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
김경미 지음 / 영언문화사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불행한 과거를 가진 가은은 그 과거를 떨쳐버리고 싶어한다. 가슴 한 켠에는 일말의 죄책감을 안고 말이다.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건우가 약혼식날 교통사고로 죽어버릴 줄 몰랐던 그녀는 그 때까지만 해도 엄마가 없어도, 아빠가 없어도 마냥 행복했다. 건우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이었고, 연인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아무 말 없이 저 머나먼 곳으로 떠나버렸다. 가은은 제 손으로 그를 바다에 뿌렸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4년 동안, 가은은 슬픔과 무관심이라는 두 표정으로만 살았다. 어떤 말도, 어떤 장면도 그녀를 자극할 수 없었다. 오로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해 슬퍼하며 그 외의 일에는 무관심할 뿐. 자신을 버렸던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찾아도 아무 생각없을 만큼 철저하게 말이다. 그러나 긴 애도의 시간은 이제 끝이 났다. 홍콩 삼합회 청홍방의 일원인 양가의 가주 양천익에게 딸 양연화의 사망 소식을 전하러 홍콩으로 가면서 말이다. 그녀의 어머니였던 양연화는 그녀를 낳자마자 버렸다. 할아버지 품에서 자란 가은은 자신의 어머니가 남긴 유언을 따르기 위해 홍콩으로 가야했다. 자신을 버렸기에, 그녀도 연화를 버리고 싶었지만, 인륜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보다. 가은은 그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러 홍콩으로 갔고, 그녀의 가슴앓이를 끝내 줄 한 남자를 만났다. 이환. 청홍방의 우두머리. 로설의 남주답게 잘 생기고, 돈 많고, 카리스마 있고, 냉소적이다. 철저한 포커페이스인 그와 가은은 단 한번의 만남으로 서로를 서로에게 각인시켰다.

한창 집안 싸움 중인 이환에게 가은은 군침 도는 미끼였다. 그녀를 이용해 내부 반란의 싹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그는 그 패를 자신의 영역에 가두어 두었다. 덤으로 그녀의 영혼까지 가져갈 속셈으로 말이다. 그러나 가은은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좀체 마음의 빗장을 열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환은 철저하게 그녀의 내부를 무너뜨려 결국 과거를 토해내게 했고,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할 상황까지 왔으나, 한순간 판단의 실수 혹은 오기로 인해 그녀를 보내줄 수 밖에 없었다. 미끼였던 그녀를 그 역할로 밀어붙인 것. 생각처럼 쉽게 그녀를 구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가은의 사촌 언니인 가영과 석현은 마음에 드는 조연들이었다. 사마홍과 가영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석현과 이환은 동류의 남자다. 그래서인지 석현의 사랑 이야기도 기대해 볼만하다. 자, 다음 이야기도 들려 주실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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