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부드러워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5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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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자는 맞았다. 뛰어난 점이 너무 많아 경이로울 정도라는 어니스트님의 추천글에서 결국 나는 두 번의 경..를 경험했으니까.

첫 번째 경이! 믿기지 않지만 대장내시경s eve 의 방대한 드링킹을 능가하는 511쪽을 꾸역꾸역 넘겼다는 점이다. 바로 내가!

두 번째 경이! 이토록 마지막까지 줄기차게 재미없기도 쉽지 않다는 경이다.

마지막 장을 덮는 손이 511쪽의 후유증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듯 착각이 들었다. 굳이 찾고 싶지는 않지만 궁금은 하다. ......에서 경이를 찾아야 했던 건가요.

 

소설이 다큐는 아니지만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홀로그램 효과를 낸다. 진짜 일어났던 일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손에 잡힐 듯 실감난다. 내용면에서 많이 아쉬웠던 책이다.

첫째, 구상은 좋았으나 서사 구조가 약하다. 주요 테마는 충분히 시선을 끌만한 화두이다. 정신과의사 딕과 정신병에 걸린 그의 아내 니콜과 신인배우 로즈메리 사이의 삼각관계를 다룬 이야기.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인종폭동, 살인, 결투, 발작 등 자극적인 요소가 사이사이에 등장하지만 발가락 끝만 적시다 쏙 들어간다. 뚜껑은 열었으나 꺼내다 만 건더기인 듯 어정쩡하다.

둘째, 조연과 엑스트라의 포지션이 애매하다. 꿰지 않은 구슬이 서 말이다. 연결성이 약하다. 로즈메리를 마마 걸로 만든 그녀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몇몇 비중 있어 보이는 부인들도 등장하지만 주인공들을 서포트하는 배경으로서의 역할도 미흡하다. 손톱 아래 거스러미처럼 서사가 살짝 일어나다 사라진다. 지나가는 사람 1,2,3가 뜬금없이 소그룹으로, 개별적으로 잠깐씩 등장만 했다 퇴장한다.

둘째, 일관적인 시점이 없어 산만하다. 처음에는 딕과 사랑에 빠진 로즈메리의 이야기인가 싶다가 갑자기 딕과 아내 니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결론적으로 딕과 니콜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로즈메리는 연기 못해서 비중이 줄어든 주인공마냥 나중에는 슬그머니 사라진다.

셋째, 제목은 무슨 이유로 갖다 붙였을까. 밤은 부드러워라는 존 키츠의 시 <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노래>의 구절에서 인용한 제목이라고 한다. 전문이 궁금해서 찾아본 시가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시에서 묘사된 밤의 결은 명확하다. 그대와 함께 있기에 부드러운 밤이다.

이 소설은? 여주인공이 둘이니 2지선다형이건만 답을 고르기 어렵다. 둘 다 부드럽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 제목에 심오한 의미가 있나? ‘부드러워라로 번역된 단어 ‘tender’의 의미를 찾아본다. 의학용어로 접촉 혹은 가압에 대한 비정상적 과민성을 뜻한다. 남자 주인공이 정신과의사이니 혹시나 중의적인 뜻인가 싶지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고. ‘tender’의 다른 의미로 감시인, 돌보는 사람, 간호인의 의미도 발견한다. 남자 주인공이 정신병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관계도 언급이 되니 혹시나 이건가. 그럼, 간호인 = ? 워워, 이것도 아닌 것 같다. 멋있는 시의 구절을 차용한 피츠제럴드를 그냥 받아들이자. 하지만 솔직히 여주인공 투 탑 중 어느 누구와의 관계에서도 부드러운 밤의 느낌은 찾지 못하겠다.

 

이제껏 읽어왔던 소설은 대개 두 부류였다. 내용이 재미있거나 묘사 형식이 아름답거나. 둘 다 괜찮은 작품은 드물더라도 적어도 한 가지 요소에서는 독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묘사는 문체와 연결되어 일관적인 방향의 결을 만든다. 강물처럼 유려하게 흐르는 문체는 약간의 햇살만 받아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묘사 자체로도 흡인력 있게 독자를 빨아들이는 에밀 졸라처럼. 내용에서 재미 찾기에 참패한 나는 매력적인 묘사라도 건지려고 시도한다. 매의 눈으로 썩 괜찮은 표현을 뒤진다.

초반의 배경과 이야기는 겉돌았고 배경 자체에 대한 묘사도 이미지화하기 어려웠다. 화려한 묘사를 시도한 흔적은 묻어나나 난반사되는 빛처럼 일관성이 없어 조잡했다. 당최 뭔 얘기를 하려고 이 문장을 쓴 건지 이해가 안 되는 문장조차 곳곳에 등장한다. 배경과 서사와 문체의 삼위일체는 아무나 시전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깨닫는다. 졸라님이 나의 눈높이를 너무 고급지게 올려놓으셨나.

영어를 모르는 무식자로서 함부로 꺼낼 말은 아니지만 원본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반대로 꺾인 팔꿈치처럼 억지스러움이 곳곳에서 느껴져서 줄기차게 독서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주춤주춤 가다서다 반복하니 내용의 흐름이 끊어졌다. 이야기는 흘러야하는데 말이다. 맥락이 뚝뚝 끊겼다.

하도 분위기 파악이 안 되어 맨 뒤의 해설에라도 기대를 걸었건만 해설, 너 마저. 밤이 부드러운 이유를 찾는 독자 앞에 개츠비는 왜 이리 자주 얼쩡거리는가. 하도 많이 등장해서 빈도를 헤아려보았다. 위대한 개츠비밤은 부드러워라둘 다 13회씩 언급된다. 본 작품에 대한 해설이 충분히 이루어진 이후에 추가 해설 개념으로 두 작품의 비교가 이루어지면 좋았겠다. 개츠비를 빼고는 밤 자체로 홀로서기 해설은 불가능했을까.

 

최대한 순화된 문장으로 리뷰를 작성하려고 노력했음을 밝힌다. 아무리 거르려 해도 몇 년 묵은 변비덩어리처럼 도무지 걸러지지 않는 부분은 솔직히 언급했다. 별점 12사이에서 갈등한다. 취향 차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인내심을 시험하는 프리미엄 레벨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걸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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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2-07-26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진짜 팍팍 스킵하면서 읽었는데도 속터졌는데, 나비종님은 정말 꾸역꾸역 다 읽으셨나봅니다... ㅎㅎㅎ 대단하십니다. 경이로움을 체험하셨군요. 뭐라도 건진 거라 봐야 할까요 ㅋㅋㅋ

그래, 딱 삼각관계가 시작된다는 구상은 좋았어요. 음음 이건 로맨스 장르겠다 싶었는데, 점점 산으로 가다가 아에 증발해서 비가 되어 내리는... 대체 무슨 이야기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있어보이는 여러 인물들이 정말 스치듯 지나가곤 하는데, 난 왜 무슨 기대를 하며 그 인물들에 집중했던가 싶고...

내용과 제목의 연관성은 못찾겠어요. 감도 안 오고요. 부드러운 인물도 없고 부드러울만한 상황 같은게 없는데 말이에요. 아니면 그저 있어보이는 중2병들의 제목짓기 같은 건 아닐지........
그래요. 스토리가 약하면 글맛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정말 아무것도 없습죠. 그리고 그놈의 번역!! 정말 심각하더라고요! 이걸 편집부에서 아무도 태클걸지 않고 통과시키다니. 일을 하는건지 마는건지... 여튼 고생하셨습니다... ㅎㅎ

나비종님. 제가 한동안 개인적인 문제로 독서활동은 접어야 할 것 같아요. 완전히 독서를 끊는 건 아니겠지만 꽤 긴시간을 떠나있게 될 듯합니다. 그래서 나물모임도 이제 어려울 것 같아요^^; 꽤 오래 같이 해왔는데 참 많이 아쉽네요. 지금까지는 우리의 시즌1이었다 생각하려해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시즌2를 하게 될 날이 오면 좋겠어요. 너무 일방적인 통보가 되었네요. 건강히 잘 지내시고 독서도 꾸준히 하시는 나비종님 되시길 바랄게요! 그동안 저랑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나비종 2022-07-29 20:24   좋아요 1 | URL
스킵이 안되더라구요.ㅡㅡ; 헤밍웨이님의 안목을 믿고 혹시나 혹시나 했죠. 체할 것 같은 기분으로 다 읽기는 했으나 남는 게 없어서 허탈했습니다.

구상 자체는 좋았아요. 로맨스가 아닌 스릴러라도 일관성이 있었으면 그럭저럭 반전매력을 느끼며 읽을만 했을 텐데 말이죠. 인물 낭비가 너무 심했어요. 소설은 엑스트라조차 의미를 가지고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비중이 없다면 하다못해 배경효과로라도 작용해야 하건만 이도저도 아닌 인물들이 많아서 이건 뭐지 싶었습니다.

맞아요. 허세성이 짙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부드러운 밤과의 연결고리를 못찾겠더군요. 번역이 거슬렸던게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개인적인 문제가 부디 안좋은 일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친정어머니께서 담낭절제술을 받으시는 바람에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상주 간병을 하느라 답변이 늦었습니다. 물감님의 글에 대한 댓글은 핸드폰으로 간단하게 작성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 다소 늦은 시각 며칠만에 얻은 자유로운 시각에 커피숍에 와서 노트북을 두드립니다. 이 댓글을 바로 읽으실지 아니면 기약없는 어느 미래에 읽으실지 알 수 없는 거로군요.
갑작스럽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즌1의 마지막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무런 설명없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만남들도 허다한 세상에 진심어린 마무리에 뭉클합니다. 시즌2가 예고되어 있다면 그 언젠가를 기다리면 되죠, 뭐. 꾸준히 읽고 쓰다 보면 다시 글로 이어질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