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곁 - 오늘이 외롭고 불안한 내 마음이 기댈 곳
김선현 지음 / 예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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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당신이 사랑한 작가는 서민입니다.” 허걱! 몰래한 사랑이었건만 이렇게 발각되다니! 알라딘 추천 마법사 앞에서 나의 취향은 숨길 수 없는 기침이었다. 한국소설, 초등 5~6학년, 교양 인문학, 에세이, 책읽기/글쓰기, 사회문제, . 나도 인지하지 못한 관심 분야를 정확히 짚어낸다. 나는 구매 이력을 통해 끊임없이 분석되는 대상이었다.

 

모든 예술 작품은 작가가 표현하는 이야기이다. 문학, 음악, 연극뿐 아니라 미술에도 저마다 길고 짧은 이야기가 있다. 유쾌하거나 슬프거나 설레거나 마음이 깊고 넓어지거나. 특히 미술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각기 다른 장르의 단편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

다양한 화풍과 개성 있는 색깔이 스펙트럼처럼 펼쳐졌다. 78점의 그림이 사랑, 관계, 라는 주제로 나뉘어 소개된 책이다. 저자의 짤막한 글도 함께 곁들여있다. 그림 사이를 산책하며 그 길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통해 나를 바라보며 이전까지 모르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한참을 머물며 단상에 잠기거나, 빙그레 미소를 짓거나, 동영상을 보는 듯 역동성을 느끼기도 했고, 먹먹한 마음으로 잠시 멈추거나, 색깔이 아름다워 빨려들 듯 집중했다. 그림이 건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림에 관한 책이어서 일까. 저자의 글이 적힌 바탕 면과 글씨의 색도 주제에 어울리게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1장은 사랑의 설렘을 연상시키는 분홍이, 2장은 원만하고 편안한 관계가 생각나는 초록이, 3장은 따뜻함과 차가움을 상징하는 빨강과 파랑이 조화롭게 섞인 보라가 나를 만들어간다는 이미지와 잘 부합되었다.

몇몇 그림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저자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내가 지닌 두 가지 성향을 깨달았다.

 

시작은 사소했다. <무자비한 미녀>(p12)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살짝 겉돈다는 느낌을 받고부터였다. 여자의 발아래 누워있는 기사의 얼굴 위에 드리워진 거미줄에 시선이 갔다. 기사는 죽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여자는 오히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에 무자비하다는 표현을 쓴 걸까.

<은물고기>(p46)에서는 그림 상단에 표현된 은물고기와 물의 요정을 칭칭 옭아맨 머리카락 같은 대상에 대한 언급이 없다. 소위 제목인데 하며 아쉬워했다.

<샤프롱>(p72)에서 저자는 권태기를 말한다. 내 눈에는 두 남녀와 다른 곳을 바라보며 이들을 기다리고 지켜주는 듯한 신사가 더 들어왔다. 신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알프레드 시슬리와 그의 아내>(p82)에서는 이미 아내인데 프로포즈를? 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목욕 전에>(p126)에서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은 일하고 있었다기보다는 딸을 목욕시키려고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p150)에서 저자가 잔잔한 호수로 표현한 물은 아무리 봐도 늪이다.

<스냅 더 휩>(p172~173)은 저자의 말대로 아이들끼리 충분한 상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장면이 아니라 놀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스냅 더 휩이라는 옛날 놀이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의외로 제목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집착하는 인간이었다.

 

<너무 이른>(p110)에서 저자는 대부분의 시선이 분홍드레스를 입은 여인에게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람들의 눈동자 방향을 보면 부채를 든 여인 한 명 정도만 분홍드레스의 여인을 바라보고, 대부분은 시선의 끝이 제각각이다. 파티 시작 전에 볼 수 있는 풍경인 듯하다. 또한 몰래 파티 장 내부를 쳐다보는 두 사람의 위치에서는 중앙의 분홍 여인을 볼 만한 각도가 안 나온다고 판단된다.

<부엌에 있는 여인>(p142)은 소녀가 아닌 중년의 여인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제가 Women이 아닌 Girl인 것은 여인의 마음속에 있는 소녀 같은 감성을 반영하고자 하는 화가의 의도가 아닐까. 주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가리는 천이 여인의 검은 옷과 대비되어 현실을 두드러지게 한다.

<실타래 감기>(p176)에서는 실이 왼쪽 여인을 감싸고 있지 않다. 원래 끈이 옷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끈의 색깔이 실보다 좀 더 짙다. 옷의 끈과 실타래의 실은 자세히 보면 어긋나있다.

<작은 도둑들>(p196)에서 저자가 엄마로 언급하는 인물은 빨간 모자를 거꾸로 눌러쓰고 있다. 물론 엄마도 젊게 살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종합해보았을 때 언니가 담장 위로 가벼운 동생을 올려 사과 몇 개를 따고 이제 철수하려는 장면으로 보인다.

하나하나 나열하다 보니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분석하는 내가 보인다. 탐구활동을 하던 사고방식이 그림을 볼 때에도 적용이 되었던 걸까. 나는 그림에까지 수학적인 각도와 과학적인 관찰의 디테일을 적용하는 집요한 인간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을 골라본다. <밀짚모자>(p28), <>(p150), <첼리스트>(p158), <스케치- 두 명의 인도 무희>(p226), <장갑을 낀 젊은 여인>(p240)이 마음에 들었다.

메모를 해놓은 다음 빠른 속도로 주르륵 다시 한 번 넘겨본다. 공통된 특징이 보인다. 마음에 든 그림을 이루는 주된 색상이 초록, 노랑, 빨강인 거다. 졸지에 신호등을 좋아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몽환적인 초록과 <장갑을 낀 젊은 여인>에서 타마라 렘피카의 정돈된 초록이 좋다. <첼리스트>에서는 악기와 첼리스트의 옷과 배경이 파스텔 톤으로 채색되어 깊이감이 느껴진다. <스케치-두 명의 인도 무희>는 무희들이 입고 있는 옷 색깔이 마음에 든다.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밀짚모자> 이다. 선명하게 붉은 입술을 제외하고는 빈티지 신호등을 보는 듯 짙은 초록, 노르스름한 모자, 불그스름한 꽃잎의 조화가 좋다. 여인이 입고 있는 하얀 옷은 화이트초코가 대패삼겹살처럼 얹힌 케이크를 연상시킨다. 꽈배기 도넛이 생각나는 머리카락의 컬도 좋다. 전체적으로는 그림 속 여인이 매끈한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처럼 느껴져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다비드>상이 떠오른다.

타마라 렘피카의 그림이 두 점이나 마음에 드는 걸 보면 내가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인간인가 보다. 아니면 요즘 이런 색상에 끌리는 시기일 수도 있겠다. 카카오스토리에서 색깔로 알아보는 현재의 심리 상태를 테스트해 본 적이 있다. 그 때 그 때의 마음에 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색깔이 다르다는 것이다. 요즘 나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일반적인 책과는 달리 차례에 나열된 소제목들이 길다. 차례를 천천히 읽는 것만으로 생각할 거리가 많다. 표지에는 오늘이 외롭고 불안한 내 마음이 기댈 곳이라는 글귀가 있다. 차렵이불 정도의 가뿐함을 지닌 본문의 글들은 따스하고 부담이 없었으나 기대했던 무게감보다 다소 가벼운 감이 있었다. 중력이 지구의 1/6인 달에 가면 이런 기분일까. 곁에 있는 저자의 글이 내 정서의 코드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크게 감동을 느끼거나 쉽게 몰입할 수 없었다. 이보다 더 짙은 내용의 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뒤늦게 깨닫게 된 나의 두 가지 성향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휴식이란 하지 않으면 안된다가 사라져버린 상태다. 휴식이란 다름 아닌 행위의 부재를 의미한다.(오쇼 라즈니쉬, p207)’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다. 이 문장을 천천히 음미해본다. 그림을 감상하면서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끊임없이 작품을 분석하려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때로는 느슨해질 필요도 있는데.

 

표지의 그림을 한참 바라본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말처럼 그림에 대한 해석은 취향의 차이로 받아들여야함을 깨닫는다. 곰곰 생각해보면 관점의 차이는 제각기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당연한 일일 터이다. 표지에 나있는 창문을 통해 <봄의 연인>(p217)에 등장하는 두 연인을 집중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고, 바닥의 연두 빛과 활짝 흐드러진 벚꽃을 주로 보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같다, 다르다의 문제인 거다. 저자의 해석이 틀렸던 것이 아니라 나와 관점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다른 날 다른 시각에 저자의 글을 읽는다면 지금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그림은 내 취향을 알려준 작은 데이터였다. 그림 안에 내가 있었다. 그림을 통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림은 색깔이 있는 거울이었다.

 

 

*오타: p174의 그림 제목 Wihp W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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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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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 너 있다!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터프하게 여자의 손목을 움켜쥐고 제 가슴에 손을 얹는 남자. 드라마 <파리의 연인> 속 이동건이다. 내 맘속에 너 있어 부르짖는 심쿵 멘트에 모니터가 뚫어져라 감정 이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랑하면 두근거리는 심장, ‘Heart’. 하트 모양()이 심장의 형태를 본뜬 것이라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마음은 심장에 있음을 당연히 여겨왔다. 곰곰 생각하면 중추신경계는 뇌와 척수뿐이니, 정신 작용은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 굳이 마음이 어디에 있냐 한다면 뇌에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을. 그렇긴 해도 이동건이 김정은의 손을 자기 머리에 얹고 뇌 안에 너 있다!’ 외치는 장면은 어쩐지 뻘쭘하다. 이어질 장면을 더 상상해본다. 집에 온 여주인공, 손바닥으로 느껴지던 심장 박동을 생생하게 되새기며 뒤척여야 자연스럽건만, 머리에 얹었던 손을 코끝에 대었을 때 정수리 냄새라도 난다면?

 

347페이지의 두께감에 눌리고, ‘라는 기관이 연상시키는 복잡한 이미지에 주춤했다. 신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살짝 헐벗고 허연 옷 늘어뜨린 근육질의 남자가 근엄한 표정으로 컴퍼스를 들고 도형을 그리는 책표지. ‘이 책 겁나 어려워.’ 라며 학문적 냄새를 뿜어내는 포스에 멈칫하던 책,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이다. 한동안 책장의 먼지만 읽어내던 책인데 어쩌다 손이 갔을까. 명색이 과학 샘인데 이 정도 책은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은 없지만 크게 심호흡을 하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1.4킬로그램의 뇌에 대한 이야기는 긴장했던 마음이 무색하리만큼 빠른 스피드로 펼쳐졌다. 괜히 걱정했다 싶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뇌 관련 강연을 집중해서 듣고 난 기분이었다. 뇌의 구조적인 과학 상식부터 뇌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에 관한 일화, 영화 속 장면, 실험 이야기, 미술 작품, 정밀한 스케치, 문학 작품, 철학적 사유가 담겨있었다. 그 안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뇌 모양의 퀼트 작품을 라는 실로 한 땀 한 땀 꿰어서 만드는 것 같았다. 뇌를 통해 나를 들여다본 경험은 신선했고 새로운 관점 하나가 늘어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에 뿌듯했다. 첫 장을 펼칠 때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끊임없이 를 생각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는 존재하는가. 1<뇌와 인간>을 읽으면서 육체와 정신에 대하여 생각한다. ‘육체가 시간의 흐름을 살듯이 정신도 시간의 흐름을 삽니다.(p40)’라는 문장 앞에서 점점 예전 같지 않아지는 몸을 바라본다. 육체가 늙어가는 속도로 정신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이면서도 무서운 일인가. 육체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 누구나 나이 들어가면서 쇠약해진다. 이와는 달리 정신의 흐름은 정해진 규칙이 없다.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가 되었다가 탈피하고 날아가는 나비가 되는가 하면 폭우에 무기력하게 휩쓸려가는 나뭇가지가 되기도 한다.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허한 대상이 내 안 어딘가에 있다.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뇌의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점이 새삼 신기하다.

우리 몸의 세포는 주기적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뇌세포만이 유일하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네이버캐스트의 <숫자로 보는 일생>에서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뇌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 말한다. 어릴 때부터 내게 다가왔던 모든 경험들은 내 뇌의 어딘가에는 새겨져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란 존재를 만들어왔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뭉클하다.

 

는 합리적인 존재인가. 2<뇌와 정신>에 나온 한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맞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다.(p117)’. 어떤 일이든 그 일이 내게 일어날 수밖에 없던 배경을 어찌나 잘 끼워맞추어 왔던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자기 방어적인 본능인걸까.

모든 선택에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 행동을 좌우하는 수백 수천 가지 요소들이 존재(p122)’한다는 문장에서 잠시 쉬어 간다.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을 되돌아보면 당시의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지금은 다른 선택을 하겠지만, 정반대의 선택이라 해서 자신을 모순되는 존재라 여길 필요는 없겠다. 선택으로 가는 배경적인 공간이 변화했을 것이니. 빛은 직진하지만 중력장을 지날 때에는 휘어져서 진행한다. 개기월식 때 지구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야 할 달이 붉게 보인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태양과 달 사이에 지구가 가로막고 있어도 지구의 중력장에 의해 빛이 휘기 때문에 달 표면까지 파장이 긴 붉은 빛이 도달하여 반사되기 때문이라 한다. 대학 다닐 때 설명해주신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빛의 입장에서는 최단 거리를 가는 것이라고. 단지 공간이 휘어져서 먼 길을 도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라고. 다른 사람의 선택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내 모든 선택이 선택 시점의 배경 안에서는 최선이었듯이,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기에.

뇌는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면이 있다. ‘행동은 바꿀 수 있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한다면, 눈 딱 감고 2주 동안만 그 사람에게 잘해주면 됩니다.(p124)’ 웃으면서 공감한다. 행동을 정당화하는 뇌의 습성을 적절히 활용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환상통, 거울 요법, 환각, 코타르 증후군(좀비 병) 등 뇌와 관련된 질병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바보스러워 보이는 뇌의 작용이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

 

는 의미 있는 존재인가. 3<뇌와 의미>를 되새기다보니 아침에 본 재방송 TV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어쩌다 어른>에 나온 김미경 강사의 강연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이므로 나에 대해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도 나라고 한 부분이다. 20대에는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두려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조언을 들은 후에 찜찜해한 적도 많았다.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데 하며. 나에 대해서 나만큼 완벽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없는데 엉뚱한 데에서 답을 찾으려했으니 나의 사소한 면까지는 모르는 이의 조언이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휴대폰의 해상도에만 관심을 가질 뿐 삶의 해상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p243)’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입이 딱 벌어지는 풍경을 보았는데 막상 사진으로 찍으면 눈으로 보았던 만큼의 감흥을 느낄 수 없다. 그만큼 우리 눈의 해상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밀하다고 한다. 삶의 해상도도 마찬가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내 삶은 상대적으로 해상도가 떨어지는 카메라의 사진일 수밖에 없다. 내 삶의 장면을 의미 있는 해상도로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는 영원한 존재인가. 4<뇌와 영생>에서는 SF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존재를 떠올린다. 컴퓨터에 뇌만 이식하여 불로장생하는 우주적인 악당이.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몇 년 전 과학뉴스에서 미래의 인간 모습이 그림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뇌와 생식기나 손가락이 과하게 크고 나머지 몸은 상대적으로 왜소하다. 영화 <E.T.> 속 주인공이 연상되는 기형적인 모습이다. 묘한 일은 어쩌면 언젠가는 그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이 과학 분야 뉴스에 점점 많이 등장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기는 일들이 언젠가는 가능해질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다. ‘우주 더하기 나우주 빼기 나의 차이가 없는(p267) 세상일지라도 유한한 삶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고 싶다.

 

5<뇌과학자가 철학의 물음에 답하다>에서는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나를 생각한다. ‘무엇인가 특별한 경험을 하거나 유리벽을 깨고 멀리 갔을 때 자아가 성장한다(p326)’ 이 책을 읽은 것도 특이한 경험이었고, 그것은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독립적인 자아를 만들 수 있을까요? 예측 가능한 세상에 잡음을 집어넣음으로써, 예측 코드로는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방법입니다.(p330)’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고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나를 더욱 성장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뛴다.

 

신기한 일이다. 어떤 장르의 책을 읽어도 결론은 나 자신으로 모아지는 것이. 뇌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당겨서 바탕 화면을 변화시키며 나를 읽어보라 시험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삶을 경험하며 살아간다면 더욱 재미있어질 것 같다. 뇌에 앉은 먼지가 기분 좋은 바람에 살짝 날아간 것처럼 상쾌하다. 뇌 안에 있는 내가 조금 더 자란 기분이랄까. 정신이 거의 무한정적으로 깊어지고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멋진 일이다. 뇌에 있는 주름 켜켜이 새로운 무언가가 담기는 상상을 한다. 발이 절로 들썩인다. 일단 걸어가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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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20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우주에 거주하는 미래형 인간의 모습도 상상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우주의 무중력 현상 때문에 뇌의 모양이 짓눌리는 형태로 변한다고 해요.

나비종 2017-11-20 23:21   좋아요 0 | URL
공간이란 시간만큼이나 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 어떤 힘이 개입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환경으로 탈바꿈하니 말이죠. 우주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힘들이 물감처럼 공간을 채색하는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무중력 상태의 공간에서 뇌가 변한다면, 그 안에 담긴 정신도 육체만큼이나 달라지는 걸까요?
 
복제인간 윤봉구 - 2017년 제5회 스토리킹 수상작 복제인간 윤봉구 1
임은하 지음, 정용환 그림 / 비룡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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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고 눈을 감는다. 방금 본 조명이 잔상이 되어 눈 속에 머물다 사라진다. 커피 맛이 오늘따라 혀끝에 오래 매달린다. 마음이 감각 기관이라도 된 양 동화의 여운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다 아직까지도 심장을 붙들고 있다.

가슴에 ‘ORIGINAL’과  ‘COPY’가 새겨진 졸라맨의 타이즈 같은 옷을 입고 익살스런 표정으로 겉표지를 장식한 두 아이. 책 제목 <복제인간 윤봉구>가 겹쳐지면서 읽기도 전에 엉뚱한 이야기를 상상했다. 호평이 쏟아지는 어린이 심사위원의 멘트까지 정점을 찍으면서 속단해버렸다. 아이들의 취향을 저격한 재미있는 SF만화 같겠구나 라고.

무방비 상태로 마음을 향해 훅 들어왔다. 이런 내용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만큼 꽤 오랜 시간 잔영이 남는다. 재미있으면서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요소가 뒤에 나올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고, 코끝 찡한 감동까지 밀려오면서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울컥한다. 통통 튀는 정용환의 그림도 춘장처럼 맛깔나다. 책표지 안쪽에 있는 어린이 심사위원의 강력 추천 한 마디를 다시 읽는다. 아이들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이런 이야기를 알아볼 줄 아는 시선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절로 흐뭇해져 미소를 짓는다.

 

1993,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번득이며 크르렁 거리던 복제 공룡 이야기는 영화에서나 존재하던 판타지였다. 그러다 1996년 복제양 돌리가 성공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미역 줄기 같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캐릭터가 TV속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공포 영화가 현실에서도 재현된 느낌이랄까. 포유류도 복제가 되는구나. 277분의 1의 확률이었지만 결국 성공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2005년 개봉된 영화 <아일랜드>를 우연히 TV에서 본 순간, 이제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장기를 내놓기 위해 존재하는 복제인간이라니! 혼란이 왔다. 무조건 나쁘다 말하지도 못할 것 같았다. 내 소중한 가족이 병에 걸렸는데, 장기만 이식받으면 살아날 수 있다면? 충분히 갈등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모품처럼 장기가 떼어지는 복제인간을 생각하면? 뫼비우스의 띠로 이루어진 길을 걸어가기라도 하듯 내 생각은 원본인간과 복제인간의 입장을 오락가락했다.

2004년에 나온 소설 마이 시스터즈 키퍼: 쌍둥이별2009년 개봉된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중학교 3학년 과학 교과서 ‘생식과 발생단원의 말미에 나온다. 백혈병에 걸린 언니에게 줄기세포를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맞춤형 동생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한다. 2008, 영국 의회에서는  치료용 맞춤 아기의 출산을 합법화했다. 작가 조디 피코는 가까운 미래의 일을 예측이라도 한 걸까? 복제인간을 연상케 하는 소재이지만 가족의 의미에 더욱 무게가 실린 작품이다. 동생이 죽는다는 원작도, 언니가 죽는다는 영화도, 결말은 둘 다 마음에 안 든다. 모두 행복해지는 결말은 없는 걸까?

그런 면에서 이 동화는 따뜻하고 개운하다. ‘인간은 존엄하다. 그 말이 내 목구멍에 걸렸다. 복제인간도 존엄할까?(p98)’라며 복제인간의 정체성을 질문한다. 주 독자층일 아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짜장면 요리사를 향한 꿈을 꾸는 복제인간 윤봉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게도 한다. ‘넌 진짜보다 더 진짜니까. 꿈꾸고 웃고 사랑할 줄 아는 진짜.(p155)’라는 문장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섬세함이 빛난다. 동화의 캐릭터들을 묶어주는  가족이라는 따뜻한 끈 앞에서 원본과 복사본을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해진다. 한 호흡 멈추고 주변의 가족을 천천히 둘러본다.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묵직한 소재, 복제인간.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이미 만들어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안겨주는 민감한 소재이기도 하다. 치료를 필요로 하는 존재와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존재. 아직도 어느 쪽으로 서야 할지 갈등이 일어난다. 날짜변경선 위에 선 듯 위태로운 기분이다. 어쩌면 미래에 펼쳐질 현실은 무겁고 훨씬 더 치열하고 상상도 못한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은하 작가의 동화를 통해 따뜻한 희망을 본다. 탁탁탁탁탁. 복제인간 봉구가 경쾌하게 양파를 자르는 소리처럼 다른 어딘가에서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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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혐오 - 공쿠르상 수상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말하는 음악의 시원과 본질
파스칼 키냐르 지음, 김유진 옮김 / 프란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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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과 베이스 기타 소리를 좋아한다. 커다란 울림으로 오롯이 하나의 감각만을 향하는 규칙적인 두드림에 내 심장도 덩달아 두근거린다. 심장 박동이 피부로 느껴진다. 어두운 곳에서 이어폰을 끼고 듣다 보면 머리 뒤편에서 울리는 소리가 밖에서 온 건지 안에서 온 건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음악에 취한 듯 강하게 끌려들어간다.

어릴 적에는 타악기의 매력을 몰랐다.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를 넘나드는 맑은 가락의 피리나 하모니카가 멋져보였지, 큰 북은 그저 기악 합주의 맨 뒤에서 밋밋하게 둥둥거리는 재미없는 악기에 불과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깊은 진동이 피부를 뚫고 심장을 두드리기 시작한 순간, 그 울림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 책을 왜 샀을까. 과속방지턱을 만난 듯 옮긴이의 각주를 볼 때마다, 각주를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접할 때마다, 무한한 무지가 피부로 으스스 스며들 때마다, 짧은 문장 사이를 몇 번이나 왕복 달리기를 하며 멘붕이 올 정도로 시간을 흘려보낼 때마다, 이노무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불쑥 불쑥 일었다. 어느 정도 읽다보면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부분도 나오겠지 싶던 기대는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힘없이 무너졌다. 어쩌면 그리 한결같은 난이도를 유지하는지, 어쩌면 이리 한결같게 모를 수가 있는지. 듣도 보도 못한 신화 속 인물들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수시로 등장했고, 철학가와 문학가, 발음도 잘 되지 않는 종교적인 캐릭터까지 이 작은 책을 비집고 북적댔다. 일주일 만에 가까스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 표지 색깔처럼 암담함이 엄습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세 글자가 떠올랐다. ...

 

이상한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분명 제대로 이해한 내용이 없었는데 따뜻한 물에 푹 담근 몸으로 온기가 스며드는 것처럼 무언가가 내 안에 들어온 듯했다. 다 읽고 나니까 책의 맛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음악 안에서 어떤 요소가 내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겼는지 알게 되었다.

화려한 외피를 걷어내고 알맹이를 보려는 사람처럼, 음악의 본질을 향해 조금씩 거슬러 올라갔다. 아름다운 선율의 옷을 벗은 날 것 그대로의 음악에는 짐승들의 울음과 질척이는 생명의 떨림이 존재했다. 심장의 두근거림과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들썩이는 호흡의 규칙적인 리듬이 이 모든 것의 기원이었다. 음악이란 결국 생명에서 뿜어져 나온 울림을 모방하면서 이어져왔던 소리였다. 다양한 각도에서 음악의 본질을 파헤치는 저자의 사유에 절로 경외감이 느껴졌다.

 

음악(音樂)에서 (樂)’이란 한자에는 노래라는 뜻 이외에도 즐기다란 의미가 있다. 독음은 다르지만 좋아할 요도 같은 한자를 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음악은 음향(音響)에 가까워 보인다. ‘(響)’이란 한자는 고향 향아래에 소리 음자가 합쳐진다. '울린다'는 뜻이다. 음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좀 더 본질적인 소리의 고향을 찾고자 하는 사유가 엿보인다는 면에서 음향을 떠올린다. 그 본질은 즐겁지도 맑지도 않고 비릿한 눈물의 맛을 닮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볼 때의 느낌처럼 찡함과 기쁨을 동시에 품는다.

 

피아노 계단이 발명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참 대단하다 감탄했다. 그러다 몇 년 뒤비트 박스계단이 소개된 동영상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신선한 충격에 가까웠다. 한 사람이 올라설 때에는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만, 여러 명이 오르내릴 때는 잡스럽게 섞이는 소음이 되는 피아노 계단의 단점을 보완했다고 했다. 음의 고저가 없는 비트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음악이 되고 있었다. 여러 비트가 섞여 조화롭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묘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저마다 흥겨워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MSG를 첨가하지 않은 콩나물국인 듯 깔끔하고 개운한 소리였다.

 

주변 사람들이 뒤척이는 소리에 오늘따라 민감해진다. ‘귀에는 눈꺼풀이 없다.(p104)’는 문장이 떠오른다. 우리는 소리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소리가 외피를 뚫는 송곳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 절로 공감이 된다. 책에 등장한 묵음침묵의 의미를 곰곰 생각한다.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즐겨찾기로 등록한 음악들을 민감하게 듣다 보니 강하게 끌리는 노래의 공통점이 보인다. 내게 있어 노래 한 곡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드는 경우는 드물다. 1초 혹은 한 소절의 포인트에 반하면 스킬 자수를 하는 바늘에 꿰어진 듯 훅 끌려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오늘 다시 분석해보니 좋아하는 노래들 안에서 드럼과 베이스 기타 소리가 두드러진다. 내가 그리워하는 소리는 심장 소리였을까.

백예린의 <아주 오래된 기억>이 흘러나온다. ‘어떤 날은 소리로부터 아주 오래된 기억을 느껴음악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가사도 사라지고 리듬도 사라지고 심장의 떨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미묘한 떨림이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낱말 지음(知音)’의 의미를 새삼 생각한다. 내 심장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음악의 떨림을 인지하고 뛰어왔던 걸까.

 

음악에는 마냥 아름답다고 하기엔 훨씬 묵직하고도 깊은 무게감이 있다. 그 울림이 생명을 흔드는 방향으로 접근했을 때, 이 책의 제목처럼혐오라는 말이 나란히 붙을 정도로 처절할 수도 있겠다 싶다. 수용소에 있던 프리모 레비가 음악을 가리켜 지옥 같다라는 표현을 했듯이.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캐러멜 마키아토만 마시던 때도 있었건만 이제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게 된 후 나타난 변화이다. 우유도 첨가하고 캐러멜도 첨가한 음료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이 것 저 것 다 걷어낸 커피 고유의 매력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본질에 접근한 음악은 생명을 닮아 있었다. 그것은 훨씬 오래전부터 울리던 깊은 소리였다. 동물의 울음으로, 인간의 언어로, 악기의 울림으로, 누군가의 목소리에 실린 음악은 우리의 심장처럼 항상 뛰고 있었다. 생명의 떨림과 같은 파장으로 진동하는 공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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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사람 공부 공부의 시대
정혜신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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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과정은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마주치는 일이다. 나를 끌어내고 덜어내면서 복잡하게 응어리져 깊이 쌓여있던 고통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글을 쓸 때마다 종종 아픈 이유이다. 리뷰나 시가 완성될 즈음에는 대부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은 실컷 울고 난 것처럼 후련하다.

독서의 끝은 글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고 나서는 꾸역꾸역 노트북 앞에 앉는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처럼 퇴근 후의 시간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보낸다. 쏟아지는 직장일로 눈이 뻑뻑한 날에도 피곤한 몸을 끌고 커피숍에 가서 글을 쓴다. 노트북을 통해 내가 쓴 글을 객관적으로 마주 보며 나를 다독인다. 글과 함께 하는 시간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이다.

 

늘 마음에 걸렸다. 연애를 글로 배운다는 느낌이랄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머리로 인식하거나 가슴까지는 겨우 도달했으나 발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독후감을 썼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행동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행동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과격한 시위였다. 그런 낯설음이 두려워서 걸음을 쉽게 뗄 수가 없었다. 말이나 글은 행동으로 옮길 때 생명력을 갖건만 대부분 말과 글에서 그치는 자신을 돌아보며 무력감을 느꼈다. 내 글이 더없이 가볍다는 생각이 행동하지 못한 무거움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생명력을 가지며 살아있는 책을 만났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이 사람 공부라는 주제로 한 강연을 엮은 책이다. 정신 분석 이론이나 심리학적 치료 기법을 말했다면 실망을 느끼며 그리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을 터이다. 이 책은 달랐다. 삶의 현장에서 직접 끌어올린 말은 지하 몇 백 미터에서 올라온 암반수였다. 작가는 거리의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 했다. ‘사람에 가까워질수록 의사로서 탁월한 치유자가 된다고 믿으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작가의 태도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객관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노력까지 열심히 하니 실력이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었다. 책 속에서 나는 속으로만 고민하던 고구마 같은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액체 소화제를 먹은 듯 속이 뻥 뚫렸다.

 

반복되는 우울함으로 지쳐가던 때가 있었다. 결혼으로 새롭게 맺어진 인간관계 앞에서 한없이 서툴렀던 시기였다. 관계가 맺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감당하지 못했다. 많은 시간을 식탁 끝에 걸려있는 유리컵처럼 지냈다. 언제 깨질지 모를 불안함이 공기처럼 흘렀다. 내게 가장 추운 장소는 집이었다. 사회에서의 얼굴은 더없이 즐거웠으나 퇴근 후에 체감하는 온도는 낮고 공허했다. 그 온도차가 마음에 균열을 내며 딱딱하고 건조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갔다. 길을 가다 갑자기 죽는다 해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전원이 꺼진 채 멀티탭에 연결된 전기기구처럼 어두운 시간의 흐름을 근근이 유지하던 날들이 흘러갔다.

 

20144월의 그날도 시린 나를 견뎌야 했던 하루일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며 아파했지만 내 마음은 화석처럼 굳어버린 듯 했다. 안쓰러운 마음은 들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TV를 통해 가라앉는 배를 바라보았다. 나는 점점 무감각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행동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렸다. 모든 일은 하기에 적당한 때가 있는 법인데 팽목항에도 안산에도 가보지 못했다. 남들 다 달고 다니던 리본도 옷에 매단 적이 없고 핸드폰 뒤에 노란 스티커를 붙여본 적도 없다. 마음에 담긴 차가운 어둠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까지 얼려버린 것 같았다.

 

3년이 지난 후에야 뒷북을 치고 있다. 마음 속 얼음이 점점 녹아내리고 있음을 느끼면서였다. 고등학생이 된 둘째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비 크래커 절반만한 크기의 노란색 금속 열쇠고리가 자동차 키에 매달렸다. 출퇴근 때마다 시동을 걸면서 흔들리는 노란 영혼을 생각한다. 내 아이에게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제대로 견딜 수 있을까.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먹먹한 마음으로 한 번도 본적 없는 아이들의 부모님을 생각한다.

3년이나 지나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차 키에 열쇠고리를 매달고 그들을 생각하는 일이었다. 점점 따뜻한 사람이 되고는 있었지만 한편으로 한없이 느린 나를 돌아보며 쪼그라들었다. 내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것도 행동이라 할 수 있을까.

내 작은 행동에 대한 의미를 드디어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커다란 위안이었다. ‘…… 그런데 괜찮아.(p70)’ 동생의 죽음을 한참 후에야 받아들였던 형을 상담하면서 했다는 말이다. ‘괜찮아라는 세 글자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조금 늦게 아파해도 괜찮아, 괜찮아 하며 따뜻한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글이 지닌 힘이었다. 강의 후 이어진 Q&A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만났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당신의 고통을 나도 알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은 어떤 방식이든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p114)’이라는 작가의 답변은 소심했던 나를 가만히 토닥였다.

 

올 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겨울의 입김이 남아있던 3월 아침, 패딩에 털모자에 목도리까지 두른 채 교문 앞에 서 계시는 배움터지킴이 선생님을 보았다. 그 모습이 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내 느낌을 시로 지었다. 다음 날 오전, 시를 출력한 종이를 드리러 지킴이실을 찾아갔다. 마침 교내 순찰 중이시라 자리를 비우셨길래 다른 분께 전달을 부탁드렸다.

그분은 점심시간에 나를 찾아오셔서 두 손을 꼭 잡아주셨다. 내 시를 읽고 우셨다며 살짝 붉어진 눈으로 고운 편지봉투에 담긴 답장을 건네주셨다.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정갈하고 빽빽한 글씨로 채워진 편지지에는 표정에 담겨있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신의 마음을 선생님이 알아주시는 것 같아 피곤함이 싹 가시고 많은 힘을 얻었다고 하셨다. 학생들을 더욱 잘 보살피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하셨다. 다른 두 분께도 시를 지어 드렸다. 세 분의 지킴이 선생님은 내가 지나가면 멀리서도 반갑게 다가오시며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소설 <삼총사>에는 ‘One for all, All for one’이란 구호가 등장한다. 멋진 리듬감을 주는 문구만큼이나 깊은 의미를 지닌 문장이다. 19세기의 뒤마도 인간의 개별성이 나타내는 심오한 의미를 깨달았던 것일까. 작가 기타노 다케시는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와 관련해서 이것은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한 사람이 죽은 2만 개의 사건이다.”라 말하며 개별적 인간의 중요성을 시사했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정혜신 역시 한 개인에 집중하며 한 명 한 명을 치유해나간다. 강연의 결론은 모든 인간이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게 사람 공부의 끝이고 치유의 출발점(p150)’이라는 것이었다.

많은 경우 이런 마음을 안고 사람들의 고통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 싶었다. 결국 최종적인 치유자는 자기 자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답을 알고 있으므로. 주변에서는 그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줄 뿐이다.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따뜻해지지 않을까.

 

나란히 배치된 세 개의 책상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업무적인 일로 지킴이실에 들른 날이었다. 각각의 책상 앞에는 내 시가 적힌 종이가 나란히 붙어있었다. 볼 때마다 힘을 얻는다고 하셨다. 당신들 마음의 온도를 1정도 높여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시를 드린 마음을 깊이 이해받았다는 생각과 감사한 마음까지 뒤엉켜 교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뭉클했다. 나를 치유하는 역할을 넘어 타인을 향한 글이 의미 있는 발걸음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작가는 문학을 가리켜 인간에 대한 치유적 접근에 적합한 도구(p144)’라고 말했다. 어쩌면 글로도 행동할 수 있겠다 싶었다. 행동하는 글이란 타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글이었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시린 마음을 녹이고 힘을 얻어 행동할 것이니. 내 글도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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