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이보그전
유진상 지음 / 아작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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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인간이라는 존재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전에 본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미래의 그 곳에서라면 인간이 될 수 없었을 우리 '종부'가 오히려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이는 건 나만일까?


미래의 어느 날, 로봇인 G9는 조선시대 중기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인간은 몸이 분해되어 갈 수 없기에 로봇을 보내는데, 보통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선사시대나 고대로 가지만 중세 한글이 어떠한지를 연구하기 위해 보내게 된 것이다. 남자 아이돌을 빼닮은 수려한 외모는 G9의 생존율을 높여준다는데, 그 시대 미(美)의 기준이랑 지금이랑 같은지는 그냥 무시하자. 아마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G9는 연구원 개인의 사심이 잔뜩 들어 간 얼굴을 하고 한복을 입고 과거로 간다. 그 곳에서 자료를 수집한 뒤 먼 미래까지 화석이 되듯 숨어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과거에 도착한 그는 운 좋게 말 많은 양반인 박종수를 만나게 되고, 가진 의학 지식을 윤 의원으로부터 검증 받으면서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그 곳에 스며들게 된다. 박종수의 어머니를 치료해주고 불리게 된 이름은 종부. 쥐구라는 발음이 그 시대엔 어려웠나 보다. 로봇이라는 발음 역시. 그는 노보 또는 종부로 불렸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람들을 치료해줬으며, 아이들에게 다정했다. 로봇이라 이성에게 관심이 없던터라 고자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종부는 의지하던 윤 의원이 돌아가시자 손자인 주선을 입양했고, 홍수로 부모를 잃은 윤생원 부부의 아이들인 갑진과 하진을 입양했다. 로봇이었던 그는 감정적인 부분까지 인간과 유사하게 만들어졌으나, 오직 '눈물'만은 가지지 못했다. 로봇이 질질 짜면 뭐하겠냐는 연두의 말이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으나 갈수록 로봇이 질질 짜는 게 어때서...란 생각으로 바뀌게 되는 이유는 무얼까.


종부에게 아이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종부에게 입력된 윤리의식은 아픈 사람은 무조건 치료해주는 것이고,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되고, 임무인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우선순위가 없었는데 어느새 주선과 아이들이 자신의 최우선이 되고, 다정한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지는 건 종부에게 입력된 감정일 뿐일까, 순수하게 우러나오는 감정일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의병으로 나선 주선을 찾으러 갔던 종부와 갑진은 진주에서 왜병에게 포로로 잡히고 만다. 입력값이라 왜군조차 환자라면 고쳐주던 종부는 그러한 모습이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의원으로서의 올곧음과 옮은 일을 하는 의지로 비춰지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인간인 아이들은 그 의지를 받들어 올곧게 살아가려 애를 썼다. 로봇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인간은 뜻을 위해 목숨을 던지기도 한다. 그렇게 종부는 조선 시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또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수많은 감정을 경험한다. 그들의 아버지가 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종부는 인간일까, 기계일까. 영혼을 가진 그는 앞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면서 어떤 이치들을 깨닫게 될까.


SF와 역사를 절묘하게 섞어 재미있고 가슴 아프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부디 살아남은 이들이 상처를 딛고 보다 행복해지길. 

역사는 생각보다 넓은 강이야.

이제 G9는 역사를 바꾸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나 생각 혹은 인물이 아닌, 수많은 인간이 살아가며 얽히고 맺어지는 상호작용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G9가 로봇으로서 강력한 능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계속해서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고 때로는 무력하기까지 했다. G9 또한 다른 인간들과 같이 역사라는 강 속에 있는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았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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