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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6월
평점 :
어릴 때 TV에서 재밌게 봤던 만화 중 하나가 바로 스머프다. 만화의 정확한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파란색의 스머프들과 가가멜과 아즈라엘은 기억난다. 버섯 모양의 지붕을 가진 집에 사는 스머프들은 파파 스머프의 지휘 아래 평화롭게 살았고, 가끔 가가멜이랑 아즈라엘이 스머프 마을을 괴롭혔던 걸로 기억한다. 그들에게는 계급이 없었고, 연장자인 파파 스머프가 지도자로 마을의 큰 일을 다같이 의논했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스머프가 생각났다.
이 이야기의 화자는 딩차오양, 할아버지 딩수이양의 손자이자 딩후이의 아들이자 독살당한 아이이다. 차오양의 할아버지인 딩수이양은 꿈을 사랑하고 염치를 알며 어쩌면 저 커다란 나라에 하나 남은 참회할 줄 아는 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게 된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경제 발전이 가져 온 물질만능주의 혹은 그 욕망이 만들어 낸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중국의 경우, 미국이나 우리나라보다 더 늦은 시기까지 '혈액'을 충당하기 위해서 혈액원이나 병원 등에서는 피를 사곤 했다. '매혈'은 피를 뽑아주고 돈을 벌기 좋은 방법이었다. 중국 정부는 각 성, 현, 마을에 이르기까지 매혈을 장려했고 조용하던 시골 마을들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피를 팔아 기와집을 짓고, 피를 팔아 세탁기를 사고, 피를 팔아 2층집을 짓고, 피를 팔아 길을 닦고, 피를 팔아 고기를 먹고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생활을 이어나갔다. 딩후이는 이런 시기를 잘 이용한 사람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매혈을 하다보니 의료 인력은 부족했고, 딩후이는 자신이 채혈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주삿바늘을 세 명에게 사용했고, 고지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피를 뽑았고, 정부에서 지급하는 돈보다 적게 지급하고 피를 샀다. 그리고 딩후이는 부자가 되었다.
몇 년 후 열병이 돌았다. 이 열병에 걸린 사람은 금방 죽기도 하고, 한참을 살아있기도 했다. 매혈한 사람 대부분이 걸렸고, 매혈을 하지 않은 사람이 걸리기도 했다. 마을은 뒤숭숭했고, 사람들은 절망했다. 이 열병은 에이즈였다. 마을에서 열병에 걸린 마샹린이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창을 하던 날, 신약은 없다는 말에 마샹린이 죽었고 열병에 걸린 사람들은 딩수이양이 있는 학교에 모여 살게 되었다.
가족들에게 병을 옮길까 걱정하던 사람들은 모두 학교에 모였고, 합의한 양의 곡식을 내고 다같이 지위의 높낮이 없이 생활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은 앞서 이야기 했던 평화로운 스머프 마을 같기도 했다. 그저 모두가 지켜야 할 원칙 몇 개만 있을 뿐, 모두가 자유로웠으니까. 그렇게 처음에는 딩수이양의 지도 아래 천국 같은 생활을 했으나, 삶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다. 사람이 모이면 사회가 만들어진다. 어느 순간 지위가 생기고, 어느 순간 치정이 생기고, 어느 순간 빈부가 생긴다. 누구는 누구를 시기하고, 누구는 누구를 질투하고, 누구는 누구를 더 아끼고, 누구는 누구에게 더 큰 것을 주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딩수이양이 바라던 것처럼 모두가 같은 것을 누리고 다 함께 평안하게 사는 삶은 끝나가고 있었다. 열병이 그들을 뭉치게 했고, 죽어갈 날을 기다리던 그들은 여전히 죽기 전까지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
학교의 책상, 의자, 칠판 등 딩수이양이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남겨놓았던 것들은 모두 마을 사람들에게 분배되었고, 학교는 끝났다. 학교는 희망이었고, 미래였다. 이제 미래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피를 팔아 마을은 풍성해졌고, 관을 팔아 마을엔 꽃이 피었다. 딩후이는 시대를 잘 읽었고, 정부의 무관심과 관료주의에 따라 피를 팔고 관을 팔아 큰 집을 짓고 이사를 했다. 심지어 영혼결혼식까지 주선하여 돈을 챙겼다. 정부는 그저 인민을 통제할 수만 있다면 아무 상관 없는 듯 보였다.
생명도, 의리도, 혈연도, 체면도 모두 돈 앞에서는 그 가치가 작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은 잠시나마 피었다. 링링과 딩량은 열병이 아니었다면 돌팔매질을 당했을 그런 사랑을 했다. 이 책 곳곳마다 인간성이 넘쳐났다. 사랑도 욕심도 모두 인간이 가진 고유한 속성이 아니겠는가.
딩수이양은 아들인 딩후이와 딩량의 잘못에 크게 실망했고, 늘 책임감을 느꼈고, 어떻게든 참회하길 바랐다. 이는 그가 자식들에게 개두(머리를 땅에 대고 절하는 예법)를 시킨 것에서부터 계속 보이지만, 그건 그저 그의 바람이었다...
살해당한 아이의 영혼이 들려주는 이 마을의 이야기는 꿈일까, 생시(生時)일까. 딩수이양의 꿈과 일치하는 사건들과 실제로 흘러가는 이야기들은 비극적이었으며 뉘우침과 반성이 배여이었다. 슬프지만 그렇게 끝이다. 다음 세대는 참회가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가르치는 스승이 없으니 말이다. 그게 어쩌면 가장 큰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피고가 된 후로 저는 법원의 재판 과정을 통해 저의 글쓰기와 <딩씨 마을의 꿈>이라는 책이 중국에서 ‘어떤 죄를 범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사유 끝에 사실은 작가인 제가 비상을 쟁취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마리 새라는 것을, <딩씨 마을의 꿈>과 저의 글쓰기가 사실은 비상을 쟁취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새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것인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ㅇ르 쓴 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 것이었습니다. 제가 쓰고자 한 것은 사랑과 위대한 인성이었고,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이었습니다.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둘러싸고 있는 고난을 극복하고 선과 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영혼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인성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 자리한 욕망의 그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빛이었습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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