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遺稿) 작품을 읽는 건 쓸쓸한 일이다. 이제는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감상에 젖어들게 한다. 따지고보면 같은 하늘 아래에 살고 있지만, '이제는 더이상' 만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죽은 사람들보다는 무관심하게 버려진 사람들을 더 기억하고 내 정성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해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내내 그리워하면서도, 요양병원에서 홀로 늙어가는 어머니를 가까이 모시지 못하는 것. 모순이랄 수밖에. 부끄러운 모습이다.

 

정현욱, 이라는 사람의 유고 여행기를 읽었다, 기 보다는 만져보았다.

 

 

 

 

 

 

 

 

 

 

 

 

 

 

서른 셋의 나이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건 슬픈 일이다. 그 슬픔으로 이 책을 만들었는데, 주로 일기체의 글과 사진이 실려 있다. 꼼꼼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의미있는 책이 되겠지만 아무런 친분도 없는 사람들에게 크게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일이 그렇게 재밌지도 않다.

 

이 책을 읽다가 옛 친구의 유고시집이 떠올라 올려본다.

 

 

 

대학교 4학년 때였으니 우리 나이로 23살. 졸업을 몇 개월 앞두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과동기생의 유고 시집이다. 한창 취직시즌이었는데 돌연 자신은 '쓸모없는 인간' 같다며 생을 마감한 친구다. 취직이 힘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었는데...사실은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무도 모른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책 머리에'의 글을 지금 살펴보니 지도교수이자 영시를 가르쳤던 김복련교수님이 쓰셨다. 평생을 독신으로 사시다가 (한 깔끔하셨다.) 고인이 되신 지도 벌써 꽤 되었다. 읽다보니 조금 울컥했다. 이 분은 또 누가 기억해주나 싶어 잠시 옮겨본다.

 

  졸업을 눈앞에 두고 어느날 홀연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를 애통해하는 학우들이 고인의 일기장과 필기장 여기저기에 감추어진  채 흩어져 있는 글줄들을 한 자리에 모아 한 책자로 형상화함은, 세상에 내놓아 보겠다는 뜻이 아니라, 다만 각자의 손으로 만지고 잡음으로써 잃은 것을 완전히 다 놓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지극히 당연한 마음이라 수긍된다.

  친구들을 극진히 사랑했고 또 사랑받으며 그들과 어울려 이야기할 때의 즐거워하던 그 모습, 야무진 데도 없었고 욕심의 티도 없었고 허허로우리만치 키와 눈이 큰 소탈한 행동인, 언제나 행사 선두에 서서 '휘청거리'던 그 겉모습 외에는, 싯귀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였다는 것 정도가 이 선생이 학생을 관찰한 전부였다. 그 선생의 우둔과 태만을 이 자리에서 고백해 본들, 제자의 유고를 받아들고 읽어내려가는 그 눈길이 흐려지고 가슴이 바스러짐을 느낀다 한들, 그 태만과 부끄러움을 어찌 보상할 수 있겠는가?

 

고인들을 추모하는 페이퍼가 되버렸다.

정현욱, 내 학과친구 윤미원, 영시의 세계를 열어주셨던 김복련 교수님.

누군가는 계속 기억해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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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1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1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1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a 2015-03-2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고, 오늘은 아침부터 이런 글을 쓰더니만 끝내 부고가 날아왔다. 엄마 바로 아래 동생인 이모가 돌아가셨다. 학창시절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인천주안에 사시는 이 이모한테 가고는 했었는데, 이종사촌동생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늘 우리 엄마의 안위를 걱정해주셨는데 우리 엄마보다 앞서 가셨다. 훨씬 더 건강하시려니 생각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