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글이 실린 생애 첫 책을 버릴 수 있다? 없다?


버린 얘기 먼저.



고1 때의 교지에 내가 쓴 독후감이 실렸었다. 여름방학 과제로 <사씨남정기>를 읽고는, 숙제라는 게 그렇듯 마지못해 썼는데 덜컥 상을 받고 교지에도 실렸다. 당시 국어선생님이 가르치던 고전소설의 특징 같은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아마도 국어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가르친 요점을 내가 쓴 글에서 한두 문장쯤 발견하고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 선생님의 조용한 미소가 떠오른다.


4년 후, 당시 절친이었던 친구가 재수 끝에 법학과에 들어갔는데 교양국어 과제물로 독후감이 필요하다며 내가 썼던 글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때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던 저 교지를 빌려주었는데 결국 돌려받지는 못했다. 유달리 약골이었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잘 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신문 광고로 찾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문체라고 할 것도 없는 글. 50년 전의 글이 고전적(?)이다 못해 고루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세로줄 쓰기까지 한몫 한다.


잊고 있었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이렇게 복원한 것은 또 한 명의 절친 덕분이다. 이 친구는 가족을 따라서 남미로 이민을 가게 되어 고등학교를 중퇴했었다. 그곳에서 5년을 살고 다시 역이민으로 돌아왔는데 그 와중에도 저 교지를 잘 간직했다. 이유는, 그 친구의 수필 한 편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리라. 재활용에 관한 관제(?)성 글이었지만(학교에서 글쓰기의 문제점) 글이 정갈하고 여운이 있는 수작이었다.


발간된 지 50년이나 된 고등학교 시절 교지를 간직했던 친구는 이제 책 정리를 하고 있다. 쌓기보다 버려야 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망설이고 있다.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책의 흔적을 이렇게 남기는 건, 책을 버리는 것일까, 남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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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3-18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나마님 연세가....ㅎㄷㄷ

nama 2026-03-18 19:46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노닥거린 지도 20년이 되어가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같은데...믿기지 않는 나이가 되어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