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 > 분석-북한 핵보유 선언의 의도

 

 

"북미 갈등 조기 종결을 위한 협상 카드"
분석 - 북한 ‘핵보유 선언’의 의도는?

 

김종성 jkim0815@nate.com

 

설날 연휴의 마지막인 10일 오후,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성명이 국제사회에 충격과 당혹을 안겨 주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평양중앙통신 을 통해 ‘핵 보유’를 선언하는 성명문을 발표한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성명문은 다음과 같은 6가지 메시지의 전달을 의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을 상대로 북핵문제의 조기 종결을 요구한 것이다.
둘째, 미국 및 국제사회를 상대로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셋째, 미국을 상대로 대북적대정책의 포기를 요구한 것이다.
넷째, 미국을 상대로 협상의 여지는 남겨둔 것이다.
다섯째, 미국을 상대로 일본 강경파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던진 것이다.
여섯째, 한국 국민을 상대로 대북 일체성을 느끼도록 의도한 것이다.


그럼, 여섯 가지 사항에 관해 각각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1. 북핵문제의 조기종결을 요구한 것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제 또 다시 4년을 지금처럼 지낼 수 없으며, 그렇다고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4년 동안 반복할 필요도 없다”고 언급했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지난 4년간의 지루한 공방을 되풀이할 의사가 없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 북미간의 ‘휴전’을 제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4년간의 지루한 공방을 되풀이할 의사가 없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휴전’을 희망한다는 의미로도 들릴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의미로도 들릴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부시 행정부에 대해 ‘전면전을 원치 않으면 휴전을 하자’는 제의를 한 것이다.

북한이 이러한 요구를 하게 된 것은,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1기의 연장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11월 대선 이래 부시 외교라인의 동태를 예의 주시해온 북한은, 지난 1월 이후 미국 외교라인이 보여준 ‘이중적’ 행보에 일종의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미국이 1월 8일 이후 2차례나 의원단을 북한에 파견하는 등 한편으로는 유화적인 모습을 연출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대통령취임연설과 연두교서 등을 통해 강경한 모습을 연출했기도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1기 때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위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려 할지 모른다는 의혹을 가진 것이다. 외무성 대변인의 다음 발언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우리 제도의 전복을 목표로 한 새로운 이념 대결을 선포해 놓고도, 다른 한편으로는 핵문제의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책과 6자회담의 재개에 대해 염불처럼 외우면서 세계여론을 기만하려 들고 있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북핵종결 요구선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시 행정부가 처한 외교적 난국을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전쟁은 물론 아프카니스탄전쟁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 동맹국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한 사정을 백분 활용하여, 미국에게 일종의 ‘휴전’ 제안을 한 것이다. ‘북핵문제를 조기에 종결하지 않으면 동북아에서까지 미국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성명을 계기로 앞으로 일정 기간 동안 북미간의 ‘형식상’ 마찰이 빚어질 수도 있지만, 미국이 처한 입장을 고려해 볼 때 북·미 양국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결국에는 북핵문제의 ‘극전 반전’을 ‘연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북핵문제의 조기 종결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핵 보유’ 선언을 선택했다. 지금 시점에서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절묘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현 상황에서는, 북한이 핵 보유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간에 미국이 아무런 ‘손’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북한이 핵보유를 부정할 경우에 미국이 현장 검증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부시 행정부가 외교적으로 난처한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를 검증할 길은 없다.

그런데 그동안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 의혹을 제기해온 상황에서 북한이 핵보유 사실을 ‘인정’하고 아예 ‘핵보유국’ 선언을 해버렸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핵보유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이제까지 ‘북한에 핵이 있다’고 주장해온 미국이 이제 와서 ‘북한에 핵이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지금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가 ‘핵보유국’ 북한을 ‘응짱할 길도 없다. 만약 미국이 북한 ‘응짱에 나선다면, 그 승패 여하에 관계없이,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중동문제를 해결한다’는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그 근저에서부터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이 된 이상, 앞으로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예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향후 북핵문제를 마무리하는 어떤 합의서를 체결한다 하더라도, 그 합의서는 1994년 제네바합의서와는 차원을 달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1994년 제네바합의서는 ‘북한에 핵무기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유사한 합의서를 체결할 때에는 ‘북한에 핵무기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북-미 대결구도에서 북한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3. 대북적대정책의 포기를 요구한 것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우리는 6자회담을 원했지만, 회담 참가 명분이 마련되고 회담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인정될 때까지 불가피하게 6자회담 참가를 무기한 중단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회담 참가명분’과 ‘분위기’라는 것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1994년 제네바합의서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 포기를 약속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미국이 이 약속을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북한 침공계획인 ‘작전계획 5027’을 개정하면서 북한을 압박해왔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을 신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 그것이 북한이 4차 6자회담을 거부한 중요한 이유였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 발언의 핵심은 사실 ‘핵보유’ 선언이라기보다는 ‘적대정책의 포기’에 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북미관계의 최대 쟁점은 ‘핵보유 여부’가 아니라 ‘대북 적대정책’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북적대정책의 포기를 6자회담 참가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4. 협상의 여지는 남겨둔 것이다

외무성 대변인 성명은, 일견 강경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미국과의 협상 여지는 여전히 남겨두었다. 북한이 극단적인 상황을 원치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의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자위적 핵억제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입장과 한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최종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핵을 갖더라도 어디까지나 자위 목적이라는 점과, 대화 및 협상에 대한 의지가 여전히 강력함을 보여준 것이다.

북한은 한국과 같은 한민족이기는 하지만, 북한을 인식하는 시각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이 있다. 지금의 동북아 국제정세 하에서 북한은 엄연히 북-미 양강 구도를 이끌어가는 주도국가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북한 역시 이러한 양강구도가 깨지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한편으로는 험악한 북-미 대결구도를 ‘연출’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타협을 통해 대결을 완충하려는 역내 주도국가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앞부분에서는 모종의 극단적인 대결을 불사할 것처럼 암시했지만, 결국엔 사태가 험악해지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5. 일본 강경파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던진 것이다

여담이기는 하지만, 월드컵 예선에서 북한이 일본에 패배한 다음 날에 나온 이날 성명에서, 북한은 일본에 대한 강경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일본도 미국을 추종하여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다”면서 “이미 다 해결된 납치자 문제를 걸고 가짜 유골문제까지 조작하면서 북일평양선언을 백지화하고 있다”고 일본을 비난하였다.

그런데 전반적인 문맥을 볼 때, 이 성명문은 어디까지나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을 겨냥한 성명문에 대일(對日) 비판을 넣은 것은, 일본 강경파가 6자회담 순항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시사를 통해, 북한에게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일본 강경파 문제의 ‘처리’를 미국의 손에 떠맡긴 것이다.

일본 강경파의 존재는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에게도 일정 정도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 강경파의 독자적인 대북 압박이 미국의 대북정책 구도를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자는 최근 흥미로운 분석에 접한 적이 있다. 이미 국내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에서 활동 중인 북미평화센터 김명철 소장은 ‘NHK 외압 폭로사건’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서 볼 때, 이 사건은 일본 강경파를 정치적으로 제거하려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워싱턴 D.C.의 신뢰할만한 소식통은 “보도가 제한적으로 허용된 지난 1월 26~28일의 미 워싱턴국방대학 심포지엄에서 일부 패널이 ‘미국의 허락 없는’ 일본의 대북 압박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고 기자에게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미국 역시 일본 강경파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이 문제의 ‘처리’를 미국의 ‘손’에 떠맡겼다는 점에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성명문이 흥미를 끈다 하겠다.

6. 대북 일체성을 느끼도록 의도한 것이다

국가적 축제가 갖는 심리적 기능 중에는 쉬운 말로 ‘의식 순화 기능’이 있다. 축제 이전의 불편한 인간관계라든가 혹은 마음 속 찌꺼기를 없애고 인간의 의식을 순화시키는 기능이 있는 것이다. 특히 설날 같은 대형 축제의 경우에는 그러한 기능이 더 더욱 두드러진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성명문을 발표한 시점은 설날 연휴 마지막이다. 음력 1월 1일을 기념하지 않는 일본인들과는 달리, 한국인들에게는 음력 1월 1일이 최대의 축제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설날이 갖는 ‘의식 순화 기능’이 한층 높아지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성명문을 발표한 것은, 설날을 쇠고 ‘텅 빈’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의도적 장치로 볼 수 있다.

북한의 ‘핵 발언’이 한국 국민들에게 주는 심리적 효과에 관한 2002년 12월 25일자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이러하다.

"미국이 도발하는 전쟁으로부터 한반도를 지키기 위해 북한이 핵폭탄을 가지게 되었음을 과시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인들로 하여금 민족적 긍지를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일부 한국인들은 북한의 발언을 듣고 마음속으로 일종의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한국 국민을 직접 겨냥하고 있지는 않지만, 발표 시점으로 볼 때, 이 성명문은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한국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또 북한과의 민족적 일체성을 느끼도록 유도하려는 측면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지난 11월 13일 LA 발언 이후 한국 여론이 북핵문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음을 고려한 조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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