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드라이버
강지영 지음 / STORY.B(스토리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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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전을 잘 못한다. 면허는 대학 가자마자 땄는데, 차가 없었다. 차도 없는데 왜 면허를 땄느냐하면, 그 땐 다 그랬으니까. 미리 따 놓은 건 좋은데 막상 차가 생겨도 운전이 영 안 되는거다. 심지어 대중교통도 불편해하지 않고, 남편이 늘 운전을 하니까 나는 더더욱 운전 할 기회가 없어서 운전을 영 못하는 것 같다. 가족이든 누구든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내 옆에 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만약 주인공인 수현이 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면? 사연 있는 귀신을 태우기 전에 내가 귀신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수현은 젊은 나이에 문단에 등장한 스타였으나 지금은 간간이 원고 청탁을 받으며 대학에서 조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녀는 뇌동맥류를 앓고 있었고, 찾는 사람이 있었다. 죽을 뻔 한 순간 푸른사향노루 향낭을 받게 되고 그 푸른 실이 떠날 때까지 죽지 못하는 몸이 되었으며 기이한 존재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향낭은 귀신을 불렀고, 차에 태워야 하는 귀신은 와이파이로 떴다. 수현은 사연 있는 귀신들을 태워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그 귀신들이 자신이 찾던 '다정'이를 아는지 물어봤다. 


그녀의 차에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다가 되려 죽음을 맞은 청년도 탔고, 정치인의 가족에게 공개입양되어 장식물처럼 살다가 남에게 떠넘겨진 영혼도 탔고, 내부고발을 하려다 살해당한 간호사도 탔다. 그녀의 언니인 지민의 병원에는 죽었지만 떠나지 못한 간호사 윤경이 있었고, 제자인 예슬에게는 잘 생긴 도령이 붙어 있었다. 예슬은 귀신을 볼 수 있었고, 백현이란 이름을 가진 도령은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그리고 백현은 수현을 원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회자정리, 거자필반, 생자필멸, 사필귀정 이 네 가지 고사성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고, 생명은 언젠가 반드시 죽고,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온다. 수현이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테넷>에서 보았던 것처럼 모든 순간은 이미 일어났고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 속에 갇혀 앞, 뒤를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수현은 자신을 아무리 속이고, 자신이 한 일을 아무리 후회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운명을 받아들이기까지, 수현은 여전히 자신의 선택을 했다. 그리움인지 죄책감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정을 찾아다녔던 그녀는 좋은 일들을 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선뜻 자신을 바꿀 선택을 하지 못했다. 인간은 변하기 어렵다. 아무리 반성하고 아무리 후회해도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에게 감화되었음에도 소년의 은화를 훔쳤고, 팡틴의 사연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잘못들을 거치면서 결국 잘못 잡힌 범인을 위해 자수를 했고, 아무 조건 없이 자베르를 구해줬다. 


수현과 백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계속 실수했고, 오만했고, 이기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희생되었던 이들 역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선택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빛이 될수도, 어둠이 될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만 푸른사향노루만이 피해자이자 숭고한 희생자일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악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아무리 없애고 없애도 계속해서 나타나고 자라난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건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자 '진실'임이 틀림없다. 그들은 계속해서 함께 사연 있는 귀신들을 태우고 그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 앞서 수현의 차에 탔던 '수혁'의 복수는 성공했을까.

"악귀일수록 사연이 깊기 마련이오. 말이 사연이지 실은 원한 아니겠습니까? 최근 실어 나른 귀신 중 제일 마음이 가는 자가 누구였소? 살해된 자가 있다면 말해보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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