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아 마치 자기 시간인 것처럼 행동한다. 성공한 누군가가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 가족에게 감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이는가족이 구성원 중 한 사람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시간적) 욕구를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계는 종종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 유명한 TV 진행자 클라우스 클레버 (Claus Kleber)는 65세가 되던 2020년에 어느 인터뷰에서 아내가 "(자신의) 경력에 대한 대가를대신 치렀다"고 인정했다. 의사인 아내는 남편 클레버의 직업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본인의 직업을 수행할 수 없었다. 3 이러한 자기 비판적 성찰을 하는 사람은 드물며, 과거를 돌이켜볼 때만 그러한 생각을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시간을 자기 시간으로 생각하거나 가치가 덜 하다고 여기는 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권력의 차이는 바로 이렇게 생겨난다.
우리의 시간은 항상 다른 사람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는 상호적인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거나 그들의 시간을 우리 시간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그들의 시간에 대해 아주 형편없는 보수를 지불한다면, 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덜 자유롭다. 내가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질문해야 한다. 시간 부족에서 벗어날 방법은 개인이나 협소한 집단에서찾을 수 없다. 그러기엔 우리의 시간은 서로 너무 밀접하고 다양한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간으로 서로 얽힌 관계를 풀어헤쳐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공통의 해결책을 찾아 시간을 재구성할 때, 우 - P46

리는 비로소 정의로운 시간 문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P47

본문 여러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득 활동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재의 사회는 과도한 소득 활동이 저임금 노동자의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으며, 하인을 부리는 것을 정상으로 취급하는 계급 사회를 만들어낸다. 『돌봄 선언』의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돌봄을 둘러싼 가장 큰 아이러니 중 하나는, 부유층이 보수를 지불해서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들을 고용하지만, 사실 그들에게 가장 많이 의존하는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 이러한 불공정한 분업은 저임금, 저숙련 서비스 직종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존속될 수 있다. 부유한 국가에서 이러한 일자리를얻으려는 사람들을 계속 공급하려면, 세계의 어느 지역이 영구적으로 위기 상태에 처해있거나 적어도 현저히 가난한 상태여야 한다. 전세계 모든 사람이 잘 살고, 교육받고, 직업을 택하고 그 여건을 형성하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삶, 그것이 바로 제국주의적 삶의 방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 세계적 사회 정의와 세계 평화는 부유한국가의 일상적인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우리 자신의 습관을 바꾸거나 포기하며 새로운 공존 모델을 실현하고자 할 때 정의로운 시간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 어린이집, 사회복지 및 돌봄 분야 근로자가 더 나은 보수를 받게 하려면 세금 등을 통해 공공 예산을 재분배하거나 늘려야 한다. 사회 전체에 걸친 돌봄이 실현된 진정한 돌봄 공동체는 지금까지 무급 돌봄 노동을 피했던 사람들이 돌봄 활동을 더 많이 이행하고, 모든 사람이 돌봄 행위를 삶의 일부로 여길 때에만 공정하게 조직될 수 있다. 경제적 격차가 어떻게 사람들을 억 - P338

압하는지, 나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타인의 착취에 관여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비로소전 세계적으로든 가까운 관계에서든 평등이실현될 수 있다. - P338

노동자의 시간을 점점 더 많이 점령해가면서 삶의 질, 건강, 돌봄,
인간관계, 생태적 균형을 갉아먹는 경제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러한 발전 중심 사고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양립할 수 있을까? 인류학자 제이슨 히켈(Jason Hickel)은 "자본주의 반민주주의적 성향을가지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라고쓰고 있다. 그의 논지는 노조가 잘 조직되어 있는 부문의 근로자들이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해 기업 이윤의 상당 부분을 자신의 몫으로 얻는다는 사실을 통해 뒷받침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노동조합 설립을 막아서고 있다. - P336

시간 정의를 바로 세우는 정책에서는 ‘일‘이 무분별한 성장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의 기반과 미래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여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아이와 돌봄 책임이 환영받는 시간 문화, 삶을 긍정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시간 문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시간 문화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 큰 돌봄 공동체 속에서 모이고, 돌봄을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적과제로 조직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는 길

시간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원 중 하나다. 모든 사람에겐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 외에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 대해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무언가를 바꿀 힘이 전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를지배하고 있는 시간 질서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라는 관념과 모순된다. 따라서 시간 정의 문제를 미루는 것은 정치적으로 태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우리 시간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고, 평가 절하되며, 착취당하고 있다. - P339

아이와 노인, 일이 우리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시간이 늘 부족한 이유는 큰 책임을 져야 하거나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우리가 서로를 충분히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은 결코 혼자서 통제할 수 없다. 단둘이서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책임에 대한 이러한 설계상의 결함을 언제든 고칠 수 있다. 서로 힘을 합치면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돌봄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건 자녀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며, 이는 분명 더 활기차고 사랑스럽고 미래 지향적인 일이다.
또한, 우리는 모두가 좋은 소득 활동을 하도록 할 수 있고, 꺼리는 일은 보다 공정하게 분배하고 나쁜 일자리가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녹초가 된 근로자가 집에서 홀로 자기를 돌보는것만으로는 노동 조건을 개선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근무조건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체계와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 P343

자녀를 가질 적절한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자녀를 가질 준비가 되었는지를 고려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작가 톰스코카(Tom Scocca)는 ‘진정한 생물학적 시계(Real Biological Clock)를 부모가 된 후 이론적으로 자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햇수로 설명했다. 스코카는 아이를 낳기에 적절한 시기를 찾기 위해 내가 죽어갈 때쯤이면 아이들은 몇 살 무렵일까?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져볼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자녀의 삶에서 멀어지는 시기가 언제인지, 자녀의 삶의 어느 단계에 우리가 세상을 뜨게 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가족과 사회의 가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요인을 통해 자녀와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 자녀에게 물질적으로 무언가를 제공하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 P253

자녀를 위해 많은 시간을보내는 것이 나에게 중요한가? 자녀와 함께 보내게 될 그 시간은 내인생의 어느 단계에 있는가? 나중에 내 자녀가 부모가 되면 나는 조부모가 되어 그들 곁에 있을 수 있을까? 자녀가 아직 대학을 다닐 때내가 그들의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되지는 않을까? 등 다양한 문제를 고려할 수 있다.
톰 스코카는 자녀가 없는 삶보다는 가족을 구성해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살면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고 얼마나 많은 것이 변하는지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의 시간 감각을 점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은 사람들이나 자녀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돌봄 책임이 없는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자유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가 왜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과 자유를 함께 생각하지 못했는지를돌아보도록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자녀가 없어야만 자유롭다면, 이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 아닐까?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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