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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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끌어 모아 글자로 된 실로 꿰어내기만 하면 될 때가 있다. 미리 생각해두지도 않았는데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인다. 할 말이 흘러넘쳐 일단 글로 옮긴 다음 알밤을 깎듯 쓸데없는 잡티들을 돌려가며 깎아주면 된다.

그런가 하면 지금처럼 도무지 무슨 말을 써야할지 막연한 경우도 있다. 멍하니 한 시간째다. 매직아이를 하는 인간인양 한글 창의 공백만 노려보는 중이다. 복제된 빈 문서 1이 마음으로 슬그머니 들어온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누가 봐도 형편없는 작품이면 차라리 낫다. 오히려 그 때에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이란 단서 조항만 병풍처럼 둘러치고 대놓고 까버리면 그만이다.

난감한 고민은 순교자와 같은 작품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참 좋았습니다, . 이럴 순 없으니까. 어떤 점이 좋았는지 근거를 대야 설득력이 생기는데 딱히 근거를 대기가 애매하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니 줄줄줄 끊기지 않을 것 같다. 출판사 책 소개나 인터넷 검색창을 치면 콸콸콸 흘러넘치는 바닷물에 굳이 별반 다를 바 없는 물 한 방울 보탤 일은 아니니. 말 한 마디로 신뢰감이 확 가는 하이 레벨의 리뷰어라면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부르짖는 장금이로 빙의하면 그만이다. 현실은 쩜쩜쩜. 나처럼 평범한 독후감러는 인과 관계가 확실한 부연 설명이 필요하거늘. .

 

순교자는 한국전쟁 당시 학살당한 목사들과 살아남은 목사 사이에서 순교의 타이틀을 둘러싼 진실 게임을 그린 소설이다.

제목부터 손에 턱 걸리는 게 표지를 넘길 때는 영 탐탁지 않았다. 개인적인 호감도순으로 나열하면 가장 마지막에 가져다놓을 종교이기 때문이다. 비록 종교는 없지만 양가 어머니들의 종교가 불교인 영향력도 조금은 미쳤으리라. 기독교에 대한 편견은 책을 읽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모임 도서로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종교 관련 도서는 늘 나의 독서 목록에서 아웃사이더였다.

이 책이 더욱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음의 호감도에서 출발한 책이 이토록 깊은 울림을 가져오리라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좋았던 점 몇 가지만 소박하게 나열하려 한다. ‘소박하게라 쓴 말이비루하게라 읽힌다. 배경지식의 얄팍함으로 절로 소박해질 수밖에 없다. 근거 있는 자신 없음이다.

 

첫째, 가독성이 좋다. 구구절절 부연 설명 없이 담백하고 깔끔한 문체이다. 단락의 구분이 잘 되어있다. 소제목이 숫자로 된 소설은 간혹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이 책은 휘리릭 읽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면 장면이 전환된다. 그게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지루해할 틈도 없이 이틀 만에 완독했다.

 

둘째, 인간의 본성을 다룬다는 점이다. 종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종교는 한낱 도구에 불과하게 느껴진다. 종교 너머에 존재하는 요소로 시선이 간다. 책을 읽는 내내 진실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다. 진실은 그저 진실이기 때문에 밝혀져야 한다는 주인공 이 대위, 사람들이 진실을 원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며 주인공에게 혼란을 불어넣는 사건의 중심인물 신 목사, 진실을 알면서도 이를 덮으려는 장 대령, 아버지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박 대위,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이 믿는 진실을 향해 되돌아간 민 소령, 이들의 모든 진실을 지켜보는 고 목사. 진실에 얽힌 이들의 방황과 고뇌와 시선은 사전적 의미를 넘어 진실이라는 두 글자가 내포하는 의미를 톺아보게 한다.

 

셋째, 흡인력 있는 스토리 전개이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까지 전개되는 과정이 추리소설을 보는 듯했다.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그 진실의 향방이 궁금해져서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졸라의 인간 짐승을 읽는 것만큼의 긴박함이 느껴졌다. 다만 인간 짐승이 메이저라면 이 작품에는 마이너의 스릴감이 있다. 은밀하게 다가오는 심해파에 가깝다. 그저 손바닥만 폈을 뿐인데 주변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내공이 쌓인 고수의 문장이다.

 

넷째, 깊다.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종교는 이어져 있다던데 그 신앙의 본질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전 지구 바닷물의 가장 낮은 곳에서 느리게 흐르는 심해저를 떠올린다.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한 두부 같기도 하다. 묵직하게 천천히 다가오는 사골 국물스러운 감동이 크다.

 

다섯째, 질문을 남긴다. 거짓된 진실이라도 희망이 동반된다면 그 길을 가야할까. 소설 속을 빠져나와 실제로도 신앙의 길을 신념으로 걸어가는 이가 있다면 그는 끝까지 한 점의 후회도 없는 마음이 될까. 사람들이 믿는 진실과 믿고 싶어 하는 진실 사이의 간극에 선다면 나는 어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까.

 

평소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내 안에 불신이 그득하다는 의미와는 조금 뉘앙스가 다르다. 주관도 없이 상당히 의존적이었던 어린 시절도 있었는데. 스스로 해결하는 삶에 익숙해져버린 게 언제부터였더라. 자신을 의지하는 데에 거부감 비슷한 마음이 생겨버린 듯하다. 이런 성향이 종교에도 그대로 투영된 걸까. 종교를 갖지 않는 게 아니라 도무지 가져지지 않는다. 신의 존재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아니다. 절대적인 신앙이라든지 신에게 기도한다는 상상만 해도 반감이 일어난다.순교자를 읽으며 좋았던 점을 몇 가지 나열했지만, 소설에 등장한 목사님들의 신앙에 대해서는 감정이입을 하기가 어려워서 깊이 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나와는 다른 존재도 있을 거라는, 인간 존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정도로 이해했다.

한 줄이면 되는 리뷰를 늘여 써도 도무지 다시 읽어보아도 설명이 부족하다. 탄탄한 근거가 깔려있는 피라미드형 독후감이 아니라 모래시계 윗대가리처럼 불안한 구조라서 심히 부끄럽고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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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3-31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틀만에 완독이라뇨... 대체 어떡하면 그런 경지에 다다를수 있죠? 역시 세월의 내공이 해결해주려나요 ㅎㅎㅎ 저는 급하게 읽으면 긴 글의 리뷰는 절대 못쓰겠어요... 근데 나비종님은 읽고 바로 이렇게 후루룩 쓰시다니, 매번 감탄하고 있습니다요 ^^

고전문학, 특히 서양쪽은 종교의 내용이 많든적든 들어가 있어서, 좋든싫든 종교의 세계를 접하게 되네요. 종교관련 서적은 저도 질색하는데 이런 고전속에 들어간 정도는 크게 거슬림없이 읽어요. 다행이 이 책은 종교 색채가 짙지 않아서 나름 무난하지 않으셨나요? ㅎㅎ

확실히 읽는 사람마다 포커싱이 다르다는 걸 느껴요. 저는 ‘양심‘이었고, 나비종님은 ‘진실‘이군요. 예쩐에 개그콘서트 코너중 ‘불편한 진실‘이 기억나네요~ 다루었던 모든 진실이 하나도 도움 안되지만 진실은 진실이니까요. 때로는 덮어둘줄도 알고 드러낼줄도 아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됩니다 ㅎㅎㅎ

날이 점점 풀려서 독서가 게을러지고 있어요. 나비종님은 어떤가요? 바쁘셔서 게을러질 틈도 없으신 건 아닌지요^^ 독서모임이 점점 무리한 요구가 되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들어요. 꽤 오랫동안 월말 벼락치기 중이신데 정말 괜찮으신가요 ㅠㅠ 힘드시면 꼭 말해주세요! 3월도 수고하셨습니다!

나비종 2021-03-31 20:10   좋아요 1 | URL
발등에 불 떨어지면 절로 스피디해진답니다~ㅋㅋ 저는 급하게 읽어도 써야 하는 글은 써지기는 해요. 다만 퀄리티가 현격하게 떨어져 나중에 다시 리뷰를 읽어보면 집어던지고 싶어져서 탈이죠^^; 집중력이 좋은 편이기는 합니다ㅎㅎ

그러게요. 종교 서적은 질색인데 <데미안>이나 이 책은 큰 거부감이 없더라구요.^^

양심과 진실도 파고 들어가면 거의 비슷한 맥락인 것 같기도 합니다. 진실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이 양심이라 한다면요.
저는 ‘불편한 진실‘하면 환경 다큐가 떠오릅니다만.^^
모든 진실이 다 드러나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걸 가려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물감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불편하지 않은 진실은 뭐가 있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작년에는 코로나의 첫 혼란이라 학기초에 처리되어야 할 업무들이 길게 늘여져서 그런대로 견딜만 했나 봅니다. 올해는 정상적인 시기에 개학이 이루어지다보니 몇 달에 걸쳐 했던 일이 3월 한 달에 몰리더군요. 엄~~~~청 바빴습니다. 잠도 몇 시간 제대로 못 잤구요, 지난 주에는 오른쪽 눈 흰자위의 가장자리에 실핏줄이 터져서 며칠동안 완전 토끼 모드였습니다. 흐윽!ㅜㅜ
올해도 3학년 담임을 맡았는데요, 새로운 걸 시도해본다고 카톡으로 상담을 했거든요. 아이들이 학원 다녀오고 나서도 대화할 수 있게요. 그게 23시, 24시까지 연일 이어지다보니 더 피곤했나봐요. 업무도 부장을 맡아 계획 세우느라 바빴고 다음 달은 과.학.의.달.이라 그거 준비하느라 또 바빴어요. 책을 거의 못 읽다 며칠 전부터 그나마 짬이 나서 초스피드로 읽어냈답니다.^^

독서모임은 오히려 힐링의 아이콘입니다. 이것마저 없었으면 허탈할 뻔 했거든요.
꽤 오랫동안 월말 벼락치기ㅋㅋㅋ 찔림^^;;
정말 괜찮습니다. 이것만 다 하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그나마 미친듯이 일할 수 있는 거거든요. 일하기 싫은데 일이 자꾸 엉겨붙는 된장같은 상황을요ㅡㅡ;;
4월에는 부지런히 달려서 5월부터 퇴근 후에는 제발 제 시간을 갖고 우아하게 독서하고 싶습니다! 잘 지내세요~~^^*
 
식물처럼 살기 - 우리가 동물처럼 살지 말아야 할 11가지 이유
최문형 지음 / 사람의무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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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었다. 머그잔만한 화분에 담겨있던 초록은 하나도 남김없이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한동안 물주는 것을 잊어버렸던 탓이다. 바싹 마른 잎들은 뜨거운 햇살에 타들어간 종이인 양 손끝을 대자마자 재처럼 부스러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파트 화단에라도 옮겨 심을 걸. 굳이 집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저 지경을 만들다니. 이름도 모르는 식물에게 미안했다.

갈색의 부스러기들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고동색 철사 같은 가지가 삐죽삐죽 앙상하게 드러났다. 한참 늦은 뒷북이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물을 흠뻑 주었다. 혹시 기다리면 잎 하나라도 돋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대로 베란다에 며칠을 두었다.

무심코 화분을 들여다본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연둣빛 자그마한 잎들이 눈곱만하게 돋아있었다. 살아있었구나! 말없는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더 이상 집으로 들어온 화분들이 죽어나가지 않았다.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마법의 손이 드디어 봉인해제된 거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내 가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식물처럼 살기는 말없는 식물의 삶에서 드러나는 속성을 다각도에서 세밀하게 조명하며 우리 삶의 자세와 연결 지어 서술한 책이다. 생태계 먹이피라미드의 아랫부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중심을 잡고 있는 존재. 우리는 이 거대한 존재를 종종 잊어버린다. 저자는 식물의 지혜에 시선을 돌리자는 주장을 시작으로 식물처럼 살기 11계명을 제시한다.

 

여행지에서 오래된 나무를 보면 묘한 신비감에 사로잡힌다. 죽지 않고 몇 천 년을 살아가는 존재, 젊은 부분과 늙은 부분이 공존하는 존재, 죽어가는 동시에 살아가는 존재를 상상한다. ‘영원의 의미가 새삼 와 닿는다. , 2천년이 넘는 씨앗이 싹을 틔웠다는 뉴스를 접하면 생명의 잠재력을 절감한다.

소설과 영화를 비롯하여 여러 기록에서의 나무는 신성함을 뿜어낸다. 오랜 옛날부터 인류가 상상해온 우주목으로부터 불교의 보리수, 성경과 신화 속에는 각종 나무들이 등장한다. 동양의 오행 목화토금수에서도 유일하게 포함된 생명체가 나무이다. 이처럼 나무는 인간 가까이에서 친숙하게 존재한 생명체였다.

짧으면서도 인상 깊은 감동을 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나무의 속성을 매우 적절하고 감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은 뿌리에서 줄기, , 열매에 이르기까지 버릴 것이 한 군데도 없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유용하다.

 

나이든 현자와 같은 나무가 있는가하면 인간에게 큰 행복을 주는 꽃들도 많다. 꽃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신중한 생존 전략의 소산이다. 다양한 향기와 색깔로 동물의 욕망을 활용하여 번식하는 생식기관으로서의 면모는 소름끼칠 정도로 치밀하다.

신중하고 지혜롭게 스스로를 방어하는 숲 속의 식물들은 동물 못지않은 무기를 지닌다. 특수한 화학물질을 분비하거나 열매의 맛으로 무장함으로써, 필요에 따라 모습을 바꾸거나 전기신호를 전달하거나 특정 곤충들과의 공생 관계를 이용한다.식물병법이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전략적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이용하고 땅에서 끌어올리는 물을 이용하고 공간에 흩어져있는 기체를 이용하는 식물은 이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된 존재이다.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단지 빛과 물과 이산화탄소만으로 말이다. 양분과 더불어 만들어지는 산소는 생명 활동의 원천이지 않은가. 광합성은 한 줄의 화학 반응으로 나타내기에 너무도 묵직한 존재감과 의의를 지닌다.

식물의 삶에서 높이 평가할만한 점은 더불어 사는 지혜를 지녔다는 점이다. 제 삶에 치열하되 저 혼자만 살아가지 않는다. 다른 종류의 동물이나 균류와도 멋지게 상생한다. 여분의 수분과 양분도 붙들어두지 않는다. 증산 작용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열매로 저장하여 동물에게 제공한다. 생태계에서 어머니와 같은 존재감을 뿜어내며 주변의 생물을 아우른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내용을 배열하는 방식이다. 이것저것 주섬주섬 잡다한 자료들을 널어놓은 느낌이랄까. 체계 없이 짜깁기한 논문을 보는 듯 산만했다. 내용이 뚝뚝 끊어지는 듯했다. 재료만 많이 들어간 어설픈 김치찌개가 연상되었다. 둘째, 미주 부분이다. 뒷면의 미주를 계속 왔다갔다 읽다보니 나중에는 짜증이 날 정도로 불편했다. 차라리 내용의 일부는 본문에 삽입을 하거나 해당 페이지의 아래 부분에 적었으면 나았겠다 싶다. 참고 도서는 책의 뒷부분에 놓더라도 말이다.

위의 두 가지를 제외하면 저자가 제시한 자료들은 식물의 삶이 생각보다 더욱 놀랍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식물에 대한 유용한 정보가 많아 상식이 풍부해진 느낌이다. 어디에 있는 어떤 식물은 이러이러 하다더라는 식으로 흥미 있는 대화의 소재로 말하기에 좋은 내용들이 많다.

 

멀리서 바라보는 식물은 그저 고요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껏 바라보았던 모습은 태풍의 눈에 불과했나 싶다. 식물의 삶은 치열한 태풍이었다. 움직일 수 없는 존재이기에 움직이는 동물을 뛰어넘는 삶의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삶으로 살아가다보니 어느 식물학자가 했다던 말처럼 나중에는 움직일 필요가 없는 삶으로 자리매김 되었으리라.

식물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삶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보이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시간을 건너야 하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묵직하고 상상 이상으로 커다란 포용력이 필요한 삶이었다. 주방 창가의 화분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초록의 잎 사이로 점점 박힌 연보랏빛 꽃잎들이 가볍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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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1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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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끈한 바디감을 자랑하는 옷장이 한쪽 벽면을 채운다. 무수히 많은 서랍에는 깔끔한 라벨도 부착되어 있다. 갑자기 순간 이동하여 이번엔 거실이다. 왼쪽에 타조 한 마리가 우뚝 서 있다. 기린, 코끼리 몇 마리쯤은 훗! 애완동물로 보유한 동물원 주인 모드를 장착한 인간이 1m 거리에서 태연하게 타조를 바라본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시체를 봐도 눈 하나 꿈쩍 않는 담대 인간. 누구냐, !

당신의 짐작이 맞다. 나의 꿈 이야기다. 이야기라 부르기에는 한없이 빈약하다. 몇 장의 스냅 사진이거나 전송 불량으로 버벅대는 TV 방송사고 영상에 가깝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다가도 갑자기 정지 버튼이 눌린다. 밥 잘 먹다 눈 한 번 깜빡하면 우아한 조류로 빙의하여 하늘을 쏘다니다 응가의 바다에서 허우적댄다. 기승전결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보기 전에 그냥 없다. 혼자서 다 해 먹는 모노드라마의 주인공. 맥락 없음이 이토록 당당한 갑툭튀. 내 안에서 꺼낸 세상인데 나도 모른다.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존재. 내 안에 있는 꿈속의 너, 도대체 누구냐?

두 팔을 활짝 벌린 인간이 서 있는데미안의 겉표지. 흐릿한 경계를 보니 꿈이 연상된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이게 나야! 외치는 듯 당당한 뒷모습이다. 어느 순간 어깻죽지 양쪽에서 날개가 뻗어 나와 순식간에 날아버릴 것 같기도 하다. 그림일까, 사진일까. 누구의 작품일까. 검색해보니 작가는 Kamil Vojnar, 체코 슬로바키아 모라비아 출신으로 사진을 이용하여 회화적 작품을 만드는 화가라고 한다. 사진과 그림의 합체인 셈이다. 그의 작품들을 훑어보니 대체로 몽환적이다. 안개 낀 숲 너머의 형체들을 보는 듯하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보니 책에 담긴 내용과 닮은 속성이 보인다.

 

201812, 데미안을 처음으로 만났다. 두 번째 만나는데미안은 어떤 느낌일까. 2년 치의 경험과 사고를 품은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때 쓴 리뷰는 일부러 다시 읽지 않았다. 똑같은 거리를 걸어도 어제와 오늘의 내가 느끼는 마음은 분명 다를 테니. 글자로 이루어진 거리의 풍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호기심이 점점 강해졌다.

매력적인 1분 듣기인양 3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작가의 관점에 확 끌려든다. 인간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언급하는데도 억지스럽지 않다. 공감이 가는 문장이 많았다. 40대 초반의 헤세가 지녔던 생각에 반해버렸다. 주인공도 등장하지 않은 데다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도 않았건만. 차례에도 표시되어있지 않는 3페이지를 건너며 벌써 좋았다.

이 책에는 상반된 매력을 지닌 두 세계가 겹겹이 담겨있다. 대륙붕에서 심해저 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커플이 준비되어 있다. 어디까지 다녀왔니? 발만 담그고 돌아온 대로, 잠수복 장착하고 해구까지 갔다 온 대로 독자들이 체험한 풍경은 다양하다.

두 개의 세계라 하니 마리아가 포함된 노래가 떠오른다. 파이프오르간 BGM이 우아한 공기 위로 성스럽게 울려 퍼지는 <아베마리아>. 반면 자 지금 시작해 조금씩 뜨겁게 우~~ 두려워하지마 펼쳐진 눈앞에 저 태양이 길을 비춰 우~~ 절대 멈추지마라 외치는 <마리아>도 있다. ‘태양이란 단어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크 모드 상남자 포스를 뿜어대며 후련함을 선사한 노래이다. 아베마리아의 두 가지 버전은 상반된 색채를 띤 채 모두 매력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두 개의 세계처럼.

 

레벨 1. 처음에는 빛과 그림자로 비유할 수 있는 세계를 가볍게 묘사한다. 말 잘 듣는 모범생과 말썽만 피우는 소위 문제아가 살아가는 세계이다. 양지에 있던 주인공 싱클레어의 방황은 음지의 세계에 발을 담그면서 시작된다. 두 세계는 모두 겉으로 드러나 있어 각각의 차이점이 구체적으로 와 닿는다.

레벨 2.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시작으로 주인공의 양대 산맥, 데미안이 등장한다. 책 제목이기도 한 데미안은 주인공의 여정에서 도화선이 되어주는 친구 이름이다. 이는 악마를 의미하는 단어와 관련성을 보인다. 작가는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대화를 통해 선과 악이라는 주제에 접근한다. 종교적 색채가 짙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이야기, 베아트리체, 야곱의 싸움 등을 언급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들어간다. 데미안의 주장은 혁신적이다. 신만큼 악마의 존재도 인지해야 함을 말한다.

종종 인간의 본성은 성악설에 가깝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어쩌면 인간은 선과 악을 모두 지닌 채로 태어나는 게 아닐까. 그러다 개개의 기질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타고난 성과 반대쪽 성호르몬이 많아진다는 말처럼 두 가지를 모두 지니고 있다가 말이다. 그렇다면 뼛속부터 천사일 것 같은 분과 반대 성향의 인간과 착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쁜 놈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레벨 3. 껍질을 까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정신세계를 만나게 된다.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이다. 의식 세계에만 머물던 주인공 싱클레어는 무의식 세계의 존재를 깨닫는다. 몽환적인 분위기로 꿈속을 넘나들면서 현실과의 경계가 무너진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등장한다. 하긴 데미안의 등장부터가 살짝 설화적인 냄새가 나기는 했다. 이 순간만을 기다린 작가. 지금껏 드러났던 내용을 모아 모아서 심리학적 세상으로 끌고 들어간다. 제목만 보면 데미안은 분명 싱클레어와 쌍벽을 이루는 주인공 투탑이다. 하지만 데미안은 대나무의 마디처럼 싱클레어의 삶에 중간중간 경계로 작용할 뿐이다. 나머지는 싱클레어의 몫이다. 주인공은 여러 인물과 만나면서 허들을 넘듯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이 책을 연극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대화 장면만을 따로 놓고 보면 오르간 연주자인 피스토리우스의 대사도 만만치 않다. 대사량이 엄청 많았던 오르간 연주자를 통해 삶의 전체성을 의미하는 아프락사스를 향하는 본격적인 포문이 열린다.

밝은 세계, 오롯이 천사만 살 것 같은 세계에는 우리가 의식하는 ’, 에고(ego)가 있다. 이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어두운 세계가 있다. 그 안에 있는 무의식적인 를 포괄하여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 버전이 진짜 나, 자기(The Self)이다. 두 세계를 상징하는 경험의 허들을 넘으면서 방황하던 주인공은 결국 두 세계가 통합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는다.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레벨 3까지 조금이라도 들어갔다 온 걸까. 자신은 없지만, 이 책의 별칭을 하나 지어본다. 일명 양파 북’? 깐 만큼 보이니까.

 

꿈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꿈에서 깨어난 직후에는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검색부터 했다. 신묘한 분위기의 도사님 말투부터 취미 정도의 가벼운 말투까지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검색어 옷장에 이토록 수많은 해석이 존재할 줄이야. 옷장이 열리는 꿈, 닫히는 꿈, 옮기는 꿈, 사라지는 꿈, 정리하는 꿈, 부서지는 꿈, 거기서 뭔가 나오는 꿈. 256색상 환을 연상케 하는 해석들이 옷장이란 두 글자 뒤에 줄줄이 매달렸다. 몇 가지 해석을 읽은 다음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나를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라고. 각자의 삶이 다르고 대상들과 연결된 수많은 요소는 개별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같은 단어를 사용할 뿐 개개인에게 옷장의 의미는 고유할 수밖에 없다.

무의식적인 세계는 꿈속에서만 표현되는 건 아닐 터이다. 무의식에 끌려 행동하게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들었다. 나도 모르는 손짓, 무심코 바라본 눈길을 통해서도 내면의 조각들이 떨어져나온다고 생각한다. 미워하는 인간에 대한 반응 역시 그의 모습이 내 안의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무의식의 세계를 중요하게 다룬다. 보이지 않아 알지 못하는 세계를 무시하기에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유명 심리학자의 저서 중 유일하게 읽은 작품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다. 프로이트 못지않게 언급되는 심리학자가 융이다. 두 학자가 주장하는 이론의 차이점을 언급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융의 이론이 꽤 흥미로웠다는 느낌은 기억한다. 데미안의 심리학적 해석 기반은 융의 심리학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융의 책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의외로 자신을 자세히 관찰하는 사람은 적다.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포함하여 다른 이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과정의 핵심은 관찰이다. 헤세는 무의식의 세계를 진지하게 알아가야 함을 말한다. 무의식은 누구나 품고 있지만, 단순히 지니고만 있느냐, 이를 알기도 하느냐는 아주 큰 차이라고.

 

200쪽도 안 되는 얇은 책을 일주일 넘게 붙들고 있었다. 삶의 가장 원초적인 부위에 접근한 책이어서일까. 문장 하나하나에 빠질수록 책장은 느리게 넘어갔다. 묵직한 심해저의 바닷물에 마음을 실으면 이런 기분이 들까. 깊고 느리고 차가운 메시지가 마음으로 들어왔다. 예전에는 새의 알까기가 은근히 간지나 보이더니 이번에는 다른 느낌이다. 작가는 양면성을 지닌 대상들을 그대로 인정해야 함을 주장한다. 빛과 어둠이 분리될 수 없는 커플로 존재하듯 신과 악마의 존재 역시. 두 가지 세계를 인정한 란 존재가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를 모두 안고 진짜 가 되는 것처럼.

이 책에는 세계가 담겨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담고 있는 세계를 의미한다. 한데 의미를 확장한다면 프랙탈의 원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내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의 입장에서는 나의 몸이 우주가 되는 것처럼. ‘라는 한 사람을 정확하게 알아가는 과정은 우주를 알아가는 과정과 본질적인 면에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무의식에는 어떤 본성이 담겼을까. 꿈을 통해 무의식의 방으로 들어가는 거라면 꿈속의 세계야말로 굉장하지 않은가. 바라보는 것들이, 듣고 만지고 오감으로 흡수되는 모든 것들이 무의식의 세계에 차곡차곡 쌓인다면?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순간 저절로 튀어나온다면? 살짝 소름이 돋는다. 데미안을 읽고 나니 밖으로 향하던 시선이 내 안을 향하게 된다. ‘이지만 내가 모르는 를 알고 싶어진다. 일생이 걸리는 여정을 조금 더 걸어가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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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2-27 2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유일하게 두번째 읽은 고전인데 첫인상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 말하기엔 좀 오만해보일지 모르나 전보다는 이해되는게 늘어난걸보니 독서력이 늘긴 했나봐요^^

나비종님 말씀처럼 인간이 성악설이다, 또는 성선설이다 말이 많을때 헤세는 공존한다는 쪽으로 접근했던가 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느쪽이든 컨트롤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일까요? 많은 판타지물에서 신족과 마족 사이에 항상 있는게 인간인데, 데미안을 통해서 왜 중심에 인간이 있는건지 알것도 같고요. 몇년뒤에 읽어보면 더 정확히 알라나요ㅎㅎ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버전이 진짜 나,라는 말이 참 알다가도 모를듯한 말이에요. 결국 단맛 쓴맛 다 봐야한다는 말이니까요ㅎㅎㅎ 하긴 성장은 그렇게 하는거죠. 싱클레어가 친구를 상담하는 장면에서 보여준 성장이, 크로머와의 일이 없었다면 불가했을테고요. 금지된게 허용되어 본인을 알아간다는 말이 이해가 확 됩니다.

시선이 밖에서 안으로 향하게 된단 말, 너무 좋은데요?ㅎㅎ근데 고전이 다 그런거같아요.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인간다움을 생각해보게 하는 보이지않는 힘이 작용할때마다 무의식의 우주를 느낍니다. 언제 그 우주들을 다 둘러볼수 있을지 까마득하네요^^; 부지런히 독서하는걸로ㅎㅎㅎ 2월도 고생하셨습니다. 3월도 즐거운 독서와 리뷰로 만나요~^^

나비종 2021-02-27 22:57   좋아요 1 | URL
다른 장르보다 소설이 그런 면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읽을 때마다 다른 페이지에서 공감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데미안>을 읽어보니 그 차이가 확 느껴지더라구요. 이렇게 조금씩 마음의 키도 자라고 있는가봅니다.^^

인간에게서 드러나는 모든 본성을 포용하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느쪽이든 컨트롤을 하려면 운동하는 인간들처럼 마음의 근육이 강해져야겠어요. 그래서 수련, 고행, 이런 걸 하는 걸까요?ㅎㅎ
신족과 마족 말씀을 하시니 저는 로판 웹소설이 떠오르네요.ㅋㅋ 음, 중심에 인간이 있다... 맞는 것 같아요. 선과 악의 경계에서 금을 밟고 있는 존재.ㅋㅋ
몇 년 뒤에 읽어보면 느낌이 또 다르겠죠?^^

의식과 무의식을 실물로 묘사할 때 빙산을 예로 드는 경우를 많이 보았거든요. 수면 위로 드러난 의식과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무의식으로요. 빙산의 90%가 잠겨있듯 무의식의 비중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죠. 한데 빙산의 존재는 물 위, 아래에 있는 전체 덩어리를 다 가리키는 거니까. 수면 위로 드러난 모가지 부분만 똑 떼어내는 게 아니라요. ‘진짜 나‘의 의미를 저는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ㅎㅎ
혓바닥 같은 거겠죠. 단맛, 쓴맛 다 맛봐야 건더기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ㅋ
비열한 크로머가 결국 열일한 셈이네요. 성장하기 위해서는 참, 이런 고뇌와 고통의 고비를 넘겨야한다는 게. 음, 세상 쉬운 거 하나도 없습니다.^^
금지와 허용의 비교 버전은 곱씹을수록 의미하는 바가 커지네요. 저도 확 이해가ㅋㅋㅋ

알다가도 모를 나란 인간. 가끔은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하죠.ㅋ 우리 고전과 다양한 책들을 타고 부지런히 우주여행 다녀요~ㅎㅎ
3월에는 겁나 바쁘겠지만 벼락치기를 탈출하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쳐볼게요.^^
 
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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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파놓은 함정 앞에서 어찌 좁쌀 한 톨의 융통성도 발휘하지 못한단 말인가! 학창 시절, 역사 시험문제를 풀 때마다 꼿꼿한 대나무가 되어버리던 나는 간장 종지만 한 함정에도 어김없이 걸려들었다. 허탈한 미운털이 그... 역사에 하나둘씩 박혔다. 내게 있어 역사는 지긋지긋한 대뇌 관절염으로 주름마다 켜켜이 들러붙던 암기과목이었다. ‘역사한문과 더불어 이과 선택의 결정적 계기가 된 양대 산맥이었다.

세월은 나에게서 점점 기억력을 앗아가고 그 자리에 통찰력과 이해력을 두고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에 대한 나의 시각에도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조선 시대 역사에서 왕들의 이야기를, 미국의 역사에서는 콜럼버스의 대단한 발견을 떠올리던 사고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 역사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그것을 당당히 기록할 수 있게 된 승자의 관점일 뿐이라고.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예전만큼의 거부감은 줄었지만, 여전히 접근이 꺼려지는 분야였다.

역사의 쓸모역사를 왜 배우는가?’에 대한 답이 적힌 책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그 안에서 우리는 삶을 향한 나침반을 들고 있는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역사라는 분야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에 대한 기록이라는 당연한 명제를 왜 이제껏 잊고 있던 걸까. ‘기록에 방점이 찍혀 사람을 무심코 지나쳐왔다. 사람이 빠진 역사는 페트병을 둘러싼 비닐만큼이나 허무한 껍질에 불과했다. 목이 마를 때는 그 안에 담긴 생수를 마셔야 했건만 라벨에 적힌 설명문만 읽다 만 거다.

 

4개의 장, 22개의 소주제로 구성된 이 책은 역사의 쓸모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접근한다. 건조한 논설문 형식이라기보다는 저자의 의견을 어필한 다음 그 근거를 역사와 접목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1장에서는 삼국유사로 문을 연다. 삼국유사의 ()’버리다, 유기하다로 해석될 수 있다. 직역하면 삼국에서의 버려진 것들을 모은 역사라는 것.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정통적인 역사라면 신화 등 판타지 요소가 더해진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는 야사로 대비된다. 최태성은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발휘하는 영향력에 주목한다. 어렸을 때 동화를 읽으면서 정서적인 삶의 활력을 얻게 되는 것처럼.

2장은 저자가 역사를 통해 배운 7가지에 관한 내용이다. 혁신, 성찰, 창조, 협상, 공감, 합리, 소통 등을 역사와 관련 지어 풀어놓았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가 예로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주제가 스며든다. 그 중 조합을 통한 창조를 설명하는 방식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글쓰기를 떠올렸다. 글을 쓴다는 것도 조합을 통한 창조 아닌가. 의미를 아는 글자들의 조합으로 내용을 구성하는 창조행위이니까.

3장에서는 정도전, 김육, 장보고, 박상진, 이회영 등 역사적 인물의 삶을 통하여 삶에 접근하는 태도를 말한다. 저자는 교과서에 피상적으로 적혀있는 업적보다 그들의 삶에 주목한다. 정도전을 통해서는 지금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하고, 김육과 이회영을 통해서는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일생이라는 답을 찾아준다. 장보고의 삶에서는 자신의 단점을 메꾸기보다는 장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인물의 여정을 보여준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낫기를, 비교는 오로지 나 자신과 해야 함을 말한다. 삶에 대한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는 희망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이 인물의 이야기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을 꾸어야 함을 말한 박상진의 삶은 진로 상담을 할 때 아이들에게 적용할만한 이야기로 마음에 담아두었다.

현장에 있는 사람의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있다. 어설픈 흉내가 아니라 이라 말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이를테면 연애를 글로 배운 게 아니라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서 절로 우러나는 과 같다. 4장에서는 역사를 향한 저자의 고백을 듣는 듯하다. 이 사람은 역사를 정말로 좋아하고 역사의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역사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린 저자는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역사적 관점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준다. 각자의 삶에는 자신만의 궤적이 필요하며 수많은 사람의 일생이 담긴 역사 공부를 통해 이를 찾아가는 좋은 방법도 있다고.

 

고전을 읽을 때마다 종종 놀라는 점이 있다. 몇백 년 전에도 사람들이 이런 문제로 고민했던가. 형태는 다를지언정 사람에게 발생하는 일에는 보편적인 면도 있구나. 근본적인 삶의 방식은 되풀이되는 건가. 고민하던 문제에 적용할 답을 우연히 발견할 때면 이런 생각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한데 역사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는 거였다. 저자는 말한다.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역사에 몸을 기대었다고. 미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과거를 알 수 있어 다행이라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인 거다. 1주씩, 2주씩 근근이 연명하며 지나오던 작년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작년에 가장 힘들었던 요소는 알 수 없음에서 오는 어정쩡함이었다. 일정이 확실하게 정해지면 가장 이상적인 플랜A를 세우던가, 그도 어려우면 플랜B, 플랜C까지 마련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당장 다음 주에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은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마스크로 버텨낸 시행착오의 역사는 많은 해결법을 남겨주었다. 여전히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어찌해야 할지 두어 개의 답 정도는 움켜쥐게 되었다. 학급 담임을 맡으면서 시도했던 몇 가지 중 버릴 것과 한 번 더 적용해보고 싶은 방식에 대한 윤곽을 그릴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학습 지도 방식과 업무에서의 노하우를 얻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렇게 하고, 저런 상황이라면 저렇게 하고, 이런 건 좀 더 보완해야겠다며 조금이나마 계획이라는 것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32일의 마스크 개학을 앞두고 적어도 갈팡질팡하게 되는 속 터짐은 사라졌다.

 

삶에서 역사가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에 접근하는 저자의 발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역사를 향한 맑은 신념과 열정에 반해 버렸다. 음성 지원이 되듯 구어체로 서술된 문장과 쉬운 내용으로 인해 꽁꽁 닫아두었던 편견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이런 사람이 하는 역사 강의는 어떨까. 궁금증을 참다못해 새벽 1시에 인터넷으로 역사 수업을 듣고 있는 나를, 며칠 전의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고구려 소수림왕의 업적을 듣고 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줄이야!

역사를 다시 한번 공부하고 싶어졌다. 교과서 시험대비용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삶을 살다간 이들의 이야기로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역사적 사고란 얼마나 커다란 틀인가! 살면서 하게 되는 수많은 선택이 어떻게 해석될지 가늠하며 다른 이들에게 미칠 영향력을 고려하면서 판단한다는 것.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삶에 적용한다면 사고의 폭이 곤충 탈피하듯 도약적으로 확장되리라.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나니 여행을 떠나기 직전인 듯 두근거렸다. 역사 공부를 하기 전에 준비운동으로 접근하기에 매우 좋은 책이라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충분히 준비운동을 한 듯 마음의 근육이 몰랑몰랑해진다. 역사 속으로 유연하게 헤엄칠 수 있을 것만 같다. 흑역사로 꽁꽁 둘러싸인 분야였기에 역사 관련 책을 읽고 뭉클하게 될 줄 몰랐다. 뭉클함을 넘어서는 감정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맴돌았다. 중간중간에 소개된 역사적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었숲 전체가 뭉텅 다가온 느낌이랄까.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퍼즐 조각처럼 모이자 거대한 느낌표가 찍혔다. 미운 오리 새끼로 자리 잡고 있던 역사라는 분야가 하얀 백조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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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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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몇 명의 힘이 필요할까. 거대한 시공간을 가늠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필요할 듯한데 간혹 한 사람만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가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라 큰불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는 경우이다. 사소해 보이는 까닭에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훗날 선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 발견하게 되는 최초의 점 같은 존재 말이다.

한 사람이란 말을 가만가만 음미하다 보면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 떠오른다. 애니메이션으로 접하고 나서 한동안 뭉클했던 느낌이 생생했던 동화이다. 원작에 사용되었다는 사천여 개의 단어들은 빠르게 스며들어 마음을 무장해제 시켰다. 몽환적이었지만 실화인지 판타지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초반의 의구심은 마지막에 가서는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바뀌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통틀어 오십 년짜리 계획을 세운다는 건 얼마나 징한 의미인가. 남은 삶을 올인한 이의 힘이란 얼마나 깊이 있는 위대함을 품고 있는가.

뜬금없이 이 짧은 동화를 떠올린 건 <침묵의 봄>을 통해 전해지던 레이첼 카슨의 마음이 동화 속 주인공과 닮아서였다. 노인이 심은 나무 한 그루에서 숲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그녀의 책 한 권으로 변화를 겪은 세상의 모습과 겹쳐져서였다.

 

이 책은 토양과 물에 뿌려진 무분별한 살충제의 남용으로 파괴되어 가는 야생생물계의 실태를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기대감은 반반이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그만큼 재미있을까 싶다가도 몸에만 좋은 약일지도 몰라서였다. 책의 내용보다 이 점이 궁금했다. 20세기 환경학 최고의 고전이라는 유명세는 어느 쪽에 속할까.

카슨은 지구 곳곳에서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자연 파괴의 실상을 제시하고 그 원인을 거슬러 추적하며 고통받는 생태계의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과학적으로 면밀하게 파헤치는 과정에서는 살충제의 기본 성분부터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나열한다. 연어처럼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 범인을 기어이 잡아낸다. 이 모든 사태가 인간 스스로 만들고 뿌려버린, 어쩌면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뿌려지고 있을지 모를 살충제에 맞닿아있음을 증명한다. ‘살충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한 편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현장감이 긴박하게 와닿는다.

저자의 위대한 점은 서술 방식의 탁월함에 있다. 싫증이 나거나 딱딱하지 않은 문체로 인해 대중들은 내용에 쉽게 접근하게 된다. 화학적인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을 위해 약간의 기초 설명을 곁들이는 친절함도 보인다. 통계의 힘과 다양한 사례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많은 이들을 설득한다. 거대한 지렛대 하나로 지구를 들어올리겠다며 당당히 외친 아르키메데스의 패기를 닮은 그녀의 도전이 감탄스럽다.

 

식물의 집단 재배는 문제 발생의 시발점이다. 똑같은 작물들이 줄지어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 바이러스가 연상된다. 단세포 생물의 장점은 무한해 보이는 증식성에 있지만, 환경이 바뀌었을 때 전멸한다는 단점은 치명적이다. 먹이사슬로 연결된 1차 소비자의 대량 증식이 시작되면서 식물의 대량 전멸을 막기 위한 살충제의 대량 살포가 시작된다. 문제는 끈질기게 살아남는 곤충들의 내성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살충제의 생산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양으로 줄이도록 노력해보자는 것이다. 그녀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천적을 이용한 현명한 대안도 더불어 제시한다. 하지만 효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비행기로 살충제를 휘리릭 뿌려대거나 강물에 흘려보내는 조급한 인간들이 내성을 지닌 곤충에 빙의하여 여전히 나타난다.

우주 안에서의 지구는 닫혀있는 동그란 상자와 같다. 중력장 안에서 모든 물질은 지구 중심을 향해 당겨진다. , 공기, 땅덩어리까지도. 음식과 식수와 공기 속의 위험 물질은 닫혀있는 지구 안에서 돌고 돈다.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가 운명 공동체로 묶이는 이유이다.

숲의 아름다움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복사해 붙인 듯이 한 종류의 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연의 작품은 아니다. 그렇게도 다양했던 생물이 스러져간다. 자연스러운 생명의 빛을 뿜어내던 생명체의 운명이 인간으로 인해 도미노처럼 차례로 흔들리며 마지막에 서 있는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길거리 바위의 줄무늬를 볼 때면 가끔 아득할 때가 있다. 그 안에 담긴 시간을 상상하면서부터이다. 퇴적암을 볼 때면 암석이 품고 있는 시간의 무게에 압도당한다. 변성암처럼 갑작스러운 열과 압력이 작용했던 것도 아니고 화성암처럼 뜨거운 마그마가 굳어진 것도 아니다. 물렁물렁한 흙이 단단한 도자기로 완성되기까지는 불가마 속 뜨거움을 통과해야 하건만. 단지 알갱이가 쌓이는 주요 과정만으로 단단한 암석이 되다니. 퇴적 이후의 후속 과정에서도 뜨거움은 찾아볼 수 없다. 퇴적암은 물밑에서 주로 만들어지니까.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이 켜켜이 담겨있을까. 라르고의 속도로 움직이며 오로지 앞으로만 진행하는 맑고도 묵직한 속성이라니. 자연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묵묵히 흘러가는 시간의 직진성 때문이리라.

되돌릴 수 없는 살충제가 느린 시간에 실려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면서 쌓이고 있다. 대량으로 살포되던 살충제에 대하여 읽으면서 암 치료제를 떠올린다. 암 환자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이유는 치료과정에서 암세포만 죽는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는 세포도 파괴되어서라고 한다. 생물은 제각기 고유한 특성으로 존재하지만, 생명체로서의 동일한 속성도 분명히 있다. 벌레를 죽일 수 있는 약품을 살포하면서 사람을 포함한 다른 동식물이 멀쩡하기를 바란다는 게 오히려 무모한 억지인 거다. 그 억지스러움이 자연의 역린을 건드린 걸까. 봄바람처럼 가뿐한 문장들이었는데 깊이 쌓인 내용의 무게추가 마음을 잡아당긴다.

 

1962년에 발간된 책이 현실적으로 와 닿는 이유는 책 속에서 언급된 현상들이 지금까지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23일에는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온수를 쓰던 주민들이 기준치 8배의 페놀에 이상 반응을 일으켜 어려움을 겪는다는 뉴스 기사가 떴다. 1991년의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을 모티브로 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란 영화도 언급되었다. 처음에 인간은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몰랐을 수도 있다. 유해성이 알려진 다음에는 멈춰야 하는 것을. 인류 스스로 파멸의 길로 걸어가는 무모한 행위가 언제까지 계속될까.

침묵의 봄을 그려내기 위해 작가는 침묵하지 않았다. 남들이 침묵하며 주변만 바라보고 있을 때 담담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미래의 모습을 전망했다. 인간이라 하여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줄 권리가 있는가. ‘방제법에 관해 열심히 연구를 해야겠지만 이 방제법이 생물학적 관점이어야지 화학적 관점이어서는 안 된다. (중략) 생명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기적이기에 이에 대항해 싸움을 벌일 때조차 경외감을 잃어서는 안된다.(p304, 브리예르 박사)’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닐지라도 우리 대다수는 스러져가는 생명을 그저 바라만 보는 방관자로 있다. 내가 그런 물질을 만들지는 않았으니까, 적어도 내가 뿌린 것은 아니니까, 당장 내 입으로 들어가지는 않으니까, 곤충이나 식물은 말이 없으니까.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면서도 진실을 외면하는 수많은 군중이 된다. 당연한 질문을 외면하며 아이로서의 순수한 눈을 감아버린 건 아닌지. 침묵하는 방관자는 암묵적으로 가해자의 편임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

 

 

p21, 2번째 단락 밑에서 2번째 줄: 혼돈을 불어오기 위해 ~불러오기~

p56, 밑에서 5번째 줄: 활동이 무력화한다. ~무력화된다.

p131, 첫째 줄: 집중적인 살포가 일상화했다. ~일상화됐다.

p239, 5번째 줄: 심상치 않는 위협이 ~않은~

p244, 7번째 줄: 체세포의 수가 염색체의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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