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화연월
류진 지음 / 신영미디어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오래전에 국내 로맨스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엄청난 실망을 느꼈던 탓에 난 늘 외국 로맨스 소설에만 연연했다. 그러다가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집어들었던 소설 연록흔은 질려만 가던 외국 로맨스 소설보다 훨씬 더 감칠맛 나고 신선하고 그리고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국내 로맨스 소설 중에 하나가 바로 이 풍화연월이다. 자신은 누구에게나 바람에 불과할 뿐이라고 슬프게 이야기 하던 휘현의 이야기. 폭풍처럼 거칠면서도 잔잔한 호수보다도 더 차가웠던 야율의 이야기.

대륙의 동쪽, 조선을 닮은 나라 해동국. 그리고 대륙의 주인인 청나라를 닮은 나라 연국을 무대로 야율과 휘현의 애틋한 사랑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연국의 황숙 야율,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천자의 신임을 한몸에 받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그는 해동국의 항복을 받기 위해 해동국에 왔다가 그의 심장을 만났다. 휘현, 세자빈의 동생이자 시누이이기도 한 그녀는 가슴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지만 누구보다 강하다.

"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네게 줄 것이 없다. 하지만 혹여라도 내게 마음이라는 것이, 심장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면 네게 주마, 휘현."

이미 얼어붙어 깨져버렸다고 느낀 야율의 심장의 온기를 되살려 준 여자는 다름아닌 연의 속국이 되어버린 해동국 출신의, 자신의 나라를 증오하면서도 동경하는 가냘프지만 대찬 여자 휘현이었다. 만나기 전부터 서로의 존재를 강렬하게 느끼고 있던 그들은 그 운명을 거부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심장을 맡겨 버린다.

"내 심장을 네게 주마, 휘현. 너와 내가 함께 꾸고 있는 이 꿈을 빌어 네게 내 심장을 주마."

친우의 목을 베고, 여동생의 정인을 죽이고, 사랑하는 여자마저 천자 융경제에게 바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불행한 영혼, 야율은 그를 붙잡고 싶어하는 융경제에게 그녀에 대한 사랑을 토로한다.

"황상, 제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더이다. 제 머리가 명령하는 일을 제 심장이 거부하는 일도 있더이다. 그저 생애 단 한 번, 머리가 아닌 뜨겁게 뛰는 제 심장의 의지를 따르고 싶습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융경제는 휘현더러 자신의 여자가 돼라고 종용하며 야율의 목숨을 내건다. 그들의 사랑이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한 두가지가 아닐진대,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과거의 아픔은 사그라지지 않을진대, 어쩜 그렇게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일까. 사랑이 선택하더란 휘현의 넋두리는 너무 애잔하기만 했다.

"제가 사랑을 택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절 택하더이다.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사랑은 제 심장이 제 집인 양 그렇게 들어와 있더이다. 제가 선택할 수만 있었다면 결코 이 사랑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런 사랑을 결코 또다시 택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마마."

강하지만 한없이 연약한, 세상을 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휘현에게 야율은 세상을 보여 주었다. 집착이 아닌 안식처로 남고자 했던 야율의 사랑은 지극했고, 그녀는 그 사랑을 온전하게 되돌렸다. 서로를 만나 비로소 생이 그 의미를 갖는다는 말은 이 둘을 위한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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