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돌이켜보면, 정말 이런 일도 있구나 싶을만큼 놀라거나 웃기거나 한 일들이 왕창 일어나는 날이 있다. 난 자주 일어나는 편인데.. 아직도 잊지 못할 일들이 한가득이다.

 

비 오는 날 우산대만 남고 비닐이 날아간다거나, 입간판에 바지가 찢어진다거나, 덜 친한 사람들과 어색하게 이야기할 때 축구공이 날아와 정수리를 가격한다거나, 가파른 돌계단에서 구르는 데 낯선 남자가 구르는 날 발로 받쳐 준다거나, 하수구에 한 쪽 발이 빠져 허벅지에 시퍼렇게 멍이 든다거나, 사무실에서 나가려고 문을 여는데 갑자기 안 열려서 감금 상태가 되어 열쇠 수리공을 부른다거나...

 

적다 보니 너무 많아서 놀랍다. 더 있는데, 뭔가 계속 적으면 웃긴데 서글플 것 같다.

 

지난 21일도 그랬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 뮤지컬 공연 예매해두고 당일치기로 다녀 오려고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하는데 띵~ 문자가 온 거다.

 

태풍 다나스 때문에 예약한 항공편이 결항되었으니... 어쩌고 저쩌고..

 

뭐? 결항? 나 어떻게 서울 가라고? 아니, 나 그거 스탬프 모아둔 거 쓴 건데? 스탬프 유효기간 다 되어 가는데? 아니, 일단 서울 가야하는데? 기차는? 버스는 늦을거고..

 

다행히 비슷한 시각에 출발하는 기차를 겨우 잡아타고 서울로 향했다. 하지만 어플이 강요한 자리는 복도 쪽이었고, 난 부산에서 서울로 쭈욱 가는데 그 기차는 ktx지만 참 많은 곳을 들렀고, 서는 역마다 사람들은 바뀌고, 난 거의 모든 역을 지날 때마다 탁자를 접었다가 폈다가, 짐을 들었다가 놨다가, 다리를 접었다가 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해야 했다.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었으나 역방향 외에는 없다기에 눈물을 머금고 그냥 주저앉을 수 밖에...

 

그렇게 힘들게 겨우 서울에 도착했는데,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밀려드는 그 습함이라니... 부산은 비가 미친듯이 퍼붓는 중이라 추웠는데, 여기는 더운거다. 엄청 습하게. 그래도 나는 더위에 강하니까. 아주 강한 자신감으로 공항철도를 타고, 5호선으로 갈아타고, 광화문 역에 도착했다.

 

지하에서 올라가는 순간, 읭? 비가 막 오는거다. 나 우산 안 가져왔는데? 서울은 비 안 온다고 했는데? 날 속인거야? 강수확률 7%에 비가 와도 되는거야? 순간 탈출한 영혼을 부여잡을 생각도 안 하고 멍 하니 있다가 다시 계단을 내려 가 우산을 살 만한 곳을 찾았는데 없는거다. 

 

공연 시간은 다가오고, 사람들은 우산을 촥 촥 펴며 자신 있게 계단을 올라간다. 혹시 우산 얻어쓸 수 없을까 살펴보다가 결국 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뛰었다. 최단 거리는 여기서 여기야. 난 10센티미터짜리 힐을 신은 채 도도도도도 뛰어서 세종문화회관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비는 굵지 않았고, 거리는 짧아서 그렇게 젖지 않아도 되어 나름 행복했다.

 

 

마치 공연 보는 게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거 보려고 아침부터 이 난리를 치며 온 건가... 하는 기분도 들고. 하지만 표를 받고 극장 안에 앉자 행복해졌다. 그래. 이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난 온 거야. 우리 삶이란 다 그런거지.

 

무사히 공연을 다 보고 나오는데, 세상엔 자신이 좋아하기 때문에 맹목적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고, 나한테도 그런 면이 있고, 그게 발현되는 건 각자가 가진 상황에 따라 다른 거니까...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차여도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건 다 내가 이해한다고...

 

허허허 또 비가 방울방울 내린다. 이쯤되면 비가 나를 쫓아다닌다고 생각해도 될라나...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또 깜짝 놀란다. 와, 진짜 인기가 많구나. 실물 보니 아이돌은 아이돌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공항철도를 타고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남아 비행기 시간을 땡겨볼까 알아보니, 내가 산 표가 실속이라 취소하고 재예매를 해야 한다고... 하아... 차라리 취수료 내고 집에 일찍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기존에 예매한 표를 취소하려니 폰으로는 안 된다네... 하아아아... 긴 한숨을 내뱉고 늘어선 줄 뒤에 선다. 그나마 내가 타려는 뱅기값은 취소하려는 표 값이랑 같아서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겨우 겨우 표를 바꾸고, 한 끼도 안 먹은 탓에 고픈 배를 채워볼까 싶었더니 음식이 나오는 데 오래 걸린단다... 또 뱅기 시간을 너무 당겼는지, 여유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 혹시나 지연되나 싶어 살펴 보니 왠 걸... 지연이 없다. 다른 비행기는 대부분 지연인데 내가 탈 비행기는 정시에 떠날 준비를 마쳤다. 세상에, 1분 일찍 탑승이 뜨기까지.. 이야, 지연이 일상이었는데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이 태풍 때문에 난리 난 다음 날인데...

 

따뜻한 까페모카나 한 잔 마시고 허기를 달랠까 했는데, 얼음 동동 차가운 까페모카를 준다. 주문을 따뜻한 걸로 했는데요... 죄송해요. 다시 드릴게요.

 

까페모카... 너 마저도...

 

갖은 우여곡절 끝에 난 무사히 김해 공항에 도착했다.

 

공연은 만족스러웠는데, 있었던 일이 너무나 웃겨서 공연 후기를 쓰려다보니 공연을 보러 다녀 온 내가 마치 공연한 느낌이 들어 21일 후기가 되어 버렸다.

 

결국 저녁은 밤 9시 반에 돈까스 떡볶이를 먹었다. 아, 내 첫 끼... 너무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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