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전경린의 네팔여행기. 10년 전 여행기를 읽는 건 철 지난 바닷가를 정처없이 거니는 것과 같다. 눈이 꽂히는대로 읽다가 마음이 머무는 곳을 찾아냈다.

 

<나는, 꼭 가지고 싶은 것은, 마음을 다해 가집니다.>

 

   경허 스님은 술을 좋아해서 즐겨 마셨다고 한다. 어느 날 술을 마시며 파전을 맛나게 먹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보던 다른 스님이 은근히 나무라며 자신의 무심함을 자랑삼아 말했다.

"여보게 경허, 나는 파전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또 그만이라네. 자네는 어떤가?"

"나는 파전이 먹고 싶으면, 장에 가서 파씨를 구해다가 땅을 갈아서 씨를 뿌리고 한철을 키워서 파가 자라면 밀가루와 잘 버무려서 이렇게 맛나게 부쳐 먹는다네."

   그러자 스님은 경허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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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만나서 동대문시장에 갔다가 지인의 지인인 화가의 전시회를 보러 갔다.

 

화가 김종숙. 이 전시회의 정보는 한겨레신문을 통해서였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679786.html

 

검색해보니 박기범의 아래 책에 삽화를 그린 분이었다.

 

 

 

 

 

 

 

 

 

 

 

 

 전시회장의 또 다른 방에서 <그 꿈들>의 삽화그림도 전시하고 있다.

 

그림은....짠하면서 힘찬 느낌이다. 매우 강하다.

 

카메라를 들고 있었지만 감히(?) 찍지는 않았다. 사람을 마주보며 아무런 허락없이 사진을 찍는 행위 같아서였다. 함께 간 친구들에게 지인에게서 얻어들은 화가의 이력을 대충 설명해주며 그림감상에 들어갔는데...친구들 마음에 그림이 박히기 시작했다. 잠시 후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서로에게 그림을 사라고 종용내지는 권유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화가에게 직접 그림을 사는 건 아니고 큐레이터를 통해서 사는 것이라는 친구A의 말에 따라 친구B가 담당 큐레이터의 명함을 얻어가지고 왔다. 건대앞에서 생선구이 식당을 하는 친구B는 전시회 그림중 <열갱이>그림을 마음으로 점찍고 있었는데, 평생 그림구입을 해본 적이 없은 처지들이라 이런 과정들이 너무나 멋적고 낯설어서 망설이기만 했다. 일단 전화나 해보자고 친구C와 내가 서두르자 친구B가 번호를 누르고 친구A가 통화를 시도했다. 결과는....직접 작가와 협의해보란다.

 

우여곡절 끝에 가격을 알게 되었는데...평생 그림 한점 사본 적 없는 소심한 우리들은 침만 흘리고 말았다는. 100만원 넘는 그림가격에 발발 떨어서야 어디 평생 그림 한 점 사겠는가.

 

그간 이런저런 그림 전시회를 다녀보았지만 그림을 사고 싶은 생각은 거의 한번도 들지 않았었다. 집에 걸어둘 공간도 없고 돈도 그렇고... 그러나 이 화가의 그림을 보고 강한 구매욕구를 느꼈다. 삶의 고달픔과 말 못할 슬픔이 붓질 하나하나 비늘처럼 박혀있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 아픔을 그려넣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너무나 강렬해서 내 슬픔이 알알이 떠오르다가 결국 눈물이 핑돌게 된다. 그런데 그림에는 또한 힘이 있다. 그게 슬픔을 이겨내는 힘인지, 힘을 내서 살아보자는 결의인지, 슬픔에도 힘이 있다는 역설인지는 모르지만 힘이 있는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묘한 매력이다.

 

질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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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1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1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ojin 2015-03-04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속도다` 전시회 후기 잘 읽었습니다.
˝질러보고싶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nama 2015-03-04 19:32   좋아요 0 | URL
전시회 제목이 `속초다`인데요....`강원도` 화가라는 게 중요한 듯싶어서요.
 

 

 

 

 

 

 

 

 

 

 

 

 

 

도서관에서 빌려서는 며칠째 가방 속에 넣고 다니다가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학교는 2월이 연말이고 3월이 연시라서 좀 어수선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어제는 송별회가 있었다. 모든 작별은 감추어둔 외로움을 들춰내는지 외로움 실린 송별주 두어 잔에 위장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속이 쓰리다.

 

소설가 김탁환이 라디오에서 이야기했던 소설들을 글로 정리한 책이다. 그런 방송이 있는 지는 잘 모른다. 내게 라디오란 오전6시와 오후6시에, 아침밥 지을 때와 저녁밥 지을 때 잠깐씩 듣는 음악방송이 전부이다.

 

목차를 훑어보고 마음이 동하는 부분 먼저 읽는다. 놀란다. 이렇게나 좋은 소설들이 있었던거야? 하고. 늘 깨닫는 것이지만 내가 접하는 부분은 늘 한정되어 있다. 그래도 요즘은 책 꽤나 들춰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사실 별 게 없다. 한심한 건 아닌데 시원찮다. '분발'이라는 단어가 번뜩 떠오르지만 분발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는 이 한가운 마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구미가 당긴 소설은 그냥 보관함에 넣어둔다. 그런데 난 왜 이런 '책에 관해 쓴 책'을 찾아 읽고 있는가? 마음 한편에선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안 읽어도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달콤하다. 다이제스트격인 이 소설이야기에 빠져있다보면 나름 만족감이 생기나보다. 참을 수 없는 독서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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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새벽 6시 30분경, 119차량이 우리 아파트 옆동으로 출동했었다. 학원 가는 길에 그 장면을 보고 놀란 딸이 경비아저씨한테 물어서 두 명이 투신자살했다는 것을 전해 듣고는 급하게 내게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들려주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술 취한 아버지가 아들을 흉기로 찔러 중태에 빠진 아들이 쓰러져있던 것이고, 그후 바로 자기집으로 올라간 아버지가 투신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저녁, 택배를 가지러 가며 경비실 아저씨꼐 새벽의 사건을 여쭈었더니 말씀을 아끼신다. 같은 아파트에 살며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는 상황이란.....이웃에게 물어볼 일을 인터넷으로 물어보는 세상이란....

 

출근길에 그 옆동을 늘 지나다니는데 앞으로 한동안 이 사건이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닐 터이다.

아무리 만취가 되어도 자살을 그렇게 쉽게 하지는 못한다. 그 말 못할 상황 속에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이웃분이 자꾸 떠오른다.

 

어제 우연히 검색하게된 아래의 책. '살인과 자살을 함께 보아야 하는 이유'라는 소제목에 자꾸 눈이 간다.

 

엇그제의 투신자살 내용도 잘 모르고, 이 책도 읽지 않아 책 내용도 잘 모르지만, 어쩐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을 읽게될까? 괴롭고 두렵다.

 

내 가족의 생명을 구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정치를 바꿔라. 수십 년간 폭력 문제를 연구해 온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어느 날 통계를 분석하다 기묘한 수수께끼에 부딪혔다. 그가 분석한 자료는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자살률과 살인율 통계였다. 한 세기 동안 일관되게 자살률과 살인율이 동시에 높이 솟구쳤다가 동시에 급격하게 떨어졌던 것이다.

대체 왜 자살률과 살인율이 같이 움직이는 걸까? 그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눈에 뻔히 보이는 곳에 숨어 있었던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보수 정당, 즉 공화당 출신이 대통령이 될 때마다 온 나라가 자살과 살인이라는 ‘치명적 전염성 폭력’으로 고통 받는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인구로 계산하면, 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할 때보다 공화당 대통령이 집권할 때 자살자와 타살자가 11만 4,600명이 더 많았다.

자신의 발견에 놀란 저자는 이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 다각도로 검증했다. 지난 100년간 미국의 인구 변화와 실업, 불황, 불평등 같은 경제적·사회적 변수의 상관 관계를 보여주는 각종 통계와 기존 연구 성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집권 정당과 자살률·살인율 사이에 명백한 인과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알라진 책소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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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의 <고별연>

 

새해 담배를 끊었다.

값이 올라서도,

건강이 나빠져서도 아니다.

세상이 담배 피우는 사람을 미개인 보듯 하고,

담배 피울 곳이 없어

쓰레기통 옆이나 독가스실 같은 흡연실에서 피고 있자니

서럽고 처량하고 치사해서 끊은 것이다.

잘 가라, 담배여. 그동안 고마웠다, 나의 연차여.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74807.html )

 

1. 예전 우리 아버지는 식후에 밥상머리에서 담배를 피우셨다. 나는 담배연기가 내 쪽으로 오면 인상을 쓰고 얼굴을 돌리고 손으로 연기를 휘저을지언정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옆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얘는 담배냄새 싫어해요." 그러면 아버지는 몇모금 더 빨다가 밥상에 놓인 재털이에 담배를 비벼 끄셨다. 연례적인 행사인 금연 결심 때마다 재털이를 내다버리곤 하셨지만 60살이 훨씬 넘어 병이 들어서야 겨우 담배를 끊으셨다.

 

초등학교 2학년 봄소풍 때.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담임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챙겼는데 다름아닌 담배 2곽이었다. 선물은 포장지에 싸야 한다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쭈삣거리며 선생님께 담배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내 또래쯤 되셨던 선생님은 아저씨와 할아버지 중간쯤 되는 늙고 흐뭇한 표정으로 선뜻 담배선물을 받으셨다. 화창하게 햇빛이 비추던 60년대 말 어느 봄날이었다.

 

개인별 컴퓨터도 칸막이도 없던 90년대 중반까지도 교무실 책상 위에는 담배 재털이가 있었고 남교사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실내를 두둥실 떠다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까지도 흡연의 천국이었다, 우리나라가.

 

결혼을 했더니 이번엔 아버지 대신 남편이 피우는 담배 때문에 간접흡연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그러나 남편에게 금연을 권하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길에서 남편이 담배를 물기 시작하면 나는 미리 몇 미터 뒤나, 냅다 뛰어 앞질러서 걷고는 했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까칠하게 구는군'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21세기가 시작되던 1월 초, 남편이 단번에 담배를 끊었다.(금연 후 비로소 내가 까칠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나...) 물론 보건소의 무료금연프로그램을 충실히 따른 결과였다. 그런 사위를 보고 우리 어머니는 "독하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연이은 금연 실패만을 경험하신 어머니에게는 경이로운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지금도 종종 거리나 건물 주변에서 흡연하는 사람들 옆을 지나갈 때면 인상부터 구겨지곤 한다. 나의 오래된 습관적인 반사작용이다. 담배냄새는 정말 역겹고 지독히도 싫다. 그러나...

 

담배 피울 곳도 마땅치 않아서 무슨 죄지은 사람마냥 겨우겨우 담배 피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비난보다는 연민이 앞선다, 요즘은. 욕은 욕대로, 조롱에, 미개인 취급에, 계급까지 매겨지고 더불어 드높은 세금까지 지불해야 하니 흡연이 무슨 죄라도 되는지....정말 담배 생각나겠다.

 

2. 어떤 단어나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고 몇 시간이나 다음 날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댬배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방금 생각났다.

 

담배 피우는 모습이 유달리 멋진 남자가 있다.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일 때의 간절한 눈빛, 담배를 한모금 빨아들일 때의 달콤한 표정,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 살짝 각도를 옆으로 기울인 머리와 멍하고 흐린 눈빛, 멀리 던진 시선에서 느껴지는 고독. 찰나의 순간마다 변하는 변화무쌍한 다양한 표정에 삶의 희열과 인생무상이 동시에 녹아있는, 그렇게 멋지게 담배를 피우는 남자가 있다. (여자는 모르겠다. 남자교사들이 교무실 책상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울 때 여자교사들은 화장실에서 몰래 정말 아무도 모르게 담배를 피워야하는 세상에서 여성흡연가들의 멋진 폼을 기대하는건 무리다.)

 

요즘처럼 움츠리고 숨어서 죄인같이 흡연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니 안타깝다고나 해야할까. 폼도 나지않는 흡연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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