람들은 유목기마민족을 항상 잔혹한 야만인이라고 기록했다. 흉노와 몽골을 표기한 한자만 보더라도 이런 생각이 짙게 배어 있다. 그러나 인류문명의 주류라고 자처하는 정주문명권이 저지른 학살은 유목민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중세 서유럽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살육, 그리고 근대에 인종차별과 식민지 개척으로 노예와 원주민들에 가해진 고문과 잔혹한 대량학살은 입에 담기 힘들 만큼 끔찍했다. 오늘날 세계를 둘러보자. 누가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는지.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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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년이 길지 그후 중학교, 고등학교 시기는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고들 그랬다. 그 긴 초등학교 6년 동안 학교의 행사는 얼마나 많고 다양한가. 입학식부터 운동회, 각종 현장학습 등. 저학년일 경우는 급식도우미, 청소도우미 등도 부모가 감당할 일이었다.

 

딸이 초등학교 입학식 때는 당연 가지 못했다. 담임을 맡은 나 역시 입학식이 있었고 내 아이보다 내가 맡은 아이들이 먼저였다. 딸이 저학년일 때 딱 한번 급식도우미로 참여한 적은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개교기념일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자식이 다니는 학교에 가는 게 왜 그렇게 가슴 떨리던지. 어떻게 담임 선생님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 지 그저 가슴이 두근거렸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가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도 직장에서는 다른 아이들의 선생인데도 입장이 바뀌니 그게 별 소용이 없었다.

 

6년 동안 한번도 현장학습에 따라가지 못했고 다만 운동회 때 어떻게 시간이 되어 두어 번 돗자리 펴들고 앉아보긴 했다. 당시 함께 사시던 시어머님의 정성어린 보살핌이 있었기에 모든 게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길고 긴 6년을 마치고 드디어 중학생이 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걸어서 5분 거리였던 내 근무지 학교는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 아이들이 선호하는 중학교였다. 우선 한 동네에 있었고 학교규칙이 비교적 융통성 있다고 소문이 나서 멀리서 일부러 오는 아이도 있을 정도였다. 드디어 내게도 때가 왔다. 초등학교 때는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면 나도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있으리라 내심 기대가 되었다. 부푼 희망으로 얼굴에 화색이 돌 즈음, 평소 입 바른 소리로 유명한 동료가 한소리했다.

 

"그거 알지? 부모와 자식이 한 학교에 다니면 민폐라는 거."

 

나도 마음 속에 걸리는 바가 없던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딸과 한 학교에 다녀본다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동료의 이 한마디에 바로 마음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결국 딸은 걸어서 30분 거리의 학교에 시내버스를 타고 등교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5분 정도 가볍게 걸어서 출근하고.

 

물론 그 입 바른 동료와는 지금도 이따금 만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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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5 14: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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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5 16: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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