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이야드 알라위 이라크 총리가 취임하는 것으로 미국의 이라크 정권 이양은 형식적으로나마 그 모양새를 갖춘 듯 하다. 이에 대해 미국은 이라크인들에게 기쁨의 날이 도래했노라며 큰소리 떵떵 치고 있지만, 정작 이라크인들은 말이 없다. 그들은 과도 정부에 그다지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듯 하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연이어 터지는 폭탄 테러로부터의 안전이 가장 시급한 문제일런지도 모르겠다. 몇몇 인들은 미국의 세력 하에서 이라크 총리는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노라고 말하기도 한다. 몇몇 저항세력들이 이라크 정권을 친미 집단으로 간주하고 테러를 가하겠노라고 위협하기도 한다. 이것이 미국이 그토록 선전하던 민주주의였던가?

물론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나름대로 구색을 맞추어 보려는 노력을 가했다. 2001년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와 (자신들이 지금껏 열심히 지원해온) 후세인을 연관시키는 것이 그 첫째 작업이었고, 독재 정권으로부터 이라크인들을 해방시키겠는 대대적 선전을 벌인 것이 둘째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부시 2세가 있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부시에게 있어서 아니 미국에게 이라크는 지극히 작은 나라에 불과했다. 후세인만 제거하고 나면 자신들이 마음껏 점령할 수 있는, 석유가 솟구치는 그 땅을 향한 부시의 욕망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 위에 군림해온 그들의 자존심에 이라크 저항세력의 저항은 적지 않은 상처를 가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라크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만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나라 미국이 작은 나라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마이클 무어는 부시의 재선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하겠노라고 말했었다.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부시와 빈 라덴의 모종의 관계는 분명 부시의 재선을 막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부시는 자신이 테러 배후 세력으로 지목한 자의 가족들이-심지어 미국 내 모든 항공기 운항이 중단된 그 시점에서-안전하게 미국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왔던 것일까? 빈 라덴은 신장에 이상이 있어서 신장 투석기를 필요로 한다는 소리도 있던데,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프가니스탄은 너무도 부유한 나머지 동굴마다 신장 투석기를 갖추고 있다는 것일까? 9.11 테러 소식을 듣고 나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그의 행보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 것일까 등등의 많은 질문들을 그는 던지고 있다. 부시는 분명 미국의 대통령이긴 하지만 미국을 위한 대통령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너무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다. 섹스 파문으로 얼룩진, 하지만 미국 경제 부흥에 성공했던 클린턴 정부가 이룬 모든 것을 부시는 한순간에 망가뜨려버렸다.

부시는 테러리즘을 향한 전쟁을 선포했지만 의도적으로 테러리즘의 중심을 회피했다. 어쩌면 그로서는 자신의 가문과 모종의 사업 관계를 가지고 있는 빈 라덴을 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테러 리스트를 공공연히 양산해온 사우디 왕가 역시도 그는 표적으로 삼지 않는다. 이렇게 핵심을 빗겨나간 전쟁으로 인해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테러와의 전쟁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다 못해 재선을 노린다. 아니, 오히려 전쟁은 그에게 일종의 정책적 필요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중산층을 하층민으로 전락시키고, 부자만을 위한 정책들의 난무 속에서 미국은 여느 때보다도 취약한 경제를 가지게 되었다. 부시에게 전쟁은 이러한 경제난으로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돌릴 수 있는 무기였던 것이다. 그는 9.11의 희생자들을 이용해 전쟁의 정당성을 부추겼고, "God Bless America!" 를 외치면서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성전인 것 마냥 포장해버렸다. (부시 부자(父子)에게 경제 정책이라곤 오로지 군수산업 육성 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그것도 경제를 살리는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다. 6.25가 일본 경제를 호황으로 가져다 주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경제 호황을 바람직하다고 볼 수 밖엔 없을 것이다.)

마이클 무어는 이 모든 것을 통해 부시가 다시 대통령이 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확고히 말한다. 하지만 그의 확고함 속에는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유머가 살아 있었으니, 누구라도 좋으니 부시를 이길 수 있는 누군가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며 그가 오프라 윈프리를 거론하는 부분에 이르렀을 때 나는 깔깔대는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는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과 훌륭한 성품을 가진 것은 분명하고, 무어의 태도는 너무도 진지했다.)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면 다음 대상은 이란과 북한이 될 것이라는 소리가 한동안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시 정권의 특성상 사실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의 재선은 결코 우리 나라로서도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죄 없는 민간인이 먼 이국 땅에서, 그것도 너무도 잔혹한 방법에 의해 죽어가는 모습 앞에서도 한국의 파병 의지가 변함없음을 칭찬하는 연설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으로부터 또 다른 전쟁을 예견하는 것은 결코 지나친 태도가 아닐 테니 말이다. 이런 무시를 향해 마이클 무어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 라고. 하지만 이는 미국인들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다. 부시 한 사람의 선택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이 이 땅에는 너무도 많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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