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2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 계속되는 건 희망일까, 고문일까. 


결국 모두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나라를 빼앗긴 건 위정자들의 잘못인데, 대가는 백성들이 치렀고, 전쟁 역시 소수의 인물들이 일으켰으나 그 피해는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앉았다. 사기 쳐서 조선의 여인들을 성노예로 만든 건 일본과 그 하수인들이었는데 아직까지 피해자의 잘못인 양 가해자들은 사과하지 않는다. 선자가 임신한 건 선자의 잘못이 아님에도 선자는 늘 죄책감에 짓눌려 살아가고, 경희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건 경희만의 잘못이 아님에도 경희는 늘 미안해하며 다른 이들을 위해 살아간다. 정체성을 잃은 노아와 모자수와 솔로몬은 와세다 대학을 가도, 돈을 많이 벌어도, 미국에서 유학을 해도 공동체에서 유리된 채 인정받지 못한다. 


선자는 이 책에서 마치 거대한 어머니처럼 자녀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이삭은 하나의 이상향으로 남아 노아와 선자의 삶에 이정표가 되어준다. 마치 이삭의 희생이 그들 모두를 구원한 것처럼 여겨지는 건 기분 탓일까. 그의 무덤에는 그를 그리워하는 친족들이 꼬박꼬박 찾아온다. 


노아는 이삭을 동경했으나 자신이 이삭의 아들이 아닌 야쿠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깊이 절망한다. 일본인이고 싶은 마음을 깊이 숨기더라도 박식하고 다정한 이삭의 아들인 것은 좋았는데, 조선인 중에서도 폭력배의 아들이라니... 자신이 태어난 세계에서 인정받고 싶었던 그는 선자를 원망하며 사라진다. 태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걸까. 일본인인 척 살아가더라도 삶을 이어가는 것은 희망일까, 고문일까. 


자기가 사랑한 선자와 노아에게 사랑받지 못한 한수가 오히려 노아를 이해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오히려 사랑받지 못하기에 상대를 더 잘 이해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선자는 삶과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했으나, 노아는 자신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부모가 스스로는 사랑을 준다고 생각해도 자식에겐 억압과 폭력으로 느껴지는 건 흔히 있는 일일테다. 외골수 같던 노아는 선자와 한수의 도움으로 쌓았던 것들을 통해 남은 생을 살면서 늘 조마조마하고 남의 삶을 사는 느낌이 들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노아가 도망쳤다면 모자수는 맞서는 쪽을 택했다. 굳이 훌륭하고 착한 조선인일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어찌됐든 인정해주지 않을 거면서. 공부는 하기 싫지만 사교적이고 장사 수완이 있었기에 일본에서 조선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다. 파친코. 만약 재일조선인에게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모자수는 틀림없이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이다. 


솔로몬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일본에 있는 영국계 은행에 들어간다. 하지만 일본인 상사에게 이용당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 당한다. 처음 관청에서 등록증을 받으며 지문을 찍어야 했을 때처럼 말이다. 손톱 밑에 남은 잉크 자국처럼 솔로몬의 마음엔 큰 상처가 새겨졌겠지. 아버지도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신도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결코 일본인이지 못하고, 갈라진 조국에서는 일본인 취급을 받는 그 철저한 이방인 같은 상태는 아주 부당한 것인데. 


한국전쟁 이후 경제가 활발하게 성장하는 일본을 보니 화가 치밀었다. 전범 국가이면서도 전쟁 때문에 그 죄가 묻혀 버리고 오히려 발전해서 아시아에서 대접 받는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났다. 거기다가 어쩔 수 없이 일본에 살게 된 조선인들을 그렇게 더러운 인종, 이방인 취급을 하다니...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잘못이 없는 척, 고고한 척, 예의바른 척 하는 이중적인 모습에 화가 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데 참을 인을 계속 새기면서 읽었다.


선자에게 딸이 없다는 건 아쉬웠다. 마치 모계에서 부계로 이동한 듯한 느낌이랄까. 여자의 삶은 고통이라 작가가 딸을 주지 않은걸까. 책 속에 나오는 여자는 조선 여자든 일본 여자든 고통 속에 살거나 결핍 속에 사는 것 같다. 문득 한수의 딸들은 원하는 것을 얻었을까 궁금해졌다.


이삭이나 노아, 모자수 등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나 어떻게 살고 싶다 하는 소망이 있는데 선자에겐 그런 선택지 자체가 없어 보여서 안타까웠다. 어린 시절이 제일 행복했다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고통이 가득하더라도,

삶이 계속되는 건 희망일까, 고문일까.

경희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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