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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랜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0월
평점 :
독립기념일에 화형식이 열렸다는 표현에 깜짝 놀랐다. 처음 몇 장을 읽으면서 <1984>가 떠올랐다. 빅 브라더든 무엇이든 시민들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판단하는 권력자가 있다는 사실은 무서웠다. 트럼프 때문에 갈라진 미국은 실제 분단된 채 살아가는 우리와 같으면서도 완전히 달랐다. 결국 모두가 원한 것은 자신의 자유와 재산이었을텐데.
분단된 미국을 배다른 자매의 비극으로 보여주는 것은 비웃음이 났다. 꼭 그랬어야 했나. 엄마도 바람 나고 아빠도 바람 나고 조국은 둘로 갈라졌다. 샘 스텐글은 갈라진 조국 중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연방공화국의 정보요원이다. 배다른 자매인 케이틀린은 예수의 12사도를 앞세운 정교일치의 공화국연맹의 정보요원이다.
연방공화국은 뛰어난 기술력으로 사람들에게 생체 칩을 이식해 통제하고, 공화국연맹은 구식이지만 cctv 및 주변인들의 감시로 사람들을 통제한다. 연방공화국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 세계의 디스토피아라면 공화국연맹은 과거에 생각했던 미래 세계의 디스토피아인 셈이다.
공화국연맹에서는 종교가 매우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임신중절이나 신성모독 등은 중대 범죄가 될 수 있었다. 샘의 정보원이었던 막심이 신을 모독한 죄로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이라니, 눈에 보이지 않는 이념이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인간을 불태워 죽였다.
상급자로부터 공화국연맹의 케이틀린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샘은 영화평론가 에드나가 되어 케이틀린을 제거하기 위해 중립지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로레인은 샘의 마음을 끌었다.
신을 믿지 않을 권리도, 자매를 죽이지 않아도 될 권리도 없는 곳에서 그들은 살아간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마음껏 사랑하지도 못하고 믿고 싶은 사람을 믿지도 못하고 말이다. 한순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죽음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곳에서 그들은 인간인가, 체제와 권력자를 위한 소모품인가.
이제껏 읽었던 디스토피아 소설 중 가장 가볍게 읽었으나 마음이 무거웠다. 미국이라는 민주주의 사회가 이렇게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체제나 모두를 만족시키는 나라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보다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 데 민주주의만한 체제는 없는 것 같다. 모자란 점은 채우고, 잘못된 점은 고쳐가면서 그렇게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아가면 좋겠다.
예전에 <사기>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인간은 권력을 가지면 남이 가진 작은 권력마저 탐내기 마련이다. 그런 이들이 혹세무민하여 사람들을 선동하면 독재자가 되고 자신만이 과업을 이룰 수 있다 과신한다. 그리하여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피 흘리며 죽던지 그 생각을 접고 조용히 살던지 선택해야 한다. 어떤 생각은 독재자와 같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생각이 독재자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에 동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단 하나의 생각이라도 다르면 피를 보게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