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삼킨 폭포((猪喫瀑布)
- 서거정 채록
한 조관(朝官)이 일찍이 진양(晋陽) 고을의 수령이 되었다. 그는 가렴 주구(苛斂誅求)가 심하여 비록 산골의 과일과 채소까지라도 그대로 남겨 두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절간의 중들도 그의 폐해를 입었다.
하루는 중 하나가 수령을 찾아가 뵈었더니, 수령이 말하기를, “너의 절의 폭포가 좋다더구나.”라고 하였다. 폭포가 무슨 물건인지 모르는 중은 그것도 또 세금으로 거두려고 하는가 두려워하여 대답하기를 “저의 절의 폭포는 금년 여름에 돼지가 다 먹어 버렸습니다.”라고 하였다.
강원도 한송정(寒松亭)의 산수 경치가 관동 지방에서 으뜸이었으므로 구경꾼이 끊이지 않고 말과 수레가 사방에서 모여 들었다. 고을 사람들은 그 접대하는 비용이 적지 않았으므로 항상 푸념하기를 “저 한송정은 어느 때나 호랑이가 물어 갈까.”라고 하였다.
어떤 시인이 다음과 같이 두 구(句)의 시를 지었다.
폭포는 옛날에 돼지가 먹어 버렸네만, 瀑布當年猪喫盡
한송정은 어느 때에 호랑이가 물어갈꼬. 寒松何日虎將歸
=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 조관(朝官) : 조정에서 일하는 신하
# 가렴주구(苛斂誅求) :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음
# 한송정(寒松亭) : 강릉 경포대에 있는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임.
# 푸념 : 마음에 품은 불평을 말함
# 하일(何日) : 어느 날
# 瀑布當年猪喫盡(폭포당년저끽진) : 폭포는 옛날에 돼지가 다 먹어 버렸다.
# 寒松何日虎將歸(한송하일호장귀) : 한송정은 어느 날에 호랑이가 물어 갈꼬.
# 그는 가렴주구(苛斂誅求)가 ~ 폐해를 입었다. : 고을 수령의 수탈 범위가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가혹함의 정도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중이 폭포를 돼지가 먹었다고 엉겁결에 대답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 저의 절의 ~ 먹어 버렸습니다. : 고을 수령의 가혹한 수탈 정도에 대한 일반 백성들의 반응을 짐작할 수 있는 표현. 무엇이든 빼앗기지 않으려는 민중들의 경계심을 해학적으로 표현하였으나 웃음보다 연민(憐憫)이 앞선다.
# 폭포는 옛날에 ~ 물어갈꼬. : 벼슬아치에게 수탈당하는 괴로움을 압축하여 표현한 시로 백성들의 원성(怨聲)은 아랑곳하지 않고 횡포를 계속하는 지배층에 대한 풍자와 더불어 당대 민중들의 어려운 삶의 현실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