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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ㅣ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이토록 예술적이고 우아한 PPL을 본 적 있는가.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옥수수수염차를 샀다. 카페에 은은하게 깔리는 BGM처럼 이 소설의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음료를 새삼 맛보고 싶어서이다. 광동에서 김호연 작가에게 평생 무료로 제공해도 될 만큼 광고 효과가 탁월했다고 단언한다. 평소 전혀 왕래를 하지 않던 그곳을 오로지 옥수수수염차 한 병을 사기 위해서 갔으니까. 가까운 슈퍼에도 파는 그것을 굳이 먼 길 돌아 방문한 이유는 하나. 이 책을 읽고 나니 편의점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이다. 일종의 성지 순례랄까.
마침 투 플러스 원이다. 소설 속 ‘원 플러스 원’이 떠오른다. 묘하게 뿌듯하다. 한 병 사러 갔다가 얼떨결에 세 병을 득템한다. 소설을 읽고 수행평가 한 가지를 실시한 기분이다.
사실 편의점은 내게 다소 꺼려지는 장소였다. 장소의 고요함 때문일까. 계산대 앞에만 서면 일대일 면접을 하듯 긴장했다. 일회용 계산을 해치워 버리듯 후다닥 계산하지 않으면 혼날까봐 조바심 내는 아이 모드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편의점은 내 삶의 여집합의 영역에 속하는 장소였다.
한 권의 책이 발걸음을 바꾸었다. 계산대 앞에 선 사람과 계산하기 위해 밀물과 썰물처럼 오가는 사람들의 삶이 겹쳐졌다.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알코올성 치매로 기억을 잃은 노숙자 독고가 편의점 주인 할머니의 파우치를 찾아준 덕분에 편의점 알바로 고용되면서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다 기억을 찾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은 모두 8명이다.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이다. 제각기 삶의 고단함에 젖어있으며 잠시 피곤한 몸을 기대려 편의점에 들르거나 가족과의 소통에 삐거덕거리는 존재들이다. 취업을 못하고 편의점 알바를 하는 시현, 아들과의 소통이 단절된 채 편의점 알바를 하는 선숙, 딸들과의 소통에 단절된 중년의 가장 경만, 어머니와의 소통이 단절된 채 사회적 진출의 언저리에서 배회하는 민식, 폐기물인 듯 자조하며 위태위태한 흥신소를 어설프게 운영하는 노년의 곽. 더불어 작가 생활의 고민 끝에 절필을 감행하려는 인경은 작가의 자화상으로 보인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선명하다. 소통이다. 특히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혈연이나 서류상의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에서도 이상적인 가족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가족과의 소통 방법에 해결책을 제시하여 구성원 사이에 자연스러운 소통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가를 시사한다.
전체적인 짜임새에는 변두리에서 의기소침한 채 그저 살아내는 인간들을 작가가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마디로 따스한 시선이다. 작가에게는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정말 소중했던 듯싶다. 편의점계의 용어마다 한 사람씩 연결 지어 핀 조명을 비춘다. 한 사람씩 각 챕터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여기에 주인공 독고가 개입되면서 탁구 시합인 듯 유머 섞인 대화가 오간다. 등장인물들은 이제껏 부족했던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깨닫는다. 아이러니한 건 그 과정에서 주인공 독고 역시 치유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작용과 반작용인 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두 사람 모두에게 치료제가 된다.
꽁꽁 묶여있던 매듭이 서서히 부드러워진다. 매듭을 푸는 건 당사자의 몫일 터이다. 분명한 건 각각의 이야기 말미에는 얼어붙은 듯 보였던 차가운 매듭이 곧 풀리리라는 온기 어린 예상이 된다는 점이다.
작가는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세밀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스케치한다. 인간의 탄생 이후 가장 먼저 맺어지는 가족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 사이에서 바람직하게 이루어져야 할 소통 방법을 묻고 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감탄하며 읽었다. 문학이란 이런 거지. 표현력의 지존을 드디어 만났다. 같은 말을 해도 어쩌면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평소 생각하던 이상적인 표현력을 장착한 문장들이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졌다. 기본적인 유머에 적절하게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수미쌍관법처럼 앞서 나온 표현의 맥락을 이어주는 흐름, 사물의 본질에 근거한 비유가 적재적소의 상황에 들어앉는다. 놀라운 싱크로율로 문장을 구현하는 맛이 배가 된다. 논리적으로 커다란 그림을 그리는 비유이다. 화려한 수사 어구가 아니어도 문장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김호연 작가는 비유의 달인이다.
서사의 전개로 판단하건데 탄탄한 스토리이기에 영화화되어도 충분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구현하는 맛깔 나는 문장의 맛은 넘사벽이기에 절반의 감동만을 가져가리라.
이를 테면 ‘똥 냄새’를 표현한 문장 같은 거다. 저자는 시적이고 탁월한 비유를 시전한다. ‘늦가을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떨어진 열매가 사내와 비슷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는 문장에서 감탄한다. ‘구린 냄새가 났다’가 이렇게 변모하다니! 영화화한다면 주변인들의 표정으로 분위기를 표현했으리라. 한데 그냥 은행 열매 냄새도 아니고 심지어 낭만적인 문장이다. 내내 내레이션만 깔 수는 없으니 이런 표현력이 자아내는 분위기를 영화 속 장면으로 어떻게 구현한단 말인가. 이쯤이면 작가의 뇌구조가 궁금해진다.
표현력과 스토리에 압도당한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한동안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이게 뭐라고 뚫어지게 바라볼 일이냐. 써야 할 리뷰는 단 한 글자도 꺼내지 못한 나는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책상 정리, 주변 정리로 뒤척이듯 엄한 책표지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인터넷에서 책을 다시 검색해본다. 책 제목을 클릭하는 순간, 갑자기 시야가 훤하다. 나의 것과 다르다. 나는 시커먼 밤인데 모니터 속은 대낮이다. 초반 29쇄로 발행된 책 vs 초반 39쇄 발행을 과시하는 책. 썰렁해 보이는 밤의 편의점 풍경 vs 40만 부 기념 벚꽃 에디션으로 모니터 화면에 활짝 피어난 봄. 단순히 밤과 낮의 차이가 아니다. 오호? 같은 그림, 다른 장면 찾기에 도전한다. 책표지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집중력과 관찰력을 요구하는 이게 은근한 도전 의식을 부른다.
첫째,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있는 인물이다. 원본에 있던 주인 할머니가 벚꽃 본에서는 젊은 아가씨로 변했다.
둘째, ‘편,편’ 글자의 색이다. 원본에서는 약간의 금빛으로 노년의 희끗한 머리칼을 연상시킨다. 벚꽃 본에서는 꽃잎을 닮아 연한 분홍빛이다.
셋째, 편의점 앞 길고양이의 등장이다. 원본에 등장하는 생명체는 주인 할머니, 주인공 독고 두 명이다. 벚꽃 본에서는 젊은 아가씨, 주인공 독고에 길고양이가 한가로이 졸고 있다. 느긋한 봄이 덩달아 누워있는 듯하다.
한 편의 리뷰를 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어도 시원찮을 판에 두 개의 책 표지만 번갈아 노려보다 하루가 홀딱 흘러가버린다.
별점 다섯 개를 넘어 열 개를 매긴대도 10점 만점에 주저 없이 10점을 매길 정도로 엄지 척을 내세울 만 한 작품이다. 하지만 리뷰를 쓰는 데는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한 줄 요약하면 ‘참 좋았다.’이건만. 처음에는 더 이상의 문장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거다. 참 좋았다, 정말 좋았다, 아주 좋았다, 너무 좋았다, 이토록 좋다니, 이리 좋으면 어쩔? 이라 쓸 수도 없고. 저자의 탁월한 표현력에 압도당한 여파가 컸던 탓이다.
이런 작품을 대상으로 어떤 리뷰를 쓸 수 있단 말인가. 메시지도 선명하고 이토록 깔끔한 표현력 앞에서 나는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떠올렸다. 며칠 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생각만 줄기차게 했다.
드디어 독서모임의 디데이! 나는 마감 당일까지 한 글자도 못쓴 작가가 되어 모니터 앞에 앉는다. 새하얀 ‘빈문서1’을 마주한다. 무슨 말을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개만 떨구게 될 줄 알았건만. 의외로 나의 손이 마법에 걸린 분홍신이라도 신은 듯 절로 움직이는 거다. 타이핑 속도는 스타카토로 글자를 연주하듯 경쾌하게 자판 사이를 누볐다. 소설 속 작가 인경의 말처럼 ‘어떤 글쓰기는 타이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아이들과의 소통이 단절된 중년이나 폐기물을 떠올리며 노년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노선으로 지나가는 삶이었다. 그 모습이 조만간 내게로 와 나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 살아왔다.
서울에 갔을 때 버스를 타고 종로의 거리를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잿빛 머리칼에 허름한 점퍼를 두른 채 삼삼오오 모여 있던 노숙자들. 회색의 비둘기 떼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원래의 풍경처럼 거기에 당신들이 있던 듯 아무 감흥 없이 지나치던 기억도 있다.
작가는 무심코 지나치던 주변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주었다. 여기를 바라봐야 해. 라며 강요하지 않는다. 따스한 햇살인 듯 유머스러운 문장을 다만 그들을 향해 비출 뿐이다. 김호연의 문장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곳으로 발걸음을 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내내 웃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뭉클하게 다가오는 감동은 그 힘의 여파인 것이다.
40만 부의 위용이 환한 봄빛과 어우러져 희망을 전한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가 이토록 많이 읽혔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인간을 향한 온기가 전해졌다는 의미이기에. 작가의 문장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따스한 봄꽃을 피웠으리라.
뒤죽박죽이던 머리칼도 한 방향으로 계속 빗으면 결이 생긴다. 마음의 결도 마찬가지이리라. 행동을 바꾸는 책, 발걸음을 바꾸는 책, 시선을 바꾸는 책, 노숙자가 처음부터 노숙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 작가에 이끌려 책속의 문장을 따라가니 인간을 향해 흘러가는 결이 느껴진다. 덩달아 향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결, 어쩌면 이미 향해버린 지도 모르는 결이 봄바람인 듯 살랑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