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동성 그림,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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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국을 사발 째 들이켰다. 10월초는 한마디로 내가 제일 잘 나가!’모드였다. 상금 사냥을 위해 지난 9월 말에 참가한 시조대회에서 생각지 않 쾌거를 이룬 것이 화근이었다. 자신감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은 나. 이 여세를 몰아 또 다른 시조대회의 문을 두드린다. 오예~ 1등 상금이 무려 100만원이다! 이번에는 단시조로 도전해보아야겠어. 시조 3편을 후다닥 짓는다. 제출했던 시조들은 읽고 또 읽어도 너무도 뛰어난 수작이므로 우편접수 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풍부한 상상력으로 상금을 어디에 쓸 건지 궁리한다. 결과는? 이 문단의 첫째 줄이 의미하는 그게 맞다. 쩜쩜쩜 흐윽.

주최 측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당선자들의 명단을 두어 번 훑었다.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마음을 이해하는가. 가장 마지막 줄에서조차 나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심장의 과녁을 명중한다. 보고 또 보아도 그토록 뛰어난 작품이었는데 말이다. 오만방자해진 나는 나만의 과녁을 만들어놓고 화살이 명중했다며 좋아라했던 거다. 주최한 사람들이 설정한 과녁이 저만치에 있었는지도 모르고. 내 삶에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은 이런 방식으로 겸손이라는 삶의 자세를 교훈으로 남겨주었다. 지금은 커피숍. 퇴근 후의 나는 다시 겸허한 마음으로 열심히 글을 쓰는 중이다.

 

소설의 제목 아처궁사를 의미한다. 전개되는 서사는 단순하다. 활과 화살과 표적을 중심으로 궁사가 갖춰야 할 자세를 짧은 소설 형식으로 담았다. 삶에 적용할 지침으로 확대하여 마음에 담을만한 작품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얼핏 식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싶다. 나에게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도움을 주었던 책이다.

궁도처럼 행위에 정신적인 영향력이 깃든 영역은 활을 쏘는 데 뿐 아니라 삶의 전반에 관련 태도가 적용될 수 있다. 파울로 코엘료가 의도한 바도 아마도 그러하리라. 활은 화살을 날리기 위한 도구이니 능력을 발휘하는 몸, 화살은 세상을 향해 날아가니 실제로 이루어지는 행동, 표적은 화살이 날아가는 방향을 결정하니 수시로 세우는 목표에 비유된다.

작가의 문장을 읽으면서 소설 밖에서 나의 서사를 펼쳐갔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그 일에 대한 열정과 실천, 주변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 삶을 살아가는 태도, 삶을 바라보는 시선 등을. 문장 하나하나를 지나면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께에 비해 읽는 데 걸린 시간의 가성비는 놀라울 정도로 말이 되지 않았다. 한 페이지 앞에서 30분 이상 머물던 때도 있었다.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싶다. 은은한 색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림에서 작가의 마음이 보였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여백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았다. 여백은 여백대로 깊이감이 있었고 그 안에 담긴 중심인물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풍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한 색깔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도 색채의 농담을 표현하는 기법이 출중했다. 그림을 그린 김동성 작가가 절반의 기여를 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이 좋아서 그의 이력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그림책 작가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기록한 내용을 찾았다. 텍스트에서 말하는 것을 반복 설명하기보다는 은유적으로 해석해서 텍스트가 말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이끌어 내려고 한다는 작가의 의지가 마음에 들었다. 두 작품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인터뷰어의 멘트에 좋은 글을 운 좋게 만나 작업을 한 경우라고 답한다. 얼마 전의 자만한 인간의 최후’를 떠올리니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좋은 그림을 그린다는 건 자기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그것을 구현할 테크닉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안다는 것, 작가로서의 역량은 폭이 넓어야 생기며 그래야 깊이 팔 수 있다는 것, 테크닉만으로는 감동을 만들 수 없다는 말들이 마음에 남았다.

인터뷰를 읽은 후 책을 다시 펼쳐 그림 부분만 발췌하여 감상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각각의 본문에 정확히 한 장면의 그림만 삽입되어있음을 발견했다. 텍스트를 몇 번이고 음미하며 표현할 이미지를 고민했을 작가를 떠올리니 순간 뭉클했다. 그는 그림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용 중에서는 동료를 언급한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동료는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 한다. 자신의 삶을 감당하기에도 바쁜데 다른 이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글짓기대회에서 상을 타거나 어딘가에 글이 실릴 때면 메시지를 보내 주변 이들에게 알리곤 했다. 최근에도 카톡으로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어미와 존칭어에만 변주를 주어서 보냈다. 그들의 답문을 다시 살펴보았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이도 있었고 형식적인 멘트를 보낸 이도 눈에 띄었다.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이도, 전화까지 해서 기쁨을 함께 나눈 이도 있었다. 어렴풋이 동료가 될 수 있는 이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하루 동안 만났던 이들부터 친구나 지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파노라마 필름이 흘러가듯 머릿속을 지나갔다. 작가의 문장들이 의미 있는 발걸음인 듯, 하나의 문장을 지날 때마다 멈추어 서서 그들을 떠올렸다. 명확한 기준을 찾은 듯 문장에 부합되거나 부합되지 않는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관성에 의해 유지되어온 그저 그런 관계들도 있었다. 막연히 껄끄러운 느낌으로 자리하던 그들의 존재가 타인의 문장 앞에서 정체성을 드러냈다.

동료를 찾는 조건은 내가 어떤 동료가 되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이기도 했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사람, 마음이 활짝 열린 사람, 약점이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물과 같은 속성을 지녀 언젠가는 바다에 닿아야 함을 절대 잊지 않는 사람, 눈에 기쁨이 깃든 사람, 맡은 일을 열정적으로 해내는 사람. 듣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동료를 찾기를, 그런 동료가 되어줄 수 있기를.

 

이 책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뒤표지의 안쪽에 담긴 뜬금없는 내용이다. 연금술사가 엄청 유명했던 점은 인정한다. 한데 그걸 굳이 뒤표지의 안쪽에 두 페이지나 걸쳐 집어넣어야 했을까. 아처에 대한 것이 아닌 추천사를 말이다. 전 세계 85백만 독자를 사로잡은 연금술사한국어판 100쇄 기념 스페셜 에디션 출간에 대한 홍보가 목적이라면 뒷날개의 좁은 한 편에 배치했어도 충분했다. 처음에는 이 책과 무슨 연관성이라도 있는 멘트들일까 해서 읽어보았다. 전혀 관련성이 없었다. 연금술사만을 위한 유명 인사들의 말임을 깨닫는 순간 실망스러움이 밀려왔다.

뒷날개에 배치한 파울로 코엘료의 인터뷰를 왼편에, 이 책에 또 다른 지분이 있는 김동성 작가가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면서 느꼈던 점을 인터뷰해서 오른편에 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파울로 코엘료의 전작의 명성에 기대어 부록처럼 출판된 책인가 라는 느낌조차 들었다. 연금술사가 대놓고 언급되니 자연스레 이 책과 비교하게 되었다. 결이 완전히 다르지만 상대적으로 서사가 약한 이 책이 밋밋하고 진부하게 인식되어 자칫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독립된 책으로 당당했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 나의 의견이다.

 

50대를 넘어서면서 실감하는 점은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된다면 돈은 생각만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마음, 돈으로 살 수 없는 건강, 돈으로 살 수 없는 친구,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 행복, 열정들 하나하나가 진정 소중한 것들이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았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친구와 열정의 중요성을 확인하였다.

표적을 보는 법에서는 많은 위안을 받았다.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그날 아침의 활쏘기에 너무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 앞으로 수많은 날이 남아 있고, 각각의 화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이라는 내용이다. 시조대회의 결과에 위축된 마음이 있었다. 그래, 나는 단지 하나의 과녁을 맞히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쏘아야 할 화살은 다시 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등 뒤에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계속 도전해볼 의지가 불끈 솟아올랐다.

뒤표지에도 언급된, ‘발시의 순간에 나온 말에 공감한다. 무언가를 멀리 쏘아 보내는 동작은 자아를 마주하게 한다는 것. 시든 리뷰든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내 자신을 만나왔다. 때론 감추고 싶었고 따끔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화살을 쏘아왔던 이유는 글이 스스로 나를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까닭이다.

 

아처화살은 나에게 이었다. 110V의 전압을 220V로 변환해주는 트랜스인양 책속의 문장들이 글쓰기에 도전하는 나에게 해주는 말로 다가왔다. 숱한 훈련 끝에 마침내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오면 스스로 자신의 활과 화살, 표적이 된다고 했다. 나의 삶과 나의 글과 나의 행동이 하나가 되는 순간으로 해석했다.

화살을 쏘고 나면 궤적을 눈으로 좇을 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므로 긴장을 남겨둘 필요가 없으며 마음을 놓고 미소를 짓는다고도 했다. 최선을 다해 나의 화살을 쏘고 나서 미소 짓는 순간을 맞이하려면 평정을 유지하는 마음이 필요하리라. 우연히 좋은 결과가 나오든 바라던 결과가 나오지 않든 자만하거나 의기소침해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세상에는 많이 들어본 말들이 먼지처럼 떠다닌다. 교과서 속에 나올 법하다면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당연한 말들이 적절한 시기에 확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운명이란 말을 떠올린다. 좋았던 결과를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사소한 순간을 만났을 때, 절묘한 그 순간을 운명이라 부르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필 이럴 때 하필 이런 순간에 마음의 과녁에 명중이 되는 그 어떤 것이 있다면 마음과 공명이 된다. 울림이 커진다. 나에게는 아처가 이런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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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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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에게는 아직 넘기지 못한 5분의 1이 남았는뎁쇼? 이게 진정 끝? 투비컨티뉴드로 믿었던 글들이 미완성 장들의 모임이었다니! 열나게 달리다 갑툭튀한 낭떠러지를 만난 나는 진정한 부조리 앞에서 식은땀을 흘린다. 도대체 맥락 없는 내용으로 어떤 리뷰를 뽑을 수 있단 말인가!

소설소송은 부조리의 결정판이다. 세상의 모순을 몽땅 까발려줄 테닷! 작정하고 펜을 든 저자 앞에서 논리를 논하지 말지어다. 미완성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완성작으로 발표되었대도 딱히 달라졌을 것 같지 않다. 읽기 전에 후루룩 넘겨보았을 때에는 빽빽한 게 팔만대장경 조판을 보는 듯하더니. 막상 읽어보면 책장 넘김이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다. 담긴 내용이 갑갑해서 그렇지 가독성은 좋은 편이다.

소송을 당한 주인공 요제프 K가 법원을 둘러싼 인물들과 만나며 소송의 그물에서 벗어나려다 끝내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 놀라운 건 죽는 순간까지도 소송당한 이유를 모른다는 점이다. ‘?’에 집중하며 소설을 읽으면 낭패를 본다는 것. 언제쯤 나올까. 절반 가까이 넘어가면서도 그노무 를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나. 설마 마지막에는 나오겠지. 5분의 4를 지나니 주인공 K가 개를 부르짖으며 죽는 게 아닌가. 대체 어디다 시선을 두어야 하나요.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읽는 데 걸린 시간의 몇 배가 흐른 후에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K를 둘러싼 모순된 상황 전체를 읽어야 한다는 것을. 범위를 넓히면 이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보다 커다란 틀에서 찾아야 했다. 소설 안에 갇힌 소송의 이유 따위가 중요한 소설이 아니었던 거다.

꿉꿉하면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공간을 오가는 K는 소송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소송으로 표현되며 소설 전체를 끌고 가는 상황은 개인의 삶을 옭아매는 다른 무엇일수도 있다. 그를 향해 파도처럼 오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K에게 미션을 던진다. 가상의 게임공간으로 투입된 K가 통과해야할 관문이랄까. 그리고 모든 상황의 뒤에는 이를 지켜보는 거대한 존재가 있다. 법원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조직은 한 국가일 수도, 사회일 수도 있다. 꼭두각시를 조종하듯 K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결국 K를 세상에서 지워버린다.

법률 세계의 오래된 격언으로 등장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가만히 있는 자는 언제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울 접시에 올라가 자신의 모든 죄와 함께 저울질당할 수 있다는 것. 카프카는 구성원들의 삶을 커다란 틀에 가두고 통제하려는 체제의 모순을 까발리고 싶었던 걸까. 피의자를 대변해야 할 변호사는 되레 소송에 처한 사람들을 지배하고 직무태만을 합리화한다. 번듯해야 할 것 같은 법원은 허름한 가정집 다락방에 위치한다. 최고의 우두머리로 상징되는 인물은 막연한 존재로만 묘사된다. 누구도 실체를 본 적이 없다.

 

나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두 군데가 있다.

첫째, ‘변호사라는 제목에서 등장한 장면이다. 거대 조직의 정체성을 날카롭게 직시하는 문장들이 있다. 작가는 법원 조직과 그 안에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언급한다. 유일하게 올바른 길은 현실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말한다. 터무니없는 일이 있더라도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거대한 법원 조직은 영원한 부유 상태에 있어 누군가 독자적으로 무언가를 바꿔버리면 자신만 추락하게 될 뿐이라고. 조직의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사소한 장애는 다른 곳에서 손쉽게 보완하여 이전과 다름없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K를 둘러싼 인물 대부분이 어떻게든 법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조직의 연결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관성처럼 이어져오는 편견이란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니는가. 거대 조직은 조직의 룰을 합리적이라는 틀로 세운다. 잔혹동화에 등장하는 맞춤형 침대처럼 인간의 키를 틀에 맞추려 한다. 답정너다. 주인공 K는 끝내 그 침대에 눕게 된다.

둘째,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서술된 결말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연상케 한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약하고 여위어 보이는 어떤 이의 등장과 그의 행동과 이를 본 K의 생각과 리액션이다. 여기에는 짙은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K가 겪은 혼란과 부조리가 종합 서술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그 어떤 이는 K를 향해 양팔을 뻗는다. 그 액션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K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어떤 이가 너무 멀고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데칼코마니처럼 두 손을 쳐들고 도와달라는 듯 손가락을 펼치는 K의 리액션은 거대 조직의 늪으로 소멸되기 직전의 마지막 불꽃같은 안간힘이다.

K가 내뱉은 물음표의 폭풍 랩에서 이 소설의 정체성이 보인다. ‘누굴까? 친구일까? 좋은 사람일까? 관련된 사람일까? 도와주려는 사람일까? 한 사람일까? 아니면 전체일까? 아직 도움이 가능한 것일까? 생각해내지 못한 반대 변론이라도 있는 걸까? (중략)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판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가 아직 이르지 못한 상급 법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찬물을 파란색으로, 더운물을 빨간색으로 표시하는 방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덕분에 우리는 푸른 별이 붉은 별보다 뜨겁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지 않은가. 뜨겁게 불타는 별을 품고 있는 영하 270도의 우주, 빛이 강할수록 더욱 진해지는 그림자. 세상의 많은 것들이 모순적인 형태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뜨거우면서 차가울 수 있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웃던 때도 있었다. 아이스크림 튀김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과학적으로도 완벽한 원리를 생각하다보니 오늘은 다른 점이 눈에 들어온다. 모순처럼 보이는 현상을 과감하게 시도해볼 생각을 한 누군가는 세상의 본질을 알았으리라고.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상향에 가까운 개념인걸까. 드라마에서나 등장하는, 이상을 열망하는 인간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꿈같은 존재처럼 말이다. 행동경제학에서 연구하는 인간들은 버젓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고전경제학을 뛰어넘어 행동경제학이 주목받는 이유는 현실의 모습에 가깝게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거라고 들었다. 우리의 입안을 즐겁게 하는 수많은 겉바속촉이 존재하듯 세상은 온통 부조리투성이이다. 카프카는 이러한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작가가 아니었을까.

 

p342, 밑에서 2째줄: 후기구조조의 ~주의

p354, 밑에서 3째줄: 펠리치 펠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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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10-19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래요, 완성작으로 나왔어도 별 차이를 못느꼈을듯요 ㅋㅋ
그나저나 참 난해하고 난감한 책입니다. 어쨌거나 저자의 메시지나 뜻을 알고는 싶은데 뭘 생각하더라도 이게 맞나, 저게 맞나 하게 되거든요. 어차피 미완작이니까 독자의 생각도 미완이면 어떠랴 싶네요 ㅋㅋㅋ

<구성원들의 삶을 커다란 틀에 가두고 통제하려는 체제의 모순>이 메인 주제에 가깝지 않나 합니다. 어쨌든 국가나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는 강제적인 통제가 늘 잇따를테고, 보기에 따라 그것이 절대적으로 잘못돼었다 하기도 뭐하니까요. 그래도 이건 아닌데,하는 개개인의 판단과 어떻게든 질서를 잡으려는 조직의 관계에서 오는 모순... 누군가는 억울해야만 굴러가는 세상인가 봅니다ㅠㅠ

저는 여러 인물들 중에서 변호사가 제일 밥맛이었어요. 의뢰인을 봐가면서 태도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도 재수없고, 주인공의 소송 건도 마냥 미루기만 하는데다 납득할만한 진행상황을 전달해주지도 않는데 이런 게 무슨 대단한 변호사 타이틀을 갖고 있는지 말이죠. 현실을 받아들여라, 너만 추락하게 될 뿐이다 등등 조언은 고맙지만, 고객보다는 법원의 편에 서있다는 느낌이 강하더군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법원과 함께 고객을 단념하게 만들고있으니 답답합니다. 카프카는 법공부하면서 이런 사례를 무수히도 봐왔겠죠. 법원의 부조리함과 직원들의 권력 행사. 그것들을 일반인이 어떻게 해볼 수가 있을까요.

여튼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게 해주는 작품이었어요. 왜 카프카의 책을 시대의 문제작이라 불렀는지 알 것도 같네요^^ 가독성도 좋아서 좋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고소인은 부행장이 아닐까 추축해봅니다. 부장과 사이 안좋은 인물로 가장 유력하고, 같은 직장에서 부장의 약점을 잡기 딱 좋은 위치거든요~ 또한 부장도 생각보다 억울함을 강하게 표출하지 않는 걸 봐선 켕기는 게 있을것도 같고요. 이건 if story 입니다. ㅋㅋ

나비종 2021-10-20 19:23   좋아요 1 | URL
미완성의 장들에 서사가 추가되고 완성작으로 나왔으면 더 멘붕이 왔을 지도요. 골다공증 걸린 뼈다귀마냥 구멍 숭숭 뚫린 곳을 독자의 생각으로 완성을 해야하는 건가 싶기도 하구요~ㅋㅋ

체제의 거대한 그림판 위에서 우르르 휩쓸린다는 생각을 하면 가끔 소름이 돋을 때가 있어요. 중력장의 영향으로 공간이 휘면 빛은 나름 직진 모드인데도 휘어지는 경로로 진행하게 되거든요. 나의 의지로 움직인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 뭐 이런 거요.
무정부주의자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은 어느 정도 선일까 생각해요. 자동차와 사람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려면 신호 체계와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 싶거든요. 그러다가 뉴스에서 도를 넘는 국가나 사회의 개입 사례를 보면 대체 없느니만 못하는 이 지경은 뭔가 싶기도 하구요.
‘누군가는 억울해야만 굴러가는 세상‘ㅠㅠ 그 누군가가 힘이 없는 존재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무너지는 세상에서 제일 큰 상처를 입는 건 또 그런 존재라는 사실이 마음 아픈거죠.ㅡㅡ

저도 변호사, too! 전형적인 약강강약 스타일이잖아요. 정글의 왕 앞에서 깐족대는 여우?새끼가 생각났어요. 그런 면에서는 변호사 등장 장면에서 후련한 통쾌함이 느껴지더군요. 대놓고 풍자하고 까는 작가를 보면서 아주 작정을 했구나 싶었어요.ㅋㅋ

재미는 드럽게 없었지만 가독성은 또 좋고 아리까리했지만 뭔가 느낌을 알 것 같기도 해서 별점 3점에서 레벨업했습니다~ㅎ
흠~ 고소인이라.. 미스터리물로 여긴다면 의외로 행장일지도 모르죠. 부행장은 대놓고 적대자라 용의자 1번이라면 다소 시시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카프카의 난해한 성정을 생각한다면 행장일 수도 있습니다!ㅋㅋ 행장은 지가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알면서도 왜 버벅거리는 K를 시키냐구요. 고객을 매수해서 대성당으로 유인한 거죠. 쫌 수상합니다. 요제프를 견제하려고 그랬을 수도 있죠. 그러면 1타 쌍피일 수도 있어요. 유력한 용의자인 부행장도 제거할 수 있으니~ㅎㅎ
 
행동경제학 -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선택 설계의 힘
리처드 H. 탈러 지음,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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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요상한 거름종이 능력이 장착되었다. 마음에 드는 내용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데 어, 이건 아냐 싶은 건 화이트홀처럼 거부하니 말이다. 의도고 나발이고 내용이 튕겨져 나가 머릿속이 클리어 되는 게 거의 무조건반사 수준이다.

무릇 리뷰어라면 눈 가리고 양팔 저울 들고 계신 여신님 모드를 장착해야하거늘. 디케를 따라가기는커녕 눈 부라리며 용수철저울 들고 마음에 드는 내용만 골라 담는 이 비루한 마인드, 어케?

구구절절 서론의 외침에는 두 가지 예고가 담긴다.

첫째, 이 리뷰는 가치 편향적 관점에서 서술될 것이 예상되므로 이게 전부다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면 망하기 십상이라는 것. 다른 책이 아닐까 의혹이 생길 가능성도 높다.

둘째, 경제학 관련 책에 대한 리뷰인데 돈에 대한 내용은 적을 거라는 것. 돈에는 환장하지만 학문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이게 머니?’ 쩜쩜쩜. 눈에 힘을 주어도 도무지 독해가 되지 않는 기현상을 경험한 리뷰어의 글을 어쩌다 읽게 되셨나요. 572쪽을 완주만 한 이 인간은 결국 갯벌에 널린 맛조개처럼 쏙쏙 내용을 빼먹는다. 소화되지 못하고 허망한 대변이 되어버린 내용도 상당수 있음을 미리 인정한다.

 

행동경제학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탈러가 쓴 책이다. 8개의 장에 걸쳐 행동경제학이 세상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기까지의 여정이 담겨있다. 전통경제학과 대조되는 학문이다. 경제학 이론에서 사람들은 이보다 더 합리적일 수 없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토록 완벽한 인간을 호모이코노미쿠스, 줄여서이콘이라 명명한다. 화학 분야의 이상기체와 같은 존재랄까. 이론적으로는 퍼펙트 하지만 실제로는 구현되지 않는 대상 말이다. 이론의 맹점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저자에게서 반란의 패기가 느껴진다. 전통경제학이 양반들의 학문이라면, 행동경제학은 백성을 위한 학문이랄까. 경제학의 대중화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저자의 열정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뜨겁게 느껴진다.

어떤 분야든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저자는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조차 종종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인간의 심리에 주목한다. 사람들이 최적화 작업을 거쳐 선택을 한다는 전통경제학의 가정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그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요인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학자로서의 저자는 어떤 주장이든 튼튼한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힘이 실린다는 사실을 안다. 이런 이유로 책 속의 내용은 실험 상황과 결과 해석이 주를 이룬다.

경제학과 심리학이 접목된 학문은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두께에 주춤했지만 서두에 담긴 저자의 의도를 읽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재미있는 이야기책으로 읽을 수 있을 거야, 재미와 즐거움을 전달하려고 노력했거든.’ 저자의 이 말을 믿어버리고 말았다. 이럴 때만 순진무구함이 발동된 거다. 넘겨야 할 책장이 줄어들수록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다녔다. 대체 어디가? 재미는 언제? 정녕 이게 재미있는 이야기? 마지막에 도달할 때 즈음 깨달음을 얻는다. 심리학과 관련해서 몇몇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소개된 건 사실이지만 내 관점은 탈러의 것과 심히 다르다는 것을. 학자와 범인의 재미 사이에는 범접할 수 없는 레벨 차이가 존재하는 건가요.

 

모든 사회과학을 떠받치는 학문이 심리학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사회는 사람들의 집단이고 그들의 행동은 심리를 떠나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의 실험이든 심리학적 분석이 등장하면 나의 흥미를 자극한다. 심리학이 내게 매력적인 이유는 인간의 활동 결과를 해석하는 데 리듬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라는 물음에 이래서 이런 거야.’ 답한다. ‘이런다면?이라는 물음에는 이럴 걸?’하며 여유 있게 예측한다. 답이 도출되기까지 다양하게 변주되는 실험이 등장한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증명에 성공한다. 문이과 통합인간처럼 인문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요소가 의외로 많다.

몇 년 전에 꽤 흥미롭게 보았던 짤막한 영상이 있다. <소셜컨트롤>이라는 제목으로 네이버캐스트에 소개된 내용이다. 3가지 영상이 등장한다. 사람들의 행동을 자발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를 담은영상이다.

첫째, 과속을 줄이는 방법이다. 도로에 장치를 부착하여 정속으로 주행할 경우 노래 소리가 나오는, 일명 노래하는 도로가 소개된다.

둘째, 과식을 억제하는 방법이다. 그릇, 식탁보, 조명에 이르기까지 식당의 분위기를 온통 파란색으로 처발처발한다. 대조군과 비교한 결과, 파란색은 식욕을 억제하는 데 꽤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셋째, 에스컬레이터 대신 자발적으로 계단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계단에 비트박스를 구현하는 장치를 설치한다. 사람들이 계단을 디디면 층층마다 각기 다른 비트박스 소리가 난다. 기존의 피아노 계단은 여러 명이 이용할 경우 소리가 뒤섞여 소음으로 작용한다. 타악기는 난타처럼 박자 감을 즐기면서 연주할 수 있다. 영상 속 사람들은 몇 명이 그룹을 만들어 합주를 하며 리듬을 타기도 한다. 매우 획기적이다.

 

책 안에서 나의 시선을 끌었던 몇 가지 실험 결과가 있다.

첫째, 소유 효과이다. 가질 수 있지만 아직 소유하지 않은 것보다 이미 자산의 일부가 된 것을 더 가치 있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가질 때의 기쁨보다 잃을 때의 고통이 크다는 해석을 읽고 나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불확실한 상황일 때 인간이 결정을 하는 방식도 소유 효과와 일맥상통한다. 사람들은 이익을 좋아하지만 손실은 더욱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향은 이익과 손실 앞에서의 결정 방식 차이로 드러난다. 이익에서는 위험 회피적으로, 손실에서는 위험 선호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새 구두에 뒤꿈치가 까여도 벗을 수 없는 이유도 소유 효과를 연상케 한다. 이미 구입한 물건에 지불한 돈은 되돌려 받지 못하므로 매몰된 비용에 해당한다. 매몰 비용은 무시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인간은 물건이 비쌀수록 포기하기까지 더 오랜 고통을 견딘다는 것이다.

현상 유지 편향 역시 소유 효과와 연결된다. 바꾸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는 한 소유한 것을 소유하려하며 심지어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도 바꾸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심리 계좌이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심리 계좌를 가지고 있기에 모든 돈을 똑같이 대우하지 않는다고 한다. 경제학을 돈과 관련된 고도의 심리학으로도 볼 수 있겠다.

셋째, 할인 취소는 가격 인상만큼 강력한 반발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험에서는 결과적으로 같은 상황인데도 프레이밍하는 방식에 따라 디폴트값이 달라짐을 보여준다. 공정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사례들을 보면서 다르고 다르다는 속담을 떠올린다.

넷째, 의사 결정과 관련된 5가지 발견이다. 저자는 뛰어난 운동선수를 영입하기 위한 전략을 언급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착각하는 요소들을 짚어낸다.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자만심, 지나치게 확신하는 극단적인 예상, 지명된 선수를 과대평가하는 바람에 직면하게 되는 승자의 저주, 타인의 취향이 자신과 비슷하리라 여기는 허위 합의 효과, 지금의 승리를 원하는 현재 편향 등이다.

 

나는 주식을 해본 적이 없다. 투자나 돈 관련 분야는 젬병이다. 허걱! 어렵사리 책장을 넘기며 꾸역꾸역 따라간 나는 6장 앞에서 좌절한다. 주식 관련 내용이 대거 등장한 길을 기어가다시피 통과했다. 생소한 용어, 갈수록 낯설어지는 내용 앞에서 학습부진학생의 기분을 공감했다. 스승은 신이 나서 방대한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창고 대방출하는데 그 앞에 선 제자는 침묵한다. 지진을 경험했다. ....

이제 좀 팔자가 피려나. ‘인간만큼 흥미로운 존재는 없다라는 제목을 달고 등장한 7. 대회 선수들을 드래프트한 사례, 교수들의 연구실 고르기 소동 등의 이야기는 분명 재미로 제시했을 터인데. 그들만의 리그가 뿜어내는 이질감. 웃자고 한 얘기가 다큐로 다가오는 이 기분을 탈러님은 아실까. 관심 없는 분야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또 다른 고역이었다. 여전히 나는 흥미의 빈곤을 느껴야했다. 딱 제목만 흥미로웠다.

원래 저자의 문체가 이런 건지, 불편한 번역 탓인지 원문을 모르는 나로서는 알 턱이 없다. 안타까운 건 내 수준에서 매끄러운 독해를 하기 어려웠다는 팩트이다. 관계대명사가 두어 번 들어간 문장을 읽는 기분이었다. 읽다보면 주어가 헷갈려 되돌아가서 몇 번씩 읽어야하는 문장이 툭툭 튀어나왔다.

학문을 다루는 클라스는 등장인물도 남달랐다. 어찌나 많은 학자들이 인해전술을 펼치는지. 행동경제학을 빛냈거나 빛내게 해준 100명의 위인들 버전이던가. 상대팀 선수인 전통경제학자들에 심리학자들까지 대거 포진했다. 게다가 철수, 영희 등 한글판도 떼거지로 나오면 헷갈릴 판인데 캐머런, 카너먼, 캐머러라니!

그나마 다행인 건 마지막 8장에 넛지관련 내용이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넛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속의 사소한 특성이라고 한다. 남자화장실의 소변기에 파리 그림을 그려 넣었더니 주변에 오줌 방울이 튀는 현상이 80퍼센트 줄어들었다고 한다. 저자가 완벽한 넛지 사례로 꼽는 아이디어이다. 예전에 나의 흥미를 끌었던 소셜컨트롤이 다시 떠올랐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다는 넛지를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이 부분은 수월하게 읽혔다.

 

학문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숨이 찬데 수많은 걸음으로 한 문장씩 완결해나간 당사자는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까. 즐기지 않았으면 도달하지 못했으리라. 행동경제학이라는 한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로서 저자 스스로 얻었다는 교훈은 3가지이다. 첫째, 바라는 세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둘째, 이야기는 머릿속에 오래 남으므로 이야기로 표현할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라는 것이다. 저자의 가설은 수집된 데이터가 있었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셋째, 조직적인 차원의 실수를 방지하려면 목소리를 높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은 인간의 삶에 가까이 자리해야 할 학문 중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날마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자들은 다양한 사례를 찾고, 모의실험을 진행하고, 분석하고, 어떻게든 원리를 찾아내려고 탐구한다. 그들의 목적은 순수하다. 사람들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은 분명 다르다.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현실의 인간은 불완전투성이이다.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보다 더 불합리할 수 없는 순간도 허다하다.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알면서도 관성에 의해 멈추지 못하기도 한다. 사소한 요인에 어찌나 많이 영향을 받는 갈대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점이 인간의 매력인걸까. 냉혈인간 이콘보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니 샴푸향이 느껴지는 어설픈 인간이 더욱 정겹게 다가오는 걸보니.

 

 

p93, 밑에서 6째줄: 한두 한 두

p155, 3째줄: 나둔 나눈

p264, 4째줄: 그 들의 그들의

p293, 3번째 단락 첫줄: 캐머런 캐머러

p308, 2번째 단락 4째줄: 관찰보고 관찰하고

p426, 4째줄: 해다. 했다.

p538, 밑에서 2째줄: 그래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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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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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님 당황하셨다. 앞뒤맥락도 없고 당최 뒤죽박죽이다. 대놓고 체계 없음에 화도 나지 않았다.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가 아니라 , 이런 소설도 있구나.’였다. 정신분열증적인 방식으로 다룬 소설이라는 작가의 설명은 매우 적절했다. 정신이 분열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의 소설은 전쟁터를 연상시켰다. 적군과 아군, 낮과 밤, 여기와 저기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뜬금없이 시간 여행을 하는 주인공을 따라 과거로 갔다 현재를 찍었다 미래로 쑤욱! 미국에서 독일로 공간이동까지 하며 갑툭튀 외계인이 주인공을 픽업하여 동물원으로 옮긴다. 반전소설이라기에 <What A Wonderful World>가 흐르면서 폐허가 된 전쟁터를 느리게 보여주는 장면을 막연히 떠올렸다. 장엄한 다큐멘터리스러움을 예상했던 나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종횡무진에 적응이 되었는지 이때쯤이면 타임 슬립 할 타이밍인데 하며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5도살장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1945213일부터 15일까지 영미 연합군이 독일 작센 주의 주도인 드레스덴을 대상으로 행했던 대규모 공중 폭격을 고발한 소설이다. 5도살장은 당시 포로들이 수용되었던 도살장 건물로 드레스덴에 위치한다. 작가 커트 보니것은 23세에 독일군 포로로 잡혔다가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겪었으며 소설의 상당 부분은 그의 실제 경험이 투영된 사건이다.

23년 동안 마음에 담아온 경험의 무게는 얼마 만큼일까.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면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에 되도록 빨리 새기려 했거나 이도 아니면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텐데. 1945년의 사건을 23년이나 흐른 뒤에 발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처음에는 빌어먹을 빌리라 중얼거리며 허겁지겁 주인공을 따라가기 바빴다. 마지막 해설 부분까지 읽고 나서야 소설에 묘사된 장면이 다큐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읽는 방식을 달리했다. 주제를 전쟁과 시간, 두 부류로 나누어 관련된 부분만을 독립적으로 읽어보았다. 이런 방식으로 읽어보니 책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전쟁 관련 내용만 군데군데 발췌하니 맥락이 이어졌다. 드레스덴 폭격과 관련된 기승전결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전쟁과 대규모 폭격에 대한 묘사가 생생한 이미지로 그려졌다. 2차세계대전에 참전해야만 했던 평범한 사람들, 이들이 포로로 잡히는 과정, 참전 군인들의 생활, 그들 사이의 심리전, 도살장으로 끌려들어가는 장면, 대규모 폭격에의 노출, 고기를 보관하는 장소에 숨었기에 다행히 살아남은 일, 폐허가 된 도시의 묘사, 전쟁 내내 잘 살아남았다가 전쟁이 끝난 후 폐허에서 찻주전자를 가져갔다는 이유로 총살당한 삶의 아이러니, 시체들을 처리하다 화염방사기로 화장하게 되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도살장 포로들의 생활은 장소의 정체성과 닮아있었다. 짐승에 가깝게 취급되던 그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둘째,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 등장하는 부분만을 따로 읽으며 시간의 의미를 돌아보았다. 모든 순간은 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늘 존재하리라는 것. 시간의 흐름을 한꺼번에 아우르며 과거에서 미래에 이르기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발상이 신선했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사실은 과거의 불행한 기억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해준다. 작가는 외계인을 통해 인생의 행복한 시간에 집중하라고, 불행한 순간은 무시하라고, 그러면 영원한 시간이 그냥 흐르지 않고 그곳에서 멈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순간 저 순간을 찾아다니며 영원한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면, 멋진 순간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고맙다고 한다. 시간이라는 차원을 바라보는 인식의 폭이 넓어지는 듯했다. 시간이 언급될 때마다 덩달아 책장 넘기기를 멈추고 과거의 짧은 장면들을 떠올렸다. 작가의 문장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다만 책의 뒤표지에 나와 있는 블랙유머, 웃음, 한없이 유쾌한, 눈물겹고도 흥겨운이라는 선전 문구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외국 정서의 차이가 이렇게나 큰 건지, 유머라고 손뼉칠만한 부분을 단 한 군데도 발견할 수 없었다. 피식거리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아 대체 어떤 문장을 유머라 부르는 걸까 오히려 궁금해졌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향한 작가의 돌직구는 날카로웠다. 감탄스러운 멘트가 여러 군데 눈에 들어왔다.

첫째, 이 소설이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설파한 문장이다. 저자는 대학살에 관해서는 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원래 모두가 죽었어야 하는 거고, 어떤 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거고, 다시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야 하는 거라 말한다. 대학살 뒤에는 모든 것이 아주 고요해야 하는 거고, 실제로도 늘 그렇다면서 마지막 부분에는 새만 빼면이라는 문장을 적는다. 뒤에 나오는 지지배배뱃?이라는 멘트는 전쟁을 일으킨 자들을 조롱하는 어투로 읽혀진다.

둘째, 작가는 이 소설을 쓴 이유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주인공 빌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드레스덴에 있었다고 외친다. 우리가 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그냥 댁이 알고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이미 지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차마 믿고 싶지 않아 소설처럼 느껴지는 잔혹한 다큐라면 더더군다나. 몇 년 전부터 4월 중순이면 노란색 리본이 우리 심장 안에서 더욱 뜨거워지는 것처럼.

셋째, 폭격을 한 사람들을 로봇으로 비유한 장면이다. 로봇이 폭탄 투하를 맡았다며, 로봇에게는 양심이 없고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하게 해줄 회로도 없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넷째, 히로시마 원폭의 두 배 가까운 사망자를 낸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몰랐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왜 그걸 그렇게 오래 비밀로 했어야 했냐는 질문이 대놓고 등장한다. 작가는 작중 인물을 통해 말한다. 동정심 많은 척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게 그리 멋진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할까봐 걱정했던 거라고.

다섯째, 현대 사회에서 소설의 기능에 대하여 말하는 부분이다. 완전히 흰색인 방에 약간 색을 칠해주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 소설은 몰랐던 사건을 알려주었다. TV속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인 양 거리감을 느껴왔던 전쟁이나 학살의 의미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여섯째, 폭격 후의 드레스덴에 대한 묘사이다. ‘시체 광산달 표면이란 두 단어의 등장으로 이 상황에 대한 설명에는 더해질 말이 없었다.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면 폭격 후의 드레스덴을 촬영한 사진이 전부 흑백으로 등장한다. 폐허를 달 표면으로 묘사한 작가의 표현에 소름이 돋는다. 도시 전체 건물의 90%가 파괴된 현장. 인공의 달인 듯 거의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광물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며 달 인간은 전혀 없어야 했다라 표현한 작가의 문장이 날카롭다.

일곱째,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의 실체와 주인공 캐릭터의 설정이다. 실제로 전쟁에는 소년병들이 많았다는 점, 평범하고 유약해 보이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약자의 입장에서 전쟁을 묘사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전쟁을 떠올릴 때면 이를 주도하는 지휘자나 무기를 사용하는 자의 시선에서 출발을 해왔다. 그들과 반대편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사뭇 달랐다.

 

처음 들어본 도시 명, 드레스덴. 어느 나라에 있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던 도시였다. 이 책에 대한 독서의 시작은 이 생소한 도시 이름을 검색해보는 데서 출발했다. 소설 초반에는 관련된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건가 궁금해서, 중반에는 묘사되는 장면들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확인하려고, 후반에는 피해 규모와 관련된 숫자가 믿기지 않아서, 다 읽은 후에는 인터넷 기록을 여러 군데 뒤져가면서 소설 속 장면과 다시 연결을 지었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드레스덴을 검색했다. 작가가 이 책을 쓴 목적이 드레스덴 폭격을 알리는 데 있다면 적어도 내게는 충분히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드레스덴은 비무장도시였다. 드레스덴 폭격은 융단이 깔리듯 이루어졌다 해서 융단폭격이라 불린다고 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고 한다. 1,249대의 폭격기가 동원되었고 3,900톤의 고폭탄과 소이탄이 투하되었다고 한다. 화재를 일으키는 능력이 뛰어나고 소화가 쉽지 않다는 소이탄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공식적인 사망자 수가 25,000명이라는 자료도 있고, 100,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자료도 있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135,000명이라고 기록한다. 사망자 수에 대해서는 인터넷 자료마다 달라서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왠지 소설 속 자료에 믿음이 간다. 3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토록 많은 무기가 그토록 많은 사람을 향했다는 점에 소름이 끼친다.

 

직접 겪은 일로부터 거리를 두며 관조적인 태도로 묘사한다는 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이 책에서 106번이나 등장하는 뭐 그런 거지는 대부분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문장이 기술된 후에 따라붙는다. 충격적이거나 잔인하거나 어이없거나 허무한 죽음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죽음에 관한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사실을 수시로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문장이다. 왜 나죠? 라는 질문에 외계인은 답한다. 호박 속에 갇힌 무당벌레처럼 이 순간이라는 호박에 갇혀 있는 것이며 여기에는 어떤 왜도 없다고.

깊은 밤, 불을 끄고 핸드폰 속에 담긴 드레스덴을 주르륵 더듬는다. 이제 자야겠다. 열을 내며 일하던 핸드폰을 잠재우니 순간적으로 순도 100%의 어둠에 휩싸인다. 암전. 잠시 후 어둠에 적응한 눈이 사물의 희미한 윤곽을 그려낸다. 작가가 목격했던 드레스덴의 풍경도 이와 비슷했을까. 적막한 시간과 공간의 냄새 말이다. 어두운 마음속에서 기억을 끌어올리고 그 의미를 곱씹어보다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하는 용기를 낸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나와 같이 무지한 독자는 이 소설로 인해 전쟁의 의미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으니까.

경험한 일을 통해 스스로의 소명을 찾아내기까지 그토록 오랜 기간이 필요했으리라. 책 안에서 두 번이나 언급된 라인홀트 니부어의 기도문을 천천히 읽어본다.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소설 속 주인공이 그랬듯이 작가는 폭격을 외면하지 않고 과감하게 시간을 거슬러 불타는 드레스덴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23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그는 드레스덴 폭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을 품었고, 이를 소설화하는 용기를 냄으로써 독자들의 인식을 바꿔주었다. 작가의 23년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안겨준 시간이었다.

소설 초반에 언급되었던 소금 기둥이 떠오른다. 기어이 뒤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 성경 속 롯의 부인의 심정을 작가는 이해했던 걸까. 완벽하게 암전되었던 세상에서 어쩌면 트라우마로 새겨졌을 일을 굳이 꺼내어든 작가의 마음은 기어이가 아니라 기꺼이에 가까웠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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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9-21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나비종님처럼 전쟁과 시간을 나눠서 읽어봤으면 좋았을 걸 그랬네요ㅠㅠ 그냥 쭉 읽기에는 꽤나 고생스러운 책이었어요. 저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다른 평들을 정말 많이 참고했거든요. 날카로운 분석력을 가진 서평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랐습니다... 나비종님도 그 중 하나입니다 ㅎㅎㅎ

아무래도 메인 사건은 드레스덴 폭격이니까 그 사건에 집중해보자 했는데 집중이 잘 안되더군요. 내용이 후반에 나오기도 하고 분량도 짜서 그런지, 독자가 확대 해석/분석을 해야하는 작품 같아요. 전시 속에서는 생존을 천운이라 볼 수가 없고, 죽음을 운명이라 볼 수도 없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누가 죽을 때마다 그런거지 하며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빌리 본인도 살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나 합니다. 역시 전쟁소설은 생명하고 가장 가까운 장르라고 생각되네요.

저는 전쟁보다는 지구인과 외계인의 시간을 보는 관점이 더 재밌었어요. 3차원에 사는 인간은 시간이 흘러가지만 4차원에 사는 외계인은 시간이 늘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말하니까요. 멈춰있는 시간속에 인간의 기억들이 자유로이 드나든다는 점에서 지구인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말한 걸까요? 작품 내내 간접적으로 운명과 미래를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 부분에서는 시간의 자유의지와는 별개인걸까 싶네요. 어렵습니다 ... ㅋㅋㅋㅋ

전쟁/대학살에 대해 ‘원래 모두가 죽었어야 하는 거고, 어떤 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거‘라지만 저자는 살아남았고, 이런 책까지 써낸 것을 보면 보니것이 자신의 생각과 모순됨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말도 하면 안됐지만 자신은 그러지 않았기에 이 책을 ‘지지배배뱃?‘ 같은 새 울음소리에 불과하다는 말로 대체하지 않았나 싶어요. 말씀하신 전쟁을 일으킨 자들을 풍자하는 표현도 맞는 듯 합니다... 정말 날카로운 작가에요^^;;

나비종님의 리뷰를 보니 이 책의 의도를 알겠어요. 라인홀트의 기도문 내용이었네요. 바꿀 수 있는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고 대하는 태도. 지나간 일들은 바꿀 수 없으나 남겨진 이들의 인식은 바꿀 수가 있죠. 그 용기를 내준 작가에게 존경을 표하게 됩니다. 이래서 혼자 하는 독서보다 같이 하는 독서가 더 좋아요 ㅎㅎㅎㅎ 개인적으로 너무 바쁜 달이어서 독서를 많이 못했는데 이렇게 연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남은 9월 잘 보내세요^^

나비종 2021-09-22 23:54   좋아요 1 | URL
저도 편안하게 읽기 어려웠어요. 전쟁을 다루는 소설이 마음 편하게 읽힐 리는 없겠지만 ‘소설‘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재미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흥미롭기를 기대했거든요. 횡설수설 뒤죽박죽인 게 제 스타일은 아니었음.ㅋㅋ
제게 날카로운 분석력이라니요! 대체 어디를 보고?^^;;

드레스덴 폭격은 확실히 배경 지식이 필요한 사건이었어요. 인터넷 검색을 많이 했어요. 찾은 거 다시 찾아서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그랬거든요.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을 인지하고서야 작가의 서술이 이해가 되더군요.
전시 속에서의 생존에 대한 물감님의 해석에 공감합니다. ‘뭐 그런거지‘와 곁들여서 읽다보니 생존과 죽음은 랜덤으로 선택되는 우연에 가까운 일인가 싶더라구요.

시간을 보는 관점이 이미지로 상상되었어요. 눈앞에 펼쳐진 공간들을 바라보며 내가 가고 싶은 장소로 이동하는 것처럼 시간도 그렇게 된다는 거잖아요. 원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그 시간대로 종횡무진하며 갈 수 있다는 발상이 신선했어요.
어차피 맛은 정해져있으니 31가지 중 골라먹는 재미를 찾으라는 거 아닐까요?ㅋㅋ

‘원래 모두가 죽었어야~‘가 보니것이 자신의 생각과 모순됨을 보여준다는 물감님의 견해에는 다른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원래 모두가~‘는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생각을 나타낸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는 거기에 반기를 든거구요. 너희들의 시커먼 속내를 다 알고 있는 나는 이렇게 지저귈테닷!!ㅎㅎ

제 나름대로의 해석은 그랬어요. 작가가 23년 동안 깨닫고 찾은 답이 라인홀트의 기도문에 있다구요.^^
소설의 내용은 드럽게 재미없었지만
1. 드레스덴 폭격을 독자들에게 확실하게 커밍아웃 시킨 점과
2. 외계인을 도입하여 라인홀트 니부어의 기도문과 시간을 연결지어 자신의 의지를 어필했다는 점에서
별 한 개를 더 추가하여 4개를 주었어요.^^;

저도 같이 하는 독서가 좋습니다. 책보다 리뷰가 더 기다려진달까요.ㅋㅋㅋ 자발적인 약속이 지닌 견인력으로 고전의 세계로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시간들이 바쁜 일상 사이에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9월 마무리 잘 하세요~^^*
 
사람들이 저보고 작가라네요 - 책바보 박 선생의 독서 글쓰기 비법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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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한지 3년 만에 이 책을 두 번 읽게 된 이유는 구입한지 3년이 지나도록 읽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해서였다. 작가의 전작독서만담의 여세를 몰아 출간된 지 두 달 만에 냉큼 구입했건만. 한동안 손이 가지 않았다. 책장에 꽂아놓았다.

시도를 아예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한참 뒤에 다시 집어 들었다. 그래도 샀는데. 표지를 바라보다 다시 제 자리에 주차시켰다. 한참 뒤에 다시 집어 들었다. 독서만담도 재밌었잖아. 심지어 사막 같던 리뷰에 작가님께서 거대한 오아시스 댓글을 뿌려주셨는데.

2018년이 지나기 전에 완독했어야 할 이유는 많았다. 1년에 두어 번 책표지는 구경했다. 그렇다. 책표지만 구경했다.

며칠 전에도 역시나 책표지만 구경하다 불현 듯 궁금해졌다. 구입한지 3년이 지나도록 읽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일독을 할 때는 실험 준비하는 마음으로, 재독을 할 때는 실험 결과를 분석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사람들이 저보고 작가라네요는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작가가 된 저자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서술된 책이다.

1<책 띠지 버릴까, 말까?>는 책을 선택하고 구입하는 과정에 대한 글이다. ‘책 띠지, 버릴까 말까 나만 고민할까?’에서는 어라?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격하게 공감했다. ‘책은 좋은 선물이 아니다는 엄지척이다. 이토록 디테일한데다 정확한 심리 묘사라니. 큭큭 대며 웃다보니 속이 뻥 뚫렸다.

2<책을 읽다가 라면이 먹고 싶다면>는 책읽기에 대한 내용이다. ‘책을 먼저 읽을까, 영화를 먼저 볼까?’는 한번쯤 고민했던 문제이기에 장단점을 고찰한 저자의 분석에 귀를 기울였다. ‘독서가를 위한 친절한 간식 안내서에서는 저자만의 고유성이 드러나서 미소가 지어졌다. ‘잡지를 읽자에는 유용한 잡지들이 많이 소개되어서 도움이 될 법했다.

3<이렇게 쓴다>에는 글 쓰는 과정을 담겨있다. 가장 많이 공감했다. 게시물의 댓글과 좋아요를 살피는 사람의 행동에 대한 문장은 처음부터 솔직했다. ‘시작하는 작가를 위한 까칠한 안내문에서는 사람들은 당신의 인생 따위에 관심이 없다를 시작으로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이어졌다. ‘필사적 필사에서 친숙한 필기도구가 언급되는 순간에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요즘은 연필을 사용하지만 꽤 오랜 기간 제트스트림 1.0 ’블루는 나의 최애 필기구였기 때문이다.

4<사람들이 저보고 작가라네요>에는 작가로서의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수영선수가 만들어내는 물결인 듯 유려한 문장들이 넘실거린다. 이게 박균호이지. 매력적인 시트콤처럼 흡인력을 뿜어낸다. 가장 저자다운 글을 읽으면서 비로소 발견한다. 책을 읽기 전의 망설임과 읽어가는 과정에서 멈칫했던 이유를. 나다운 게 뭔대? 나도 모르는 나를 니가 어찌? 라 하문하신다면, 독서만담을 읽고 끌렸던 노다지가 많이 묻혀있다고나 할까. 솔직한 심리 묘사, 독창적인 비유, 담담하게 구사하는 유머가 그것이다.

 

망설임의 이유는 두 가지였으며 다음의 내용이 내가 분석한 2%의 단점이다.

 

첫째, 제목이 주는 약간의 거부감이다.

사람들이 저보고 작가라네요라는 문장에는 겸손함이 들어있는 듯하면서도 긴 머리 툭 치며 찰랑 훗이미지가 연상된다. 그래, 당신, 작가지. 앞 문장의 발음 기호는 비뚤어질테다체의 억양을 준수하시오.

분위기는 그렇다 쳐도 좋은 책을 고르는 9가지 방법에서 기교를 부린 흔적이 전혀 없는 태백산맥,죄와 벌등의 제목을 언급하던 분 아닌가. 그런 관점이라면 이 책의 제목은 부합되지 않는다. 최근에 인상 깊게 읽었던 , , 나 작가의 전작 독서만담처럼 주제를 관통하는 임팩트가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굳이 구어체의 제목을 쓴다면 글쓰기와 보살님에 나오는 문장은 어땠을까. 이를테면,선생님, 제가 계속 글을 써도 될까요?』로. 앞의 제목은 중의적이다.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물음일 수도, 독자가 선생님인 작가에게 건네는 물음일 수도 있다. 너무 평범하다 싶으면 보살님, 제가 계속 글을 써도 될까요?라든지.

책의 부제인 책바보 박 선생의 독서 글쓰기 비법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 2장과 3장에 걸쳐 언급된 독서 글쓰기 비법은 자기계발서 분위기가 난다. 물론 자기계발서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하는 법이란 제목으로 독서나 글쓰기 관련 도서에서 자주 언급되던 내용들이라는 점이다. 신선함이 장점인 저자의 개성이 살짝 묻히는 느낌이랄까.

책 바보 박 선생의 작가 분투기로 적었으면 어땠을까. 제가 해봤더니 이러이러한 방법이 도움이 되더군요. 이런 뉘앙스로. 물론 1인칭 나비종 지맘대로 시점에서의 뒷북 제안이다.

 

둘째, 어미의 차이가 불러일으키는 미묘한 반감이다.

글쓰기 관련 내용을 언급했다는 책임감에서인지 저자의 문체는 무척 깔끔해졌다. 평소 듯싶다같다라는 어미를 반복해서보면 책을 덮어버리고 싶어지는 나의 관점에서는 취향 저격 문체이다. 군더더기 없고 간결하고 직선적이다.

다만 군데군데 과장된 단호함이 느껴진다. ‘해야 한다처럼 살짝 반감이 생기는 어미가 보인다. ‘당신을 독서가로 만드는 10가지를 읽으면서 생겼던 감정이다. 당위체나 명령체를 보면 거부감부터 일어나는지라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지도 모른다. 시키면 더 하기 싫어지는 심리와 비슷하다.

유명인들의 비법을 군데군데 인용한 단락은 집대성의 분위기를 풍겼으나 치밀하고 방대한 자료도 아닌지라 저자가 살짝 겉돈다는 느낌이다. 주어가 바뀌었으면 덜했으리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나를 독서가로 만든 10가지처럼 나는 이렇게 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어머! 당신도 그랬군요. 저도 그랬는데.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저자와 자신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결론은 이거다. 알맹이면에서는 좋았으나 틀이 아쉬웠다는 것. 언어는 바람직했으나 음색, 표정, 말의 고저 등 비언어적 요소 몇 가지가 살짝 어긋난 대화랄까. 어디까지나 1인칭 나비종 지맘대로 시점에서의 분석 결과임을 재차 강조한다.

덧붙여, 3장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서평을 쓰는 7가지 방법의 룰을 지켰음을 밝힌다.

진정성을 준수하였으며

어디어디가 좋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약간의 정보를 담았고

책을 꺼냈다 꽂았다 바보짓을 3년간 가끔 반복했던 생활 속 에피소드로 시작했거니와

긴 문장으로 서술했지만 까보면 별것도 아닌 2할 정도의 단점을 부각시켰으며

당연히 내 돈 주고 이 책을 샀고

댓글이 달릴 희망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만일의 경우 두 눈으로 보면서도 도무지 믿기지 않아 보고 또 보면서 그 댓글의 반응을 기필코 명심할 작정이며

평소 생활에서 자주 사용했던 언어 역시 MSG로 춉춉 뿌려댄,

매우 우수한 독자였음을 작가님께 어필한다.

 

 

p21, 8째줄: 일부 일부

p153, 4째줄: 저나트륨 조리법을 사용해서 열량을 대폭 줄이는 ~ 염분~

p254, 밑에서 3째줄: 가능한 가능한

p262, 2번째 단락 밑에서 3째줄: 기야 기야

 

오타는 아니지만,

p170, p183, p203: 어떤 문장을 쓰든 작가 고유의 권한이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문장이 반복되어서 1(퍼밀) 정도 신경 쓰임

p256, p259: 특기할 만한 특별히 다뤄 기록한다는 의미일까? 만일 특이하다는 의미로 쓰인 거라면, ‘특이한혹은 특이하다고 할 만한이 자연스러워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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