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철학자 강신주 생각과 말들 EBS 인생문답
강신주.지승호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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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를 물방울들이 송골송골 컵 표면에 맺힌다. 주르르 흘러내리더니 유리컵을 둘러싼 물 받침이 된다. 컵 안에서 나오지 않았으니 분명 공기 중에 있던 수증기일터이다. 투명하게 숨어있던 존재들이 실체를 드러내는 시간이다.

강신주의 책이 그렇다. 그의 문장을 따라가면 우아하게 덮여있던 가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흘러내린다. 잘 숨겨왔던 혹은 있었는지도 몰랐던 욕망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촌철살인의 문장은 도무지 숨을 곳을 주지 않는다. 휴식을 취하듯 느린 호흡으로 읽어지지 않는다. 쨍한 유리컵에 얼음 꽉꽉 채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닮았다. 냉철한 이성으로 혈 자리를 정확하게 지압하는 문장에 움찔하면서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후련해진다.

책장 곳곳에 그의 책이 꽂혀있다. 그의 문장은 매번 그래왔다. <감정수업>에서는 49가지 감정을 디테일하게 정의하더니 <다상담>에서는 위안을 주다가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에서는 정면으로 화두를 던진다. 그의 철학이 얼마나 옳은지 논거가 타당한지는 상관없다. 중요한건 그의 문장들을 통과하면 생각이 많아지고 위안을 받으며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와 철학자 강신주가 여덟 번에 걸쳐 세상과 사람과 삶에 대하여 나눈 문답이 담긴 책이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며 인터뷰어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인터뷰이의 답변이 달라지므로 결국 전체적인 내용이 달라지니 말이다. 질문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답변이 구현되니 인터뷰어의 역할이 크다. 그의 질문 방식은 몇 가지 면에서 내 스타일이다. 첫째, 문장에서 겸손함이 배어나온다. 둘째, 인터뷰이가 저술한 도서를 숙지한 상태에서 질문한다. 셋째, 논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며 다음 질문을 이끈다. 이런 점에서 지승호는 출판사의 탁월한 선택이라고 본다.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에서도 그들의 대화를 좋은 느낌으로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그들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강신주 선생님의 건강이 나빠졌음을 언급하면서 스스로 조울증으로 인한 알코올의존증이었음을 밝힌다. 선뜻 꺼내기 어려운 말을 당당하게 하는 모습이 멋져보였다. 인터뷰어 지승호를 인터뷰하는 책이 나오면 어떨까. ‘지승호라는 사람이 궁금해진다.

 

마음 한구석 찜찜하지만 대놓고 물어보기엔 다소 새삼스러울 질문이 있었다. 강신주의 글은 나의 의문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첫째, 스스로를 진보적 지식인이라 칭하면서 외제차를 타고 비싼 옷을 사 입거나 어려운 이들에 대한 기부를 유도하면서 정작 본인은 아무 것도 안하는 사람을 진정한 진보인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런 모습을 마주칠 때면 모순이란 말을 떠올렸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지 헷갈렸다. 사생활의 영역이니 별개의 것으로 여겨야 하나. 낮은 곳에 있으려 한다는 말 앞에서 되묻고 싶었다. 강신주는 말한다. 그런 사람은 진짜 진보인이 아니라 진보팔이라고.

둘째,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건 종교인의 당연한 권리인가. 서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한다. 반면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스스로 노동을 하여 먹을 것을 구하지 않는다. 불공이나 기도를 노동이라 칭하지는 않으니까.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에 도달하여 득도하는 게 진정 타인을 위하는 것일까. 작가는 불교 세계에서 밥을 남기지 않는 이유로 나를 수긍케 한다. 다른 이의 노력으로 생계를 유지하므로 시주를 하는 이에게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는 것. 밥을 남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신주의 문장에는 사랑자유가 묻어있어서 좋다.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 가을하늘을 닮은 사랑이다. 쨍한 푸르름의 직진성이다. 하늘 가득 드넓은 햇살이 펼쳐지는 장면이 연상된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사랑과 자유가 동일한 개념으로 겹친다. 사랑과 연대는 자발적인 자기희생을 요구한다는 것, 사랑을 하려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 사랑을 하면 내 것을 기쁘게 덜어낼 수 있다는 것,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상상만 해도 마음이 탁 트인다. 하늘은 더불어 있는 것이지, 누가 소유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그의 말처럼 작가가 말하는 사랑에 근접한다면 하늘의 느낌을 닮아갈 듯하다.

사람의 문맥을 읽는다는 제목부터 좋았다. 사람이 마치 책인 듯이 여기는 시각에 크게 공감한다. 어떤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콘텍스트까지 이해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 부분을 지나면서 주변인들을 둘러보았다.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잘 읽고 있을까. 나를 볼 때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대상을 볼 때는 주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는 문장을 마음에 새긴다.

 

작은 자본가에 대하여 말한 문장들 앞에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스펙을 상품명세서라 말하는 철학자의 시선이 냉철하다. 노동자의 삶을 예전의 노예와 비교한 말은 매우 직설적이다. 타율적 노예인가, 자발적 노예인가의 차이일 뿐이라고. 출퇴근 노예가 노동자라는 말과 생산의 자유는 없고 소비의 자유만 있을 뿐이라는 말에 순간 웃기면서도 씁쓸한 마음으로 공감이 갔다.

허용된 자유는 기만일 뿐이라는 말에 아하! 무릎을 친다. 내게는 이런 자유만 허용될 뿐이야. 간혹 했던 생각의 모순성이 까발려졌다. 자유 자체가 허용과 상반된 의미라는 걸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뜨끔한 문장을 또 발견한다. 최악은 세상이 막연히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절망하는 것이고,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분노하고 바꿔버리는 거라고.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막상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소심함에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이다. 작가는 말한다. 아무도 내 앞에 있는 똥을 치워주지 않는다고, 스스로 치워야 한다고. 적절한 비유로 와 닿는 문장이다.

 

나는 배려의 아이콘이었다. 웬만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르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거절은 사전 속에나 존재하는 말이었다. 오로지 YES만을 부르짖는 인간. 언심(言心)일치라면 크게 상관은 없을 터이다. 문제는 마음속으로는 거절을 외치지만 그 마음을 차마 말로 뱉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기꺼운 거절이 마지못한 승낙보다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수많은 책 덕분이다. ‘, 그건 아냐~’ 라는 메시지가 파도처럼 마음을 들락거리면서 나의 성격은 노을빛으로 점차 변하게 된다. 배려를 몽땅 수거한 건 아니지만 때로는 부드럽게 거부할 줄 아는 인간으로 서서히 거듭나는 중이다. 비중 있는 기여를 한 작가 강신주의 역할이 크다.

이 책을 마주하면서 다시 한 번 나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본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을 주인이라고 하고, 남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을 노예라고 부른다는 문장에 뜨끔하다. 예전의 나는 진정한 배려 인간이 아니었다.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가 빠져 있었으니 노예와 같은 삶이었던 거다. 칼바람 쌩쌩 부는 냉철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청을 수락하기 전에 스스로 묻는다. 진정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가. 그렇다는 답변 앞에서 움직이려 노력한다.

 

먹을 것에 그다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종종 핸드폰을 충전하듯 밥을 먹었다. 음식은 에너지 발생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끼니를 때운다는 말은 적어도 내게는 적절한 표현이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혼자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는 것은 사료라는 말이 날카롭게 다가왔다. 음식은 나누고 함께할 때만이 비로소 음식다워진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커피 카피가 떠오른다. 네가 그냥 커피라면 난 티오피~. 사료와 음식의 차이는 이런 것이리라. 요즘은 고속 충전하듯 밥을 밀어 넣던 식습관을 릴렉스하는 중이다.

간혹 음식을 먹을 때 숙연해진다.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이 한때는 생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채식주의자라 외치면서도 가끔은 삼겹살이 땡기고 식물만을 먹는 것은 괜찮나 헷갈렸다. 식물도 생명이니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의 삶을 취해야하는 건 필연이건만. 강신주의 문장에서 명쾌한 답을 얻는다. 최소한의 폭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음식을 남기지 않아야 하는 이유와도 연결이 된다. 죽음도 이런 관점이라면 더 이상 다른 생명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라고.

 

팬데믹, 언택트, 스마트폰 사회경제학, 스펙, 가족공동체, 기브 앤 테이크 등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바라보니 돋보기로 어떤 대상을 관찰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선명한 상을 보기 위해서는 정확한 초점을 맞추기 위해 왔다 갔다 거리 조절의 과정이 필요하듯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각도에서 현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중심을 잡을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그 존재 자체를 오감을 통해 만나는 것이라는 말, 인간이 가진 최고의 감각이 촉감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사랑의 관계에 대한 관점도 신선하다. 사랑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다는 말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여 왔다. 작가의 말은 다르다. 서로 얘기하고, 산책하고, 너와 내가 마주 보는 관계가 사랑의 관계라는 것. ‘사랑의 속성을 다시 한 번 톺아본다.

강연에 대해서는 강연 이후의 시간에 진정한 강연이 시작된다는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수업 관련 연수를 받으며 잠시 쉬는 시간에 이루어졌던 대화에서 꿀팁을 얻은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동안에 오고 갔던 말들이 정말 도움이 되었다. 본 강연은 단지 소스를 제공하고 거들뿐이었다.

 

다른 이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종종 말해왔다. 나의 글은 누구를 위한 따뜻함인가. 예컨대, 거리를 걷다보면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폐지 줍는 노인에 대한 시를 여러 편 짓는다. 당신들의 고단한 삶을 시로 그린다. 한데 정작 폐지 줍는 노인들은 나의 시를 읽을 일이 거의 없다는 게 팩트이다. 생계가 힘들면 인권도 의미가 없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당장 오늘 하루의 생계에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는 절박함 앞에서 시는 설득력을 잃는다.

나의 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는 이런 생각도 해, 이런 시각으로 소위 사회적인 약자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무의식적인 자기만족 내지는 자기 과시가 아닌가. 이런 고민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가야 하리라.

더 이상 쓰지 못하면 작가는 살아도 죽은 것이고, 설령 살아 있다고 해도 그의 마지막 책은 묘지명이 되고 만다는 문장을 읽고 글을 쓰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프로가 되든 아마추어로 살든 지금처럼 같은 결로 글을 쓴다면 나의 마지막 문장은 무엇이 될까. 깊어지고 넓어지는 사유로 계속 다듬고 나면 어떤 문장이 남을까. 막연하면서도 설렌다.

 

강신주의 글은 다른 방향을 보게 한다. ‘변화에 대한 관점도 그중 하나다. 사람들이 조화보다 생화에 더 끌리는 이유도 본능적인 이끌림일까. 시들어가는 꽃을 보며 허무하다 여겼던 관점이 그렇게 변해가니까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변한다. 같은 맥락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이겠지. 불로장생의 삶을 살아간다면 오늘의 삶도 크게 의미 없으리라. 어차피 영원히 이어질 내일이 다가올 테니. 우리의 삶이 제한되어있기에 오늘 하루가 그만큼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모습으로 제한된 삶이 주어진다면 지루할 수도 있겠다. 늙어가는 모습으로 변주를 준다고 생각하면 아쉽지 않다. 다만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려 노력해야 하리라.

작가는 멋진 철학자이다.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만들고, 낯선 것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철학자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 사이사이에 간간이 끼워진 사진을 보며 안타까웠다. 많이 야윈 작가의 얼굴을 보며 예전의 강연 동영상 몇 개를 찾아본다. 다시 돌아와 세월이 담긴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생명체가 변화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리라. 느낌 탓일까. 표정에서 깊이가 보이는 듯하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의 마지막 구절이다. 빙산의 꼭대기만 바라보고 빙산 전체를 판단하지 말지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의 의미를 너무 얕게 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많이 들어본 말이었기에 낯설지 않았던 문장이다.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평범한 직역만을 알아왔다. 에필로그에서 제목을 보고 뒤에 이어지는 문장을 읽는 순간, 거대한 쓰나미급 물결이 심장을 훑고 지나갔다.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 / 세찬 바람이 내 책을 펼쳤다가 닫고, / 파도의 포말들이 바위 틈에서 작열한다! / 날아 흩어져라, 찬란한 모든 페이지들이여!’ 문장들을 연결해서 음미하니 훨씬 더 깊었다.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사이에 있는 말줄임표에서부터 많은 말들이 담겨있음을 깨달았다. 무덤들 앞에서 바람을 맞는 시인. 말줄임표 끝에 살아야겠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철학자 강신주가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적었는지, 왜 이 책의 제목을 저렇게 정했는지를 가늠해본다. 사랑과 자유와 인간의 삶을 말하던 책 속의 문장들과 잘 어울린다. 바람이 불 듯 다가온 문장들을 통과하고 나니 어떤 방향을 향해 걸어가야 할지 시야가 선명해진다. 흩어질 나날, 찬란한 내 삶의 페이지들이 포말처럼 뿜어져 나오는 장면을 상상하는 순간 울컥해진다.

 

 

p37, 밑에서 7째줄: 환경 문제 에 ~ 문제에

p116, 밑에서 6째줄: 기배계급은 지배~

p208, 마지막 줄: 메를리 퐁티 메를로~

p240, 3째줄: 빈인빈 빈익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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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알다 해를 살다 - 생명살이를 위한 24절기 인문학
유종반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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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보내줘야 할 시간인가. 바삭 구워진 감자 칩처럼 갈변한 잎들을 한 장 한 장 떼어냈다. 내 무심함의 소산인양 괜스레 미안했다. 새끼손톱만한 꽃 분홍으로 주방 창가를 작은 텃밭으로 만들어준 식물. 앙상하게 드러난 알몸의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과거형이 된 존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그라진 잎들을 아쉬워하며 며칠 동안 한 일은 하나였다. 다만 습관처럼 물을 주었을 뿐. 소용없음을 알지만 맨 땅의 메마름이 안쓰러워서였다.

상상도 하지 못한 기적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아침에 나타났다. 몸통에 까슬까슬한 솜털 비슷한 게 한동안 보이더니. 나의 식물은 구석구석에 연두 빛 작은 이슬을 보여주었다. 봄 이었다! 몇 년 전 주방 창가의 작은 화분에서 나는 봄을 보았다. 우주의 기운이 정말 존재하는 걸까.

며칠 전, 곡우가 지났다. 이제는 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갈색으로 변해버린 잎들이 다시 연두 빛 옷을 입고 등장하리라는 사실을. 식물이 전했던 이별의 모습이 더 이상 아쉽지 않아졌다.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리는 무소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인고의 시간을 넘으면 화분 안의 생명은 다시 삶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태양에너지이다. 지구와 태양의 상대적인 위치 관계가 지구 위 생명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1년을 24개로 구분한 결과가 절기이다. 때를 알다 해를 살다는 계절과 절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등 계절별로 구분된 24절기를 세세하게 설명한다. 계절, 24절기의 의미와 시기, 행사, 나타나는 자연 현상, 관련 속담과 시, 함께 생각할 질문이 담긴다.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몇몇 절기 관련 현상은 들어맞지 않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을 기술한 문장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맞춤형의 절기 지도를 보정하여 만들면 어떨까.

겨울은 생명을 준비하는 기간, 봄은 열매를 잘 맺는 기간, 여름은 뜨거운 햇볕과 강한 비바람으로 열매를 잘 키우는 기간, 가을은 제 빛깔과 제 맛과 제 향기에 맞는 열매로 익히는 기간이다. 인생은 타이밍. 지나오는 시간이 쌓일수록 삶의 진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때는 미리 알고 준비하는 자의 것이니 누구에게나 봄은 오지만 아무에게나 봄은 아니라고. 절기를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라며 절기와 우리 삶을 연결 짓는다.

 

계절과 절기와 관련하여 제대로 알게 된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절기의 는 때를 뜻하는 가 아니라 기운을 의미하는 이다. ‘기운이라 하니 왠지 신비롭고 묘하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무엇. 기운을 연상하며 24절기를 공부하니 우주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한다.

둘째, 월별 계절의 구분이다. 2~4월은 봄, 5~7월은 여름, 8~10월은 가을, 11~1월은 겨울로 구분한다. 절기에 따르면 땅의 봄이 시작되는 시기는 3월이 아니라 입춘이 포함된 2월이다.

셋째, 입춘, 입하, 입추, 입동 등 계절의 시작을 뜻하는 은 들어선다는 이 아니라 세운다는 이다. 그저 때가 되어서 맞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해서 세운다는 의미인 거다. 절기의 깊은 뜻은 인간을 능동적인 존재로 만든다.

넷째, 11월은 하늘의 봄이 시작하는 달이다. 저자는 11월을 자월(子月)로 설명한다. 11시와 새벽1시 사이도 자시(子時)라 일컫는다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살짝 소름이 돋는다.

다섯째, 계절의 시작은 겨울이다. 생명이 움트는 봄을 준비하는 계절을 시작으로 본다. 일리가 있는 관점이다. 인간의 삶 역시 봄에 태어나 가을로 마감한다. 부모님, 역사, 문화, 우주, 자연 등 존재 이전의 사건과 대상은 준비 기간이다. 나의 삶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거다.

 

24절기 절기살이에 들어서면서 65쪽부터 오른쪽 위에 조그만 손톱크기의 반달무늬가 보인다. 애니메이션을 넘기듯 휘리릭 넘기면 빙글빙글 움직인다. 나름 동영상이 연출된다. 마음에 들었던 깨알 편집이다.

다만 교정과 내용면에서 두 가지 요소가 몰입을 방해했다.

첫째, 몇몇 누락과 오기이다. 차례에서부터 누락된 글자를 발견한다. 곡우에는 문장 부호가 빠지더니 망종과 하지에서는 절정에 달한다. 사소한 단어의 오류부터 문장 받침의 오기가 눈에 들어왔다. 명백히 교정을 본 사람의 책임이라 판단한다.

둘째, 반복되는 말과 구어체의 문장 표현 방식이다. 의도는 알겠는데 말이 반복되니 구성이 산만했다. 한 계절 안에서 하나의 절기에 대한 일관적인 흐름 없이 말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어체인 듯 조사가 생략된 문장도 등장했다. 문장의 표현 방식은 작가의 문체이니 그렇다 쳐도 반복되는 문장들로 인해 내용이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절기를 안다는 것은 우주의 기운과 그 흐름을 현명하게 읽어 내려가는 행위이다. 그러니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계절을 제대로 바라보며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크다.

 

삶의 계절은 관계를 계기로 변화하나. 크고 작은 만남이 반복되면서 어설프고 불안정했던 나의 계절은 조금씩 바뀌었다. 만남의 대상은 주로 사람이거나 책이었다. 내 삶이 통과한 계절을 돌아본다. 설렘으로 발그레하던 봄, 열정적으로 선명했던 여름, 황량한 상실감으로 터벅터벅 걷던 가을, 매서운 눈보라에 구석으로 내몰린 채 서러운 눈물이 얼어붙던 계절을 기억한다.

계절의 변화가 눈으로, 코로, 귀로, 피부로 민감하게 들어온다.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의 몸이 깨어나는 느낌이랄까. 누군가 빼앗긴 들 같은 마음에도 봄은 오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답은 그렇다이다. 계절의 순환을 반복하다보면 언젠가는 온다. 이제는 암울하게만 인식되던 겨울을 따스한 마음으로 날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은 다가올 봄을 품기 위해 워밍업을 하는 기간이니까. 겨울은 삶을 응축시키며 내면의 소리를 듣고 깊게 들여다보는 시기라는 저자의 말이 따스하다. 철을 공부했는데 철든 삶이 보인다.

계절의 기운에 몸을 얹은 채 자연스럽게 파도타기를 하는 자연을 바라본다. 매년 자연은 새롭다. 포슬포슬한 눈, 흙의 빛깔을 닮은 나무, 초록의 잎, 손바닥만 한 새, 연두 빛 새싹, 빛을 가둔 고드름, 사락사락 풀들, 드넓은 대지 위에 철마다 그려지는 화려한 점묘화, 우주의 기운이 집중된 열매, 수많은 생명의 꿈을 품은 땅, 가뿐히 자유로운 구름. 계절에 담기는 건 이토록 소박한 존재들이다. 자그마한 존재들의 변화로 계절은 자연스레 물들어간다.

 

바이킹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배의 움직임에 맞춰 리듬을 타는 거다. 흔들리는 컵 안에 담긴 물처럼 움직이지 않으려는 관성으로 출렁이다 넘치는 게 아니라 신발의 속도와 방향에 맞춰 하나로 움직이는 발이 되는 것.

인간의 삶도 비슷하리라. 계절이 품고 있는 온도와 습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면 계절과 한 몸인 듯 삶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봄처럼 마냥 설레는 시간만을 보내는 게 아니라 여름의 뜨거움도 감내하고 미련 없는 가을의 무소유도 닮아가며 시린 겨울을 향해 가슴을 내밀면 더 이상 서럽거나 외롭거나 억울하지 않으리라.

얼굴이 활짝 피었어요.” 작년에 같은 사무실을 썼던 동료가 인사말을 건넨다.

나만 행복해서 어떻게 하지.” 환하게 웃으며 답한다.

지금은 어느 때인가. 나는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나. 무엇을 알고 살아야하는가. 나의 열매는 익어가는 중인가. 지나온 어느 때보다 지금의 나는 더욱 생기 있는 계절을 지나는 중이다. 지금은 확실히 봄이다.

나의 봄을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봄이 영원하지 않겠지만 아쉽지는 않다. 다가올 여름, 가을, 겨울을 당당하게 지나면 다시 또 봄이 오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누락, 조사 생략>

p21, 대설 다음에 동지’(인터넷 책 소개에는 제대로 되어있음)

p157의 밑에서 5째줄, p1794째줄, p185의 중간(새로워진다): 마침표 누락

p159의 밑에서 2째줄(말씨 몸씨): 쉼표 누락

p162, 2번째 단락 3째줄(45 50): ‘~’표 누락

p176, 밑에서 3째줄: 한 해 가장 길다. 한 해 중 ~

p178, 아침 기온 20도 이상 올라간다. 아침 기온이 ~

p1846째줄(담석), p184의 중간(자로), p1855째줄(왕채), p185(창포비녀), p186(사전): 밑줄 누락

 

<오기, 오류>

p138, 꽃이 피다. ~ 핀다.

p177, 2째줄: 시작되기도 하다. ~ 한다.

p179, 3째줄: 된다). 된다.)

p179, 밑에서 5째줄: 일임). 일임.)

p183, 밑에서 5째줄: ‘*보리가 익는 철중복 표기

p212, 3째줄: 운다다. 운다.

p217, 밑에서 7째줄: 매단 체 ~

p229, 4째줄: 코스모스 가 코스모스가

p230의 절기 시: 이슬 노래 이슬

p230, 김동균 작곡 김동호 ~

p247, 6째줄: 쌀 한 말 ~

 

<제안>

절후 현상과 절기 현상을 합쳐서 기술했어도 좋았을 듯. 절후가 5일 간격으로 절기를 세 등분한 개념이지만 내내 그 절기 안에 속해있으므로 중복된 내용이 간간이 등장함. 현상들을 한 공간에 모아 놓고 표로 구분했으면 어땠을까.

p81, 밑에서 10째줄: 남반부 남반구(지구는 타원체이므로 남쪽 부분을 가리키는 보다는 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함)

p176, 밑에서 9째줄: 북반부 북반구

p182, 하지 행사에 단오절, 단오선 등장 이건 망종 행사에 적합할 듯

p223, 입추와 처서를 설명하는 부분이므로 ‘6. 찬 이슬과 서리의 의미는의 내용은 백로, 한로, 상강에서 다루는 게 적합해 보임

p2052번째 단락과 p224~225의 내용 중복: 진정한 행복은 좋은 관계를~

p243(揠苗助長)은 한자 앞에 음(알묘조장)도 달았으면(무식하지만 집요하기도 한 나는 이거 알아내려고 별짓을 다함)

 

<이해가 잘 안감>

p124~125, 춘분(320일쯤) 속담에 2월이 등장한 건 음력 2월을 의미하는 건가?

곡우에 비가 오면 농사에 좋지 않다.(p137)와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p139)는 정반대의 문장인데...

p139, 청명 속담에 봄비 내용이 맞나?(청명은 하늘이 맑고 날씨가 좋은 절기라면서...)

p176, 밑에서 2째줄: 소서부터~ (하지 관련 내용을 설명하다 갑자기 소서 등장)

p254, 3째줄: (소아: 무엇?)... 무엇?이 무엇일까? <시경><소아편>을 의미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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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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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선입견이다. 제목에 이끌려, 표지에 이끌려 선택한 책이다. 전개될 내용이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에 평화를 주는 선물을 스스로에게서 받은 기분이랄까. 포장지에서 은은히 전해지는 정적인 고요가 그저 좋았다.

걷는 듯 천천히는 영화감독이자 TV 프로듀서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주변을 묘사한 에세이이다.

직업의 특성 상 작가의 삶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 관련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영화 제작 과정에의 에피소드와 배우이야기, 그 안에서 깨닫는 인간의 본성을 서술한다.

작가의 일상 이야기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체험이 그려진다. 그의 글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나의 어린 시절을 끌어온다. 돌아갈 수 없다는 명백한 고정점에서 거슬러 올라가서일까. 내용은 하늘하늘한 표지의 색채보다 다소 짙게 다가온다. 조금은 아리고 약간은 코끝 찡한 순간이 책갈피인 듯 읽는 동안 간간이 오고 간다.

리뷰도 일정 부분은 읽은 책을 따라가는가. 잔잔한 마음으로 천천히 이 글을 적고 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소박한 오솔길을 산책하는 발자국인 듯하다. 키보드로 입력할 때마다 사락사락 낙엽 밟는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작가 이력을 보니 TV 프로듀서이자 영화감독으로서 유명한 사람인가보다. 각종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들어본 듯 익숙한 제목이다. 나는 영화에 문외한인데다 영화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나머지는 제목조차 들어보지 못했다는 게 살짝 미안해진다.

책날개에 적힌 영화감독으로서의 신념이 마음에 든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는 관점이 에세이에도 고스란히 반영이 된다. 일상을 이렇게 그리는 사람이 제작하는 영화라면 어떤 분위기일지 짐작이 간다. 한마디로 꾸안꾸? 내추럴 빈티지 패션의 포스를 장착했으리라.

보는 이들이 상상력으로 빈 곳을 채우는 식의 영화를 만든다는 작가를 보며 시의 속성을 떠올린다. 그의 영화는 시적이겠구나.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각자의 경험을 떠올려서 작품 속에 빠져들게 하겠구나.

그의 선배가 했다는 조언에 움찔한다. ! 영업 비밀을 들켰다. 나 역시 시를 쓸 때 사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한 사람을 떠올리며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말이다. 시를 쓸 때마다 어떤 대상이나 장면을 떠올린다. 둘 이상의 합체로 만들어진 대상도 있다. 배우가 캐스팅되고 무대가 만들어지면 나는 그 장면을 그대로 스케치한다. 붓 대신 시를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책속의 <배우 이야기>편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이 두 군데 있다.

첫째, 기키 기린이라는 배우가 했다는 말이다. ‘다들 배경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들이니까라는. TV에서 보았던 한 배우의 인터뷰 장면이 떠오른다. 그 배우는 존경하는 배우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유를 밝힌다. 그분이 왜 대단한지 아느냐고. 그 영화에 나왔었나? 관객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존재감을 조절할 수 있어서라고. 모두 다 초점이 되려 하면 제대로 된 장면이 구현되지 않을 터이다. 배경으로서의 역할이 충분히 이루어질 때, 장면은 생명력을 얻으며 빛을 내리라. 가야할 때를 분명히 알고 떨어지는 낙화가 있기에 생명의 순환 고리가 흐르는 거니까.

둘째, 하시즈메 이사오라는 배우를 묘사한 작가의 말이다. ‘모든 것은 사소한 움직임과 움직임의 사이에 표현된다. 대사와 대사 사이. 움직이기 전에 멈춰 있는 약간의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는 식으로 당황스러움과 친절함, 유머를 멋지게 나눠 연기한다.’. 배우도 충분히 멋졌겠지만 그 배우를 저리도 섬세하게 파악하는 감독의 시선 역시 못지않게 멋지지 않은가.

여백을 그리면 주제가 선명해진다. 그림자가 사물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보이듯이. 배경처럼 존재하는 평범한 일상은 특별함의 의미를 명확하게 만들어준다. 잔잔한 물결처럼 밀려오는 파도를 계속 맞이하는 우리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일상을 도움닫기로 삼아 더 나아갈 힘을 얻고 있음을.

 

사진가와의 대담 에피소드에서는 작가가 대담 전에 미리 사진집을 보다가 울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사진 속에 그려진 감정에 작가 자신이 겹쳐서이다. ‘작품은 시간을 거치며 변화해간다. 그리고 변화한 나와 다시 만난다.’는 문장이 문학작품의 속성과도 겹쳐진다. 같은 책이건만 삶의 다른 시간대에 읽으니 전혀 다른 책으로 느껴진 경험을 한 적이 종종 있다. 삶이 가져다준 경험치가 관점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석고상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스케치되는 것처럼. 다른 면이 보이는 건 당연한 결과이리라.

한 편의 문학작품에서 어떤 이와 공감대의 싱크로율을 보이는 장면을 만났다면 그 순간만큼은 같은 각도에서 대상을 바라보았다는 증거일 터이다. 이 책에서 작가의 부모님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자주 걸음을 멈추었다. 여든의 고개를 넘어 천천히 삶을 걸어가시는 당신들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가가 느꼈던 감정이 어떤 질감이었을지 알 것만 같아서 공감대어린 뭉클함을 안았다.

감각을 자극하는 경험은 사람 자체보다 오래 간다. 그 때 들었던 음악, 코끝을 스치던 냄새, 입 안 가득 채웠던 맛, 손끝을 쓰다듬던 감촉. 그 순간 함께 한 이가 감각과 연결되면 그 장면의 경험은 감정으로 코팅이 되는 걸까. 사람도, 감각을 자극하던 모든 것이 지나가도 감정은 여전히 마음 깊이 남아있는 걸 보면. 잊은 듯 삶을 걸어가다 어느 순간 같은 감각의 경험과 마주하면 연결되어있던 감정이 휘리릭 올라오니 말이다.

 

시이든 수필이든 심지어 리뷰에서조차 내 글에 담기는 소재는 대부분 나이거나 나의 가족이거나 학생들이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다른 이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글은 이들과 동떨어지지 못한다.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스케일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글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까. 종종 마음 한 구석에 고이는 고민이었다. <머리말을 대신하여>에 나오는 작가의 문장이 많은 위안을 준다. ‘보편성이란 무엇일까? (중략) 자신의 내면적 체험과 감정을 탐구해서 어떤 종의 보편에 닿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말에서 힘을 얻는다.

이야기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작가. 그의 곧은 심지에서 희망을 본다. 평범한 삶에서 빛의 부스러기를 발견할 줄 아는 예리한 시선이 좋다. 찬란하게 빛나지 않아도,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그는 당당하게 외친다. 다소 서툰 이들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는 감독, 틀에 짜인 대본보다 날 것 그대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존중하는 감독, 그는 삶의 모습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는 사람인 듯하다.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우리는 모두 주인공으로 우뚝 설 수 있다고 격려한다.

삶의 모든 걸음을 씩씩하게 나아갈 힘을 전해주는 작가의 에너지가 좋다. 그의 문장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찡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심장으로 원 샷 한 기분이 들었다. 몰랑몰랑해진 심장이 나의 삶을 향해 천천히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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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2-04-08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비종님, 5~7월 모임 선정도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ㅎㅎ

1. 제르미날 1~2 - 에밀 졸라
2. 햄릿 - 윌리엄 셰익스피어
3. 밤은 부드러워라 -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에밀졸라는 당분간 계속 독파할까 합니다 ㅋㅋㅋ
목로주점처럼 분량은 많지만 금방 읽을거라 생각해요!
셰익스피어랑 스콧 피츠제럴드 작품도 오랜만이죠?? 기대가 됩니다요!
날씨가 갈수록 좋네요. 분리수거하러 가는 발걸음마저 좋더라고요ㅋㅋㅋ
봄기운 마음껏 만끽하시길 바랄게요 ^^

나비종 2022-04-08 16:51   좋아요 1 | URL
졸라 좋습니다~ㅋㅋ
베니스와 개츠비 정도의 작가면 무난할 것 같구요.^^
셋 다 기대되는데요?ㅎㅎ

드디어 집에서 자유롭게 분리되셨군요ㅋㅋ 축하드립니다~^^
다음 달에 봬요~
 
불편한 편의점 (40만부 기념 벚꽃 에디션)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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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예술적이고 우아한 PPL을 본 적 있는가.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옥수수수염차를 샀다. 카페에 은은하게 깔리는 BGM처럼 이 소설의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음료를 새삼 맛보고 싶어서이다. 광동에서 김호연 작가에게 평생 무료로 제공해도 될 만큼 광고 효과가 탁월했다고 단언한다. 평소 전혀 왕래를 하지 않던 그곳을 오로지 옥수수수염차 한 병을 사기 위해서 갔으니까. 가까운 슈퍼에도 파는 그것을 굳이 먼 길 돌아 방문한 이유는 하나. 이 책을 읽고 나니 편의점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이다. 일종의 성지 순례랄까.

마침 투 플러스 원이다. 소설 속 원 플러스 원이 떠오른다. 묘하게 뿌듯하다. 한 병 사러 갔다가 얼떨결에 세 병을 득템한다. 소설을 읽고 수행평가 한 가지를 실시한 기분이다.

사실 편의점은 내게 다소 꺼려지는 장소였다. 장소의 고요함 때문일까. 계산대 앞에만 서면 일대일 면접을 하듯 긴장했다. 일회용 계산을 해치워 버리듯 후다닥 계산하지 않으면 혼날까봐 조바심 내는 아이 모드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편의점은 내 삶의 여집합의 영역에 속하는 장소였다.

한 권의 책이 발걸음을 바꾸었다. 계산대 앞에 선 사람과 계산하기 위해 밀물과 썰물처럼 오가는 사람들의 삶이 겹쳐졌다.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알코올성 치매로 기억을 잃은 노숙자 독고가 편의점 주인 할머니의 파우치를 찾아준 덕분에 편의점 알바로 고용되면서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다 기억을 찾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은 모두 8명이다.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이다. 제각기 삶의 고단함에 젖어있으며 잠시 피곤한 몸을 기대려 편의점에 들르거나 가족과의 소통에 삐거덕거리는 존재들이다. 취업을 못하고 편의점 알바를 하는 시현, 아들과의 소통이 단절된 채 편의점 알바를 하는 선숙, 딸들과의 소통에 단절된 중년의 가장 경만, 어머니와의 소통이 단절된 채 사회적 진출의 언저리에서 배회하는 민식, 폐기물인 듯 자조하며 위태위태한 흥신소를 어설프게 운영하는 노년의 곽. 더불어 작가 생활의 고민 끝에 절필을 감행하려는 인경은 작가의 자화상으로 보인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선명하다. 소통이다. 특히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혈연이나 서류상의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에서도 이상적인 가족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가족과의 소통 방법에 해결책을 제시하여 구성원 사이에 자연스러운 소통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가를 시사한다.

 

전체적인 짜임새에는 변두리에서 의기소침한 채 그저 살아내는 인간들을 작가가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마디로 따스한 시선이다. 작가에게는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정말 소중했던 듯싶다. 편의점계의 용어마다 한 사람씩 연결 지어 핀 조명을 비춘다. 한 사람씩 각 챕터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여기에 주인공 독고가 개입되면서 탁구 시합인 듯 유머 섞인 대화가 오간다. 등장인물들은 이제껏 부족했던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깨닫는다. 아이러니한 건 그 과정에서 주인공 독고 역시 치유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작용과 반작용인 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두 사람 모두에게 치료제가 된다.

꽁꽁 묶여있던 매듭이 서서히 부드러워진다. 매듭을 푸는 건 당사자의 몫일 터이다. 분명한 건 각각의 이야기 말미에는 얼어붙은 듯 보였던 차가운 매듭이 곧 풀리리라는 온기 어린 예상이 된다는 점이다.

작가는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세밀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스케치한다. 인간의 탄생 이후 가장 먼저 맺어지는 가족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 사이에서 바람직하게 이루어져야 할 소통 방법을 묻고 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감탄하며 읽었다. 문학이란 이런 거지. 표현력의 지존을 드디어 만났다. 같은 말을 해도 어쩌면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평소 생각하던 이상적인 표현력을 장착한 문장들이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졌다. 기본적인 유머에 적절하게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수미쌍관법처럼 앞서 나온 표현의 맥락을 이어주는 흐름, 사물의 본질에 근거한 비유가 적재적소의 상황에 들어앉는다. 놀라운 싱크로율로 문장을 구현하는 맛이 배가 된다. 논리적으로 커다란 그림을 그리는 비유이다. 화려한 수사 어구가 아니어도 문장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김호연 작가는 비유의 달인이다.

서사의 전개로 판단하건데 탄탄한 스토리이기에 영화화되어도 충분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구현하는 맛깔 나는 문장의 맛은 넘사벽이기에 절반의 감동만을 가져가리라.

이를 테면 똥 냄새를 표현한 문장 같은 거다. 저자는 시적이고 탁월한 비유를 시전한다. ‘늦가을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떨어진 열매가 사내와 비슷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는 문장에서 감탄한다. ‘구린 냄새가 났다가 이렇게 변모하다니! 영화화한다면 주변인들의 표정으로 분위기를 표현했으리라. 한데 그냥 은행 열매 냄새도 아니고 심지어 낭만적인 문장이다. 내내 내레이션만 깔 수는 없으니 이런 표현력이 자아내는 분위기를 영화 속 장면으로 어떻게 구현한단 말인가. 이쯤이면 작가의 뇌구조가 궁금해진다.

 

표현력과 스토리에 압도당한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한동안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이게 뭐라고 뚫어지게 바라볼 일이냐. 써야 할 리뷰는 단 한 글자도 꺼내지 못한 나는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책상 정리, 주변 정리로 뒤척이듯 엄한 책표지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인터넷에서 책을 다시 검색해본다. 책 제목을 클릭하는 순간, 갑자기 시야가 훤하다. 나의 것과 다르다. 나는 시커먼 밤인데 모니터 속은 대낮이다. 초반 29쇄로 발행된 책 vs 초반 39쇄 발행을 과시하는 책. 썰렁해 보이는 밤의 편의점 풍경 vs 40만 부 기념 벚꽃 에디션으로 모니터 화면에 활짝 피어난 봄. 단순히 밤과 낮의 차이가 아니다. 오호? 같은 그림, 다른 장면 찾기에 도전한다. 책표지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집중력과 관찰력을 요구하는 이게 은근한 도전 의식을 부른다.

첫째,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있는 인물이다. 원본에 있던 주인 할머니가 벚꽃 본에서는 젊은 아가씨로 변했다.

둘째, ‘,글자의 색이다. 원본에서는 약간의 금빛으로 노년의 희끗한 머리칼을 연상시킨다. 벚꽃 본에서는 꽃잎을 닮아 연한 분홍빛이다.

셋째, 편의점 앞 길고양이의 등장이다. 원본에 등장하는 생명체는 주인 할머니, 주인공 독고 두 명이다. 벚꽃 본에서는 젊은 아가씨, 주인공 독고에 길고양이가 한가로이 졸고 있다. 느긋한 봄이 덩달아 누워있는 듯하다.

한 편의 리뷰를 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어도 시원찮을 판에 두 개의 책 표지만 번갈아 노려보다 하루가 홀딱 흘러가버린다.

 

별점 다섯 개를 넘어 열 개를 매긴대도 10점 만점에 주저 없이 10점을 매길 정도로 엄지 척을 내세울 만 한 작품이다. 하지만 리뷰를 쓰는 데는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한 줄 요약하면 참 좋았다.’이건만. 처음에는 더 이상의 문장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거다. 참 좋았다, 정말 좋았다, 아주 좋았다, 너무 좋았다, 이토록 좋다니, 이리 좋으면 어쩔? 이라 쓸 수도 없고. 저자의 탁월한 표현력에 압도당한 여파가 컸던 탓이다.

이런 작품을 대상으로 어떤 리뷰를 쓸 수 있단 말인가. 메시지도 선명하고 이토록 깔끔한 표현력 앞에서 나는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떠올렸다. 며칠 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생각만 줄기차게 했다.

드디어 독서모임의 디데이! 나는 마감 당일까지 한 글자도 못쓴 작가가 되어 모니터 앞에 앉는다. 새하얀 빈문서1’을 마주한다. 무슨 말을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개만 떨구게 될 줄 알았건만. 의외로 나의 손이 마법에 걸린 분홍신이라도 신은 듯 절로 움직이는 거다. 타이핑 속도는 스타카토로 글자를 연주하듯 경쾌하게 자판 사이를 누볐다. 소설 속 작가 인경의 말처럼 어떤 글쓰기는 타이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아이들과의 소통이 단절된 중년이나 폐기물을 떠올리며 노년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노선으로 지나가는 삶이었다. 그 모습이 조만간 내게로 와 나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 살아왔다.

서울에 갔을 때 버스를 타고 종로의 거리를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잿빛 머리칼에 허름한 점퍼를 두른 채 삼삼오오 모여 있던 노숙자들. 회색의 비둘기 떼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원래의 풍경처럼 거기에 당신들이 있던 듯 아무 감흥 없이 지나치던 기억도 있다.

작가는 무심코 지나치던 주변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주었다. 여기를 바라봐야 해. 라며 강요하지 않는다. 따스한 햇살인 듯 유머스러운 문장을 다만 그들을 향해 비출 뿐이다. 김호연의 문장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곳으로 발걸음을 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내내 웃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뭉클하게 다가오는 감동은 그 힘의 여파인 것이다.

40만 부의 위용이 환한 봄빛과 어우러져 희망을 전한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가 이토록 많이 읽혔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인간을 향한 온기가 전해졌다는 의미이기에. 작가의 문장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따스한 봄꽃을 피웠으리라.

뒤죽박죽이던 머리칼도 한 방향으로 계속 빗으면 결이 생긴다. 마음의 결도 마찬가지이리라. 행동을 바꾸는 책, 발걸음을 바꾸는 책, 시선을 바꾸는 책, 노숙자가 처음부터 노숙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 작가에 이끌려 책속의 문장을 따라가니 인간을 향해 흘러가는 결이 느껴진다. 덩달아 향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결, 어쩌면 이미 향해버린 지도 모르는 결이 봄바람인 듯 살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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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2-04-05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비종님도 이 책 읽으셨군요. 넘 좋죠? ^^
저는 김호연 작가님이 직접 책 보내주셨어요. 어쩌다보니 인연이 되어서 ㅎㅎㅎ
요새는 벚꽃 에디션으로 새단장을 했네요. 봄이랑 딱 맞는 컨셉이라 저도 탐나네요 ㅎㅎ
책 자체가 좋은 것도 있지만 코로나가 이렇게 장기화 되는 것도 40만부에 한 이유하겠죠??
저마다 소통도 단절되고 마음에 여유들이 사라지다 보니 책을 읽으며 온정을 그리워하게 되나봐요.
저도 사람냄새가 그립다고 리뷰에 적었었네요. 그래도 나비종님과 계속 소통해서 다행이에요 ^^
벌써 꽃이 활짝 폈네요. 미세먼지도 요즘 덜해서 봄 기분이 제대로 나는데요?^^ 좋은하루 되세요!

나비종 2022-04-07 21:07   좋아요 1 | URL
예ㅎㅎ 정말 좋았습니다. 내용이면 내용, 표현이면 표현, 어느 하나 완벽하지 않은 곳이 없더라구요. 취향저격ㅎㅎ

시커먼 책을 읽고 나서 리뷰를 올리려고 책을 검색하니 이게 나오더라구요. 제가 가진 건 절판되었더군요. 작가님과 인연이 있으셨군요. 부럽습니다~^^

맞아요, 코로나.. 읽으면 마음에 따스함이 퍼지는 책입니다.^^

저도 물감님과의 소통이 이렇게 이어져서 참 좋습니다~ㅎㅎ

물감님도 봄꽃 활짝 피는 나날들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화요일부터 동거인 확진이라 나름 부양가족 부양하느라 은근히 피곤해서 답변이 늦었습니다.ㅡㅡ;; 몸 사리는 중이예요ㅋㅋ
 
오만과 편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4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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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긴 치마를 입은 넌 나를 어떻게 상상했니. 직업이 교사라 하면 가정이나 국어 가르치시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다소곳하게 바느질내지는 요리께나 할 것 같은 인간으로 자주 오해받아왔다. 현모양처의 모델이라나.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참하다, 착하다는 말이었다.

틀을 깨고 싶다는 생각에 학생들 앞에서는 좀 더 오버했다. ‘나 원래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 한 마디 못하는 인간이야.’ ‘샘이요?!’ 나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지경까지 만들어놓았다.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 한 마디 못하던 시절도 있기는 했다. 몇 번의 알까기를 하고 나니 그런 성향은 먼 옛날 화석 속에 파묻혀버린다. 과격한 말을 참 우아하게도 한다며 반전매력에 끌렸다는 인간이 등장했다. 글쓰기에 몰두한 것도 첫인상을 깨기 위해 나름대로 찾은 조용한 반란이었을 지도 모른다.

 

소설오만과 편견19세기 영국 여성의 결혼과 첫인상을 주제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알고 보니 반전남 다아시는 대놓고 오만한 첫인상을 시전한다. 첫인상이 준 편견으로 그를 섣불리 판단했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지혜로운 사리판단으로 그의 진면목을 발견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결혼은 해피엔딩이다.

소설 속에는 두 주인공 이외에도 세 쌍의 조연 남녀가 각기 다른 이유와 과정을 거쳐 결혼한다. 일부 당사자를 포함한 주변 어른들은 집요할 정도로 결혼에 집착한다. 결혼이 이토록 목맬 일인가.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행동은 시대적 배경을 알면 거부감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사회에서는 결혼이 그토록 목맬 수밖에 없던 수단이었던 거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여성의 결혼은 생존과 직결되는 수단으로 비중이 컸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극히 제한되었다는 점이다. 성인 여성은 생계 수단으로 삼아도 될 만큼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 어려웠다고 한다. 결혼을 통해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는 게 앞으로의 삶을 영위하는 최적의 수단이 된다.

둘째,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방법도 녹록치 않게 했던 한사상속제도이다. 소설 속에서 줄기차게 언급되는 이 제도는 많은 등장인물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부모의 재산은 오로지 아들에게만 상속된다. 다음 세대의 상속인을 지정해놓아 몇 대를 내려가도 집안에 재산이 묶인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가까운 친인척 중 서열이 높은 남자에게 유산이 상속된다나.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한사상속이라는 속 터지는 제도에 자립 수단도 빈곤한 처지까지 겹쳐있는 넘사벽 사회이다. 사회적 배경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은 당시의 독자들에게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건네면서 현실적으로 다가왔으리라.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주제이기에 치밀하고도 영리한 접근 방식이 필요했을 거라 짐작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서사는 작가 특유의 유머감각이 묻어나는 대화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제인 오스틴의 역량은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여주인공을 통해 풍자와 직설적인 대화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당당한 여성상의 비전을 제시한다. 분노유발자들이 곳곳에서 두더지 게임처럼 불쑥불쑥 나타나도 바로 사이다 엘리자베스가 청량하게 해결해준다. 그녀를 따라가면 이야기의 파도타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엘리자베스의 등장이 고구마가 아닌 사이다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의 합리적인 성격에 있다. 리지는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놓고 판단한다. 그녀는 사람들의 성격에 모순이 있음을 인지하는 인물이다. 돈이 목적인 결혼과 분별 있는 결혼의 차이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가 신중함이고 어디서부터 탐욕일까 진지하게 분별하고자 한다. 타고난 합리성으로 그녀는 다아시나 위컴에 대하여 가져왔던 잘못된 편견이 자신의 허영심에 있다고 판단한다.

소설 속에서 허영심은 여러 인물을 통해 오만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며 본질을 드러낸다. 여동생 메리는 오만과 허영심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오만은 스스로의 평가와 관련 있고, 허영심은 타인이 우리에 대해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바와 더 관련이 있다고. 언니 제인은 종종 우리를 기만하는 건 우리 자신의 허영심이라고 말한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최적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엘리자베스.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이다.

 

합리주의자로 그녀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은 남주인공 다아시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 앞에서 은 없다. 페르소나 너머에 존재하는 날것 그대로의 본성을 꿰뚫는 어마무시한 이성을 장착하고 있다. 그 앞에서 겸손한 척을 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겸손이란 종종 그저 의견이 없다는 소리이며 때로는 간접적인 자기 자랑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인물이니까. 물끄러미 얼굴을 바라보다 모공까지 보인다며 윤두서 자화상 같은 말투를 시전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성격이 다른 이들로 하여금 오만하다는 편견을 불러온다.

다아시의 츤데레는 소설 후반부로 가면서 합당한 이유가 붙는 오만함으로 변모한다. 한결같은 면을 보면 소나무가 떠오른다. 푸르름을 고수하던 그이기에 엘리자베스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거침없이 직진하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그의 사랑에 색깔을 입힌다면 255,0,0 의 순도 100% 빨강이 어울리리라. 빵빵한 재력은 단지 거들뿐.

 

사람이 변한 건 아니리라. 사람의 성격만큼 고치기 어려운 것도 드물다고 하니까. 타고난 기질이 변하기는 하는 걸까. 종종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변하는 건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과거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편견을 바꾼 엘리자베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사람을 알면 알수록 더 나아진다는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나 매너가 나아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의 성격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는 의미라고.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을 바라보니 요즘 유행한다는 MBTI 성격유형검사가 생각난다. 나는 대략 ISFJ에 가깝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떠올려본다. 엘리자베스는 ESTJ, 다아시와 베넷씨는 ISTJ. 제인은 ISFP, 빙리는 INFP. 리디아, 위컴, 콜린스, 샬럿, 베넷 부인 등 5명은 모두 ENFP. 캐서린 드 버그 부인은 INTJ. 작가가 설정한 성격이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관점과 어긋나기도 할 테지만.

 

몇몇 부부들의 MBTI를 분석해본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외향성과 내향성을 제외하고 나머지 성향에서는 공통점이 많다. 그래서 서로를 바라본 다음부터는 대화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느낌이 든 건가?

제인과 빙리는 둘 다 내향적이고 감각과 직관에서만 차이가 있으며 나머지는 공통점이 많다. 부드럽게 어울리는 커플로 본다.

콜린스와 샬럿, 리디아와 위컴 부부는 모두 한통속. 똑같은 인간들이 끼리끼리 만난 커플이랄까?

베넷씨와 베넷부인은 이토록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반대의 성향이다. 맞는 게 단 한 가지도 없다. 물과 기름? 둘 중 누가 더 안쓰러운 상황일까. , 나름 추구하는 방향에 집중하며 따로 또 같이 잘 지내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와중에 저들 중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고고하신 캐서린 부인은 홀로 꼿꼿하시다.

 

인간은 0.3초만으로 상대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을 판단하며 3초 정도면 첫인상을 결정한다고 한다. 아무런 정보 없이도 의견을 달리 할 수 있는 건 배경지식처럼 이미 심어져있는 편견의 역할이 크리라. 어설픈 정보와 결합한 첫인상 역시 편견을 심어놓는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속에서는 편견을 떠올리게 만드는 가슴 아픈 상황이 등장한다. 같은 행동을 해도 전교 1등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는다. 꼴등은 사소한 행동조차 매번 혼이 나는 이유가 된다. 현실의 사회에서도 편견이 작용하는 사례가 흔하다. ‘얼굴도 예쁜데 공부도 잘하네.’얼굴이 못생겼으면 공부라도 잘해야지.’로 뉘앙스가 달라진다. 일반적인 미적 기준에 부합되는 외모의 소유자에게 많은 이들은 관대한 듯하다.

 

휘리릭 1분 듣기로 전체를 판단했다가 가끔 낭패를 본 기억이 있다. 첫인상은 1분 듣기와 같은 의미가 아닐까.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말아야 할 맛보기 음악처럼 말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인간이란 존재를 쉽게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인간은 곰국처럼 우려야 깊은 맛을 내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좋은 첫인상을 주는 사람이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임팩트 있는 첫인상도 물론 중요하지만 첫 인상이 가져오는 편견에 쉽게 빠지지 않도록 항상 긴장할 필요가 있다. 첫인상을 깨기 위해서는 200배 이상의 강렬한 인상을 주어야 한다던가. 바라보는 입장을 바꾼다면 200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리라. 짧은 머리에 찢청이 나의 첫인상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출근 따위는 없는 인간인양 이 새벽까지 두 눈 부라리며 글을 쓰는 중이다. 언제쯤이면 까도 까도 끝없는 매력의 양파 글이 될까. 지금 이 순간~마법처럼~?♪ㅎㅎ

 

 

몇 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원문이 궁금했지만 그냥 지나간다. 봐도 모를 것이기 때문에..

p382 중간: 오천 파운드의 유산~

p384 중간: 죽은 뒤에는 오십 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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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2-03-22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력 중에 매력은 역시 반전매력인가 봅니다. 과격한 말을 우아하게 한다는 건 어떤것인지 그려지지가 않는데요? ㅎㅎ 저도 나름 반전 매력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말을 아끼는 편이지만, 실은 꽤 수다쟁이라서 다들 신기해하거든요. 그러면 반응이 딱 갈리는데, 떠날 사람은 보내주고 남는 사람은 좋아해주고 뭐 그런거죠ㅋㅋㅋ

이 책은 제가 썩 좋아하지 않는 장르와 소재인데 대만족하며 읽었어요. 결혼에 목숨거는 당시 사회배경을 알고 나니 완전 꿀잼 관전하게 되더라고요. 여러가지로 억압되고 억눌려있는 여성들 가운데 마이웨이하는 엘리자베스의 존재감이 참 대단했어요. 그렇다고 막 걸크러쉬를 외치는 것도 아니라서 남녀 독자들이 다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지네요ㅎㅎ

사이다 같은 행동들도 미워할 수가 없는 게 다 분별있는 판단과 행동에서 비롯된 거라 좋더군요. 편견에 빠져버린 본인의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구요. 보통은 자존심 상해서 억지주장을 밀어붙이거나 그냥 돌아서거나 하는데. 또, 그 시대의 허영심을 꼬집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저자의 넓은 아량이 느껴져요. 모든 면에서 <설득>보다도 우수하더라는..^^

관점이 바뀌었단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성격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잘 증명해줄 mbti분석이 있네요! 다아시의 오만함을 빙리는 아무렇지 않아했죠. 콜린스의 비호감도 샬럿에겐 문제되지 않았고요. 참 재미있었습니다 ㅎㅎ 저는 이부분에 대해서 짚신도 다 짝이 있다는 표현을 적었어요. 성향이 같든 다르든 서로의 시각이 일치하는 게 중요하겠구나 싶어요. 서로의 호감/비호감 신호가 오가는 게 뭐 이렇게 재미있는지...ㅋㅋ

대면일 때는 못느끼다가 비대면일 때에 매력을 발견하기도 하더라고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글에서도 매력이 느껴지니까요 ㅎㅎ 저도 한번 마음이 돌아서면 정말 끝인 편인데, 이 책을 보고서 반성하게 됩니다... 여튼 이번에도 좋은 독서였어요. 이번 1분기 모임은 전부 대성공이군요 ㅋㅋㅋ다음 선정도서들도 다 좋았으면 합니다^^ 3월 마무리 잘 하세요!!

나비종 2022-03-22 20:52   좋아요 1 | URL
ㅋㅋ 반전매력, 쩔죠~ 이 원리가 적용된 최고의 스킬이 유머잖아요. 사람은 생각지 않은 갑툭튀에 웃게 된다고 하더라구요. 아직은 심히 어설퍼서 좀 더 내공을 쌓아야 하지만 첫인상과 다른 면이 발견되는 캐릭터라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ㅎㅎ
<과격한 말을 우아하게 하는 예> 해맑고 부드럽게 웃으면서 ˝닥쳐~˝ ˝꺼져~˝ 뭐 이런 거?
저는 평소 과묵한 편입니다. 말보다는 글로 대화할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 성격이구요.
수다쟁이 물감님도 잘 그려지지는 않습니다.ㅋㅋ 글이 매력적인 사람이 의외로 말을 적게 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저도 결혼이라는 주제는 비선호 장르인데 이 작품은 경쾌해서 좋았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제인 오스틴이 추구한 이상적인 캐릭터 아니었을까요?
맞아요. 막무가내 센언니가 아니라 합리적이라서 매력적이었어요. 순리대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편견을 가졌었음을 인정하는 과정도 깔끔했구요.^^

네! 저도 <설득>보다 좋았어요. 좀 더 명확한 흐름이 느껴져서 상쾌했거든요. 안개 낀 게슴츠레함은 딱 질색이라~ㅎㅎ

갈수록 느껴요. 사람, 참 안 변하는 존재라구요. 특히 본질로 파고들수록 고갱이가 바뀌는 건 드물다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MBTI로 나름 분석해봤는데 판단이 애매한 인물도 있었지만 대략 파악해서 사랑의 작대기를 그어보았어요. 등장하는 부부 사이가 더 잘 이해되었다는ㅎㅎ
시각의 일치.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수 이효리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했다는 말이 기억나네요.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없다. 나랑 잘 맞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요.^^

대면일 때보다 비대면일 때가 상대방에게서 더욱 내면에 가까운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상대방의 스캔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진달까요. 초고속 카메라를 느리게 재생하는 것처럼요.ㅎㅎ
맞아요. 얼굴도 본 적 없고 대화 한 마디 나눠보지 못한 사람의 글에 끌리는 신비라니요~ 제인 오스틴, 포에버~ㅎㅎ
시간이 조금 더 흐르니까 한번 돌아섰던 마음이 가~~~끔은 서서히 모가지를 돌리기도 하더라구요.ㅎㅎ
올레~ 1분기의 성공을 자축합니다~ㅋㅋ 2분기도 열심히 픽업해주세요~ 멋진 고전 헌터로 거듭나소서~ 꽃을 시샘하는 바람의 마수에 걸려들지 마시구요, 잘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