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인간 윤봉구 - 2017년 제5회 스토리킹 수상작 복제인간 윤봉구 1
임은하 지음, 정용환 그림 / 비룡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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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고 눈을 감는다. 방금 본 조명이 잔상이 되어 눈 속에 머물다 사라진다. 커피 맛이 오늘따라 혀끝에 오래 매달린다. 마음이 감각 기관이라도 된 양 동화의 여운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다 아직까지도 심장을 붙들고 있다.

가슴에 ‘ORIGINAL’과  ‘COPY’가 새겨진 졸라맨의 타이즈 같은 옷을 입고 익살스런 표정으로 겉표지를 장식한 두 아이. 책 제목 <복제인간 윤봉구>가 겹쳐지면서 읽기도 전에 엉뚱한 이야기를 상상했다. 호평이 쏟아지는 어린이 심사위원의 멘트까지 정점을 찍으면서 속단해버렸다. 아이들의 취향을 저격한 재미있는 SF만화 같겠구나 라고.

무방비 상태로 마음을 향해 훅 들어왔다. 이런 내용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만큼 꽤 오랜 시간 잔영이 남는다. 재미있으면서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요소가 뒤에 나올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고, 코끝 찡한 감동까지 밀려오면서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울컥한다. 통통 튀는 정용환의 그림도 춘장처럼 맛깔나다. 책표지 안쪽에 있는 어린이 심사위원의 강력 추천 한 마디를 다시 읽는다. 아이들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이런 이야기를 알아볼 줄 아는 시선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절로 흐뭇해져 미소를 짓는다.

 

1993,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번득이며 크르렁 거리던 복제 공룡 이야기는 영화에서나 존재하던 판타지였다. 그러다 1996년 복제양 돌리가 성공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미역 줄기 같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캐릭터가 TV속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공포 영화가 현실에서도 재현된 느낌이랄까. 포유류도 복제가 되는구나. 277분의 1의 확률이었지만 결국 성공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2005년 개봉된 영화 <아일랜드>를 우연히 TV에서 본 순간, 이제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장기를 내놓기 위해 존재하는 복제인간이라니! 혼란이 왔다. 무조건 나쁘다 말하지도 못할 것 같았다. 내 소중한 가족이 병에 걸렸는데, 장기만 이식받으면 살아날 수 있다면? 충분히 갈등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모품처럼 장기가 떼어지는 복제인간을 생각하면? 뫼비우스의 띠로 이루어진 길을 걸어가기라도 하듯 내 생각은 원본인간과 복제인간의 입장을 오락가락했다.

2004년에 나온 소설 마이 시스터즈 키퍼: 쌍둥이별2009년 개봉된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중학교 3학년 과학 교과서 ‘생식과 발생단원의 말미에 나온다. 백혈병에 걸린 언니에게 줄기세포를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맞춤형 동생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한다. 2008, 영국 의회에서는  치료용 맞춤 아기의 출산을 합법화했다. 작가 조디 피코는 가까운 미래의 일을 예측이라도 한 걸까? 복제인간을 연상케 하는 소재이지만 가족의 의미에 더욱 무게가 실린 작품이다. 동생이 죽는다는 원작도, 언니가 죽는다는 영화도, 결말은 둘 다 마음에 안 든다. 모두 행복해지는 결말은 없는 걸까?

그런 면에서 이 동화는 따뜻하고 개운하다. ‘인간은 존엄하다. 그 말이 내 목구멍에 걸렸다. 복제인간도 존엄할까?(p98)’라며 복제인간의 정체성을 질문한다. 주 독자층일 아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짜장면 요리사를 향한 꿈을 꾸는 복제인간 윤봉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게도 한다. ‘넌 진짜보다 더 진짜니까. 꿈꾸고 웃고 사랑할 줄 아는 진짜.(p155)’라는 문장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섬세함이 빛난다. 동화의 캐릭터들을 묶어주는  가족이라는 따뜻한 끈 앞에서 원본과 복사본을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해진다. 한 호흡 멈추고 주변의 가족을 천천히 둘러본다.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묵직한 소재, 복제인간.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이미 만들어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안겨주는 민감한 소재이기도 하다. 치료를 필요로 하는 존재와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존재. 아직도 어느 쪽으로 서야 할지 갈등이 일어난다. 날짜변경선 위에 선 듯 위태로운 기분이다. 어쩌면 미래에 펼쳐질 현실은 무겁고 훨씬 더 치열하고 상상도 못한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은하 작가의 동화를 통해 따뜻한 희망을 본다. 탁탁탁탁탁. 복제인간 봉구가 경쾌하게 양파를 자르는 소리처럼 다른 어딘가에서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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