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청년, 호러 안전가옥 FIC-PICK 3
이시우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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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습도가 높아 온 몸이 끈적거려 기분이 나빠질 때 쯤이면 진부하지만 등골이 오싹해질만한 무서운 이야기를 찾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무서운 이야기라는 게 귀신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사실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말처럼 사람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이야기. 그것이 악의를 가지고서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시우 작가님의 <아래쪽>은 나도 익히 들어 본 적 있는 괴담을 주제로 한다. 하수도라는 게 문명의 척도이자 아주 훌륭한 시설이긴 한데, 그 아래쪽을 다루는 사람들은 어떨까. 빛이 들어오지 않아 검은 밤보다 어둡고, 땅 위의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려 회색보다 더한 잿빛을 띈 물이 흐르는 곳. 사람의 무의식이 깊고 무섭듯, 그 곳 역시 깊고 무섭지 않을까. 김팀장과 박주사와 함께 땅 밑에 있는 하수관을 순찰(?)하는 일은 무서워보였다. 봉인지를 붙이는 일이며, 각 번호가 붙은 관로를 지나면서 보이는 '위험' 팻말이며,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며, 위쪽과의 통신 중 지직거리는 소리하며... 외부와 단절된 아래쪽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땅 위 세계에 발붙이지 못한 원혼들이라도 아래쪽에 살고 있는 것일까? 새벽에 일을 마치고 안마를 받는 건 일종의 퇴마 의식 같은 것일까.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이기에 무서울 수 있지만, 사실 하수관은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흔히 영화에서 많이 보던 도둑이나 스파이들이 지나다닌다던가,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파리의 하수도를 따라 도망쳤다던가 하는. 


김동식 작가님의 <복층집>은 아주 무섭다. 우리가 살면서 먹고 입고 하는 것들도 중요하지만, 일이든 공부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쉬는 일이야말로 아주 중요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집이, 가장 내밀하고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어야 하는 그 집에 낯선 이가 드나든다고 생각하면... 너무 소름끼친다. 어린 여자들이 좋아하도록 복층을 만들어 예쁘게 인테리어 한 집을 세놓는 그 파렴치한들은 모두 그냥 싹둑 잘라버리고 싶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도 모르게 친정집에 있는 계단 밑 공간이 떠올랐다. 대충 물건들을 넣어두는 창고로 사용하긴 했는데 새삼 무서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리포터도 거기 살았는데... 


허정 작가님의 <분실>은 마음이 아팠다. 경쟁사회에 내몰려 가족도,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고독하고 외롭게 만드는 것이 말이다. 석진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효도도 하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연락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돈이 없어서 허름한 고시원에서 커다란 얼룩을 보면서도 보다 깨끗한 곳으로 이사가지 못하고, 돈이 없어서 비싼 강의를 불법적인 경로로 보는 바람에 금융정보까지 털리는 지경에 이른다. 아, 그 적금은 엄마가 보이스피싱을 당한건가? 연락이 안 되는 석진 때문에? 커다란 얼룩은 석진의 영혼에도 자국을 남기는 것 같았고, 옆방 아저씨가 준 용액은 석진마저 지워버리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려면 무엇이 있어야할까. 이렇게 잊혀진 사람들은 누가 찾아줄 수 있을까.


전건우 작가님의 <Not Alone>은 한 편의 스릴러 영화 같았다. 나미수는 좋은 회사에 취직했지만 회식 자리에서 이사님을 성대모사하는 바람에 혼자가 된다. 누군가를 바보 만드는 건 나쁘지만, 상사를 성대모사한 건 나름 풍자로 넘어가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피한다. 너무나 외로웠던 나미수는 'Not Alone'이라는 앱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중독되기 시작한다. 그 앱은 요즘 심각한 그루밍 범죄의 한 단면도 보여준다. 닉네임의 뜻을 알아주고, 이야기에 공감해주면서 친밀감을 형성한 '가이거'는 나미수를 스토킹하고 나미수는 집에서조차 안전하지 못해 cctv를 달기에 이른다. 그리고 사람을 죽였다며 경찰서로 달려가는데... 나미수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조금이라도 기준에 맞지 않으면 배척하고 따돌리는 사회가 좀 무섭기도 하고 허언증마저 없다면 삶의 낙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안타까우면서도 스릴 있었다.


조예은 작가님의 <보증금 돌려받기>는 섬뜩했다. 계속해서 되풀이되지만, '집'이라는 공간이 더 이상 안전하거나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 된다. 나만의 공간이자 나를 온전히 풀어둘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2년마다 이사를 가야한다든지, 누군가가 쳐다본다든지, 무서운 무리들이 집 앞을 서성인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집안 사정으로 보증금을 빼야 하는 성아는 돈이 없어서 집이 나가기 전까지는 보증금을 줄 수 없다는 집주인이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 놈은 집을 본다며 늦은 밤에 술에 취한 채 사람을 데려오지를 않나, 은근히 협박을 하지 않나... 그래서 성아는 집주인이 쓰러져 있을 때 그런 행동을 한 건지도 모른다. 단발머리나 퍽치기는 누구였을까. 새로 이사 간 집에서 성아는 행복할 수 있을까. 건물과 건물 사이의 적당한 거리마저 보장되지 않는 요즘, 나만의 '스위트 홈'은 꿈이기만 할까.


남유하 작가님의 <화면 공포증>은 그럴싸했다.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시간 모니터나 핸드폰 액정을 쳐다보고 사는 우리의 눈알이, 목이 과연 안전할까. 코로나19 이후 역병은 머나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언제든 전염병은 돌 수 있고, 기후는 이상할 수 있고, 우리의 눈과 뇌는 부서질 수 있다. 화면을 보면 눈이 빠질 것 같고, 끌려들어갈 것 같은 그 '병'은 전염병이다. 작가는 삼성역에 내렸을 때 온통 보이던 '화면들'에 압도당했다고 한다. 크고 작은 전광판이 번쩍이고,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핸드폰을 쳐다보고, 식당이든 어디서나 텔레비전부터 컴퓨터 모니터까지 화면이 없는 곳이 없다. 비말감염은 마스크를 쓴다지만, 이런 화면 공포증은 어떻게 노출을 없앨 수 있을까. 과연 머지않은 미래에 일어날 일일까. 하긴 그 전에 거북목이 되어 목이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먼저일 것 같긴 하다. 


우리는 종종 젊을 때는 못 할 게 없고 나이 자체가 무기라는 말을 듣고 삽니다. 저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때 저는 못 한 게 너무 많았는데 한참 동안 제가 약하고 못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는 일종의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다른 청년들은 정말로 못 할 게 없이 다 이루어 내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젊어도 못 하는 건 못 하는 거였고, 만약 못 할 게 정말로 없다면 그건 나이를 떠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이 되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런 무책임한 말들이 지금의 청년들을 더 고립되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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