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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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학교에서의 쉬는 시간 10분은 화장실에 다녀오고 옆 반 교실에서 교과서를 빌리러 갔다 올 수 있는 시간이다. ‘just ten minute~’ 노랫말에 담긴 10분은 이성을 유혹할 수 있는 시간이며, “10분만~” 꿀잠에서 깨어야 하는 아침 시간 10분은 아이가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이다. 나만 쓸 수 있는 10분이라니. 시간 가게를 통해 주인공에게 주어진 10분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심적 갈등이 시작되는 순간은 이렇게 달콤했다.

 

오늘날 아이들의 모습을 둘러본다. 주인공이 사용했던 10분의 용도를 곱씹어본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10분을 사용하는 행동이 온전히 아이 탓일까.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와 있다는 생각’(p77)을 하며 공장에서 필요한 부품으로 최상의 제품을 찍어내는 것처럼, 나도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p77)을 받는 아이들,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학원건물을 보며 양계장에 갇혀 있는 닭들’(p78)을 연상하는 아이들, ‘엄마와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치 내가 주인의 취향대로 조립되는 DIY가구 같다는 생각’(p107)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주말마다 학원을 오가는 둘째 아이가 떠오른다. 강요를 하지는 않지만 나 역시 아이가 이왕이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대학 입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부모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문학 작품 속에서의 시간이란 가공되지 않은 지점토와 같다. 만드는 이의 의도에 따라 이토록 다양한 의미를 전해주는 소재가 있을까. 타임리프와 로맨스가 결합된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수명시계와 삶의 의미가 결합된 드라마 <어바웃 타임>, 타임머신과 SF가 결합된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이르기까지. 판타지적 요소가 포함되면서도 현실을 슬그머니 끌어당기는 작품들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 평범해 보이는 시간은 담고 있는 의미에 따라 제각기 특별해진다.

이런 점에서 이나영 작가의 의도는 특별하다. 작품을 통해 시간과 결합된 의미는 두 가지이다. 아이들의 삶을 조명하고,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묻는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시간과 얽혀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려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분명한 건, 행복이란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내 시간을 내가 주인이 되어 써야 할 것이다.’(p197) 작가의 결론에 공감한다.

 

사진처럼 담겨지는 시간이 있다. 멈추고 싶은 마음이 셔터가 되어 찍히는 시간들이다. 심장에 차곡차곡 접혀있다 어느 순간 꺼내어보면 두근거림으로 되살아나는 행복한 기억이다. 10분을 거래한 대가로 주인공이 빼앗기는 기억들을 따라가며, 행복했던 나의 기억을 좇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푸른 염화코발트 종이 같던 심장이 투명한 물방울처럼 다가오는 기억에 닿자마자 불그스름하게 변한다.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걷던 길에 찍히던 설렘, 나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오던 떨림이 재생되는 순간, 행복한 과거의 사진들은 생생한 현재로 타임리프 된다. 시간과 시간이 겹쳐지는 순간, 서로를 향해 마주 선 마음이 맞닿던 순간. 멈추고 싶은 순간들은 언제나 가슴 뛰는 기억이다. 드라이플라워처럼 말라간다는 생각을 간혹 하게 되는 중년의 나는 어느새 20대의 소녀가 된다. 그래, 그렇게 빛나던 순간도 있었지. 오롯이 두 사람만 공유하던 선명한 느낌이 찻잔에 띄운 꽃차의 잎처럼 되살아난다. 행복이 우러나는 향긋한 맛이다.

 

커피숍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하지를 이틀 지난 하늘에 낮의 온기가 설핏 남아있다. 음력 10, 상현을 지나온 달은 왼쪽을 향해 살짝 부풀어 빛난다. 조금 떨어진 왼편에서 목성이 빛을 낸다. 오른쪽으로 성큼 고개를 돌리니 조금 더 빛나는 금성도 보인다. 가슴이 살짝 뛴다. 이들이 빛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지평선 아래로 지나버린 태양이다. 태양을 중심에 놓고 금성, 지구, , 목성의 커다란 궤도를 그려본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시간부터 있었을, 미래의 어느 시간 내가 사라진다 해도 여전히 돌게 될 존재들의 현재를. 일상을 지나오면서 마음에 묻게 되는 서글픔, 슬픔, 외로움, 고민의 부스러기들이 별 것 아닌 듯 여겨진다. 행복한 기억이란 이런 의미일까. 밤하늘에 가끔 나타나서 마음을 토닥여주는 천체들처럼 닿을 수는 없지만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다시 태양과 함께 할 내일의 시간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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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 저도 어렵습니다만 1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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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의외라는 듯 다시 한 번 나를 본다. “국어나 가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전공을 잘못 선택한 바른 예죠.” 열에 여덟은 물리교육을 전공했다고 하면 매칭이 안 된다고 한다. 책을 읽고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시와 리뷰를 쓸 때면 종종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 전공을 잘못 선택한 모양이야. 감성적인 마음이 공식과 실험 데이터에 부딪히며 마찰음을 냈다. 사포로 된 바닥에서 물체를 끄는 사람이 되어버린 듯 어색하게 주춤거렸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나.

물론 과학이 나의 본성과 전혀 동떨어진 분야는 아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수학이었으니. 깔끔하고 명료한 점이 매력이었다.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술한 서술은 질색이다. 체계적인 알고리즘을 따라 사고할 때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과학적인 면이 아주 없지는 않다. 다만 글과 시가 조금 더 강한 인력으로 내 마음을 끌어당길 뿐이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책 제목이 마음을 몰랑하게 만든다. 이해하지 못했던 방대한 내용들을 억지로 머리에 구겨 넣으며 공부했던 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정확히 표현하면 이해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시험을 보거나 리포트를 쓸 때에는 임시방편으로 외우거나 자료를 찾아보면서 근근이 버텼다. 물리교육을 전공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모습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작가의 말을 읽고 깨닫는다. 4년 동안 전공을 공부하고 27년째 과학 수업을 해오면서 내가 무엇을 놓쳐왔던가를. ‘과학이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던졌어야 할 질문이다.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기에 답변이 궁색해진다. 과학의 근본을 끊임없이 질문해온 걸까.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명쾌하다. ‘과학은 삶의 태도다.(p6)’ 라고. 이 문장이 이제껏 나의 고민을 묶고 있던 실의 끄트머리를 붙잡는다. 4페이지에 담긴 내용이 실 끝을 가만히 잡아당긴다.

과학과 문학. 커다란 삶의 테두리 안에서 두 분야는 단지 방법의 차이일 뿐이라 정의해본다. 과학이 생각하는 방법이라면 문학은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굳이 경계 짓지 않아도 되는.

 

나는 무엇을 가르쳐왔던가. 냉철하게 판단해보니 주를 이루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다. 에모토 마사루의물은 답을 알고 있다(p113)에 관한 내용을 읽고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다.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물의 결정 사진을 인터넷으로 보여주면서 양파로 한 번 실험을 해보라는 둥 떠들어댔다. ‘공포의 전자레인지(p143~147)’ 에서는 휴대폰과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전자기파에 대한 내용을 읽고 나서 머리를 떨군다. 고차원적인 본질을 가르치지는 못할망정 엉성하게 틀린 지식이었다니.

교과서에 기록된 지식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말을 자주 하기는 했다. 지금 여러분들이 배우는 지식은 현재까지의 진리라서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무지에 대한 변명으로는 빈약하다. 조금 더 고민하고 제대로 찾아보았어야 했다. 그나마 과학자는 매일 실패하는 사람들이다.(p264)’ 라는 말로 위안을 삼는다.

 

많은 발명품들이 자연을 모방한다. 거미줄 소재 방탄복, 연잎의 나노 구조를 활용한 초발수 유리, 개코도마뱀 발바닥을 모방한 장갑이나 접착제, 홍합에서 단백질을 추출하여 의료용 접착제를 만들어낸다. 어떻게 저런 동식물을 보고 저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과학 뉴스를 검색할 때마다 매번 감탄한다. 기발한 물건들이 참 많다. ‘창의성이란 있는 것들을 이렇게 엮고 저렇게 편집하여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p286)’ 홍합탕을 맛있는 먹거리로만 생각했다면 이런 발명품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생물들은 응용할 점이 무궁무진한 대상이다.

글이나 시를 쓸 때에도 비슷한 룰이 적용된다. 얕은 지식이나마 내가 아는 과학 지식이나 관점은 적절한 비유에 매우 유용하게 동원된다. 어떻게 이런 상황을 여기에 비유할 생각을 했지? 가끔 듣는 말이다. 하루의 많은 부분을 과학책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생각이 절로 과학과 연결 지어지는 것일까.

 

삶과 동떨어진 과학은 의미가 없다. 저자의 글은 과학적인 요소를 삶에 적용하는 데 탁월했다. 사회적인 이슈에 과학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과정이 감탄스럽다. 작은 꽃이 번식하는 과정인가 싶더니 어느덧 연대로 이어진다. ‘시민 한 명 한 명의 힘은 작다. 우리가 주인이 되는 길은 벚꽃처럼 서둘러 흐드러지게 피는 수밖에 없다.(p52)’ 라고.

곳곳에 배치된 깊이 있는 유머는 짧게 웃고 길게 생각하게 만든다. 과학교과서가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잠시 상상해본다.

 

버려야 빛난다.(p57)’ 라는 문장이 문신인양 강렬하게 새겨진다. 본질을 생각할수록 이 책의 가치를 빛내주기에 충분하다. ‘빛은 빨아들이고 커질 때 나오는 게 아니라 버리고 작아질 때 나오는 것이다.(p60)’ 수업 시간에 태양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타는 유일한 항성이라고 얼마나 반복해왔던가. 그 과정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다. ‘에너지를 버릴 때 빛이 난다. (중략) 태양에서 빛이 날 때는 더 많은 것을 가져서가 아니라 자기의 것을 버리기 때문이다.(p57)’ 몇 번을 읽고 또 읽는다. 별의 일생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삶의 태도가 빛이 발한다. 버려서 빛이 나는 삶이라. 그런 삶을 그대로 닮은, 그래서 아름답게 빛을 내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문학과 과학 사이의 어느 지점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던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걸까. 나에게 적절하게 날아든 행운이었다. 책 속에 나온 지식이 술술 읽히는 순간에는 과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잠시 잊고 있었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신중함은 실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었음을. 과학적으로 사고하면서 사유의 폭이 넓어지고 있었음을. 관찰을 하면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온 습관이 대화에 적용되어 팩트와 스토리를 구분하고 있었음을.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지혜였다. 과학과 삶이 깔끔하게 연결되는 순간 생각했다. 여전히 어렵지만 과학을 선택하길 참 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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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 -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 창비아동문고 292
박하익 지음, 손지희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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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폰하고 노는 게 재미있어서 책 읽기 싫어ㅠㅠ

B : ㅋㅋ처음이라 그럴 거야... 그래도 스마트폰 중독되면 안 돼...알지?

A : 알았어염ㅋㅋ 대화하고.. 사진 찍어서 글 올리고..그게 다야..

B : ㅋㅋ그게 다인데도 그것만 하면 시간 훅 간다?

5년 전, 큰 딸과 주고받은 대화이다. A, B 중 누가 엄마일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 북을 메뚜기처럼 왕복하면서 글과 사진이 담긴 일상을 올렸다. 밴드와 카카오 톡도 매력적이었다. 짬만 나면 동물을 줄 세워서 팡팡 터뜨렸다. 간혹 지루하다싶으면 과일로 대상을 갈아탔다. 놀라운 세상이었다. 하루라도 글을 올리지 않으면 숙제를 안 한 듯 찜찜했다. 눈이 시뻘개지도록 피곤해도 피곤하다는 글로 나의 상태를 어필해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시선은 손바닥만 한 직사각형 공간에 수시로 빨려들어갔다. 핸드폰의 주인은 분명 나인데 노예처럼 스마트폰에 끌려 다녔다. 수시로 들여다보았고 곁에 없으면 허전했다.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내 가장 가까이에 머물렀다. ‘마음을 지키는 건…… 절대로 쉬운 게 아니야.(p186)’ 책속에 나온 문장을 보고 당시의 모습을 떠올렸다.

1년 남짓 스마트폰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다 어느 순간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 북 앱을 지웠다. 밴드도 필요한 공지를 올릴 때에만 들어갔다. 카카오 톡은 주로 업무의 목적으로 이용했다. 중간 중간 금단 증상이 오면서 앱이 깔리다 지워지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극복했다. ‘사람의 영혼은 본디 고요하다. 그 고요함 속에 깊이 잠기면 마음이 회복되고 새로워진단다.(p185)’ 스마트폰의 주인이 되자 어수선하고 조바심 일던 마음이 평온해졌다.

 

훤칠하신 공배우, 바닷가에서 간지나게 목화 꽃다발 쓱 내밀 때 TV를 뚫고 설레는 바람이 불었다. 배경음악까지 뷰티풀 했던 드라마 <도깨비>. 도깨비 캐릭터에 대한 호감은 201612월 이후 비약적으로 업그레이드된다. 본질적으로 귀신과 별반 다르지 않건만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날 것 같고 익살스런 이미지를 가진다. <혹부리 영감>에 출연했을 때에도 우스꽝스러웠고 방망이조차 아몬드 빼빼로를 뻥튀기한 듯 친근하다.

 

도깨비와 스마트폰의 콜라보?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도무지 상상되지 않던 이야기 안에서 현실의 스마트폰과 가상의 도깨비가, 과거의 놀이 문화와 현대의 그것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룬다. 작가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소재들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기발한 앱들, 도깨비를 세는 단위, 방향 표시법, 스마트폰 번호, 내비게이션 멘트의 응용, 대화창, 다양한 모드, 날대야 택배, 기의 9단계, 스마트폰 중독을 경고하는 방법이 신선하다. 기획이 놀라웠다. 새로운 방식으로 주제를 표현하며 흐르는 이야기에 나태하게 졸던 의식이 확 깨는 듯했다.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제를 드러내는 표현 방법이다. 이야기는 복합현실기술처럼 제공된다. 작품을 구상하는 작가의 관점을 따라 독자는 가상현실을 진짜처럼 경험한다.

인간의 영혼에 담겨 있다는 세 가지 생명의 기운에 대한 서술이 마음에 남는다. ‘무언가를 만드는 즐거움, 깊게 몰입할 때 맛보는 행복감,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할 때의 기쁨.(p184)’ 이 세 가지 기운을 관통하는 일이 있다. 바로 글쓰기이다. 글쓰기 지침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팁이 떠오른다.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라는.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듯 마지막 장을 탁 덮는다. 새로운 이야기를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툭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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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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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등장하는 접속사가 과속방지턱처럼 걸렸다. 겉도는 묘사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직전에 읽은쓰기의 말들의 후유증이 컸나. 깔끔한 일식의 맛이 나던 은유 작가의 문장이 생각보다 오래 맴돌았나보다. 1아프게 짝사랑하라가 끝날 때까지 이 책의 문장들은 설 끓인 김치찌개 맛처럼 마음 언저리를 겉돌았다. 2막다른 골목에 접어들면서 고민했다. 그냥 여기서 멈출까. 첫 번째 에피소드만 읽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 면에서 <어느 거지의 변>은 신의 한 수였다.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담겨 있다. 은행나무를노란 화관으로 표현한 문구가 두 번 나오면서 나의 눈은 다시 날카로워졌지만, 경험담이 많아지면서 눈 끝은 뭉툭해진다. 사고의 폭이 넓어질 기회를 놓칠 뻔했다. 막다른 골목에서 멈추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2장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을 작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풀어놓은 장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A+ 마음 아닌가. 그 마음은 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아프리카의 피그미족도, 북극의 에스키모족도- 알아듣는 만국 공통어이다.(p68)’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 언어로 소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행동으로 느껴진다. 마음은 번역이 필요 없는 언어이니.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내 짝꿍은 손이 뭉툭했다. 굉장히 친절하고 마음씨가 고왔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은은했던 친구의 미소는 맑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눈먼 소년이 어떻게 돕는가>도 인상적이다. ‘그렇게 남을 돕고 함께 나눌 줄 모르는 나라라면, 그런 데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p104)’순수한 이성적 판단이 담긴 대학생의 말이 여운으로 남는다. 무심코 지나치던 사회의 모퉁이를 돌아본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에서는노인과 바다가 등장한다. 책을 소개하는 글이나 일상적인 산문에서 공통으로 권장하는 도서가 고전이다. 참 신기하다. 몇 백 년 전에 쓴 글이 후세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을 보면. 인간이라는 종의 어딘가에는 공통된 감성의 스위치가 존재하는 걸까. 고전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학창 시절과는 다른 느낌으로 마음이 풍성해질 것만 같다.

 

3더 큰 세상으로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가, 4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작가의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며 나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초등학생이 되었다가 대학생이 되었다가 현실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수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기억 상자 속을 여행했다.

<엄마의 눈물>에서는 연탄재를 배경으로 한 어린 시절로 후다닥 타임 슬립을 하였다. 추운 새벽 연탄을 갈던 어머니, 일하러 나가신 사이 연탄을 간답시고 번개탄을 거꾸로 놓고 불이 안 피워진다며 땀 흘리던 기억, 온 집안에 배경음악처럼 자욱하던 연탄가스냄새가 훅 끼얹어졌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 돈이 모아지는 대로 쌀을 한 말씩 사던 날들이 빈번했다. 눈뜰 때마다 선명했을 일상, 그 막막한 무게를 껴안던 어머니는 지금의 나보다 더 젊은 나이셨다.

 

나의 어렸을 때 꿈은 주로어디에 가고 싶다가 많았다.(p124)’<>에 대한 부분을 읽고 있던 참이다. ‘엄마는 세계 여행 한군데 갈 수 있다고 하면 어디 가고 싶어?’중국에 있는 딸이 뜬금없이 메시지를 보내 묻는다. 딸에게 답문을 보냈다. 별이 쏟아지는 사막이라고. 한동안 잊고 있던 30대의 꿈이 생각났다. 겨울 새벽 2시쯤이었던가. 광해를 피한답시고 아파트 옥상 문을 열고 나갔다. 엘리베이터 공사 때문에 옥상 문을 개방했던 시기였다. 오리온자리 옆에 있던 토끼자리를 맨눈으로 관측해다. 벅차게 두근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때의 열정을 떠올리자 가슴이 뛰었다.

 

우리 모두 삶이라는 시험지를 앞에 두고 정답을 찾으려고 애쓴다.(p135)’작가의 문장 앞에서 오만했던 나를 반성한다. ‘글은 이렇게 쓰는 거야라 정답을 정해놓고 감히 작가의 글을 채점하려 덤빈 꼴이 아닌가. 글은 곧 삶이고, 모든 삶에는 정해진 답이 없는 것을. 표현이 다소 투박하면 어떤가. 삶에서 우러난 진심이 담겨있다면 지금처럼 마음을 출렁이게 할 수 있는 것을.

내 생애 단 한번이란 책의 제목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제목을 다시 음미하며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일렁이는 마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는 책이다. 뚝배기 같은 글이랄까. 작가만의 삶이 글 안에 담겨 서서히 온도를 높이다 불을 끄고 나서도 한동안 끓게 되는. 그녀만의 삶이 전해주는 맛을 느끼며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다. 덩달아 따스해지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p51, 1째줄, 북극성은 1100광년이래. 너무 멀어서 기록마다 편차가 있지만, 북극성까지의 거리는 약 400광년으로 알려져 있다.(참고: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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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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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자, 모나!리자, 모나리!, 모나리자! 초등학교 때 유행하던 말장난이다. 단지 네 글자 발음하는 데에도 강조하는 부분이 달라지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이 책에 담긴 104편의 짤막한 글들이 그랬다. ‘글쓰기라는 일관된 과녁을 향했지만 조금씩 다른 에피소드를 담고 전개되는 글들은 매번 달랐다. 1쪽 안에 새겨진 디테일과 완결성이란! 은유의 글을 보며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기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쌀 알 하나에 다보탑을 새긴다는 사람을. 고급 일식집에서 새우튀김 한 개를 맛본 기분이었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절로 깨달아졌다. 그녀는 훌륭한 요리사였다. 내가 계란 프라이만 할 줄 아는 원 푸드 초보 주부라면 그녀는 달걀 한 개를 놓고도 계란찜, 계란말이, 스크럼블 에그, 계란탕을 구현했다. 계란 프라이만 하라고 해도 채친 당근과 쪽파 등으로 색다른 데커레이션을 구현할 것 같았다.

 

글을 요약하는 게 힘들어요. 대학에 다니던 제자는 말했다. 20~30장 리포트를 쓰는 건 일도 아닌데 그걸 A4 한 장으로 제출하라는 과제가 너무 어렵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줄줄이 꿰어지는 이야기는 방앗간 가래떡처럼 언제 끊길지 몰랐다. 중간에 칼을 댈라치면 어정쩡한 거지 컷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시 쓰기에 도전한 이유 중 하나다. 시에 담으면서 흰 색으로 시작했던 마음이 붉은색으로 변하는 마법을 경험하였다. 입금 전후 배우의 모습처럼 최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마침표가 찍히는 장소가 생경했다. 짐작할 수 없는 내 글의 마지막이 스스로도 낯설었다. 단어를 잘라내고 이리저리 배치를 바꾸다가도 누에고치처럼 구구절절 뽑아내던 문장을 송두리째 버렸다.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깜지가 될 즈음 알라딘 서재에 업로드 했다. 찜찜한 마음을 꼬리표처럼 매단 채였다.

 

아름다운 표현에 자주 현혹되었다. 햇살, 바람, 나무를 이용하여 글에 색칠을 했다. 하늘하늘한 수채화이기를 바라며 붓을 들었다. , 내가 생각해도 기특한 표현이야.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를 썼다. 그렇게 몇 십번을 반복하니 입에 물렸다. 뻔한 표현, 남들도 다 하는 비유라는 생각이 점점 진해졌다. 제대로 된 화장법도 모르고 입술만 시뻘겋게 두드러진 갸루상이었다. 나의 글이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전력질주 하던 커서는 점점 발걸음이 둔해졌다. 짧은 구간을 왕복달리기만 하던 날들이 지나갔다. 우측 깜빡이만 넣고 출발도 못하는 초보 운전자가 되었다. 감성은 종종 새싹처럼 고개를 내밀었다. 햇살과 바람과 나무가 예민하게 살갗을 건드리는 건 사실이었다. 재료는 같았지만 질감과 양과 투명도는 달랐을. 감성은 발끝을 보이는데 허리를 숙여도 닿지 않은 손끝으로 초라한 글이 매달렸다. 미묘한 채도의 차이를 글로 그려내는 데 한계를 느꼈다.

 

새벽 세 시에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느낌표로 남은 문장들이 수시로 볼펜 끝에서 복기되었다. 수많은 느낌표를 나무인 양 마음에 심었다. 밑줄 그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 리뷰 안으로 어떤 문장도 불러내기 어려웠다. 느낌표가 빽빽한 숲을 이룰 무렵 물음표 하나가 꽃으로 피었다. ?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작가의 책은 이 한 글자를 남긴 채 어젯밤과 오늘 새벽을 주섬주섬 챙겨가지고 달아났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표현의 한계가 아니었다. 그건 둘째 문제였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나의 글의 존재 이유였다. 왜 나는 글을 쓰는 걸까?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대의 따위는 없었다. 내 글의 시작은 나의 눈물을 닦아내는 손수건이었다. 글자로 이루어진 알라딘 램프의 지니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시린 공기가 폐 속을 들락거리는 날이면 따뜻한 숨결을 후 불어넣어 주는, ‘나 너무 외로워라 쓰면, 내게도 나 너무 외로워라 말해주는. 내 마음이 담긴 글자를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손난로를 쥐게 된 양 온기가 저릿했다. 글을 쓰는 건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자주 외로웠다. 그것이 존재의 원초적인 고독에서 기원한 것인지 관계의 삐걱거림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은 마음으로 스며드는 냉기였다. 냉랭해진 관계의 원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양한 변인들이 시간과 공간을 품고 이미 지나가버린 상황에서는 더구나.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이것 때문이었을까, 저것 때문이었을까. 모든 것이 원인이었고 그 무엇도 원인이 아닐 수 있는 아이러니였다. 가로축과 세로축이 만들어낸 드넓은 공간에서 선명한 좌표를 찾아 점을 찍으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견딜만할 때에는 책을 읽었다. 한겨울 노숙자가 된 기분으로 드라마를 신문지처럼 덮고 잤다. 그마저 견딜 수 없을 때 하게 된 것이 글쓰기였다. 시집이든 소설이든 동화든 다큐 형식의 글이든 책을 읽을 때마다 알라딘 서재에 리뷰를 올렸다. 때때로 일렁이는 마음을 시로 옮겼다. 되도 않는 글을 무작정 끄적거렸다. 글은 자꾸만 초라해지려는 나를 어루만졌다. 내게 있어 글은 온기를 향해 허우적거리는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아프다며 질척한 넋두리를 하는 글들이 많았다. 음울한 흑백 사진 같다 여겼다. 어떤 이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뿐인데 내 글을 읽고 울었다는 이가 생겼다. 내게서 나온 글이 누군가에게는 거울이 되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이들이 간혹 고맙다는 댓글을 남겼다. 신기하면서도 신이 났다. 즐거운 근육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글도 그림처럼 해석의 차이가 강하게 작용하는 예술이었다.

좋은 글은 자기 몸을 뚫고 나오고 남의 몸에 스민다.(p219)’라는 말처럼 내 글에 조금이나마 좋은 글의 꽃가루가 묻게 된 것일까. 물음표의 포장을 뜯고 보니 화살표가 들어있었다.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 왠지 알 것 같아서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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